#114
“좀 막무가내죠.”
멋쩍게 웃으며 중얼거리던 조정현은 자신을 보는 지승혁의 눈길을 한 번 피했다가 이내 다시 맞추었다. 지승혁의 얼굴을 본 순간 어려서 이렇게 모순적인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었던 걱정이 사라졌다.
지승혁의 얼굴에 머물러 있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눈매를 가늘게 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지승혁의 눈동자에 있는 건 오로지 뜨거운 애정뿐이었다.
얼굴 구석구석 닿는 그 집요한 시선에 귓불까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만 쳐다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도리어 더 봐 줬으면 싶었다. 다른 건 일절 보지 말고 저만 바라보라고 하고 싶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아요?”
소곤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갑자기 나온 질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는 굳이 되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계속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다시 묻는 지승혁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의 질문은 단순히 조정현에게만 묻는 것이 아니었다. 제 손 안에 들어온 것이 믿기지 않는 듯, 스스로에게 확인하려는 질문이었다.
허락을 구하는 조심스러운 물음에 어떻게 대답을 해 줘야 할까, 조정현은 잠깐 고민했다. 좋다, 아니다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었으나 뭔가 멋진 말이 없을까 싶었던 거다.
그러나 조정현은 자신의 얼굴 표정을 하나도 놓지 않겠다는 듯한 집요한 시선을 눈치챈 시점에서 그 고민을 끝냈다.
마음을 전달할 때 멋진 말이 없어도,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단순한 말 한마디면, 그저 충분했다.
지승혁은 조정현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맛있는 간식을 앞에 두고 ‘기다려.’라고 명령을 받은 멍멍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조정현은 그의 눈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무슨 대답을 할지 알고 계시잖아요. 당연히 좋아요.”
지승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정현을 쳐다보았다. 얼굴에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그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본다, 라는 행위가 이렇게까지 기꺼울 줄은 몰랐다.
조정현은 며칠간 씻지 못하다가 드디어 샤워를 하는 사람처럼 그 시선의 홍수를 즐겼다.
한참을 쳐다보기만 하던 지승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정현의 얼굴 위로 손을 덧그리듯 움직였다. 닿을락 말락 하는 간격을 유지할 뿐인데도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긴장되었다.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조정현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그의 손이 솜털을 건드릴 정도로 가까이에서 움직이는 걸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기에 더욱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몸 안쪽의 깊은 곳에서 가눌 수 없는 열기가 흘러나와 전신을 데웠다.
“키스해도 괜찮아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조정현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지독하게 색정적인 목소리가 관능을 부추겼다. 결국 참지 못한 조정현이 먼저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따뜻한 입술이 너무나 좋았다. 조금 전까지 했던 뽀뽀 같은 게 아니었다. 그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
지승혁의 아랫입술을 살그머니 물고 혀로 간질이자 그가 나지막이 탄성을 질렀다. 그의 단단한 몸을 끌어안자 품 안 가득히 들어오는 충실한 느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몇 번 반복하는 사이 그 간격이 점점 더 짧아졌다.
키스일 뿐이었는데. 단지 키스일 뿐이었지만.
그건 그저 입술을 겹치는 것 이상의 행위였다.
기묘하게도 포만감이 들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인가 싶었으나 달리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영혼이 채워지는 것 같은 그 설명하기 힘든 감각에 금방 도취되었다. 온도가 딱 좋은 물에 그대로 몸을 맡기고 싶은 충동과도 닮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행위였다.
부족했던 영혼이 가득 차오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조정현의 입술에서 만족스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고 그것과 동시에 지승혁의 혀가 망설임 없이 얽혀 들었다.
뜨거운 혀가 입 안 곳곳을 유영했다. 이를 문지르고 민감한 혀를 맛보고 단단한 입천장을 두드리기도 했다. 말캉한 혀와 점막이 닿았다가 떨어지고 서로의 타액을 달게 삼켰다. 손을 움직여 지승혁의 단단한 육체를 쓰다듬었다.
등에 소파가 닿는 게 느껴졌다. 어느 틈에 누워 있는 상태가 되었다. 다리 사이에 들어온 지승혁의 몸에 고개를 든 조정현의 것이 비벼졌다. 그의 것 역시 발기한 상태였다.
옷감 너머로 느껴지는 딱딱한 것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뜨겁게 터져 나오는 숨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였다.
그건 난잡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키스였다.
조정현은 키스를 하며 깨달았다. 그가 너무나 그리웠다. 너무나 보고 싶었다. 지금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그리움에 질식이라도 할 것 같았다.
내부에 있던, 남아 있던 불씨가 화닥거리며 덩치를 키웠다. 온몸을, 정신을, 마음을 집어삼킬 것 같은 열기였다.
이마에 진땀이 맺히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큰일이 날 것처럼 달라붙어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후회해도 이제 못 들어줘요. 하지만, 헤어진다는 것 말고는 다 해 줄게요. 그게 뭐든. 다.”
낮게 가라앉아 조금 쉰 듯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지승혁을 보았다. 살짝 땀이 난 이마를 맞대고 문질렀다. 그의 이마 역시도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조정현은 지승혁도 자신과 비슷한 상태라는 게 더없이 기뻤다.
참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잡아 입을 맞추었다.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며 젖은 소리가 났다. 단단하게 융기한 지승혁의 것을 느낀 조정현은 참지 못하고 허리를 흔들었다. 저도 모르게 무심코 해 버린 행위에 지승혁의 입에서 달짝지근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숨소리는 마치 애무처럼 성감을 자극했다.
“……아, 흐으. ……형. 아으…….”
그것밖에 머릿속에 없는 짐승처럼 허리를 꿈틀거리며 문지르던 조정현의 허리를 지승혁이 잡았다. 붙잡아 멈추게 하는 건가 싶었지만 오산이었다. 그의 큰 손이 조정현의 엉덩이를 잡았다. 달콤한 저림이 몸을 울렸다.
헐떡이며 페로몬을 내보내던 조정현은 지승혁의 페로몬이 없음에 일순 아쉬움을 느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페로몬이 없어도 눈으로, 손으로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작은 움직임과 내뱉는 숨소리의 미묘한 변화. 그리고 저를 쳐다보는 눈동자에 담긴 건 페로몬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의 수고스러움이 더해졌지만 그만큼 더욱 지승혁에게 주의를 기울이면 되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관찰하는 것. 그건 더 이상 ‘수고’라는 단어가 붙을 수 없는 행위였다. 이미 지금도 하고 있던 일이 아니던가.
벌어진 입으로 가쁜 숨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그건 지승혁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내뱉은 숨이 부딪치고 섞여 들어갔다.
지승혁은 마치 삽입을 하는 것처럼 허리를 움직였다.
외설스러운 행위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조정현이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제 쪽으로 끌어당기자 너무나 쉽게 딸려 왔다. 입술을 비비며 혀를 섞고 옷 위로 서로의 것을 문질렀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좋았다.
“으, 흐으. ……으, 응, 으응.”
먼저 절정에 도달한 건 조정현이었다. 턱을 치켜들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어이없이 찾아온 절정에 당혹스러웠지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하아. 아. 윽.”
그리고 바로 뒤를 이어 지승혁이 몸을 굳혔다. 이를 꽉 물고 쾌감에 젖어 있는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흐려져 멍해진 채였다.
그런 지승혁을 끌어안고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었다. 지승혁도 그런 조정현을 품에 안은 채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 뽀뽀하기 시작했다.
이마와 뺨, 코끝이며 목덜미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뽀뽀에 간지러움을 느낀 조정현이 살짝 웃으며 몸을 움츠러뜨리고 나서야 지승혁이 멈추었다. 조정현은 자신의 몸 위에 포개어지듯 겹쳐진 지승혁의 등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침대로 가지도 않고 옷을 입은 채 서로 몸을 비비는 행위로 사정했다. 정액에 옷이 젖어 축축해졌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껴안은 상태로 있고 싶었다.
이렇게 조급하게 굴고 체면도 뭐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여유 없는 상태라는 게 몹시도 기꺼웠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맞붙어 있는 피부 너머로 느껴지는 듯했다.
“……어.”
지승혁이 몸을 움직여 조정현을 제 몸 위에 올려놓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세가 바뀌어 아연한 표정을 짓던 조정현이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겁, 무거우실 텐데.”
“뭐 얼마나 무겁다고요. 내가 정현이 위에 있는 것보다는 낫죠. 기대요.”
목덜미 쪽을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에 조정현은 곧 몸에 힘을 빼고 그에게 체중을 실었다.
침대로 가는 게 더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덮쳐 오는 피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어제 하루 종일 일도 많았고, 그 후로도 지승혁을 기다리느라 내내 깨어 있던 여파가 지금에야 밀려들었다. 긴장이 풀려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 듯했다.
샤워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당장 하지 않아도 큰일이 나는 건 아니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주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침대로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따뜻한 체온이 주는 안정감에 잠겨 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형.”
나직이 그를 부르자 지승혁이 “응?” 하고 대답해 왔다. 조정현은 그의 가슴에 올려 둔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전에 말씀하신 거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던 거,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알겠는데요. 저, 저도 걱정 마시라는 말씀 드린 적 있었구요. 그치만 저희 사귀는 사이잖아요. 걱정 정도는 하게 해 주세요.”
말을 마친 조정현은 고개를 움직여 지승혁과 눈을 맞추었다. 그가 눈부신 걸 보는 듯한 얼굴로 조정현을 응시했다.
“알겠어요. 그래요. 정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승낙이 떨어져 기뻤다. 조정현은 솟아오르는 웃음을 구태여 참지 않았다.
하나하나 이런 식으로 허락을 구하는 것도 좀 이상하긴 했으나 그런 과정 자체가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혹여 쓸모없다고 해도 어떤가. 실패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종종 있을 거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한 명이 아니었다. 평생 싸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부딪치고 깨지고, 그럼에도 서로를 놓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처음부터 능숙한 사람은 없다. 언제까지고 배워 가면 됐다.
서툴러도. 미숙해도. 투박해도. 그게, 사랑이었다.
지호택 회장의 상태에 대해서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따 잠에서 깬 후에 물어도 될 것 같았다. 밀려드는 수마는 조정현의 의식에 강하게 침습했다. 조정현은 지승혁이 자신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는 걸 느꼈다.
노곤노곤하게 잠에 드는 와중, 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였다.
동이 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