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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113)화 (113/130)

#113

지승혁이 만진 자리 자리마다 진득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오로지 조정현만이 느낄 수 있는 불꽃이다.

“차라리 각인을 할 걸 그랬어요. 정현이가 나밖에 모르게. 다른 데로 눈도 못 돌리게. 그렇게라도 묶어 놓을 걸 그랬어요. 내 페로몬에 푹 절여서 날 보는 것만으로도 아래가 젖게 만들어 놓을걸. 만약에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나 말고는 다른 사람으론 만족할 수 없도록,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릴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 버렸을 거예요.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강한 표현. 강인하게 자신을 옭아맨 팔. 그러나 그 이면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전혀 반대되는 거였다.

지승혁은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의 페로몬을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전해지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걸 느끼고 있는지.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강해 보이던 남자였다. 그런 그가 지금 연한 속살을 모조리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지금 하는 말 어느 것 하나도 거짓인 게 없을 거다.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정에 조정현의 속이 울렁거렸다. 그가 이 정도로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이 머릿속에 들끓었다.

숨기지 않고 모조리 드러낸 자신을 향한 그의 독점욕이 고스란히 느껴져 조정현의 내쉬는 호흡이 떨렸다. 그리고 그건 지승혁에게도 전해졌을 게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지승혁은 팔에 힘을 주었다.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마저 조금 불편할 정도였다. 그가 모르진 않을 거다. 그런데도 그는 팔에 힘을 풀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의 몸이 빈틈없이 붙었다.

“내가 이런 새끼예요. 욕심만 앞세우는 이기적인 놈. ……질렸어요?”

아니다. 지승혁은 적어도 조정현에게 있어서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조정현이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조정현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해 두고 듣지 않겠다는 듯 귀를 막는 사람처럼 고집스럽게 제 할 말만을 이어 갔다.

“내가 감히 욕심낼 수 없는 사람이란 거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당신 하나만은 내가 가질 거예요. 무서워하지 말아요. 떠나지 말아요. ……제발 부탁이니까 내 옆에 있어 줘요.”

마지막은 숫제 간청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듣기 좋은 미사여구는 일절 생략된 단순한 표현은 그만큼 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다. 몸이 저릿저릿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자기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몸 전체가 심장이 된 것처럼 쿵, 쿵, 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든. 뭐든. 그가 원하는 걸 들어주고 싶었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단순한 동정 때문이 아니었다.

“저는.”

그저 딱 한마디를 내뱉었을 뿐인데도 지승혁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그의 눈동자에서 엿보였다.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는가. 지승혁이 두려워하고 있다니.

그와 전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지승혁에게서 볼 수 있을 거라 예상한 모습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실제로 지승혁의 눈에서, 호흡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조정현이 무슨 말을 할지, 혹시나 자신을 떠나갈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자신보다 열 살이나 나이 많은 남자인데.

키도 머리 하나 이상 큰 데다가 체격도 좋은데.

그런데도.

사랑스럽게 보였다.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저를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눈앞의 이 남자가.

“……저는요. ……잠깐, 형. 잠깐만요.”

키스로 조정현의 입을 막을 요량인 듯 얼굴을 가까이하는 지승혁의 행동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굴 정도로 그는 무서워하고 있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을 멈춰 세웠다. 턱의 아랫부분을 손으로 지그시 막자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우선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지승혁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기민하게 조정현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힘으로 누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뭐라고 한다 해도 결국 본질은 그거였다.

지승혁은 조정현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절대로.

이대로 흐름에 몸을 맡겨 버리면 그 역시도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았다. 확실히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어영부영 넘어갈 수는 없었다.

확실히 말해 주고 싶었다. 직접. 말로. 자신이 낸 소리가 그의 귀에 닿을 수 있도록.

“형은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초연한 것도 아니고 성숙한 것도 아니에요. 형이 다른 사람이랑 얘기하시는 것만 봐도 신경 쓸 정도로 속이 좁아요. ……지금도.”

조정현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감추는 것 없이 전부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망설여졌다. 하지만 지승혁의 진심을 듣고 이대로 혼자만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는 없었다. 실제 느끼는 감정을 없는 시늉 하며 초연한 척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혼자만 점잔 빼고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말을 잘하지 못해도. 부족한 말솜씨더라도 진심을 전할 수는 있었다.

아무리 부족한 조정현이라도 지승혁은 받아 줄 거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꼴불견인 모습을 보여도, 바닥을 보인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눈총을 받는 짓을 한다 해도 그는 받아 줄 게 틀림없다.

“무섭지 않으냐고 하셨는데…… 전혀요. 저를 원해 주시는 거, 저는 좋아요. 저에게 그런 욕구를 느껴 주신다는 게 좋았어요. 형은 그렇게 간절, 아니, 그, 말씀하고 계신데도 저는 비열하게 그 모습을 보면서, ……기, 기뻤어요. 조금 전에 소름이 돋았던 것도, 저기. 형이 싫다거나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조, 좋아서. 좋아서 그랬어요.”

직접 입에 올리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막연하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침묵하는 것과 자신이 직접 소리 내어 구태여 인정하는 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었다.

“저는 지금도…….”

거기까지 말한 조정현은 한 번 입을 다물었다. 너무 적나라한 단어를 말하기에는 아직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해야 했다. 말하지 않으면 닿지 않는다. 말하지 않고는 상대에게 전할 수 없다.

말하지 않고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건 어리광일 뿐이다.

“저도 형을 원해요. 형만 원해요. 승혁이 형이 아닌 다른 사람은 싫어요.”

조정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지승혁의 아랫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 뗐다. 소리조차 나지 않는 정말 가벼운 접촉이었다. 살짝 닿기만 할 뿐인 접촉에 지승혁의 얼굴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바뀌었다.

“저는 형과 함께라면 다 좋아요. 그게 뭐든, 다요.”

지승혁은 조정현이 하는 말의 이면까지 따져 보려는 듯 까다로운 얼굴을 하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형이 저에게 주시는 건 다 좋아요.”

확신을 담아 한 말에 지승혁이 입을 벌렸다.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쉽게 좋다고 말할 게 아니에요. 정현이는 그게 뭔지 상상도 하지 못해요. 나는 너를, 마치, 온실 속에서 키우는 것처럼, ……분재처럼 너를-”

조정현은 아직도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는 지승혁의 품에서 낑낑거리면서 팔을 빼 그의 입을 막았다. 갑작스럽게 툭 던져진 비유가 조금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조정현은 개의치 않았다.

“온실 속에서 키운다는 건 그만큼 소중하게 다룬다는 거잖아요. 그게 왜요. 분재면 어때서요. 괜찮아요. 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시는 걸 테고, 그게 제게 나쁠 리 없어요.”

조정현은 확신했다.

지승혁이 어떤 판단을 내리건 어떤 결정을 하건, 그게 자신에게 나쁘지 않을 거라고.

그 생각의 출발점은 자신을 위한 일일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조정현은 힘들다고 해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조정현의 입술이 지승혁의 입술에 다시 한번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번엔 쪽, 하는 소리가 났다.

“형이 가지세요. 제가 형한테 저를 드릴게요. 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형 거였어요.”

지승혁의 얼굴이 잠깐 멍해졌다가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그건 아주 찰나였지만 조정현은 놓치지 않았다.

자신을 원하면서도, 진실로 원하면서도 막상 그 순간이 되니 지승혁은 겁이 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이유가 뭔지 조정현은 궁금하지 않았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정현은 말문을 열었다.

“혹시 조금 전에 형이 말했던 것 때문이라면, 괜찮아요. 제가 판단한 거예요. 괜찮다고. 그러니까 아무 말 하지 마세요.”

조정현은 고개까지 좌우로 흔들며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잘라 말했다.

“정말 싫으면 제가 말할 거예요. 그러니까 형이 하시고 싶은 거, 형이 원하는 거 다 하세요.”

조정현은 자신을 끌어안고 있던 그의 손을 풀었다. 처음엔 버티던 지승혁이었으나 조정현이 손가락에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끼자 이내 순순히 그의 뜻을 따랐다. 조정현은 천천히 모양 좋은 손톱 끝에 입을 맞추었다.

“저를 더 욕심내 주세요. 더 가지고 싶어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뭐든 말해 주세요. 그게 뭐든 저는 형이 말해야 할 순간에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처럼 형에 대한 일을 다른 사람보다 늦게 알게 되는 건 싫어요.”

조정현은 말을 하면서도 제 말이 이상한 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앞뒤 말이 맞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계속 말을 하는 것도 퍽 민망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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