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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111)화 (111/130)

#111 

“저만, 저만 몰랐어요. ……왜 제가 형에 대한 일을 다른 사람보다 늦게 알게 되는 거예요? 물론 제가 현실적으로 뭘 도와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태준 형이랑은 예전부터 아시던 사이이니까…… 그러니까 저보다 더 편하시긴 할 테지만, 저는, ……저는 형의…….”

거기까지 말한 조정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표정이 몹시 고통스러워 보였다.

지승혁이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조정현 쪽으로 뻗었을 때였다.

“저는 대체 형의 뭐예요?”

작게 사그라드는 불꽃 같은 미약한 목소리였다.

흉통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지승혁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였다. 어디를 맞은 것도 아닌데 조정현의 말 한마디로 아픔이 실체를 가지고 엄습했다.

까딱하다간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서 간신히 잡고 있던 끈을 놓칠 것 같은 아득함이 엄습했다.

“……정현아, 아냐. 말하려고 했어요. 나는 정말로.”

“그게 언제인데요. 일 다 끝나면요? 그동안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냥 있고요? 입장 바꿔서 제가 그랬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형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일이 다 끝난 다음에야 사실 위험한 일이 있었는데 이젠 괜찮아요, 하면, 그때도 형은 그렇구나, 아무렇지 않게 넘기실 수 있어요? 형도 못 하실 일인데 왜 저에게는 이해하라고 하세요. 지금 정말 비겁하다는 거 알고 계시죠……?”

조정현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붉은 입술이 잘게 떨렸다.

“저는, 그냥 계속, 형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계속 그렇게 바보같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했어요?”

지승혁은 조정현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그만뒀다. 뻗었던 손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형 일이잖아요…….”

조정현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 울음이 배어 나왔다.

“형에 대한 일이라면 다 알고 싶어요. 제일 먼저 알고 싶어요. ……사실은 이런 얘기까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부탁해서 억지로, 마지못해 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더 싫어서 괜찮은 척하고 싶었어요. 정말 그러고 싶은데, 형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웃지를 못하겠어요.”

숫제 꺼질 것 같은 목소리였다. 고개 숙인 조정현의 훤히 드러난 목덜미가 애달파 보였다. 목뼈가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여 그러잖아도 마른 몸이 더욱 앙상하게 보였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는 조정현의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였다.

“……죄송해요. 밤새고 오셔서 피곤하셨을 텐데 제가 괜히 이상한 말을 했어요. 좀 쉬세요.”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조정현이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말했다.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려는 조정현을 망연히 보던 지승혁은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잡았다. 이대로 대화를 끝낼 수는 없었다. 지금을 놓치면 다시는 돌이키지 못한다, 그런 경고음이 본능에 울렸다.

조정현은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좀, 시간을 주시면 제가 알아서-”

“정현아.”

놓아 달라는 것처럼 붙잡힌 팔을 살짝 흔드는 움직임에 조급해진 지승혁은 다급히 조정현의 말을 잘랐다. 그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을 만큼 조바심이 났다.

“정현이 넌 몰라도 되는 일이었어. 네가 그런 것까지 알 필요 없어. 너는 그냥 여기서-”

거침없이 이어 가던 지승혁의 말이 멈췄다.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조정현이 두 눈에 의아함을 담고 지승혁을 올려다보았다.

“……형?”

‘예쁘게 치장된 집에서 가만히 앉아 예쁘게 웃고 있기를 바랐다.’

아무리 고상한 말로 포장해도 들어 있는 의미는 저거였다.

여태까지 지승혁이 했던 건 조정현을 위한 작은 정원을 만드는 거였다. 햇살 한 조각, 물 한 방울도 모두 완벽히 계산된, 작은 인공 정원.

거기까지 생각한 지승혁의 눈꺼풀이 흠칫, 떨렸다.

따악, 딱.

그럴 리가 없음에도 환청이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작은 가위로 잔가지를 잘라내는 그 소리가.

이전에 한 번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씨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더니.”

지승혁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잇새로 중얼거렸다.

지금 제가 하는 짓이 꼭 지호택, 제 아비와 똑같았다.

제가 한 행동이 일방적으로 모든 걸 판단해 제 기준에 쓸모없는 잔가지는 모두 제거하고 모양 좋게 구부려 분재를 만드는 것과 다를 게 무언가.

그 대상이 지호택은 나무, 지승혁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점만이 달랐다.

지승혁의 얼굴이 굳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무리하셔서 몸에 부담되신 거 아니에요?”

이변을 깨달은 조정현이 지승혁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벌어졌던 거리가 좁혀졌다.

그는 이런 순간에도 진심으로 지승혁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었다, 조정현은. 따뜻하고 다정하고 상냥한. 곁에 있으면 그 온기에 마음마저 포근해졌다.

조정현은 입을 다문 채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는 지승혁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점점 더 안절부절못했다.

처음엔 그저 조정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힘든 상황임이 분명했는데도, 비뚤어지고 염세적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에서도 자신은 괜찮다고 하는 조정현이 애틋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좋은 면을 보려 애쓰는 그 모습이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그건 절대 타고난 게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사고할 수 있기까지 조정현이 얼마나 노력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 조정현에게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었고, 좋은 것만 누리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뭐든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었다. 싫은 생각이 들 법한 상황은 모두 차단하고 평화롭고 안온한 세상만을 보여 주고 싶었다.

맹세코 그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

한데 언제부터였을까. 지켜 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이상 순수하지 않게 된 건. 다른 뜻 없이 그저 조정현에게 좋은 것만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만이 아니게 되었던 건.

“…….”

그래. 페로몬 기관을 제거한 이후였다.

이제 지승혁은 이전에 조정현이 좋아하던 그 인물과 동일인이 아니었다.

극우성은커녕 알파조차 아니었다.

이런 상태로 우성 오메가로 재발현한 조정현을 만족시킬 수 있을 리 없었다.

관계에 대한 불확신에서 싹을 틔운 불안감이 지승혁을 뒤흔들었다.

알파나 오메가라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발정기와 각인.

그 본능적인 욕구를 지승혁은 단 하나도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 이전의 문제다.

조정현은 괜찮다고, 상관없다고 할 게 틀림없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그도 알고, 지승혁도 알고 있다. 발정기와 각인이라는 건 베타의 3대 욕구에 필적하는 강렬한 본능이었고, 그건 자신에게 맞는 상대와 만나야만 충족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전에 지승혁은 자신만만하게 말했었다.

상대가 알파든, 오메가든 상관이 없다. 페로몬에 부추겨지는 게 왜 나쁘냐고.

그저 그 사람을 이루는 것들을 전부 포함해서 좋아하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틀렸다.

그건 지승혁이 전부 가지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모든 걸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자신은 이런 게 없어도 된다고 하는, 그런 교만이었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지승혁은 얼굴을 감싼 손을 내리고 조정현을 쳐다보았다.

“……형?”

갑자기 안색이 변한 그의 태도가 의아하다는 듯 크게 뜬 조정현의 둥그런 눈에 지승혁의 얼굴이 고스란히 비치었다. 조바심에 평정을 잃고 질투를 감출 여유도 없는,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한 남자가 있었다.

조정현이 다른 사람을 보고 웃는다면. 희고 깨끗한 뺨을 붉게 물들이는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면.

지승혁의 입매가 빳빳하게 굳었다.

조정현의 마른 몸을, 그 안타깝게 찌푸려지는 얼굴을, 그의 상냥함과 다정함을. 그리고 순해 보이는 얼굴로는 상상할 수 없는 단단한 면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내어 주기 싫었다.

그걸 다른 사람이 알게 할 수 없었다.

조정현의 모든 걸 독점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조정현에게 느낀 감정은 인류애적인 대단한 게 아니었다.

한껏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조정현을 받아들였지만 한 겹을 까 보면, 겨우 한 겹만 까 보면 그 안에는 그저 자신의 얄팍한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전부였다.

그를 가지고 싶어서. 조정현을 품에 가두고 싶어서.

그저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도.

지승혁은 조정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쇄골 근처에 이마를 댔다.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지승혁은 감히 조정현에게 걸맞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처럼 귀한 사람을 가질 권리도 자격도, 무엇도 없었다. 조정현은 욕심 사나운 지승혁에게 주어졌던 기적이었다.

“미안해요.”

“네? 왜…… 갑자기 무슨……. 형, 괜찮으세요? 안쪽에 누우실래요?”

지승혁은 갑작스러운 제 사과에 당황하며 걱정하는 조정현의 몸을 더욱 깊이 끌어안았다. 따끈한 체온이 옷감 너머로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도 이 몸을 놓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붙잡지 않고 가라고 했을 거예요. 더 이상 알파도 뭣도 아닌 나보다 널 만족시킬 수 있는 더 좋은 사람을 찾아서 가라고.”

조정현이 숨을 삼키는 게 느껴졌다. 코끝에 조정현의 연한 살이 닿았다. 풋풋한 살 냄새가 욕구를 들쑤셨다. 이런 상황에서도 말이다. 짐승도 이렇진 않을 거다. 스스로에 대한 환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좀 더 멀쩡한 새끼였다면 아마 너를 보내 줬을 거야.”

한숨처럼 중얼거리는 지승혁의 말에 조정현의 몸이 움칫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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