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제가 잘못한 건가요?”
이어진 물음에 지승혁은 바로 답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지승혁이 답을 하지 않자 조정현은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형, 승혁이 형이 위험한 상황이었잖아요. 그걸 알고 있는데 저 혼자 집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었어요?”
“……네. 태준 형이 다 설명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다 알고도 갔다는 건가요?”
지승혁은 조정현의 손을 감싸고 있던 손을 떼어 팔짱을 낀 후 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조정현의 고개가 무언가를 따라가듯 움직였는데 지승혁은 그게 제 손이라는 걸 깨달았다.
조정현은 다시 지승혁과 시선을 마주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반응 자체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위험하니까 집에서 기다려 달라고 한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지승혁이 답답함을 누르며 질문했다.
그 물음에 조정현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의 속눈썹이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저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그렇게 말한 조정현은 눈을 깜빡거리면서 우물거렸다.
“……아니, 하나도 안 무서웠냐면 그건 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형이 거기 있으니까 참을 수 있었어요. 형도 거기에 오실 테니까.”
언뜻 대책 없이 들리는 말에 지승혁은 치밀어 오르는 한탄을 속으로 씹어 삼켰다. 고작 마음만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무런 예방 없이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만으로 부딪친다고 해서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 그런 건 책에서만 나오는 일일 뿐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때리면 계란은 깨질 뿐이고 바위는 고작 더럽혀질 뿐이다.
하물며 조정현은 열성 오메가다. 부딪치기 전에 깨질 수도 있었다.
지호택이 어떤 연유로 쓰러졌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런 건 요행이다. 운 좋게 일어난 일을 결과로 들이밀며 결국 잘되지 않았냐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건 말 그대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고 확률로 따진다면 말도 안 되게 낮다. 로또에 당첨되는 걸 기대하며 가진 돈을 모조리 탕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물며 이건 안전에 대한 문제다. 결코 그런 식으로 계산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안전에 대한 일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했다. 확신이 없다면 행동하지 않았고 100이 아니라면 도전하지 않았다.
그는 조정현이 안전한 곳에 있다는 확신이 든 이후에야 움직였다.
“지호택은 극우성이에요. 정현이가 어쩔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하지만.”
“위험했어요. 그곳에서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해요.”
“하지만, 태준 형도. 태준 형은 오라고 하셨잖아요.”
“정태준은 우성 오메가니까-”
“저도예요.”
짤막하게 낸 소리에 지승혁이 말을 멈추었다.
“……네?”
조정현의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한 지승혁은 멍청하게 되물었다. 아니, 사실은 너무나 잘 알아들었기에 확인차 물어본 거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뭐라고…….”
“저도 우성이라고요.”
말을 마친 조정현은 지승혁의 얼굴을 한 번 본 후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우성 오메가.
조정현이.
“누가 그러던가요. ……정태준이?”
“네? 네, 태준 형이…… 우성으로 재발현했다고.”
지승혁은 입을 다물었다. 정태준이 그런 걸 착각할 리가 없었고 괜한 말을 흘리는 타입 역시 아니었다. 그의 감은 확실했다.
그리고 결코 착각을 한 것도 아닐 터였다. 병원에서 따로 검사를 한다고 해도 같은 결과를 들을 게 분명했다.
지승혁은 이런 경우를 처음 듣긴 했지만 정태준이나 조정현이나 절대 없는 말을 지어 한 게 아닐 거다.
페로몬 기관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지승혁 역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우성 오메가라고.
지승혁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입 안이 말랐다.
“검사는, 따로 해 봤어요?”
“네?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 형 오시면 같이, ……하러 가려고 하긴 했어요.”
조정현은 약간 자신이 없어진 목소리로 답했다.
“설마 검사로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태준이 한 말을 듣고 결심한 건 아니겠죠? 그곳이 위험한 장소라는 걸 모르진 않았을 텐데.”
신랄한 어조에 조정현은 멍하게 지승혁을 쳐다보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제야 지승혁은 자신이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말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리고 조정현도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지승혁은 자신에게 좀 더 제대로, 평소처럼, 부드럽게 말할 약간의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했다. 그러자 잠잠해진 것 같은 조바심이 다시금 불쑥 치고 올라왔다.
뭐가, 어떻게 됐건 조정현은 경솔하게 움직였다. 앞뒤 제대로 확인하고 움직인 게 아니라 정태준의 말을 덜컥 믿고 위험에 스스로 발을 들이밀었다. 만약에 정태준이 속인 거였다면 어쩌려고 그렇게 스스럼없이 신뢰를 하는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지승혁은 바로 그 부분에서 조정현의 행동을 용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조정현은 각오를 다진 듯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말을 들은 지승혁은 팔짱을 낀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팔을 툭툭, 두드리던 걸 멈췄다. 조정현은 숨을 들이마신 후 말을 이어 갔다.
“물론 좀,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무모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저는 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영 몰랐을 거예요.”
조정현의 말에 지승혁은 눈매를 찌푸렸다. 조정현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올려 지승혁과 눈을 맞추었다. 눈가가 붉어진 것처럼 보이는 건 결코 착각이 아닐 거다.
커다란 눈이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심장이 밑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승혁이 입을 여는 것보다 한발 먼저 조정현이 말했다.
지승혁은 비뚜름하게 앉아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말해 주실 생각, 없으셨잖아요.”
조정현은 힘겹게, 질긴 풀을 씹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꼭 다문 입술은 파들거렸고 그런 조정현의 턱에 복숭아 씨앗 같은 주름이 생겼다. 이내 말을 하려는 시도를 하듯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조정현은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주먹 쥔 손으로 눈가를 태연하게 문지르고는 두어 번 정도 크게 심호흡을 했다.
“열흘도 넘는 시간이 있었어요.”
조정현이 한숨을 쉬듯, 떨리는 숨을 참으며 간신히 내뱉었다.
“형이 수술을 받기 전에 결심하셨을 때. 그리고 수술하시고 나서도 저에게 한 번도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상의도, 약간의 언질도 저에게 해 주신 적이 없었다구요.”
“말할 생각이었어요. 일이 다 끝나면, 모든 상황이 안정된 후에. 그러고 나서.”
지승혁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조정현의 눈을 마주 바라보지 못했다. 지승혁의 시선은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조정현의 입가 쪽에 있었다. 몇 번이고 깨물고 빨아서인지 입술의 색이 붉었다.
조정현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가 놓았다.
“그러다가 혹시나, 형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러면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조정현은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열심히 제 심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히스테릭하게 소리라도 꽥 지르면 될 텐데도. 나오는 눈물을 참지 않고 펑펑 울며 매달리면 간단한 일일 텐데도, 열심히 적절한 단어를 찾아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모든 게 다 지승혁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승혁의 가슴에 하나하나 아주 효과적으로 와서 박히고 있었다. 그는 조정현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얼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조금 달랐다. 애초에 그걸 모르던 게 아니었다. 못 느끼던 게 아니었다. 그저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저는 형이, 그런, 그런 수술을 받으셨다는 것도 몰랐어요.”
조정현의 눈동자에서 어렴풋한 원망을 읽을 수 있었다.
원망이라고 느낀 건 어쩌면 착각일는지도 몰랐다. 지승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에겐 조정현의 눈빛, 몸짓 하나하나가 자신을 책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이 말했던, 그, 프로텍트인가 하는, 그거요. 분명히 좋은 게 아닌 것 같은데, 형에게 나쁜 걸 텐데. 그러니까 수술을 받으신 걸 텐데. 뭔지 알아보고 싶어서 인터넷을 찾아봐도 뭐가 없었어요. 혹시나 싶어서 태준 형에게 여쭤보니까. 그러니까 승혁 형에게 대답 들으라고 하시더라구요.”
조금 가빠진 조정현의 숨소리가 적막한 공기를 갈랐다.
“태준이 형은 알고 계셨던 거죠……? 프로텍트라는 것도, 형이 페로몬 제거 수술하신 것도 다.”
그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긍정을 하는 것도 차마 할 수 없었다.
인정을 하는 순간 조정현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 가능했다. 그래. 그래서 할 수 없었다.
지승혁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런 일은 난생처음이었다. 조금이라도 손대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 설탕 공예품을 앞에 둔 사람처럼 어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당혹스러워하기만 했다. 사고라고는 하나도 하지 못하는 머저리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이 이런 상태가 된 것도 지승혁은 믿을 수 없었다.
머릿속에 거대한 태풍이 불어 생각들을 전부 뒤섞어 놓는 것 같았다.
그 태풍은 지승혁이 조금이라도 생각의 토대를 쌓아 올리려 애를 쓰면 쓸수록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애써 쌓은 그것들을 일시에 날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