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109)화 (109/130)

#109

정신을 잃은 조정현에게 다급히 다가온 정태준의 멱살을 잡아 벽에 밀쳤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정현을 대신 보냈는지 묻자 정태준이 지승혁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일갈했다.

두 사람 간의 대화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의 원인을 애꿎은 자신에게 돌리지 말라고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뭐라 대꾸하려 했을 때 조정현이 정신을 차렸다.

조정현은 잠시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가늠해 보는 듯 상체를 일으키고 눈을 깜빡거렸다. 그분은 어떻게 되었냐는 질문에 지승혁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대답했지만 조정현은 평소처럼 순하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저 지승혁을 잠시 가만히 쳐다보던 조정현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 보셔야 하는 걸 알고 있다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담담하게 말하는 조정현에게 뭐라 다른 이견을 낼 수가 없었다.

조정현을 정태준과 함께 먼저 보낸 후, 지승혁은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는 지호택을 데리고 한국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지호택을 알아본 병원 관계자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그의 법적 보호자인 지승혁은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알파와 오메가의 경우 원할 경우 자신이 보호자를 지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일전에 지호택에 대해 조사하던 중 지승혁은 법적 보호자 역으로 지정되어 있던 사람 대신 그의 보호자가 자신으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호택이 무슨 속셈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호자가 변경된 시기가 지승혁 자신이 그의 프로텍트에 들어간 이후라는 사실을 알고 내심 조소했다.

지승혁이 이렇게까지 할 거라는 건 지호택은 미처 예상치 못한 게 틀림없었다.

어떤 생각으로 그랬건 지금에 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긴급히 시행된 응급처치에도 지호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여러 검사 후에 나온 소견은 페로몬 상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거였다. 정상 수치의 열 배가 넘는 페로몬이 검출되었다고 했다.

일반적인 상태에선 절대 이런 수치의 페로몬이 나올 수가 없다고 하면서, 담당의는 자신이 40년 가까이 환자들을 만나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페로몬 쇼크까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상태이고, 정확한 병명 판별은 추가 검사 후에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정상 수치의 열 배가 넘는 페로몬. 지호택이 쓰러지기 전 났던 퍽, 소리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지호택이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을 묻는 의료진의 질문에 지승혁은 늦은 시간에 불러 가 봤더니 몇 마디 대화 후에 갑자기 안색이 변해 쓰러졌다고만 대답했다.

지호택이 페로몬과 관련된 여러 검사를 하는 동안 대기하는 내내 지승혁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들끓는 듯했다. 문제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마치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자신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든 그 감정의 정체를 지승혁은 알 수 없었다.

그 느낌은 조정현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을 때 제일 극심했다. 조정현의 이름이 뜬 화면을 물끄러미 보다가도 막상 통화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조정현의 이름이 적힌 화면을 멀거니 보다가 화면을 끄는 걸 반복했다.

지승혁으로서는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여태까지는 ‘한다’와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할 수 없다’라는 기분이 드는 건 불가해한 감각이었다.

그 느낌은 잠시 괜찮은 것 같다가도 어느새 덩치가 커져 뒷머리를 잡아당겼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낯선 감정을 무시할 수가 없어 짜증스럽고 귀찮았다. 지승혁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것만이 유일했다.

여러 종류의 검사 후 지호택은 VIP 병실로 옮겨졌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또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을 전해 들었다.

삑삑거리는 기계음만이 지호택이 아직 숨을 거두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여러 줄을 매달고 누워 있는 지호택을 써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지승혁은 발걸음을 돌렸다.

진청색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밝을 즈음에서야 집으로 돌아온 지승혁을 조정현과 정태준이 맞이해 주었다. 이른 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역시 조금도 자지 않은 듯 보였다.

“잘…… 잘 다녀오셨어요.”

“네. 다녀왔어요.”

대답하던 지승혁은 잠잠해졌던 감정이 다시금 불쑥불쑥 치밀어 오름을 느꼈지만 습관처럼 조정현의 안색부터 확인했다. 창백했던 양 뺨은 혈색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다행이라고 느끼는 감정 한편으로 이름 붙이기 어려운 예의 그 감정이 또다시 치고 올라왔다.

그것을 삼키기라도 하듯 지승혁은 침을 삼켰다.

“자, 그러면 지 사장님도 왔겠다, 나는 이만 가 봐야겠네.”

상황에 맞지 않게 발랄한 목소리가 났다. 정태준이었다.

“정현이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다음에 보자.”

헤어지기 직전의 경직된 상황은 없던 일처럼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한 정태준이 떠났다. 지승혁에게도 잊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정태준이 뒤끝 없다는 걸 하루 이틀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참 새삼스러웠다.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나고 두 사람만 남자 주변의 공기가 천천히 쌓이기 시작했다.

조정현의 입술이 한 번 꾹 다물어졌다가 벌어지는 찰나 지승혁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몸은 좀 어때요.”

“네? ……아, 이젠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잠시 말을 멈춘 조정현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말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 지승혁이 먼저 선수를 치자 용기가 한소끔 빠진 모양이지만 역시 개운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 그, 그분……. 저 데리고 오라고 했던, 그, 어, 그분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돌연 조정현이 지호택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그 상황에서 지승혁과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으니 단어를 고르느라 애를 쓴 게 분명했다. 조정현이 설령 지호택을 지칭해 ‘그 새끼’라고 했어도 지승혁은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조정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납치를 사주한 자이니 말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지승혁의 기분을 살피려 애쓰고 있었다.

“정현이 데리고 오라고 했던 그 사람이라면, 네. 지금 입원해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건 정현이가 따로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음, 국내 최고 의료진들이 붙어 있을 거니까.”

지승혁은 굳이 뒷말을 덧붙였다. 그의 설명을 듣던 조정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하고 대답하면서.

“어, 저기. ……형은, 형은 어……. 식사, 식사는 하셨어요?”

“아뇨. 그러고 보니 좀 출출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러면, ……식사를, 밤새셔서 피곤하실 테니까 소화 잘 되는 거로 드셔야 할 텐데.”

그는 큰 눈을 연신 깜빡거리는 조정현을 쳐다보았다.

발치를 보니 말만 그렇게 하지 정작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지승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밥은 괜찮으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갈까요.”

조정현은 머뭇거리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에 앉아서도 조정현에게서 나온 몇 마디 말은 전부 시답잖은 신변잡기에 대한 것이 전부였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고 있다. 가능한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미뤄 두고 싶은 마음이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한 번 건드려 열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다. 지승혁 역시 이대로 모르는 척 넘어가 버릴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오늘, 그곳에 오겠다고 한 건 누구 의견이었어요?”

시작은 지승혁이 먼저였다.

그의 물음에 조정현은 얼굴을 빳빳하게 굳혔다.

“정태준인가요?”

빠져나가기 쉽게 길을 열어 주었다.

조정현은 그곳으로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쩔 수 없었던 척하면 그렇게 받아 줄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럴 용의가 있었다.

“…….”

하지만 조정현은 망설이고 있었다. 물음에 답하려는 듯 몇 번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내 다시 다물어졌다.

그 망설임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승혁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여기서 그냥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면 아마 조정현은 그대로 따라올 거다.

당시 정태준의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조정현이 그 현장에 직접 나온 건 그 자신의 의지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그때는 이영선의 수작에 넘어가 오해한 채로 어쩔 수 없이 하나 남은 선택지를 택해야 했다면, 지금은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굳이 고른 거다.

그러니 조정현은 지승혁이 마련해 준 해결책을 따라 그렇다고 대답해야 했다.

“내가 대답하기 힘든 걸 묻고 있나요?”

주저하는 조정현의 태도에 지승혁은 결국 대답을 채근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조정현은 고개를 조금 더 숙이며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손톱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꽉 쥔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지승혁이 “네?” 하고 묻자 드디어 조정현이 입을 열었다.

손바닥 아래 있는 조정현의 손이 아주 약간 움찔거렸다.

“아뇨. 저는,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술을 타고 나온 소리에 지승혁의 입매가 미미하게 굳었다.

“……네?”

“제가 가겠다고 했어요. 태준 형이 말리시는 것도 뿌리치고요.”

흔들림 없는 조정현의 눈동자가 가만히 지승혁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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