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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108)화 (108/130)

#108

지승혁은 조정현의 얼굴을 덮고 있는 반대쪽 손으로 지호택의 목을 잡았다. 지호택의 눈이 일순 크게 떠졌으나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근처에 서 있던 경호원들이 그 즉시 반응하여 지승혁에게 달려들 듯 움직였지만 지호택이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지호택은 이내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지금 뭐 하는 게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할 셈이냐. 그래. 그 방식이 좋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덜떨어진 새끼 같으니라고. 그나마 좀 쓸 만하다 싶었는데 역시 막 굴러먹어서 그런지 천지 분간을 못 하는구나.”

지호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마무리했다. 눈가의 자글한 주름이 도드라지게 접혀 들어갔다.

그가 어떤 걸 기대하고 웃는지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지승혁의 눈이 가느스름하게 변했다.

곧 그 근처에 있던 이영선이 숨쉬기가 힘든 듯 컥컥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프로텍트는 그것에 종속된 당사자만이 아니라 근처의 알파나 오메가에게도 영향이 가는 모양이었다. 조정현을 떠올린 지승혁은 빠르게 상황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지승혁은 지호택의 목을 움켜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 지승혁의 품 안에 있던 핸드폰에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발랄한 벨 소리가 적막을 찢고 울렸다.

“더럽게 늦었군.”

지승혁이 낮게 잇새로 중얼거렸다.

몇 번을 울리던 벨 소리는 곧 잦아들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는지 지호택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자신의 프로텍트 안에 확실하게 종속된 지승혁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이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쯤 되자 지호택은 지승혁의 손에 목이 잡혀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지만 코를 벌름거리며 어떻게든 숨을 확보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지승혁은 눈을 굴리고 있는 지호택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승혁을 상대로 루어를 던져 봤음이 분명했다. 지승혁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의아함. 그리고 당혹스러움. 마지막은 경악.

여러 가지 감정이 지호택의 얼굴 위로 휙휙 지나가는 게 우스워 빤히 쳐다보았다.

시뻘건 얼굴을 한 지호택이 꽥, 소리를 질렀다.

“너, 너 이 미친 새끼……!”

지호택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맞아요. 내가 좀 미쳤습니다. 새삼스럽군요. 내가 미친 새끼인 거 알고 거둔 게 아닙니까.”

“너, 너, 무슨 짓을 한 게냐?”

지호택은 정말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아마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거다.

지승혁이 페로몬 기관을 제거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그에게 지호택의 프로텍트는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승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프로텍트에서 벗어나려면 뭘 해야겠습니까.”

“……너, 너, 너 극우성이, 그걸……! 그걸 어쩌자고!”

“선택지가 하나뿐이니 별수 있습니까.”

경악하는 지호택과 어디까지나 차분한 지승혁의 목소리 대조가 참으로 기이했다. 지승혁은 제 말을 듣고 있던 조정현의 몸이 움찔, 하고 굳는 게 느껴졌다. 입 안이 써졌다. 진작에 뭐라고 설명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결국 이런 방식으로 알게 했다.

조정현에게 몇 마디 변명이라도, 사정을 설명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변명이건 설명이건, 우선은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난 후에 해야 했다.

지호택의 홉뜬 눈에 핏발이 섰다. 충격에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는지 “이 미친 새끼.”만을 반복해 읊조렸다.

이쯤이면 정신을 잃을 법도 한데 극우성쯤 되니까 확실히 참으로 질겼다. 하지만 제아무리 극우성이라고 하더라도 이렇듯 숨통을 틀어 잡혀서야 그리 오랜 시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다. 빨리 정신을 잃든 어쩌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승혁은 답지 않게 조바심을 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경호원들도 뒤늦게 지승혁을 떼어 내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건물 안을 누비는 수십 개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로 벽을 쳐 쾅쾅, 진동하는 소리, 지승혁을 부르는 목소리. 여러 가지의 소리들이 빈 건물을 울려 대자 경호원들도 당황해 움직임을 멈췄다.

지호택도 슬슬 정신을 잃는 것처럼 몸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지승혁이 조정현 쪽으로 시선을 잠깐 돌렸을 때였다.

“네놈도 병신이 되었으니, 헉, 네 짝도 병신을 만들어 줘야 걸맞지 않겠어.”

그대로 쓰러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호택은 역시나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지호택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조정현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는 이미 알고 있는, 지승혁의 제일 약한 부분을 공격하려 했다. 거칠게 잡아끄는 힘에 조정현이 윽, 하고 신음을 흘렸다.

놀란 지승혁이 다급히 조정현을 잡고 있는 지호택을 떼어 내려 했지만 그 역시도 죽기 살기로 쥐어 짜낸 우악스러운 힘을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다. 얼굴을 가격당해 피를 흘리면서도 지호택은 낮은 웃음소리만 흘렸다.

지금 조정현에게 지호택의 페로몬이 쏟아진다면 단순히 페로몬 쇼크로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페로몬 기관을 제거해 버린 지승혁이 나서서 막아 줄 수도 없었다.

지승혁이 채 반응을 하기도 전이었다.

퍽.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정확하게는 지호택 쪽에서.

지승혁은 바로 조정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조정현이 뜨거운 숨을 몰아쉬면서 헐떡이고 있었다. 어깨를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은 옷감을 사이에 두고도 확연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다.

“정현아.”

지승혁은 조정현의 이름을 불렀다.

“저는, 전 괜찮아요.”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상태로 대답했다.

“그런데 눈은 왜 감고 있어요.”

“아까 형이, 눈 감고 있으라고. 그러셔서요.”

모든 걸 지승혁에게 맡긴 듯한 조정현의 대답에 지승혁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무 조건도 없는 무조건적인 신뢰는, 구한다고 해서 결코 쉬이 구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지승혁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눈 떠도 괜찮아요.”

지승혁의 말에 조정현의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색소가 옅은 눈동자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한결같음으로 자신을 비추었다.

조정현이 눈을 뜨고 제일 처음 한 일은 지승혁이 괜찮은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지승혁에게 별다른 이상함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조정현은 시선을 맞추며 웃으려 했지만 쉽지 않은 듯 입꼬리가 가볍게 경련했다.

지승혁은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진 건지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페로몬 기관을 없앤 지승혁은 지호택의 페로몬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나간 건지, 조정현에게 어떤 작용을 일으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승혁의 태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을 읽은 건지 조정현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하지만 저기, 저분…… 저분이.”

조정현의 말에 지승혁의 시선이 돌아갔다.

지호택의 얼굴은 마치 밀가루를 반죽해 놓은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눈을 크게 뜬 채로 박제된 것처럼 가만히 있던 지호택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역시 자신이 당해 놓고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는 상태인 듯했다.

지호택의 몸이 천천히 기우뚱했다. 다음 순간, 그는 마치 베어 낸 나무가 쓰러지는 것처럼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쿠웅, 하고 그가 쓰러지자 바닥이 진동했다.

지호택의 눈은 뒤집혀 흰자만 보였고 입에서는 끄륵끄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상태는 분명…….

지호택의 상태를 확인한 지승혁은 놀라움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정현아……! 야, 지 사장!”

“사장님!”

지승혁과 조정현을 부르는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경호원들은 다 제압되어 있었다. 지승혁이 나직이 말했다.

“참 빨리도 오는군.”

“죄송합니다.”

“에이, 그래도 맞춘다고 맞춘 거였는데.”

능청스러운 태도의 정태준에게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몸을 돌린 지승혁은 이곳에서 얼른 조정현을 데리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리 와요.”

지승혁이 조정현을 잡고 이끌었지만 그가 쉬이 따라오지 않았다. 잠깐 버티고 선 조정현은 지승혁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괜찮아요. 걱정할 건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 조정현이 동요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지승혁은 일단 조정현을 안정시켜야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조정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형은 왜 그렇게, 매번 괜찮다고만…… 항상 그렇게.”

그의 입에서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금껏 오로지 지승혁을 향한 믿음만이 가득했던 다정한 눈동자에 서러움이 감출 길 없이 배어 나왔다.

“정현아?”

“너 뭐 해. 지금 정현 씨 페로몬이, ……아. 야, 비켜 봐. ……정현씨. 정현아……!”

지승혁을 답답하게 쳐다보던 정태준이 그를 제치고 조정현 쪽으로 다가갔다.

정태준의 말에 그제야 지승혁은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쾅,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이제 지승혁은 페로몬을 느낄 수 없게 됐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처럼 행동하면 안 되는 거였다.

알고 있었다. 모른 채로 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했다. 각오하고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페로몬 기관 제거 수술 후 조정현을 만났을 때 느꼈던 어렴풋한 두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꼭 다무는 조정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전이라면 쉽게 루어를 사용해 그가 어떤 기분인지 알았을 텐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풋내기처럼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지승혁이 견뎌야 할 건 딱 그 정도인 줄로만 줄 알았다.

그 상황이나 느껴졌던 기분이 결코 유쾌하거나 좋지는 않았으나 참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여태까지도 어려운 상황은 많았었고 전부 잘 헤쳐왔다. 이번에도 그런 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번 역시 난관의 높이만 다를 뿐 잘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머리로만 막연하게 추측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어렵겠지만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지승혁은 저도 모르게 조정현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것과 동시에 조정현의 몸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품 안의 몸이 너무나 가벼웠고 또 너무나 뜨거웠다. 하지만 지승혁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여태까지 페로몬으로 점철된 세계에서 자의로 떨쳐 나온 지승혁은 자신의 무력함에 맞닥뜨려야 했다.

세상이 바뀌는 건, 이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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