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100)화 (100/130)

#100

가만히 조정현이 하는 뽀뽀를 받던 지승혁이 시선을 맞추었다. 조정현이 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며 입을 열었다.

“저어, 힘드신 것 같아서요. 기운 내시라고요.”

고작 이런 걸로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말하는 도중 부끄러워졌다. 조정현은 찬찬히 제 얼굴을 살피고 있는 지승혁의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는 게 부끄러워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오늘은 할 생각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들쑤셔요.”

“네, 네?”

뜬금없이 나온 말에 조정현은 당황했다. 그러다가 곧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형, 저는 형아가 걱정되어서 이러는 건데요.”

“알고 있어요. 고마워요.”

원망이 살짝 묻어나는 목소리에 지승혁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조정현은 “저어, 담배 말이에요.” 하고 말을 이었다.

“1년에 한두 번이니까 아예 안 피우시는 것도 가능하실 것 같은데요.”

“그래요. 그래 볼게요.”

“네.”

순순히 대답하는 지승혁을 보며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조정현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어깨에 얹어지는 지승혁의 무게가 느껴졌다. 어쩐지 그 행동이 위로를 갈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조정현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 * *

그날 이후로 며칠을 지승혁을 제대로 만날 수가 없었다.

처음 하루 이틀 만나지 못했을 때에는 일이 그렇게 많은가 싶었으나, 3일째가 되었을 때부터 뭔가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이 8일째였다.

그사이 한국대에도 다녀와 다음 학기부터 복학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전화를 하면 평소와 다름없이 통화는 가능했다. 지승혁은 전화를 건 조정현에게 조금 곤란한 듯,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일이 너무 바빠 그렇다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기분 탓인지 목소리에 피로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조정현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일하는 곳에 찾아가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괜한 일로 실례를 끼치는 게 아닌가 염려되어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날 밤의, 어딘가 평소와 달랐던 지승혁의 태도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신경 쓰였다.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제멋대로 행동했다가 그에게 피해가 될까 봐 참았다. 다른 사람에게, 정태준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지승혁이 요새 많이 바쁜지 묻고 싶었지만 두 사람만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었다.

무엇보다 얼마 전에 지승혁이 바쁠 거라고 먼저 이야기해 주지 않았는가. 그러니 조정현은 얌전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게 맞았다.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 말고는 지승혁의 태도에 변화는 없었다. 오늘만 해도 김윤혜를 만나러 간다고 문자를 보내니 지승혁 쪽에서 전화를 걸어 보내 주는 차를 타고 가라고 해 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조정현은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벌써 8일째다. 금방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지승혁을 보고 끌어안고 그를 느끼고 싶었다. 그의 살 내음이나 페로몬 향을 직접 맡아 본 것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기분 탓인지 침대에서도 지승혁의 향기가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았다.

언제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냐고, 언제 일찍 들어오실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은 지승혁일 터였다. 그는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평연한 목소리로 ‘좀 바쁘네요.’ 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아마 상상 이상으로 빡빡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고작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평하며 투정을 부릴 수는 없었다. 참아야 했다.

참는 건, 조정현이 잘하는 일이었다.

조정현은 손톱 끝을 만지작거렸다.

“정현아, 내가 좀 늦었지. 오래 기다렸니?”

“아, 오셨어요. 아니에요. 시간 딱 맞춰 오셨는데요. 저도 막 도착했어요.”

상념에 젖어 있던 조정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언제 온 건지 김윤혜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조정현은 일단은 지금 생각해 봐야 별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잠시 생각하기를 멈추고 김윤혜를 맞이했다.

“무슨 일 있니?”

조정현은 자신의 안색을 살피며 묻는 김윤혜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별일은요. 잘 지내고 있어요.”

김윤혜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그녀는 조정현의 대답에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식당으로 향했다. 이 식당 역시 지승혁이 예약해 준 곳이다.

이전에 지승혁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 식당이었다.

직접 만드는 두부를 사용한 음식들이 맛이 깔끔하고 담백해 언젠가 한번 김윤혜에게 대접하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지승혁이 용케 조정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곳으로 예약해 주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예약한 사람의 이름을 말하자 종업원이 다가와 자리를 안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고급 한정식집은 아니었으나 자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 아니어서 이야기를 나누기 좋았다.

“오시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제 쪽에서 모시러 갔어도 됐는데요.”

“으응, 아냐. 버스만 좀 갈아타면 됐는데, 뭘.”

“갈아타시는 것도 일이잖아요.”

“괜찮아. 그래, 이 집은 뭐가 맛있니?”

김윤혜는 말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자리에 앉은 후 조정현이 주문을 하고 두어 마디 안부가 오고 갔다. 조정현이 대학교 복학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걸 말하자 김윤혜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손을 닦던 물수건을 내려놓은 김윤혜가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내 조정현 쪽에 가깝게 올려 두었다.

조정현이 뭔가 하고 보니 비닐 케이스에 담긴 통장과 체크카드였다.

“이게 뭐예요?”

당연하게 이어진 질문에 김윤혜는 조금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거금은 아니고 그냥 틈틈이 모은 건데, 너 필요한 일에 써. 대학교 등록금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그거에 써도 좋고, 아니면 다른 필요한 일에 써도 좋고.”

“네?”

조정현은 생각도 못 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통장과 김윤혜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전혀 짐작도 못 했던 일이었기에 어떻게 반응을 하면 좋을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

“아, 어. 아니, 괜, 괜찮아요. 이거 안 주셔도 되는, 아니. 이걸 받을 수는 없어요. 틈틈이 모으신 돈이라고 하셨잖아요. 힘들게 모으신 걸 텐데.”

조정현이 간신히 더듬거리며 말하자 김윤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같이 있던 그분이 물론 좋은 사람일 테지만 계속 받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어도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란다. 괜찮다고 해도 주는 입장에서는 기대가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거든.”

거기까지 말한 김윤혜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물론 아닐 수도 있어. 두 사람이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고, 그저 나이 많은 사람의 괜한 노파심일 수도 있는데, 내가 다른 사람 손 빌리지 않고 믿을 구석이 딱 생기면 그래도 마음이 든든해. ……아주 예전부터 너 생각하면서 모아 왔던 거니까, 받아 줬으면 싶구나.”

조정현은 제 앞에 놓인 통장을 내려다보며 손끝으로 케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아주 예전부터 자신을 생각하면서 모아 왔다는 김윤혜의 말에 갑자기 턱 밑까지 뭐가 탁, 차오르는데 그게 뭔지 정확하게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숨을 쉬기 어렵기도 하고, 가슴 아래로 뭔가 벅차오르기도 했다.

간신히 조정현이 입을 뗐을 때 공교롭게도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차례대로 상 위에 놓여지는 정갈한 음식들을 보며 조정현은 잠시 숨을 골랐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음식을 테이블 위에 다 차려 놓은 종업원이 자리를 떠났다.

조정현은 혀로 입술을 한 번 축였다.

“저, 그런데 저는, 제가 해 드린 것도 없는데 이런 큰 걸 받을 수는 없어요.”

김윤혜가 살짝 미소했다.

“날 만나러 와 줬잖니.”

김윤혜의 말에 조정현은 순간 저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목 안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그거면 충분해. ……그걸로도 정말 충분하단다.”

김윤혜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 나갔다.

“네가 해 준 게 없다고 했는데 원래…… 자식은, 부모에게 해 주는 게 아니야.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줘야 하는 거지. 나는 여태까지 너에게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었어. 너 학교 입학할 때 손잡고 가지도 못했고…… 네가 힘들 때나 네게 기쁜 일이 있을 때 곁에도 못 있어 줬어. 그러니까 이번엔 부모 노릇 좀 하게 해 주렴.”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너무 염치가 없구나.” 하고 덧붙이며 김윤혜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그녀의 입꼬리가 잘게 떨리는 걸 조정현은 놓치지 않았다.

조정현은 테이블 위의 통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에 주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안 생길 수 없다고 해 놓고 좀 그렇긴 하네.”

조정현은 가벼운 어투로 자조하듯 말하는 김윤혜를 보고 아니라고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정말 나한테 받는 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당연하게 해 줬어야 했을 일이니까. 응, 정현아.”

“…….”

이런 이야기까지 듣고 못 받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전에 김윤혜에게 집을 이사하면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권유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조정현에게 그 제안을 들은 직후 그럴 수는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었다. 지금 집이 편하다고. 그 말을 하며 자신의 일은 조정현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그 마음이 다시 한번 너무나 부드럽고 뜨겁게 와닿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