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99)화 (99/130)

#99

지호택이 나가고도 한참 동안 지승혁은 몸을 바로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나마 숨통이 조이는 느낌은 가셔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을 수 있었다.

식은땀을 흘렸는지 목에 닿는 옷깃이 축축해져 있어 한 손으로 넥타이를 풀어내려 했으나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헛손질만 했다.

힘이 빠진 지승혁은 벽 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지호택이 이렇게 나오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속내를 드러낼 줄은 몰랐다. 아무리 빨라도 도영에서 제대로 일을 시작할 즈음이라고 예상했었다.

필요에 의해 지호택의 프로텍트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각오했던 것보다 그 억제력은 강력했다.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지만 만약 알았다고 하더라도 강행했을 거다.

우철곤은 거물이었다. 그가 가진 권력은 나무뿌리처럼 깊게 뻗어 대한민국 사법 체계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당시 지승혁의 힘으로는 조정현이 당한 만큼 우철곤과 그와 함께 연루된 이들에게 되갚은 것을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철곤이나 그 패거리들에게 덜미를 잡힐 만한 화근을 남겨 둘 생각도, 그렇다고 조정현에게 그런 짓을 한 우철곤을 그대로 놔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기에 지호택의 밑으로 들어가 프로텍트를 받아들였다.

지호택은 지승혁이 쥔 패 중 유일하게 우철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패였다.

그러나 이렇게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대로라면 지호택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지승혁 자신에게는 뭘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자신과 관계된 조정현에게도 그 영향이 간다는 게 문제였다. 만약 조정현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것만은 절대 사절이다.

자신이 극우성이었기에 최대한 영향을 방어해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다. 만약 조정현이 그 위협적인 페로몬에 노출이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계속된 고민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

지승혁은 제 목덜미를 한 손으로 문지르며 한참 동안을 한곳만 노려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손에 힘이 돌아왔을 때 그는 품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손가락으로 조작하다가 잠시간 화면에 뜬 이름을 내려다보던 지승혁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음이 채 두 번도 울리기 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지승혁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영선 씨입니까. 납니다, 지승혁.”

* * *

조정현은 지승혁이 늦게 귀가하니 기다리지 말고 불 끄고 먼저 자라는 연락을 서윤영에게서 받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서윤영의 유급휴가가 끝난 모양이었다.

왜 지승혁이 직접 전화를 주지 않았나, 의아했지만 여유가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다. 그 정도로 바쁜 모양이었으니 불만을 표할 수도 없었다.

서윤영과 통화를 마친 직후 정태준에게 전화가 와서 놀러 갈까, 묻는 질문에 괜찮다고 했다.

왜 그렇게 다들 신경을 써 주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지승혁이 돌아온 건 자정을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띠리릭.

이질적인 전자음에 깜빡 졸고 있던 조정현의 정신이 가라앉아 있던 수면 아래에서 둥실 떠올랐다.

거실에 앉아 그를 기다리며 약한 불빛의 스탠드만 켜 놓고 있던 조정현을 본 지승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오셨어요.”

“늦을 거니까 먼저 자고 있으라고 했는데.”

지승혁은 난감하다는 기색을 보이며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기분 탓인지 목소리가 거칠했다. 그런 그를 이상하게 여긴 조정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곧 덧붙였다.

“불 좀 꺼 줄래요?”

“네? 어, 네에.”

조정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승혁의 말을 따랐다.

거실에 어둑하게 어둠이 깔렸고 그제야 지승혁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조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보다 늦게 귀가한 지승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일이 많아서일까. 그는 조금 지쳐 보였다. 아니, 지친 정도가 아니라 안색이 파리한 것 같기도 했다. 밝은 데에서 보지 않았기에 자신은 없었지만 말이다.

엉겁결에 그의 요구에 따라 불을 끄긴 했지만 왠지 심상치 않았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불빛 때문에 완전히 깜깜한 암흑은 아니었으나 제대로 확인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시 불을 켜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조정현의 속내를 읽은 듯 지승혁이 그의 손을 잡아 손끝에 입을 맞추었다.

지승혁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그래요. 잘 보이고 싶어서.”

“어…… 아니, 딱히 안 그러셔도 형은 언제나 멋지신데.”

“그래요? 다행이네.”

지승혁은 목을 울리며 웃었다. 왠지 자조하는 기색이 강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조정현은 언제나처럼 팔을 뻗어 지승혁을 끌어안다가 품에서 나는 낯선 향에 킁킁, 냄새를 맡았다.

“형, 담배 피우세요?”

“……냄새가 났어요?”

“네에, 조금요.”

대답하고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걱정스러워진 탓이다.

“담배는 왜 피우셨어요. 맛도 없는데.”

“맛없는 건 어떻게 알아요.”

지승혁이 말을 놓치지 않고 물어 왔다. 조정현은 아, 하고 입을 벌렸다가 어색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아, 예전에 한 번 피워 봤어요.”

의외의 대답에 지승혁이 몸을 떼고 조정현을 내려다보았다. 피곤한 눈매에 호기심이 돋아났다.

“언제 피워 봤는데요.”

“네? 아, 그게 언제더라.”

조정현이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며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대학 합격 후, 지승혁을 만나러 오기 전에 있던 일이었다.

“전에, 다른 반 애들이 담배 피우고 있는 근처에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쳤었거든요. 관심 있냐고 한 번 피워 볼 거냐고 묻길래…… 그때 한 번요?”

“그랬어요?”

지승혁의 손이 조정현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바깥에 있다가 막 들어왔기 때문일까, 지승혁의 손이 평소와는 다르게 차가웠다. 조정현은 그런 지승혁의 손을 제 손으로 감싸 잡으며 말을 이어 갔다.

“네, 근데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서 피우는 건 좀 그렇긴 했어요. 저한테 권했던 걔는 제가 피운 담배를 받고 나서도 쪼그린 상태로 있었거든요. 불편해 보였는데…… 다 피웠으면 그냥 저보고 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얼굴이 좀 벌게져서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빨리 안 간다고 화도 냈었어요. 자주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다리도 안 저리는 걸까요.”

조정현이 기억 속의 장면을 재생하다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지승혁이 가만히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다정하던 눈매가 설핏 굳어져 있었다.

“……그랬어요? 누구?”

“누구냐고요? 어,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같은 학교이긴 했지만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던 아이들이었다. 그야말로 오며 가며 얼굴만 알던 사이였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름도 잘 모르는 애한테 담배도 받아 피우고. 우리 정현이, 눈을 떼면 안 되겠네요.”

마치 힐난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조정현이 살짝 그의 눈치 살피다가 뒤늦게 변명을 덧붙였다.

“아니, 그런데 두 번 빨아 봤어요. 딱 두 번요.”

“…….”

지승혁의 침묵이 조금 더 길어졌다. ‘빨아 봤다.’는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 하지만 별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선택한 단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런 걸로 지승혁이 쪼잔하게 굴 리는 없었다.

“정현아.”

“네?”

“두 모금 피워 봤는데요.”

하지만 지승혁은 조정현의 예상보다 쪼잔한 남자였다.

그는 마치 건반을 잘못 누른 학생을 지적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냈다. 조정현은 순간 말문이 막혀 한 박자 늦게 “네?” 하고 되물었다.

지승혁이 조정현의 입가를 문지르며 다시 한번 강조하듯 말했다.

“빨아 본 게 아니고 피워 봤는데요, 겠죠.”

“어, 네, 두 모금 피워 봤어요.”

왠지 지승혁 주변의 온도가 서늘해진 느낌이 들었다.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닌 듯 보였다.

조정현은 아랫입술을 살짝 잘근거렸다.

“그리고 집에 가서 그대로 잤어요. 눈 떠 보니까 아침이더라구요. 그 뒤로는 그냥 별로 관심도 없었구요.”

“그랬군요.”

너무 불량한 이야기라 좀 그랬나 싶어서 지승혁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지승혁은 잠시간 말이 없다가 이내 조정현을 보며 미소했다.

“그래요.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까. 앞으로 평생 피우지 말아요.”

“네에…… 근데 형도요.”

“응?”

“담배요. 자주 피우세요?”

“가끔씩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1년에 한두 번.

조정현은 그의 말을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딱히 흡연 충동을 참기 어려워 피우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파리한 안색. 그리고 1년에 고작 한두 번 피운다던 담배의 향.

“정말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시죠?”

“정현이가 걱정할 만한 일은 없어요.”

조정현은 가만히 지승혁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았다. 어딘가 미심쩍긴 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캐묻기도 뭐 했다.

지승혁이 고개를 끄덕이는 조정현을 끌어안았다. 그의 목덜미에 지승혁의 코끝이 닿았다.

“페로몬 좀 내 볼래요?”

조용하게 요구하는 지승혁의 목소리에 조정현은 조금씩 페로몬을 흘려보냈다. 지승혁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기척이 느껴졌다. 숨결이 간지러워 조정현이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조정현은 자신을 끌어안은 지승혁의 넓은 등을 손으로 토닥이며 그의 뺨과 눈가에 몇 번씩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피부에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