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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91)화 (91/130)

#91

지승혁이 잠깐 손을 멈췄다가 이내 움직임을 재개했다.

“나랑 함께 컸다는 말도 안 하셨더라구요.”

“…….”

“안심하세요. 그거 말고는 더 이상 말 안 했으니까.”

듣기만 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는 지승혁에게 정태준은 투덜투덜 구시렁거렸다.

“정산하고 왔어요. 이제 그냥 나가면 된다고, ……어, 옷 다 갈아입으셨어요?”

안으로 들어오던 조정현의 말이 병실 안의 상태를 보더니 잦아들었다.

“……옷. 갈아입으셨네요?”

조정현은 지승혁을 한 번, 정태준을 한 번 보았다. 눈가에 못마땅함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귀여운 건,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정태준은 그런 조정현을 보며 억울한 듯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정현아……! 너무하네. 와, 너무하네, 너무해. 와…… 애인 여기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아, 아아뇨. 아니, 네? 아니,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안 했어요.”

“네 눈이 말하고 있었다고. 주먹만 한 눈으로.”

“아니, 주먹만 하다니,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에요, 진짜.”

진땀을 뻘뻘 흘리며 정태준에게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는 조정현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그럼 지 사장님 옷 갈아입는 거 대놓고 쳐다봐도 돼요?”

지승혁은 저를 거론하는 정태준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조정현이 조금 전보다 더더욱 당황해했다.

“그, 그걸 왜……. 그런 얘기가 아니었잖아요.”

당황해하면서도 목소리가 살짝 굳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걸 정태준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세상 서러운 표정을 지었다.

“것 봐, 그러면서 뭘. 정현이 너, 너무한다. ……아이고, 이 자식은 지 애인 이름 그냥 불렀다고 눈 세모 되는 거 봐라. 에에이.”

정태준은 제 편은 하나도 없다며 이젠 대놓고 불평을 쏟아 냈다. 어디까지나 장난에 불과하다는 걸 지승혁은 알았다. 그러나 그걸 알 길이 없는 조정현은 더더욱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조정현이 당황해하는 건 별로 보기 좋지 않았다.

지승혁은 짧게 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정태준 씨는 이만 돌아가 보세요. 서윤영 씨한테는 따로 추가 유급휴가와 보너스를 지급해 드릴 겁니다.”

“그걸 왜 저한테 말하세요? 아니, 그리고 저는요? 저한텐 뭐 없어요?”

지승혁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돈을 준다고 해도 받지도 않을 거면서 괜한 말을 하고 있었다.

조정현과 함께 머물러 준 건 단순히 업무의 연장선으로 한 게 아니라 정태준 개인이 내켜서 한 일이다. 그걸 돈을 지불한다고 하면 언짢아할 거면서 부러 이렇게 말을 하는 저의는 굳이 묻지 않아도 빤했다.

“어차피 지금 바로 서윤영 씨 쪽으로 갈 거 아닙니까. 그리고 정태준 씨, 특별 수고비를 요청하는 거라면 지불하겠습니다. 시간당 청구서를 보내시면 경비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정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됐어요. 삭막하시긴. 꺼지라는 말씀을 이렇게 돌려 말씀하시니, 이만 물러갑니다. 정현아, 그럼 조심히 들어가!”

미련은 하나도 없는 듯 손을 흔들거리던 정태준은 인사를 마친 후 바로 돌아섰다.

조정현은 눈만 껌뻑거리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조정현은 붉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이내 말하기를 포기한 듯 꾹 다물었다. 하나 지승혁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정태준 앞에서 옷 갈아입어서 화났어요?”

“……네.”

조정현은 솔직하게 답했다.

정태준과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경이 안 쓰이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건 지승혁 자신도 마찬가지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당겼다. 하는 김에 조정현의 어깨 위에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또 그러지 마세요. 이번만 봐 드리는 거예요.”

은근히 흘러나오는 페로몬도,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것도 예쁘기 그지없었다. 병실을 치우러 사람이 언제 올지 머리로 빠르게 계산하며 침대를 흘긋거린 지승혁은 조정현을 보며 미소했다.

“그런 말 하면 침대에 올라가고 싶어져요.”

“……또 그러세요.”

조정현이 지승혁을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보드라운 살결에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이마나 뺨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그걸 알았기에 지승혁은 조정현의 뺨을 살살 문지르는 걸로 그쳤다.

“우리 재미없는 얘기 말고 다른 얘기 해요.”

“어떤 거요?”

“글쎄요. 이를테면 내가 어디서 자랐는지? 그것도 재미없으려나요?”

지승혁이 먼저 꺼낸 이야기에 조정현의 눈에 반짝반짝 광채가 돌았다. 흡사 별이 뜬 듯했다.

“정말요? 재미없긴요. 해 주세요.”

조정현의 양 뺨이 보기 좋게 솟아오르고 입꼬리가 들썩였다.

그냥 하루 더 입원하는 셈 치고 여기서 있으면 안 되려나. 지승혁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일절 내색하지 않고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 * *

조정현은 그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며 “태준 형이 형이랑 같이 자랐다고 하시던데.” 하고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지승혁은 별 표정 변화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얘기했고, 도리어 조정현이 굳은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마 예상은 하고 있었을 테지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좀 당황한 듯했다.

지승혁은 조정현에게 그런 얼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고는 아랫입술을 깨문 조정현의 손등을 살살 쓰다듬었다.

“이미 지난 일이고 나는 아무렇지 않아요. 감춰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떠벌릴 일도 아니죠. 단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무거워지니까.”

가볍게 웃는 지승혁을 보던 조정현은 아랫입술을 살며시 물었다.

“……죄송해요.”

“왜요. 정현이가 나 버렸어요? 아니면 그럴 계획 있어요?”

“네?”

“내 기억엔 정현이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할 만한 일은 안 했는데 혹시 앞으로 나한테 나쁜 일 할 계획 있어요?.”

지승혁은 전에 없이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는 조정현을 응시했다. 그는 옆자리에 앉은 조정현의 손바닥을 엄지로 문질렀다. 손금도 참 귀여웠다. 그 손을 들어 손바닥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정현이가 미안해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나도 그러려고 말한 게 아니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알겠죠?”

“네. 죄송, 어. 아니아니, 네.”

조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다 왔네요. 남은 얘기는 우리 올라가서 할까요.”

지승혁이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이야기했다. 알겠다고 대답하는 조정현의 뺨이 어렴풋하게 붉어져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지승혁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조정현의 입에 키스를 하는 거였다.

너무나 하고 싶어서 미칠 정도였다. 병원에서야 조정현이 엄한 얼굴로 상처가 덧난다며 막았었으나 퇴원까지 한 마당에 그럴 명분도 없어졌다.

입술을 맞대자 조정현이 스스럼없이 입을 벌리며 그의 혀를 맞이했다. 작고 뜨거운 혀가 열심히 지승혁의 혀를 비볐다.

질척하게 혀를 섞는 키스를 하자 조정현의 입술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아, 아까처럼 페로몬 내 봐요.”

살짝 입술을 떼고 한 말에 조정현의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의 몸에서 그동안 너무나 맡고 싶던 그의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갈급한 사람처럼 조정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폐 깊숙이 들어가도록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마약 같았다.

지승혁은 몇 번이고 그의 페로몬을 들이켰다.

“좋네요.”

“……저도요. 형이 돌아오셔서 기뻐요.”

조정현이 작은 소리로 귀여운 말을 했다.

한참을 안고 있던 두 사람은 몸을 뗐다. 정확히는 조정현이 지승혁의 변화를 눈치채고 끌어안았던 팔을 풀었다. 조정현은 곤란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몸도 아프실 테고 시장하실 테니까, 빨리 준비할게요.”

지승혁은 아쉽게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발긋한 눈가를 한 채 분주히 움직이는 조정현을 보며 이대로 침대 위로 데리고 갈까, 갈등했다. 밥보다 당장 조정현 쪽이 급했다.

하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 준비를 하는 조정현을 보고 있자니 그것도 못 할 짓 같았다.

당장 뒤에서 지분거리는 건 못 할 짓이다 싶어 일부러 두어 걸음 걸으며 실내를 둘러보았다. 집에서 나갔던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천천히 조정현에게 다가간 지승혁이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가느다란 허리가 팔을 감고도 남았다. 긴 목에 입을 몇 번 맞춘 지승혁이 질문했다.

“나 없는 동안 정태준이랑 잘 지냈어요?”

정수리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마셨다. 조정현의 내음이 지승혁을 만족시켰다. 보들보들한 머리카락이 뺨에 닿는 느낌이 참으로 좋았다. 지승혁이 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얌전히 서 있던 조정현의 목소리에 약간의 의문이 떠올랐다.

“네? 네에. 어, 태준 형은 저쪽 손님 방에서 주무셨어요.”

“어느 쪽이오.”

“어, 전에 제가 지내던 방요.”

지승혁의 미간이 구겨졌다. 많은 방을 놔두고 하필이면 써도 거길.

“이전에 제가 썼다고 하니까 태준 형이 그러면 그 방이 좋겠다고 하셔서요.”

일부러가 분명했다. 아마 지승혁이라는 인간이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을 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조정현의 허리를 감고 있던 지승혁의 손이 그의 배를 살살 문질렀다. 그리고 궁중 음악가 같은 손놀림으로 연주하듯 갈비뼈를 쓰다듬어 올라간 손가락 끝에 조정현의 젖꼭지가 닿았다. 단단해진 젖꼭지가 손끝에 걸리는 느낌에 지승혁은 고의가 아닌 척 긁어내듯 튕겼다.

조정현의 숨이 조금 가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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