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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89)화 (89/130)

#89

물론 그가 요리를 하긴 했지만 그거야 다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정도로 특출난 건 아니었다. 대놓고 칭찬을 듣고 있자니 너무 민망해서 주제를 다른 걸로 돌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 그분이랑도 잘 챙겨 드시지 않으셨어요?”

“그분? 누구, 윤영 씨? 이거 봐, 이거 봐. 다들 멀끔한 거에 속는다니까.”

정태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탄했다. 조정현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단을 진짜 어처구니없이 짰다니까. 단백질 셰이크, 샐러드. 닭가슴살, 샐러드. 이걸 반복하는데. 탄수화물이 괜히 필수 5대 영양소겠냐고.”

정태준이 진저리를 치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어, 그것만 드신 거면, 좀…… 물리시긴 했겠어요.”

“그치? 와, 진짜. 대회를 나가는 거냐 왜 이딴 것만 먹냐고 물어보니까, 대답이 가관이에요. 어으.”

정태준은 그때를 회상하듯 말을 하다 말고 픽 웃었다.

그 뒷이야기를 해 주길 기다렸지만 정태준은 말을 잇지 않고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뭐라고 하셨는데요?”

“음?”

“그분요, 서윤영 비서님.”

“아…….”

정태준이 입을 벌렸다. 단둘인데도 주변을 휘이 둘러본 그가 상체를 일으켜 조정현 쪽으로 내밀었다. 조정현도 덩달아 정태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한 손을 입 옆에 댄 그가 조정현의 귀 근처에 입을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야 건강하게 나랑 오래 살 수 있지 않겠냐고 하더라니까.”

“…….”

“나 원 참, 어이없지? 요즘처럼 의학이 발전된 세상에서 그게 무슨 소리야.”

의자에 털썩 몸을 기댄 정태준이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결코 어처구니없다거나 기막혀하는 게 아니었다.

기특해하고 사랑스러워하는 미소였다. 조정현이 지승혁의 얼굴에서 자주 보던 웃음이었다.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음? 아, 뭐…… 음. 그런가. 그럴지도.”

정태준이 긍정하면서도 살짝 민망한 듯 목덜미를 문질렀다. 그러곤 말머리를 돌리듯 “다 먹었으니 치워 볼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조정현에게 정태준이 손을 내저었다. 이런 점은 지승혁과 정태준 두 사람이 닮았다.

“음식도 했는데 뭘 또 하려고 해. 앉아 있어. 내가 또 설거지는 잘하거든. 한창때는 그릇 몇백 개도 했었어.”

“어…… 군, 군대에서요?”

“아니. 군대 말고.”

정태준이 대수롭잖게 대답하며 식탁 위의 그릇을 어렵지 않게 쌓아 싱크대로 갔다.

“어때. 이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 이 정도 그릇 옮기는 거야 쉽지.”

정태준은 장난스러운 태도로 장기를 선보였다. 왠지 기시감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던 조정현은 그게 언제였는지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예전에, 승혁이 형도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음? 그랬어?”

달그락거리며 그릇끼리 작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렇지, 뭐. 같은 데서 자랐으니까.”

“…….”

조정현은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두 사람이 친밀한 줄은 알았으나 같은 곳에서 자랐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상할 정도로 많은 그릇들에 대한 그들의 기억과 성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곳에서 자랐다는 말을 종합해 보면, 한 가지 사실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조정현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자 정태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보더니 이내 아차, 하는 얼굴로 변했다.

“처음 듣는 얘기야?”

조정현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정태준은 소리 없이 으, 하며 입을 가로로 길게 찢었다.

“그럼 이 얘기는 나중에 지승혁한테 듣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그 외에 따로 뭐 궁금한 얘기 있으면 뭐든 물어봐.”

“……그러면 뭐든지까지는 아닌 거 아닌가요.”

“에이, 사소한 거는 대범하게 넘어가자.”

정태준은 다시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그가 웃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사실 정태준의 이야기를 묻는 척하며 지승혁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런 꼼수는 쓰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 바로 알고 싶은 마음도 확실히 있었다.

조정현이 고민하는 사이 정태준이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처음 만났을 때 승혁이가 맞먹어서 제대로 말하라고 하니까 눈 똑바로 뜨던 게 생각나네. 캬, 그립다. 버릇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긴 한데, 그때는 비리비리해서 귀엽기라도 했었는데.”

정태준의 말을 듣던 조정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승혁이 형보다 태준 형이 더 나이가 많아요?”

감출 새도 없이 튀어나온 질문에 정태준이 파하학, 웃었다.

“그놈이 좀 노안이긴 하지?”

“어, 아니…… 진짜요?”

“놀릴 거리 생겼네.”

정태준이 소리 내어 웃는 걸 보면서 조정현은 당황스러움에 물들어 있었다.

“아니, 저, 저는 두 분이 동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

정태준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누가 누구 나이로 보인다는 얘기야?”

“네? 아니, 어. 아뇨, 그건 생각해 본 적은 없긴 한데.”

“정현이는 참 입에 발린 말도 할 줄 모르네. 그냥 내가 좋은 대로 해석할게.”

애석한 듯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린 정태준은 설거지를 끝냈는지 물을 잠그고 걸려 있는 수건에 손을 닦았다.

“요새 식기세척기도 있는데 그건 안 써?”

“아, 있긴 할 텐데.”

조정현은 멍하게 중얼거렸다.

“와, 정현아. 나 밥값 하라고 설거지시킨 거야?”

그는 소매를 내리다 말고 충격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정태준이 과장된 반응을 하며 짓궂은 말을 던지자 조정현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 아뇨. 설거지는 승혁이 형이 하시는데 평소에 그건 안 쓰셔서요. 제가 생각을 못 했어요. 죄송해요.”

조정현의 말에 정태준은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리며 웃었다. 뭔가 상상하는 듯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니, 뭐 죄송까지야. 흠, 지승혁이 설거지를 한다고? 하긴, 손으로 그릇 뽀드득 밀리는 걸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긴 하니까. ……그놈이랑 동급 된 것 같아서 별로네.”

눈을 가늘게 뜬 정태준은 조정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요새 몸은 좀 어때?”

“아, 괜찮아요.”

“음. 뭐, 상태 보니까 그렇네. 페로몬도 잘 안정된 것 같고. 지 사장님이 잘 해 주나 봐.”

조정현은 대답할 길을 찾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아무래도 너무 생생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기에 이렇다저렇다 바로 대답하는 게 저어됐다.

뺨을 한 손으로 문지르던 조정현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예전에 태준 형이 페로몬 쇼크에 대해서 말씀하셨잖아요.”

“아, 그랬지.”

“그때, 죽기 살기로 페로몬을 내보내면 상대 알파도 똑같이 된다고 하셨잖아요.”

“맞아. 그랬었어.”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되돌아온 질문에 조정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오메가가 알파의 아래에 있다고,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오메가가 알파보다 못한 것 같아요?”

조정현의 생각을 펼쳐 놓고 보는 것처럼 정태준은 정확하게 찔러 왔다.

“아, 아뇨. 하지만 다들…….”

“아무튼 야동으로 배운 새, 흠. 그런 걸로 배운 애들이 꼭 그래요. 잘 들어, 정현아. 알파나 오메가나 형질로 누가 더 우세한 건 없어.”

정태준은 이전까지의 장난스러운 기색을 싹 지운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정현은 마치 새로운 율법이라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래요?”

“그럼. 하지만 알파니까 내가 못 당한다고 처음부터 꺾이고 들어가면 답이 없지. 내가 조, 우어우죽더라도 저놈은 내가 이긴다, 생각하고 페로몬을 두르면 적어도 맥없이 당하진 않거든. 그 잠깐 사이에 한 방 먹여 줄 수도 있고 물어뜯어 줄 수도 있고, 뭐 그런 거니까.”

가만히 듣던 조정현이 질문했다.

“상대가 우성이라도요?”

“정현이가 아픈 델 찌르네.”

정태준이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우성, 열성으로 비교하자면야 좀 힘들긴 하지. 내가 하면 된다, 같은 정신론을 말하는 건 아니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안 되는 걸 된다고 억지 부릴 생각은 없어. 뭐, 가능한 사람도 있긴 할 테지만 극히 낮은 확률일 거야. 하지만 열성도 죽기 살기로 페로몬으로 대항하려고 하면 아주 잠깐은 우성 페로몬에 버틸 수 있으니까. 손 놓고 당하는 거랑 저항이라도 하는 건 좀 다르잖아. 그렇지?”

조정현은 “네에.” 하고 작게 대답했다.

정태준이 하는 말은 어디서 보고 들은 이야기 같지 않았다. 직접 경험했거나 적어도 옆에서 봤던 것처럼 들렸다. 어느 쪽이건 정태준에게 있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 게 분명했고, 조정현은 그걸 확인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매한 호기심으로 무책임하게 과거 일을 찔러 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뭐 묻고 싶은 얼굴인데. 다 물어봐도 괜찮습니다, 어린양이여.”

가볍게 하는 말에 조정현이 푹 웃어 버렸다.

“저기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심도 깊은 이야기나 좀 해 볼까?”

정태준은 조정현의 어깨에 팔을 턱 두르고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 덕분에 조정현은 한결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네. 태준 형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요.”

“그래? 뭔데?”

조정현은 관심을 보이며 묻는 정태준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태준 형. 말씀하실 때요, 그냥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나? 불편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어?”

조정현은 소파 쪽으로 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좆같다고 하셔도 되는데.”

정태준이 걸음을 딱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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