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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88)화 (88/130)

#88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나 싶었는데 어느 틈에 지승혁의 품에 안겨 있었다.

소리 내어 울던 조정현에게 과호흡 현상까지 나타나 흡꺽거리는 소리가 멋대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승혁의 손이 천천히 조정현을 토닥였다.

오열로 뜨겁게 달아오른 뇌를 식히며 지금 상황을 제대로 분석해 보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분석까지 갈 필요도 없다.

병문안을 와서 환자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의 휴식에 으뜸가는 방해꾼이 바로 저 자신이었다.

다치는 게 싫다고 질질 짜는 게 최선이 아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이러다가 지승혁의 상처가 덧날 수도 있었다.

조정현은 입술을 감쳐물었다.

“죄, 흑, 죄송해요. 혀, 형은 얼른 침대로, 힉.”

딸꾹질 같은 소리가 제멋대로 나와 말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지승혁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을 부축하려 그에게 다가가 팔을 뻗었지만 그가 쓰게 웃으며 그 정도는 아니라며 사양했다. 확실히 그 말은 거짓이 아닌 듯 움직임에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일절 없었다.

칼에 찔렸다면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걸까.

제 얼굴을 보더니 달래려는 듯 손을 뻗는 지승혁을 가로막으며 조정현은 손등으로 눈가를 닦았다. 그는 조정현의 행동에 아쉬운 기색으로 손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는 정말 별거 아니에요.”

“별거, 별 게 아닌 게 아니, 힉. 아니라. 흑. 그렇게 자주, 흡, 자주 당하셨어요?”

“……아뇨. 그렇게 자주는, 아니, 처음이에요. 진짜.”

“거짓말.”

조정현이 가만히 지승혁을 쳐다보자 그가 곤란한 듯 눈매를 찡그렸다.

조정현은 의자에 앉지도 않은 채 침대 근처에 멀거니 서서 지승혁을 바라보았다. 혈색도 나쁘지 않고 움직임에 어려움도 없어 보였다. 그의 말대로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의 지승혁을 봤다면 지금 조정현은 우는 걸로 그치지 않았을 거다. 조정현은 우느라 목구멍이 뻑뻑해진 상태에서 억지로 침을 삼켰다.

“……다, 다치지 마세요. 흐으, 아프시지도 말고요.”

“알겠어요. 미안해요.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

조정현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불안하게 만들었냐고? 그야 당연했다.

불안 정도가 아니라 근본이 뒤흔들릴 정도의 충격이다.

조정현의 뿌리는 지승혁에게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조정현은 그걸 지승혁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이만큼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는 것과 같았거니와 그에게 무거운 짐을 얹는 것 같았다. 의도는 그게 아닐지라도 지승혁의 탓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고, 조정현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조정현은 근처에 있는 의자를 가지고 와 앉았다.

“정말 많이 아프진 않으세요?”

“그냥 몇 바늘 꿰매고 붕대 감은 거예요. 상태 본다고 입원시켰어요.”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셔야죠.”

조정현이 타이르듯 말했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에게 화내지 말라는 듯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조정현은 저를 어루만지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지승혁의 손길을 얌전히 받았다.

“내가 하루 이틀은 집으로 못 돌아가니까 정태준이랑 지내요.”

지승혁은 생각지도 않은 말을 했다.

“네? 아뇨, 저 여기서 있을 건데요.”

“병원 불편해요.”

“하지만 형은 하셨잖아요.”

“그건 나니까 했던 거고요. 그걸 우리 자기가 할 필요는 없어요.”

갑작스럽게 나온 달짝지근한 호칭에 조정현이 바로 대답을 못 하고 어물거렸다.

혼자 돌아가기 싫었다. 뻔히 병원에 있는 지승혁을 두고 돌아가 크고 휑한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기 싫었다. 그 집은 지승혁과 함께 있기에 의미 있었다. 그가 없다면, 그 집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집에서 쉬고 있어요. 정태준 씨가 같이 있어 줄 거예요. ……그렇죠?”

“윤영 씨도 어느 정도 나았고 괜찮아요.”

어느새 돌아온 건지 정태준이 흔쾌히 승낙했다. 조정현은 당사자인 자신을 빼놓고 진행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부 의사를 밝히려는데 뒤에서 정태준이 은근하게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둘이만 있으면 재미있는 얘기 해 줄게요. 이를테면, 지승혁 어릴 때 얘기라든가.”

“…….”

조정현이 멈칫했다.

지승혁의 어릴 때 얘기.

그냥 됐다고 거절하기엔 지나치게 큼직한 먹이였다.

조정현의 솔직한 반응에 정태준이 빙그레 웃으며 장난스럽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던 지승혁은 별로 내켜 하지 않는 기색이긴 했으나 그만두라는 말 역시 하지 않았다. 조정현을 집으로 돌려보내기에 그보다 더 좋은 핑계는 없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단지 지승혁은 조정현의 어깨에 올린 정태준의 손을 흡사 파리 쫓는 것 같은 손길로 떼어 냈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는 굳이 만지지 않아도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정태준이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흘렸다. 질린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 정태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 사장님, 서윤영 씨 유급 기간 좀 늘려 주시죠? 사람이 그 몸을 해 가지고 출근을 하려고 하잖아요. 직원 복지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그 사람 같은 인재 찾기도 어려울 텐데.”

“유능한 만큼 빠진 자리가 공백이 크긴 한데,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별일에 다 신경 쓰는군.”

지승혁이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했다. 그 말에 조정현도 정태준을 쳐다보았다.

“어, 뭐. 사귀기로 했으니까?”

“뭐?”

“네?”

지승혁과 조정현이 동시에 반응했다.

“사귀기로 했다고.”

정태준은 태연한 얼굴로 다시 한번 말했다. 지승혁의 표정이 몹시 묘해졌다. 정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람 하는 짓이 좀 귀여워서.”

“……귀엽…….”

이번엔 조정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서윤영이라면 조정현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제 기억 속의 서윤영은 귀엽다는 말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정태준이 흐흐, 소리를 내며 웃었다.

“궁금하죠? 다른 사람도 알면 다 귀엽게 볼 텐데. 나중에 한번 보여 줄까요, 어떻게 귀여운지?”

“어, 아뇨. ……저는 괜찮아요.”

“에이.”

더듬더듬 대답하는 조정현의 반응에 정태준은 아쉬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정현이는 왜 끌어들이려고 합니까.”

그리고 지승혁이 한마디 거들었다.

“거참, 되게 단속하시네. 그렇게 자신이 없나 봐요, 지 사장님.”

지승혁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정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조정현의 등을 두드렸다.

“어차피 갈 거, 지금 가죠. 내가 지금 밥을 못 먹어서 너무 힘들어요.”

“아, 태준 형. 식사 못 하셨어요?”

“막 먹으려는데 연락이 와서요.”

“아…… 그러시면 집으로 가서 같이 드실래요? 어차피 차려져 있긴 한데…….”

말을 하다 보니 눈치가 보여 조정현은 지승혁 쪽을 한 번 흘끔였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의 손을 잡아 꼭 쥐었다. 마치 자기는 신경 쓰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괜찮아요. 들어가서 같이 식사해요. 정현이도 시장할 텐데.”

“…….”

“지 사장님도 저렇게 말씀하시니까 우리 가죠. 가서 정현이가 만든 맛있는 저녁도 먹고 재미있게 놀아요.”

제 양어깨에 손을 올린 채 지나치게 친밀하게 이름을 부르는 것에 도리어 조정현이 당황했다.

“저기, 태준, 태준 형.”

“부럽죠? 샘나죠? 그러니까 얼른 나아서 퇴원하셔야겠네, 지 사장님은.”

정태준이 하는 말을 들은 조정현은 입을 다물었다.

웃음이 담뿍 담긴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조정현은 지승혁 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조정현과 시선이 마주치자 애매하게 찡그렸다.

“알았으니까 정현이 어깨에 올린 손 내려, 정태준.”

지승혁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 *

정태준과 함께 돌아온 조정현은 손을 씻고 바지런히 움직였다.

만들어 두었던 국을 데우고 빠르게 반찬들을 차려 식탁 위에 올렸다. 간단하게 씻고 나온 정태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이게 뭐예요. 누구 생일이에요? 지승혁이 생일은 아닌데.”

조정현이 움직임을 멈추고 정태준 쪽을 보았다.

“승혁이 형 생일이 언젠데요?”

“어? 아하하, 아니, 그걸 나한테 묻는 거예요?”

정태준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했지만 곧 허허롭게 웃으며 날짜를 말해 주었다.

지승혁의 생일은 한여름이었다. 지나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아직 한참 남았죠? 그런데 일단 우리 이거 먹으면서 얘기하면 안 될까? 나 진짜 너무너무 배고픈데.”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말하는 정태준의 애걸에 조정현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는 정태준은 한 입, 한 입 먹으며 낮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차려 놓은 것들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은 정태준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와, 이걸, 이걸 지승혁은 매일 먹는 거야? 와…… 내가 지승혁이를 부러워할 날이 올 줄은.”

나직이 중얼거리는 정태준에게 조정현은 머쓱하게 얘기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입에 맞으시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아니긴! 진짜 장난 아닌데. 와…… 진짜. 요 근래 내가 먹었던 것 중에 제일 맛있었어.”

조정현은 어, 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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