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수고하셨습, ……옆구리에 그거……!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지승혁의 상태를 확인한 비서의 안색이 대번에 바뀌었다. 지승혁은 손을 내저었다.
“별거 아닙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럼 먼저 가 보십시오.”
비서는 얇은 입술을 다물고 지승혁을 쳐다보다가 그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는지 전화로 사람을 불러 안쪽에 누워 있는 지연호를 수습해 돌아갔다. 저렇게 바로 수습이 가능하면서 굳이 사람을 불러내다니.
덕분에 귀찮은 짐 하나를 치울 계기를 잡긴 했지만 말이다.
지승혁은 눈썹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옆구리의 나이프 손잡이가 걸리적거렸으나 지금 빼낸다면 피가 많이 나와 더욱 상태가 안 좋아질 게 분명하니 처치할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그냥 놔두는 게 좋았다.
김전오가 뒤늦게 왔다가 지승혁의 상태를 보고 난처한 얼굴을 했다. ‘똥 밟았다’는 기색을 애써 숨기며 괜찮냐고 물어 오는 그에게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대답을 돌려준 지승혁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
조정현은 시계를 확인하며 레인지의 불을 껐다.
일찍 들어오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었다. 급한 일이 들어왔나 싶었다.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연락이 없는 쪽이 걱정됐다. 먼저 전화를 해 볼까 싶어 핸드폰을 든 조정현은 화면에 지승혁의 이름이 뜨는 것에 반색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형이세요?”
-네, 나예요.
기분 탓인지 지승혁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게 느껴졌다.
-음, 정현아. 미안한데 오늘 못 들어갈 것 같아요.
“네?”
생각도 못 한 말에 조정현이 눈을 크게 떴다.
좀 늦지는 않을까 예상은 했지만 아예 못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살짝 힘이 빠졌다. 지승혁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서운함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목소리를 조금 밝게 냈다.
“아, 급한 일 생기셨어요?”
-음……. 그건 아니고, 지금 어디 앉아 있어요?
“아뇨. 서 있는데요……?”
-그럼 잠깐 어디 앉아 봐요.
엉뚱한 부탁을 하는 지승혁의 말대로 조정현은 적당히 식탁 의자에 앉았다. 지승혁은 자리에 앉았냐는 확인까지 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싶어 궁금증과 함께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요. 좀 다쳐서 병원에 있어요.
“네?”
조정현은 제 귀를 의심했다. 저도 모르게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일으키고 턱을 당겼다. 폐를 누가 움켜쥐기라도 한 듯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전화 통화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상기하려 했으나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체 어디를 어떻게 다친 걸까, 많이 다친 걸까. 그런 물음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나갔다. 진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걱정 안 해도 돼요.
“아니, 아니……. 병원에 다쳐서 가셨다면서요. 그런데, 아니…….”
혼란에 빠진 조정현이 같은 말을 반복하자 지승혁이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정한 목소리였으나 울컥 치밀어 오르는 기운을 막지 못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어디, 어느 병원이에요. 지금 제가 갈게요.”
-괜찮아요. 집에 있어요. 내일…… 즈음에 들어갈게요.
조정현은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을 배려하기 위함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병원조차 알려 주지 않으려는 지승혁이 야속했다.
“나중에, 제가 막 어디 다쳤을 때 병원에서 형한테 전화하면서 괜찮으니까 형은 오지 말라고 하면, 형은 알겠다고 하실 거예요? 아니잖아요. 빨리 알려 주세요.”
목소리가 멋대로 떨려 나오는 걸 참느라 무척 힘들었다. 감정적으로 굴고 싶지 않았으나 참는 게 힘들어 머리가 어질거리기까지 했다.
-……알겠어요. 미안해요. 화내지 말아요.
부드럽게 달래는 목소리는 병원 이름 하나를 말했다. 그 와중에도 택시 말고 차를 보낼 테니 그걸 타고 오라는 말에 조정현은 알겠다고 답해야 했다.
김성채가 운전하는 차를 기다리는 내내 조정현은 아랫입술을 깨물어 댔다. 직접 전화까지 했고 괜찮다고 했으나 지승혁을 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안심되지 않았다.
별일이야 없을 거다. 그 말을 믿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지금 조정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손톱 끝을 꾹꾹 누르는 손길이 초조했다.
얼른 지승혁을 보고 싶었다. 그의 체온을 느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차가 도착하길 기다리는 매초가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초초함에 조정현은 깍지를 낀 손을 이마에 대고 작게 두드렸다.
차가운 손은 끝이 저릿해질 정도였다.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고 생각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 도착을 알리는 연락이 인터폰을 울렸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김성채에게 지승혁의 상태를 물었으나 그는 응답된 녹음기처럼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라는 말만을 돌려줄 뿐이었다. 애가 탔으나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어 속만 끓였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기절할 정도로 멀었다. 정지 신호에 걸릴 때마다 속이 타들어 갔다.
병원에 도착한 조정현은 멋대로 뛰쳐나가려는 몸을 가까스로 억눌러야 했다.
병실까지 가는 길은 왜 또 그렇게 멀던지. 엘리베이터가 마치 달팽이 기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제대로 열리기도 전 조정현은 뛰듯이 내려 지승혁이 알려 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승혁이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형…….”
조정현은 정신없이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침대를 조금 세운 채 기대듯 누워 있는 지승혁의 안색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랬으니 지승혁 본인이 연락도 했을 거다.
그래도 직접 모습을 보니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안심이 된 탓인지 눈가가 뜨거워졌다. 조정현은 코를 한 번 훌쩍였다.
“왔어요? ……뛰어왔어요?”
“어디, 어디를 다치신 거……?”
지승혁은 환자복을 입고 있고 팔에 링거줄을 꽂고 있긴 했으나 외견상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였다. 조정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괜찮다고 했잖아요. 괜찮아요.”
“아니, 그래도, 어디를…….”
“그냥 옆구리를 살짝 좀 다쳤어요.”
“옆구리요?”
어디 골절이라도 당한 건가 싶었다. 정말로 보기에 멀쩡해 보였다.
눈썹을 찌푸린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조금 긁힌 거예요.”
“긁혀요? 뭘로요? 뭔데 입원까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던 조정현의 궁금증은 곧 풀렸다.
“거, 뭘 뱅뱅 돌리고 그래. 지 사장님 칼에 찔렸어요.”
병실 문 쪽에서 정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온 건지 정태준은 반절쯤 열린 문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서 있었다. 조정현은 눈을 홉뜬 채로 정태준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다시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흉흉한 얼굴로 정태준 쪽을 보던 지승혁은 곧 표정을 풀었다.
“칼? 칼요……?”
“정태준.”
“어차피 알게 될 거 뭘 숨기려고 그러세요.”
경고하듯 낮게 울리는 지승혁의 목소리에 정태준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표정도 바꾸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칼이라뇨……?”
“그냥, 살짝 찔린 거예요. 지금이라도 그냥 나갈 수 있어요.”
“아이고, 저 허세…….”
“안 돼요!”
혀를 끌끌 차던 정태준과 그런 그를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던 지승혁 사이를 조정현의 목소리가 가로질렀다. 시야가 뿌옇게 변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다.
칼이라니. 칼에 찔리다니.
조정현은 상상해 보지 못했던 이유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따로 묻지 않았지만 지승혁이 하는 대부업과 관계된 게 아닐까, 하는 짐작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 위험한 일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설마 자상을 입을 정도라고는.
조정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현아. 정현아.”
“정현 씨, 정신 차려요.”
조정현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두 사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몸을 움직인다는 인식도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의아했다.
조정현은 침대에서 내려와 맨발로 서 있는 지승혁을 보고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안, 안 하시면, 안 돼요?”
“네?”
“혀형, 이제, 위험한 일 안 하, 안, 안 하시면, 안 돼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 번 터진 울음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조정현의 숨까지 삼켰다.
“이이이제 위험한, 흐, 일 하지 마세요. 네? 허엉. 흐, 형 다치시는 거 싫, 싫어요. 으흑, 흑, 어엉. 저는 혀혀혀, 형만 있어도 되니까, 그러니까, 다치시지 마세요. 흐어어.”
다섯 살 먹은 어린애도 이렇게 울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조정현은 서럽게 울며 애원했다.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들썩이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병실 안에 제 울음소리만 나는 상황이 민망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옆구리를 다쳤지만 다음에는? 이다음에도 괜찮을 수 있을까? 그러면 또 그다음에는?
이 사람이 없어진다면.
너무나 무섭다. 두렵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가정하기조차 싫고 두려운 일은 조정현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일이 실체를 가지고 나타나 조정현을 짓눌렀다.
그 상상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듯 조정현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