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85)화 (85/130)

#85

워낙 세간을 시끄럽게 해 놓았기에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할 가능성이 컸으나 그마저도 어처구니없이 낮은 형량을 받을 게 뻔했다.

그나마 판결받은 형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가석방이라는 형식으로 나올 테고 옥살이를 하면서도 변호사 단독 접견입네 뭐네 하며 편한 시간을 보내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어디가 아프다 어쩐다 하고 병원 특실에서 유유자적하게 보낼 거다.

조정현은 우철곤이 저지른 짓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과거형으로 종결된 게 아니라 아직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정현은 괜찮다고 얘기했으나 상흔이 남기 전과 완벽히 같지 않다. 그런 상황에 죗값을 받았다고 여기며 우철곤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진심으로 속죄를 했다면 아마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족속들이 제 행동에 일말의 반성조차 할 리가 없다. 운이 나빠 걸렸다고 여기며 더욱 깊숙한 곳에 숨어서 제가 하던 일을 이어 갈 거다. 속죄할 정도의 양심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애초에 그런 짓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니.

죄를 저지른 자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피해자가 뭘 용서한단 말인가. 적어도 지승혁은 그렇게 마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도리어 원한을 가지고 깨진 발톱으로 조정현에게 날을 세우지나 않으면 다행일까.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후환을 남길 생각은 없다.

우철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만한 얼굴이나 지문 쪽을 최대한 상하지 않게 했던 건 자백 형식을 빌려 비디오를 찍기 위함도 있었으나, 이후에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할 조정현을 생각했던 것도 있었다.

지승혁은 추정 같은 애매한 단어로 조정현이 상상할 불쾌한 것들은 가능한 한 치워 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우철곤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바로 알아볼 수 있기를 원했다.

그 점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고 처리를 넘겼던 게 문제였을까.

정태준이 무슨 짓이든 할 거라는 예상은 했었으나 도를 지나쳤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떻게 되돌이킬 수 없었으나 이후에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페로몬은 검출되지 않을 거니까 그 점은 별도로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일 처리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문제 삼은 적이 있나?”

-……아이고, 무섭게 또 비행기를 태우셔. 예, 알겠습니다. 다음엔 쓸데없이 선 넘지 않도록 신경 쓸게요. ……그만 끊어야 할 것 같은데요.

지승혁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무어라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통화가 끊겼다.

우철곤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니 약간의 잔가지들은 지호택 쪽에서도 손을 써 줄 거다.

워낙 솜씨가 깔끔한 편이라 걱정할 건 없겠으나 그래도 언론이 괜히 들쑤시고 다니거나 검찰 쪽에서 괜한 이야기를 흘리며 소란스러워지는 걸 막아 줄 거다. 지승혁에게 아직까지는 그만한 힘은 없었다.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던 지승혁은 제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을 떠올리곤 다시 일에 집중했다.

막 일을 끝냈을 때 확인한 시간은 평소보다 일렀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꽃을 사 갈까, 하는 생각을 하던 지승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업무용 핸드폰 중에서도 내밀한 사람과 연락하는 핸드폰 쪽이었다. 화면에는 지호택의 비서가 떠올라 있었다.

-지승혁 님이십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회장님께서 일 하나를 처리해 주십사 하십니다. 문자로 주소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비서는 지승혁의 알겠다는 대답을 듣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오래지 않아 주소가 적힌 문자가 도착했다. 지호택이 일부러 일을 맡긴 이유가 있을 거다.

지승혁은 혀를 차며 그 주소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VIP만 출입이 가능한 바였다.

도착한 곳을 확인한 지승혁은 지호택이 지시한, 처리할 ‘일’이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내부는 어지간한 금액으로는 이용이 불가능한 회원 전용 바로 보였다. 이런 곳을 이용하고, 지호택이 특별히 처리를 하라고 지시를 내릴 만한 인물이라면.

“…….”

지승혁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한 명이었다.

지연호.

워낙 프라이빗하게 꾸며진 곳이기에 입구에서부터 지승혁을 제지했으나 그의 신원을 확인하자 안쪽에서 책임자인 듯한 자가 달려 나와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비서분께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이곳의 총지배인인 김전오입니다.”

그는 깍듯한 태도로 자신을 소개했다. 김전오는 이런 상황에서도 지승혁에게 명함을 건네는 것 또한 잊지 않는 철두철미함을 보였다.

김전오는 지승혁에게 한 손을 내밀어 안내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를 따라 방으로 가는 통로에 피가 점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미미하게 눈을 찌푸린 지승혁은 작게 혀를 찼다.

지승혁은 자신의 목적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닫힌 문 앞에 서 있던 예민한 인상의 남자가 그를 보자 몸을 돌려세우고 묵례를 했다. 그를 발견한 지승혁은 걸음을 늦추고 눈썹을 위로 조금 들어 올렸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방입니까?”

“네.”

비서가 바로 옆에 있다면 그가 해결했으면 될 일이었을 텐데 굳이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낸 저의는 안 봐도 훤했다. 지승혁은 가볍게 이를 사리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승혁의 예상대로 지연호가 벨벳 소파에 몸을 늘어뜨린 채 앉아 있었다. 이른 시간부터 술을 얼마나 입에 처넣었으면 몸을 가누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지연호 이사님께서 지승혁 님의 말씀을 더 잘 따라 주실 테니까요. 저희는 바로 문밖에 대기하고 있을 테니 필요하신 일이 있으시면 불러 주십시오.”

비서가 입꼬리만 살짝 올린 얼굴로 말했고 김전호는 그 옆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비서는 너 혼자 알아서 처리하라는 말을 참으로 사무적으로 빙 둘러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승혁이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이곳에서 발생하는 일은 모조리 지호택에게 보고될 터였다.

가지가지 한다며 진저리를 친 지승혁은 김전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치신 분은요?”

“……네?”

저에게 질문이 날아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김전오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피가 있길래 물어본 겁니다. 다친 분은 어디 있습니까.”

“아, 예에. 김소진 님이라면 지금 응급 처치를 받고 계십니다. 병원으로 가기엔 좀 그렇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분이라 이런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건 상호 간에 좋지 않으니까요.”

김전오가 눈을 좌우로 굴리며 이야기했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연예인인 듯했다.

“그분을 잠깐 뵙는 게 먼저일 것 같군요.”

“네? 아, 그러시겠습니까?”

지승혁은 김전오의 안내를 받아 김소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작고 마른 체구의 여자가 팔 쪽에 처치를 받고 있었다.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한 동요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 표정이 몹시 좋지 않았다.

광대뼈 근처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는 게 먼저 시선을 잡아끌었다. 눈물을 흘렸는지 눈가가 물기로 번들거렸다.

가까이 다가가자 술 냄새가 훅 났다.

“처음 뵙습니다. 지승혁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로 인사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많이 다치셨습니까?”

“아, 네. 네에. 안녕하세요. 김소진이에요. 그냥, 좀. 이사님이 오늘 좀 상태가 안 좋긴 했어요. 제가 어, 약은 안 한다고 하니까 그게 싫었나 봐요. 그래서, 음, ……아,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네. 괜찮아요.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낫겠죠. 팔은 괜찮아요. 얼굴이, 흑, 모레 광고 촬영 있는데…… 흐윽.”

그녀는 충격으로 횡설수설하며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묻지 않았던 사실까지 이야기를 한 김소진은 감정이 격해진 건지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으시면 저희 직원이 자택까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많이 놀라셨을 테니 보상이라기엔 약소하지만 치료비를 포함해 기타 제반 비용을 부담하려고 합니다. 광고사엔 저희 쪽에서 따로 연락을 드려 부기가 빠질 때까지 연기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말요? 그래 주실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은 여러 사람이 알면 곤란하시지 않겠습니까.”

김소진은 술에 취한 와중에도 지승혁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래요, 맞아요. ……여러 사람이 알면 곤란하죠. 맞아요. 알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구불구불하게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지승혁은 김전오에게 눈짓했고 그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김소진은 일어나 나가기 전 지승혁을 돌아보았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음, 그러니까 나중에 혹시 따로 만날 일이 있다면, 그러니까 그럴 일이 있으시다면 연락 주세요. 바로 달려올게요.”

“따로 배웅해 드리지 못하는 점 이해 바랍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입술 끝에 잘 만들어진 미소를 걸어 둔 김소진에게 지승혁은 지극히 사무적인 인사만을 건넸다. 아직도 제대로 진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그녀는 다음을 얘기하고 있었다. 아마 지승혁과 인연을 만들어 두는 게 차후에 이득일 거라는 계산을 끝낸 게 분명했다.

지승혁은 작별 인사 외 김소진의 제안에는 일체 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쉬운 듯 연신 지승혁을 흘끔거리다가 이내 포기한 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걸 확인한 지승혁은 바로 지연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함께 따라 들어오려는 비서에게 손을 들어 잠시 밖에서 대기하라는 뜻을 전하자 그는 자리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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