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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84)화 (84/130)

#84

조정현은 제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 애썼고 그런 노력은 곧 효과를 발휘했다.

한결 가벼워진 상태가 된 조정현은 눈꺼풀을 천천히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페로몬을 좀 더 달라고 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참을게요.”

“더 원하면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는데요.”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살짝 농담을 건네니 지승혁도 짓궂게 대꾸했다.

“……아니에요.”

결국 조정현 쪽이 먼저 멋쩍게 백기를 들었다. 조정현은 편하게 그에게 기댄 채 손가락으로 그의 옷 위를 가볍게 문질렀다. 얇은 옷감 아래에 있는 굳건한 육체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얼마간 그러고 있던 조정현을 지승혁이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발적인 그의 행동에 조정현은 엇, 하는 소리를 내며 다급히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잘 먹었는데도 아직 그대로인 것 같네요. 좀 더 살이 쪄야겠어요. 너무 가벼워요.”

“그, 너무 가벼운 정도는 아닌데요.”

“뼈대가 얇아서 그런가.”

“그냥 보통인데…….”

지승혁은 침대 위에 가볍게 조정현을 내려놓고 뺨을 쓰다듬다가 쪽, 소리를 내며 인사처럼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전할 말이 있었는데 타이밍이 좀 그렇네요. 들을래요?”

“뭔데요?”

지승혁의 손가락이 조정현의 뺨 위를 덧그리다가 아래로 내려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곤 손바닥에 입술을 맞추었다.

“어머님, 그러니까 김윤혜 씨, 적당한 집을 새로 얻어 놨어요.”

“네?”

조정현은 숨을 삼키며 눈을 크게 떴다. 이내 빠르게 눈을 깜빡거리며 지승혁이 한 말을 제가 바로 들은 게 맞나 되새겨 보았다.

“계속 신경 쓰는 것 같아서요. 이쪽은 주변 환경이 너무 낯설까 싶어 원래 사시는 곳 근처로 구해 두긴 했어요. 하지만 정현이가 여기 가까운 곳에 계시길 원하면 이 근처로 다시 알아봐도 좋아요.”

조정현의 입이 기어코 벌어졌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치 마음을 읽었던 것처럼 지승혁은 조정현이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그뿐이 아니라 그 부분을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조정현은 한참을 지승혁의 얼굴을 보다가 머뭇머뭇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무척이나 고마운데 고마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을 해도 될까 망설여졌다.

“형, 제가…… 지금 이러는 게 너무, 속물 같긴 한데요. ……정말 고맙습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형한테 물질적인 걸 바라고 이러는 건 아닌데요, 너무…… 큰 걸 해 주셔서 감사한데, 그에 비해 저는 달리 해 드릴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런데 어떡하죠……?”

“물질적인 걸 바라도 괜찮아요. 내가 가진 게 그건데.”

“아뇨, 아니에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조정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을 귀엽다는 듯 보다가 말을 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뭔 줄 알아요?”

갑작스럽게 던져진 질문에 조정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쉬운 거요? 어려운 거 말고요?”

대화의 흐름으로 툭 던져진 질문의 맥락을 잡기 위해 애써야 했지만 짚이는 바가 없었다.

“음……. 숨…… 숨 쉬는 거요? 아, 아프신 분들에게는 아닌가. 음……. 잘 모르겠어요.”

“바로 돈으로 해결하는 거예요.”

“……네?”

바로 그 돈 때문에 지승혁에게 찾아왔던 조정현은 곧장 납득하지 못한 채로 되물었다. 지승혁도 그걸 깨달았는지 곧바로 “물론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 한해서이긴 하지만요.”라고 덧붙였다.

“정현이가 물건을 하나 부쉈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데 그게 소중한 분의 유품인 거죠. 상대가 피해보상은 필요 없고 똑같은 걸 구해 오라고 한다면 어때요. 그 요구를 들어줄 길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없어요.”

조정현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승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갔지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감을 잡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돈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쉽다고 생각해요. 보상하는 거나 해결하는 거나. 액수가 커지는 것에 따라서 해결할 수 있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맞고.”

지승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 갔다.

“정현이는 내가 돈이 많아서 좋아해요?”

“아뇨!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조정현은 불에라도 덴 것처럼 바로 반응했다. 지승혁의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반응에 지승혁이 눈매를 부드럽게 휘었다.

“그렇죠? 내가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정현이가 날 좋아하게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돈을 쓰면서 계속 집적거릴 수는 있죠.”

“……집적…….”

조정현이 작게 그 단어를 반복했다.

“집적이라는 단어는 좀 그런가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내가 별로고. 그러면 이렇게 바꾸죠. 공을 들이는 거라고. 비료도 주고, 물도 주고. 사랑도 주고.”

“제가 나무예요?”

“예쁜 과일나무죠.”

지승혁의 대답에 조정현은 순식간에 사람에서 과일나무가 되었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기쁘기까지 했다. 찬찬히 지승혁의 눈을 마주 보던 조정현이 물었다.

“……과일나무에 싹은 났나요?”

“탐스럽게 열매도 열렸어요.”

시답잖은 대화를 하는 동안 분위기가 녹진하게 풀어졌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추었다.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맞춤은 그 이상으로 깊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좀 더 뜨거운 행위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지금의 분위기를 바꾸는 게 싫었다.

조금 전 접한 우철곤의 속보로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았던 기분이 이 순간만큼은 마치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미지근하고 기분 좋은, 미온수 같은 아늑한 느낌이 조정현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승혁과 이마를 맞댄 채로 코를 살짝씩 비비며 눈을 감았다.

고맙다는 말도 지금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말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 느끼는 것의 반이라도 지승혁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전에는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입을 여는 순간 마음이 끓어 넘칠 것 같았다.

제 몸을 끌어안은 단단한 지승혁의 팔을 느끼며 조정현은 그의 코끝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눈두덩이에 한 번, 이마에 한 번 차례차례 키스한 조정현은 제 마음이 지승혁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그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 * *

날이 아직 밝기 전, 지승혁은 조정현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쌓여 있던 일감을 해치우고 나자 바깥이 환해져 있었다. 지승혁은 핸드폰으로 조정현에게 전화했다.

-네에, 형.

신호음이 몇 번 울린 후 전화를 받은 조정현은 막 일어난 듯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 폭신한 이불에 돌돌 말린 채 자고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잘 잤어요?”

-네. ……잠깐만 자려고 했는데.

“필요한 만큼 자면 되는 거죠.”

-네? 네에. 이제 일어나야죠.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닌 듯 응차, 하고 힘을 쓰는 소리가 작게 났다.

-어, 형 그런데 바쁘신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우리 정현이 목소리 들을 시간은 있어요.”

빨리 끊고 싶어서 그러냐는 놀림 섞인 물음에 조정현은 바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게 아니고요. ……저도 형이랑 계속 통화하고 싶긴 한데. 일하시는 만큼 빨리 끝내고 일찍 들어오실 수 있잖아요.

지승혁은 헛숨을 들이마시며 웃었다.

그러니까 조정현은 빨리 일 마치고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하고 있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이런 귀여운 이야기를 하는지 직접 보지 못해 애석하기 그지없었다.

“알겠어요. 가능한 빨리 들어갈게요.”

-아, 그게 그러니까, 일은 다 하시고, 오세요. 괜히 저 때문에 해야 하는 일 멈추고 그러지 마시구요. ……맛있는 거 해 놓고 기다릴게요.

굳이 덧붙이는 점 역시 조정현다웠다. 지승혁은 책상 끄트머리를 쳐다보며 답했다.

“그래요. 식사는 잘 챙겨 먹고 있어요.”

이번에는 건너편에서 조정현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네. 잘 챙겨 먹을게요. 형도 몸조심하시구요. 보고 싶어요.

통화를 마친 지승혁은 아쉬움에 핸드폰 액정을 잠시간 응시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었으나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는 정태준의 번호를 선택한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바로 전화를 받는 상대방에게 지승혁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했던데.”

-네? 갑자기 전화해 놓고 생뚱맞은 말씀을 하시네요.

황당함을 숨기지 않는 정태준의 목소리에 지승혁은 잠깐의 텀도 두지 않았다.

“우철곤.”

-아하.

정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우철곤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하게 한 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정태준이 한 짓일 터였다. 그리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는지 정태준은 단박에 알아들은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 새끼 얼굴에 써 놓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셨대. 그래도 사장님이 건드리고 난 거 잔반 처리했잖아요. 거, 건드릴 것도 없이 싹싹 발라 드셨으면서 눈치를 주시네. 그 새끼가 저질렀던 거에 비하면 호상으로 보내 준 거라고요.

“속보 처리될 일은 한 번이면 충분해.”

‘추정’이라는 애매한 말로 속보가 뜨길 원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우철곤을 살려 둘 생각은 없었다.

차후에 그가 조사를 받으며 입을 열어 시끄럽게 만들 우려도 있었고, 무엇보다 조정현에게 그런 짓을 한 우철곤을 두 발 뻗고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법원으로 가서 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와 줄이 닿은 사람들을 이용해 쥐새끼처럼 빠져나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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