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83)화 (83/130)

#83

치킨을 시켜 먹게 된 건 김윤혜를 다시 만났을 때였다.

그녀는 식사로 치킨이 어떤지 물어보았고 조정현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조정현이 보고 싶을 때 치킨이나 피자를 시켰었다는 이야기는 그냥 한 말이 아닌 듯 한 번은 꼭 먹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김윤혜는 이곳 주소를 묻는 지승혁에게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산다고 사양했다. 워낙 그녀의 뜻이 강경했기에 드물게 지승혁이 물러났다. 단지 다음에는 꼭 식사 대접을 하게 해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 마리를 주문하는 것에 놀라 만류하던 조정현의 두 마리면 된다는 이야기에 김윤혜는 남자 둘인데 두 마리로 되겠느냐며 양껏 먹고 남기면 된다고 했다.

따끈한 김을 내며 도착한 치킨은 냄새부터 기가 막히게 좋았다.

“정현이 이거 먹어 봐. 여기 치킨이 아주 맛있어. 승혁 씨도 얼른 드세요.”

상자를 열자마자 김윤혜는 닭 다리를 하나씩 집어 조정현과 지승혁에게 권했다.

금방 만들어 배달을 왔는지 김이 날 정도로 뜨거운 치킨을 한입 조심스레 베어 물자 바삭하고 고소한 게 형용할 말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치킨이 이렇게 맛있었던가. 조정현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우물거리며 씹던 조정현은 이번에도 김윤혜가 먹을 기색이 없다는 걸 눈치채고 얼른 닭 다리 하나를 집어 들어 건넸다.

“어, 저기. 맛있는데 이거 같이 드세요.”

“아유, 아냐. 나는, ……그래. 그럼 먹어 볼게.”

김윤혜는 사양하다가 결국 조정현이 건네는 걸 받아 들었다.

한입 베어 문 김윤혜는 몇 입 먹지 못하고 닭 다리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가가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목, 목 막히세요? 여기, 콜라 드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으응, 고마워…….”

김윤혜가 설핏 웃으며 조정현이 건넨 컵을 받아 들고 입을 축였다.

조정현은 자신을 보는 김윤혜의 시선에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채소가 부족한 것 같다며 양배추라도 썰어 온다고 하곤 곧 몸을 일으켰다. 말릴 새도 없었다.

그녀는 제법 큰 그릇에 수북하게 썰어 넣은 양배추에 케첩과 마요네즈를 뿌려 돌아왔다.

한 조각, 한 조각 야금야금 먹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상자 가득 들어 있던 치킨은 어느새 반 이상 줄어 있었다. 이렇게 많이 먹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기분 탓인지, 그럴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먹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심지어 조정현도 곧잘 시켜 먹었던 치킨 브랜드였다. 아무리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지만 이렇게까지 맛있을 수 있을까.

“…….”

그래. 비교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건 엄마가 저를 위해서 시켜 주신 건데.

참 신기한 느낌이었다.

깔끔하게 발라먹은 뼈를 내려놓던 조정현은 지승혁이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정현은 그제야 제가 지승혁에게 따로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시켜 주었던 치킨은 몇 조각 먹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싹싹 뼈까지 발라먹은 게 혹여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조금 걱정됐다.

지승혁은 워낙 눈치가 기민했고 사람의 말 맥락을 기가 막히게 잡았으나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짐작해 태평하게 굴 수는 없었다. 조정현이 시선을 마주한 채로 눈을 깜빡거리자 지승혁이 미소했다.

“음식 식겠어요. 먹어요.”

“네에.”

“어르신도 드세요.”

“그래요.”

지승혁이 음식을 권하는 모습에서는 작은 티끌만큼의 어색함도 찾을 수 없었다.

세 사람은 치킨 박스 세 개를 싹싹 비웠다.

음식을 다 먹은 후 지승혁은 망설임 없는 손길로 먹고 남은 뼈들과 휴지를 전부 치웠다. 김윤혜가 자신이 하겠다고 만류했으나 지승혁은 선선히 웃으며 “밥 먹은 값은 해야죠.” 하고 말했다.

김윤혜는 일을 다니고 있었고 평일 저녁 시간이었기에 두 사람은 식사만 하고 바로 나와야 했다. 저번처럼 큰길까지 배웅하려는 김윤혜에게 시간이 늦었으니 여기에 계시라고 말려야 했다. 조정현이 늦은 시간에 걱정되어 그런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김윤혜는 고집을 꺾었다.

그녀와 현관문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온 조정현은 골목길을 지승혁과 걸었다.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서 나란히 걷는데 터벅거리는 신발 소리 사이로 집집마다 나는 생활 소음이 창문 바깥까지 들려왔다.

한곳에 우르르 나와 있는 쓰레기봉투를 보며 걷던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말을 걸었다.

“맛있게 먹었어요?”

“어, 네. 저기, 형아. 오늘 치킨 먹을 때요…….”

“무슨 말 할지 맞혀 볼까요? 저번에 치킨 먹고 남긴 게 맛없거나 그래서가 아니었다고 하려고 했죠.”

조정현은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승혁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을 이었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설령 맛이 없어서 조금만 먹었대도 그게 왜요. 괜찮아요. 신경 쓸 거 하나도 없어요. 아니면, 내가 그런 걸로 쩨쩨하게 트집을 잡을 사람처럼 보였어요?”

“아뇨, 아뇨! 그게 아니구요……!”

조정현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승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럼 됐어요. 나는 우리 정현이가 먹는 것만 봐도 충분해요.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 알겠어요.”

“……저도 형아 드시는 거 보면 좋아요. 특히 제가 만든 거 맛있게 드셔 주실 때요.”

지승혁의 말에 들어 있는 진심이 느껴져 손끝이 빨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조정현은 빠르게 씻고 나와 습관처럼 리모컨으로 TV 전원을 켰다. 그러자 방송 화면 하단에 붉은 띠가 가로지르며 떠 있었고, 그 위에 ‘속보’라는 글자와 함께 ‘국회의원 우철곤 극단적 선택, 야산 인근 추정 시신 발견’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조정현은 리모컨을 쥔 채로 그대로 굳었다.

우철곤.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추정이라고 했으니 그가 맞는지 아닌지 몰랐지만, 확률이 낮았다면 굳이 속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올 리가 없다. 동영상을 올린 이후로 우철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데 설마 이런 식으로 결말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노력하겠습니다.]

우철곤은 동영상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조정현은 당연히 그가 법정에 출두해서 법이 내린 판결을 받아들이고 죗값을 치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만큼 그가 말한 방법이 이런 식이라는 게 당최 믿기지 않았다. 물론 우철곤이 그 선택을 쉽게 한 건 아니겠으나 이건 명백한 도망이었다.

우철곤은 그가 괴롭힌 사람들을 찾아서 한 명, 한 명에게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심으로 사죄하는 방법보다는 쉬운 쪽을 택했다.

……비겁하게.

물론 저 선택 자체를 사죄나 보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 조정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조정현의 손끝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를 꾹 사리물은 턱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우철곤으로 추정되는 시체의 훼손 상태가 심해 신원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소식을 앵커가 무표정한 얼굴로 전했다. 리모컨을 쥔 조정현의 손에 꾸욱, 힘이 들어갔다.

그때 그보다 조금 늦게 욕실에서 나온 지승혁이 작게 혀를 차며 다가와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쳐다보던 조정현의 손에서 리모컨을 빼내 갔다. 그는 TV 화면을 끄며 조정현을 살짝 끌어당겼다.

지승혁의 큰 손이 조정현의 어깨부터 팔뚝까지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리 와요.”

“…….”

조정현은 자신이 제대로 걷고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바닥이 휘청이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지승혁의 다리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조정현을 끌어안고 가만히 일정한 리듬으로 등을 토닥여 주고 있었다. 조정현은 자신이 마치 새끼 원숭이처럼 지승혁의 품에 안겨 그의 옷자락을 꾹 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정현은 할 수 있는 한 지승혁의 체향을 깊이 들이마셨다.

페로몬이 아니더라도 두근거리던 심장이 조금씩 진정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속보를 접할 때 지승혁이 옆에 있어 주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혼자서 어떻게 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몸에 남아 있던 잔떨림도 곧 진정되었다.

“이제 괜찮아요. 괜찮아졌어요. 좀, 놀라서 그래요. ……화도 좀 났고요.”

“……그래요. 좀 더 이대로 있어요.”

조정현은 지승혁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며 그의 어깨에 뺨을 문질렀다.

“너무, 너무 비겁해요. 어떻게 저럴 수 있죠……?”

지승혁은 말로 대답하는 대신 조정현의 등을 느릿하게 쓰다듬으며 툭툭, 토닥였다.

느릿하고 부드러운 토닥거림은 일렁거리기 시작한 조정현의 기분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지승혁의 시원하고 상쾌한 페로몬 향기가 조금씩 강하게 주위를 채워 가기 시작했다. 절로 기분 좋은 한숨이 나오고 몸에서 힘이 빠졌다.

어느 정도 더 시간이 흐르자 조정현은 울렁이던 기분이 잔잔하게 가라앉은 걸 느끼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화를 내고 분노한다고 해도 지승혁이 있을 때는 아니다. 그런 날것의 감정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제가 화낼 사람은 우철곤인데 그 화의 표출을 지승혁에게 한다면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꼴이 아닌가. 그렇게 하기엔 지승혁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다. 속에 있는 것을 내보일 만큼 지승혁은 편한 상대이긴 했으나 그런 만큼 그에게 애꿎은 분풀이는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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