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79)화 (79/130)

#79

“그래서 너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거야. 마침 너를 데리고 가겠다는 사람은 중소기업 사장이었고 너에게 나보다 더 좋은 환경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단다.”

그녀는 컵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입술을 뗐다가 다시 다문 김윤혜는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녀의 입술도,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온 숨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자랐을까 너무 궁금했어. 어떤 얼굴일까. 뭘 좋아할까. 어떤 성격일까. 엄마를 원망할까. 아니,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으면 좋겠다, 하고.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네 생일이나…… 네 생각이 날 때는 그냥 치킨이랑 피자를 샀어. 이건 좋아하겠지, 하고.”

그녀는 마치 속삭임처럼, 몇십 년간 쌓아 왔을 생각을 담담하게 토해 냈다.

치킨이랑 피자.

조정현은 가만히 매실차를 담은 컵 안을 쳐다보았다. 그동안 참 많이 먹었던 음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렇게 먹었던 피자와 치킨이, 김윤혜가, 어머니가 자신을 생각해서 사 준 거라고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조용히 무릎에 올려 둔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승혁이 설거지를 하며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물소리가 적막함을 채워 주었다.

지승혁이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자체가 큰 위로였고 안도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조정현은 목 졸리는 느낌을 꾹 눌러 삼키려 했으나 꽤나 어려웠다.

조정현은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웠던 매실차는 어느새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엄……, 아니……. 내가 미안해. 너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어떤 말을 해도 다 듣자고 생각했어. 그저 네 얼굴을 한 번 볼 수 있다면. ……자기만족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별수 없지만, 너를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단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조정현의 입술이 달싹였다.

“아니에요. 그때 하실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신 거잖아요. 왜 원망을 하겠어요. 책임감이 없는 건 도망간 그 남자죠.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저를 낳아 주셨고 입양도 보내 주셨으니까 하실 수 있는 건 다 해 주신 거예요. 저 정말 잘 먹고 잘 지냈어요. 진짜요.”

조정현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조정현이 영위한 삶은 초라하거나 빈곤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조정현의 말을 듣던 김윤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때를 같이해 지승혁이 설거지를 하던 소리가 멈추었다.

* * *

‘다음에, 나중에 네가 내키면 언제든 또 와. 맛있는 거 사 줄게.’

김윤혜가 떠나는 조정현에게 한 말을 그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녀가 사는 곳까지 차 들어오기가 힘들었기에 세 사람은 대로변까지 걸어 나가야 했다.

김윤혜는 차에 올라탄 조정현에게 얼른 가라고 연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차가 떠나고서도 한참을 그곳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뒤 창문으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던 조정현은 그녀가 안 보일 즈음이 되고 나서야 차 시트에 털썩 몸을 묻었다.

김윤혜는 조정현의 양부모에 대해서 하나도 묻지 않았다. 사전에 지승혁이 미리 이야기를 해 준 건지 아니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일부러 묻지 않은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조정현의 입장에서는 참 다행이었다.

그녀와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순간이 왠지 꿈 같았다.

가볍게 한숨을 쉬던 조정현은 정신을 차리고 지승혁 쪽으로 돌았다.

“형아, 오늘 정말 감사해요.”

“별말을요.”

“제가 부탁해서 같이 가 주신 건데 설거지도 해 주시고……. 원래 제가 했어야 했던 건데요.”

“그러려고 간 거예요. 정현이가 좋은 시간을 보냈다면 그걸로 됐어요.”

지승혁의 다정한 말이 부드럽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손을 잡아 두 손으로 그의 손톱을 꼭꼭 누르며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저, 이따 저녁에…… 아니 오늘 저녁이 아니라도 내일이라도 괜찮은데. 저어…… 치킨을 시켜 먹어도 될까요?”

“치킨?”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린 지승혁의 질문에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거야 상관없어요. 정현이가 먹고 싶은 거면 뭘 시켜 먹어도 괜찮아요.”

“고맙습…… 형?”

선선한 승낙도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도 너무 고마웠다. 조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승혁의 손이 그의 아랫입술을 슬며시 쓰다듬었다.

“저……?”

“고맙다는 말 금지예요. 우리 정현이는 좀 더 뻔뻔하게 굴 필요가 있어요. 연습해 봐요.”

“뻔뻔, 아니……. 그럴 수는 없죠. 금지까지는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될 텐데요.”

조정현이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그런 그를 보며 빙그레 웃던 지승혁이 한쪽 턱을 괴며 말했다.

“나야말로 이런 소중한 자리에 함께하자고 권해 줘서 고마워요.”

“네? 아뇨, 그거는 당연, 당연한 거고요. ……아.”

바로 대답하던 조정현은 그가 뭘 노리고 한 말인지를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이런 느낌이로구나, 싶었다. 조정현에게 있어서 지승혁이 함께한 건 지극히 당연했고 따로 인사를 받을 만한 일도 아니었다. 지승혁이 말하던 게 바로 이런 거였을까.

말로 할 때와 다르게 직접 체감을 하니 확실히 지승혁의 말이 일리 있게 느껴졌다.

“그렇죠?”

지승혁이 눈매를 아래로 휘며 웃었다.

“고맙다고 생각해 주는 건 좋은데 너무 그러면 거리 두는 것처럼 느껴져요.”

“아니, 그건 아닌데…….”

“뭐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정현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알고 있어요. 단지, 앞으로는 그냥 받는 연습도 해 봐요.”

나긋하게 하는 말에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받는 연습. 그동안 지승혁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는데 더 받을 게 있을까. 그리고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에 익숙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 그만큼 둔감해진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했다.

조정현은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승혁이 바라는 게 그거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조정현은 제 손보다 훨씬 큰 지승혁의 손을 흘끔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사이 차는 익숙한 주차장에 들어섰다. 조정현은 김성채에게 인사한 후 차에서 내려섰다.

건물에 도착한 조정현은 거울처럼 닦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기계식 자물쇠를 열고 들어갔다. 건물 내부 어느 한구석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집에 들어간 조정현은 넓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새삼스러웠다. 김윤혜의 집에서 바로 와서 그런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니 단순히 크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거대하고 거대했다.

조정현의 뇌리에 오늘 봤던, 곰팡이 자국이 벽지에 남은, 작은 반지하 집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여태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야 할 김윤혜를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묵직해졌다.

“무슨 생각 해요?”

지승혁이 조정현의 허리를 감싸며 귀 뒤쪽에 작게 입을 맞추었다. 조정현은 생각을 중단했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지승혁에게 제가 느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자신이 김윤혜의 거주지에 대해 신경 쓰는 기색을 보인다면 지승혁은 아무 망설임 없이, 어떤 것도 재지 않고 나서서 뭐든 해 주려고 할 거다. 하지만 그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털어놓을 정도로 조정현은 뻔뻔스럽지 않았다.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라곤 하지만 조정현도 이제 겨우 한 번 만났을 뿐이다. 고작 자신의 마음 편하자고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조정현은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아무것도요. 오랜만에 나갔다 와서 지쳤나 봐요.”

“그러면 우리 잠깐 쉴까요. 느긋하게 쉬어도 괜찮고.”

넓고 단단한 가슴이 등에 닿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목과 뺨에 연신 닿았다가 떨어졌다. 조정현은 작게 웃으며 그런 지승혁의 팔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내밀자 지승혁이 바로 키스해 왔다. 입술에 닿는 익숙한 촉감에 조정현은 눈을 감고 그 느낌을 마음껏 음미했다.

마음이 녹진녹진하게 풀리는 느낌에 조정현은 그제야 제가 오늘 내내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정현이 지승혁의 입술을 가볍게 물고 혀로 몇 번 핥자 곧 말랑말랑하게 변했다. 그 감촉을 즐기다가 입술을 뗀 조정현이 감았던 눈을 떴다. 고요한 열기가 고인 지승혁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보고 있었던 걸까. 처음부터 눈을 감지 않았던 걸까.

조정현은 광대뼈 근처가 당장에 뜨거워짐을 느꼈다.

가슴이 조이듯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저 지금부터 목욕할 건데, 같이하실래요?”

지승혁의 귓가에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조정현을 쳐다보는 지승혁의 눈매가 가늘어지고 그의 목울대가 크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상냥함이 머물던 눈동자에 조금 다른 종류의 기색이 섞이고 있었다. 조정현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 자신의 얼굴에도 떠올라 있을 게 분명했다.

내부가 달콤하게 욱신거렸다.

“……그걸 말이라고.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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