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77)화 (77/130)

#77

“그렇군요.”

혼자 있는 동안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지승혁은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조정현이 몇 번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마음먹은 것이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드러난 매끄러운 이마를 손가락으로 살짝 문질렀다.

“알겠어요. 잘 생각했어요.”

“형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별소릴 다 하는군요. 좋은 냄새가 나는데요. 우리 안으로 들어갈까요?”

조정현은 안으로 들어가며 박석영이 잘 지내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지승혁은 그런 그에게 나중에 출근할 때 사무실로 함께 가자고 권유했다. 조정현은 그 제안이 몹시 기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둥글게 솟은 뺨이 보기 좋게 발긋했다.

* * *

조정현은 몇 번이고 침을 삼켰는지 모른다. 그래도 입이 말라 지승혁이 권하는 물을 거푸 마셨다. 손바닥 안에 땀이 차올랐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던 날, 긴장하며 걸었던 첫 번째 전화는 허망하게도 소리샘으로 연결이 되었다. 긴장을 했던 만큼 반동으로 힘이 빠져 통화를 종료하고 나서 잠시간 벽에 기대앉았다. 연달아 전화를 해도 될까, 바쁠 때 방해가 되는 게 아닐까, 고민하다가 재통화를 눌렀다.

이번에도 응답이 없으면 내일에나 다시 전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의 귀퉁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여보세요.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친어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목소리는 어떨까 상상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가 되자 상상은 우습게도 너무나 쉽게 바스라졌다. 지금은 어떤 상상을 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 어. 김윤혜 씨 핸드폰 맞, 맞나요?’

-그런데요. 실례지만 누구신지……?

조정현은 머리가 하얗게 되어 제 소개도 제대로 못 하고 버벅거렸다. 제가 누군지 가까스로 밝혔을 때에 친어머니는 한동안 침묵했다. 서로 숨소리만 듣고 있던 상태를 깬 건 친어머니 쪽이었다.

-전화해 줘서 고마워.

조정현은 제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아니라고 답했다. 서로 별다른 말 없이 숨소리만 듣다가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실감이 나지 않아 몇 번이고 전화 목록을 확인하곤 했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되었다.

무슨 정신으로 약속 장소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손바닥은 자꾸 축축해지고 손끝은 차가워졌다. 연신 바지에 손을 문질러 닦아도 그때뿐이었다.

지승혁이 그런 조정현의 손을 잡아 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그건 마치 주문 같았다.

조정현은 제 옆에 앉은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고맙습니다.”

지승혁의 따뜻한 체온에 살짝 마음이 놓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차가 멈추자 조정현은 지승혁의 손을 꼭 잡았다.

“같이 가 주시면 안 돼요?”

지승혁은 조정현의 말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조정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그럼요. 형이랑 같이 가고 싶어요.”

“혹여 내 기분을 살피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조정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어서, 눈치를 보느라 결정한 게 아니었다.

“오늘은 제 인생에 중요한 날이고 그런 만큼 형이 옆에 있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조정현은 제 생각을 전달했다.

지승혁과 함께 갈지 말지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결론은 같았다.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물론 너무나 내밀한 이야기가 오고 갈 수도 있고 보기 흉하게 울 수도 있었지만 그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싶었다.

가만히 조정현의 얼굴을 보던 지승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에서 만나고 싶어 한 건 친어머니인 김윤혜의 뜻이었다.

마침 내부에는 사람이 적었다.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하던 건 기우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았을 때 바로 느낌이 왔다.

저분이 친어머니구나, 하는 그 느낌이. 그리고 그건 김윤혜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녀는 조정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난 상태로 그를 빤히 응시했다. 그 시선은 마치 끈끈이 풀로 붙여 놓기라도 한 듯 다른 곳으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매우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앉은 자리로 걸음걸음 다가갈 때마다 발밑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김윤혜 씨…… 맞으세요?”

조정현의 질문에 김윤혜가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자 정신을 차린 김윤혜가 얼른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그녀의 앞에는 커피 한 잔이 놓여져 있었다. 주문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했을 때 지승혁이 말했다.

“아래에서 주문하고 올게요.”

“어, 아. 네. 다녀오세요.”

숨 막히도록 어색했다. 하지만 그게 싫으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입술 안쪽 살을 잘근거리던 조정현에게 김윤혜가 말을 건넸다.

“오기에 힘들지 않았니?”

“아, 네에. 내비 찍고 오는 거라, 괜찮았어요.”

“그래……. 차로 왔어?”

“네. 그, 어…… 어떻게 오셨어요?”

“나는 버스 타고 왔지. 여기 근처 정류장에 서는 버스가 있거든.”

“네에……. 날도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고생은 뭘. 먼 길 오느라 네가 고생했지.”

오늘은 평년보다 훨씬 따뜻한 날이었지만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왠지 겉도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조정현은 그녀의 입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가 눈을 바라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둥둥거리며 북소리를 내던 심장도 조금 진정되었다. 김윤혜의 머리카락이 진한 검은색이 아니라 여린 갈색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얼굴에 진 주름은 그녀가 지낸 세월의 흔적을 보여 주었다.

“연락받으시고, 놀라지 않으셨어요?”

조정현의 질문에 김윤혜는 잠시 답이 없었다. 김윤혜는 말없이 컵을 한 번 쥐었다 놓았다. 그런 그녀의 손에 자연히 시선이 갔다. 뭉툭한 손끝, 짧게 자른 손톱. 마디가 두껍고 주름이 많은 손가락은 마치 가느다란 나무줄기 같았다. 김윤혜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놀랐지. 기뻤고 무서웠기도 했고.”

약간의 텀을 두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떤 얼굴을 하고 널 봐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찾아 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김윤혜의 목소리 끝이 떨리고 뭉개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조정현 역시도 전염이 된 것처럼 코끝이 매워지면서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 안쪽에서 올라오는 더운 기운을 눌러 삼키기만도 힘겨웠다.

조정현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가로젓는데 때를 맞추어 지승혁이 왔다. 컵 두 개와 케이크가 올려진 쟁반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은 그 덕분에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진정된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 조정현에게 김윤혜가 질문했다.

“그런데 함께 오신 분은…….”

“아.”

조정현이 작게 소리 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지승혁이라고 합니다. 저와는 전화로 먼저 이야기를 나누셨었죠.”

“아, 네. 연락 주셨던 그분이군요.”

지승혁이 의자에서 살짝 일어나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김윤혜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지승혁과 악수를 나누었다.

지승혁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명 없이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조정현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승혁이 그러는 이유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아마 그게 가장 무난할 터였다.

김윤혜는 베타다. 베타들은 성별보다는 형질에 따라 연인이나 부부가 되는 알파나 오메가와는 달랐다. 암묵적으로 보호자라고 여기게 만들고 넘기는 편이 좀 더 편안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조정현은 굳이 그런 식으로 어물쩍하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김윤혜는 몰라도 조정현 본인이 알고 있다.

조정현은 지승혁을 한 번 본 후 입을 열었다.

“저랑 사귀는 사람이에요. 제가 부탁해서 같이 왔어요.”

김윤혜가 입을 살짝 벌렸고 지승혁의 시선이 뺨에 닿았다. 그녀는 눈을 몇 번 깜빡이곤 지승혁에게 눈길을 한 번 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라고 작게 말하면서.

조정현은 ‘놀라지 않느냐’는 질문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눈에 띄게 태도를 달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지승혁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에 대한 염려만 있었지 조정현 본인은 기분이 상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손을 한 번 꽉 잡았다가 놓았다.

“혹시 괜찮으면, 밥을…… 차려 주고 싶은데.”

“네?”

“근처에 집이 있거든. 너만 괜찮으면, 밥 한 끼라도 먹고 갈래? 물론, 내키지 않으면 안 그래도 괜찮아.”

김윤혜는 어디까지나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조정현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멍하게 앉아 있다가 저도 모르게 지승혁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는 묵묵하게 조정현과 눈을 맞추어 주었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모두 다 괜찮다고, 지승혁이 얘기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김윤혜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지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연립의 반지하가 그녀의 집인 듯했다.

계단 손잡이는 칠이 벗겨져 녹이 슬어 있는 부분이 있었고 군데군데 오래된 거미줄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렸다. 현관문에는 여러 선전용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 김윤혜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워낙 예전 건물이라 그런지 지승혁은 들어갈 때 고개를 살짝 숙여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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