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76)화 (76/130)

#76

적당히 고기 몇 점을 집어먹은 지승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저는 눈치 빠르게 빠지겠습니다. 식사 맛있게들 하십시오.”

지승혁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직원 한 명에게 건네고 나왔다.

차를 향해 걸어가던 지승혁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샛노란 색 차를 발견했다. 차가 멈추자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무감하게 그 모습을 보던 지승혁이 몸을 돌리려는데 노란 차에서 사람이 내렸다. 유감스럽게도 지승혁이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하, 이 씨발. 존나 멀어요. 이딴 데를 왜 오는 거야. 척 봐도 비위생적인데. 이래서 못 배워먹은 것들이란. ……발렛 안 해! 이 차가 얼마짜린데 이걸 달라고 해? 머리가 안 돌아가? 아, 비키라고.”

다가오는 발렛 주차 요원에게 욕을 하는 남자는 배다른 동생인 지연호(延狐)였다.

하얀 얼굴에 길게 찢어진 눈매에 염색을 하지 않은 검은 머리는 일견 단정한 느낌을 줄 수도 있었으나 표정에서 주는 인상 때문인지 건들거리는 양아치처럼 보였다.

그는 지승혁을 발견하자 늘어뜨린 팔을 흔들며 팔자걸음으로 다가왔다.

번들거리는 광택 재질의 양복은 화려한 걸 좋아하는 성격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어깨를 한 번 털 듯 움직인 지연호는 소매의 커프링크스를 만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성채가 차에서 내리려 하는 걸 지승혁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우, 우연이네? 전이랑 다르게 신수가 훤해지셨어.”

숨길 생각이 없는 건지 뻔뻔하게 구는 지연호를 본 지승혁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정식으로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빤했다. 시끄럽게 떠벌거리는 지연호를 굳이 시간 낭비해 가며 상대할 필요 없다고 판단한 지승혁은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어깨를 지연호가 붙잡아 세웠다.

“서운하게 이렇게 모르는 척하지 말고. 면상 보니까 어차피 사람 붙는 거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얌전한 척 호박씨 까는 게 특기 신가?”

지연호가 비아냥거리며 이죽였다.

그는 열성 알파다.

지승혁이 나타나기 전까지 지호택의 총애를 독점했다.

그는 지승혁을 제외한, 지호택의 자식들 중 유일한 알파였다. 그렇기에 능력은 부족하지만 후계 자리도 거의 약속된 상태였다. 본인이 아무리 개차반으로 굴어도 지호택이 다른 이에게 자리를 넘겨줄 리가 없다는 믿음에 끝을 모르고 날뛰었다.

사회면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사고들을 치고도 조용히 넘길 수 있었던 건 지호택이 손을 써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지호택은 호락호락한 사내가 아니었다.

아무리 알파 지상주의자인 그이지만 사고만 치고 제구실을 못 하는 지연호에게 그룹의 경영권을 넘길 리가 없었다. 지호택은 제왕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긴 했으나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과 실리를 각각 분별하여 계산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런 지호택이 아직까지 제대로 된 후계 자리에 지연호를 앉히지 않은 건 혈육을 향한 정으로도 그의 결점을 무마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지승혁이 제 발로 지호택의 프로텍트를 받아들이고 그 밑으로 들어갔다.

지연호가 자리에서 밀려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최근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지연호가 약이 바싹 올라 지승혁에게 들이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였다.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었고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예방책이 없는 것 역시 아니었다.

바로 어제 자신이 지호택과 독대했다는 이야기가 지연호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조만간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으나 이렇게 빨리 직접 얼굴을 들이밀 줄은 몰랐다. 극도의 다혈질이라는 정보가 헛소문은 아닌 듯했다.

단순한 면은 다루기 쉬우나 폭발하는 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건 꽤 곤란했다.

굳이 숨길 생각도 없는지 풀풀 나는 지연호의 페로몬 향에 지승혁은 살짝 눈매를 찡그렸다. 열성이라도 형질을 타고났기에 기본적인 능력은 될 터인데 너무 여기저기 구른 탓인지 썩은 페로몬 내가 진동했다.

루어를 던지지 않아도 되는 건 편했으나 저 역한 페로몬이 몸에 묻는 쪽이 더 불쾌했다.

페로몬 탈취제를 뿌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썩은 내가 몸에 묻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비위가 상했다. 끈적거리는 무형의 점액질이 전신에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지승혁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지연호가 픽 웃었다.

“뒤늦게 나타났으면 얌전히 처박혀 있을 것이지 기어 나와서 신경을 거슬리게 해. 발에 채여서 짜증 나게. 내가 노인네 밑에서 몇 년을 개고생을 하면서 굴렀는데. 순서라는 게 있잖아, 응?”

지승혁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며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저 천박한 말을 들은 것도 오래 참아 준 거다. 지연호는 자신을 무시하고 차로 걸어가는 지승혁의 등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에 예쁘장한 애 하나 끼고 갔다며?”

무시할 수 없는 말을 들은 지승혁이 멈춰 서서 지연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승혁의 반응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지연호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어이구. 왜. 안색 변하는 것 좀 봐? 건드리면 폭발하시겠어?”

지승혁은 여전히 이죽거리며 대꾸하는 지연호에게 다가갔다. 시선을 발끝으로 내렸다가 웃으면서 마주 바라보았다.

“건드려 보십시오.”

“뭐?”

지연호의 눈에 흥미로운 기색이 기름처럼 번들거리며 돌았다.

“왜? 건들면 뭐 어쩌게?”

코끝으로 웃던 지연호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관절에서 뚜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왜, 뭐. 겁주려고? 이래서 사채놀이 하던 깡패 새끼는 별수가 없다니까. 돈 처발라서 양복만 때깔 나게 차려입는다고 없던 근본이 생기겠냐? 해봐, 새끼야.”

지승혁은 두어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춘 채 삐죽하게 웃는 지연호를 쳐다보았다.

그가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 상관없었다. 이후에 어떤 식으로 부딪쳐 오건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조정현이 얽힌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것조차 내키지 않았다. 경고 삼아 그대로 지연호의 목을 잡아서 바닥에 얼굴을 갈고 싶었으나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지승혁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사람을 붙였으면 내가 어떤 새끼인지도 대충 알지 않습니까?”

“씨발, 존나 지리겠네. 뭐. 여기서 내가 겁먹고 엄마 무서워라, 이래야겠냐?”

지승혁과의 신장 차이 때문에 시선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 마뜩잖은 모양인지 지연호는 삐딱하게 서서 턱을 들어 올렸다. 건들거리던 지연호의 표정이 어느 순간 딱딱하게 굳더니 창백하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뭐, 이 씨발…….”

숫제 시퍼런 안색을 하고 뒷걸음질 치던 지연호가 제 발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으며 벌러덩 나자빠졌다.

지승혁은 그런 지연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승혁이 작정하고 쏟아 낸 페로몬에 그가 저항하듯 페로몬을 둘러보려 했으나 허망하게 흩어졌다. 극우성 알파의 페로몬 앞에서 열성 알파의 페로몬 같은 건 덤프트럭 앞을 가로막는 얇은 플라스틱 방패나 마찬가지였다.

지연호의 눈이 흰자위를 드러내고 회까닥 뒤집어지기 직전에 지승혁은 페로몬을 닫아 버렸다. 식은땀을 비 오듯 쏟고 사지를 떨던 지연호가 버티기 힘든 듯 맨바닥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지승혁은 고개만 살짝 숙인 채로 입을 열었다.

“발밑 조심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죠.”

차에 탄 지승혁은 눈썹 부근을 손으로 문지르며 출발하자고 지시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지승혁은 감았던 눈을 떴다.

머리가 복잡해진 탓이다.

좀 더 대비를 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지연호는 망나니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 위험했다. 제 딴에는 잔머리를 굴린다고 굴리긴 할 테지만 충동에 이끌려 뒷감당을 계산하지 못하고 덤벼들게 분명했다. 겁이 많아 도리어 시끄럽게 짖는 개는 무섭지 않지만 입질을 하는 경우는 주의해야 했다. 특히나 그 입질이 누구에게 향할 건지 대충 예상이 가는 경우에는 더더욱이.

특히나 지연호 같은 경우에는 저보다 약한 걸 찾는 일은 귀신같이 잘할 거다.

지승혁은 제 허벅지에 올려놓은 손을 툭툭 두드리기 시작했다.

집 주차장에 도착할 때 즈음 되어서는 생각의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정현이 웃음을 머금고 얼굴을 내밀었다. 자신을 향한 반가움만이 가득 담긴 말간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오셨어요? 일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조정현이 인사와 함께 지승혁을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폭신한 느낌이 좋았다.

보들보들한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었다. 같은 제품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조정현에게서 나는 향은 달랐다. 좀 더 달콤하고 싱그러웠다. 단지 페로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고 착각 역시 아닌 듯했으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지승혁은 가느다란 조정현의 목에 입을 맞추고 고개를 들었다.

조정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끝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을 즐기던 지승혁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티 없이 맑은 눈동자에 제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할 말 있어요?”

“네. 그, 친……어머니한테 연락 드리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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