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몇 벌이라도 가지고 가서 반품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지승혁이 덧붙였다.
“번거로울까 봐 택은 미리 제거했기 때문에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뭘요.”
다시 한번 인사하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은 간단하게 대꾸했다. 지승혁은 조정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진지한 얼굴을 한 채로 턱을 손으로 문질렀다.
“마음에 안 들어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사실 그동안 교복만 주로 입어서 옷은 잘 몰라요.”
조정현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다. 적당히 옷을 입긴 했지만 그게 센스가 좋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승혁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얼굴로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러면 이것저것 입어 봐요. 그러면서 취향을 찾는 거니까. 있는 옷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직접 가서 사도 좋아요. 뭐든 많이 해 봐요. 돈 걱정은 하지 말고요.”
“……아니, 하지만…….”
조정현의 눈이 방 쪽으로 향했다. 방 가득 채워진 옷은 앞으로 3개월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입어도 다 입지 못할 것 같았다. 저만큼을 받았는데 뭘 또 산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괜찮아요. 정현이 애인 돈 많아요.”
“그게 아니라…….”
“왜요. 그 정도 돈은 없을 것 같아요?”
“아뇨, 그게 아니라. 아니, 자꾸 같은 말만 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구요.”
점점 수렁에 빠진다. 결국 조정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정현은 “옷들은 마음에 든다는 말이죠?” 하고 묻는 지승혁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단지 규모가 너무 커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뿐이었다. 지승혁이 준 것 어느 하나 그의 세심한 마음이 닿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면 이리 와서 날 좀 안아 줄래요?”
그 말을 듣자마자 조정현은 지승혁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안아 준다고는 했으나 지승혁 쪽의 체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조정현이 안기는 형국이 됐다.
왠지. 뭐랄까.
조정현은 눈만 들어 올려 지승혁을 흘끔 쳐다보았다.
도넛도 그렇고 옷들도 그렇고, 모두 뇌물 같았다.
매우 부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하지만 대체할 만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승혁이 자신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려고 신경 쓴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빨리 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지승혁은 나직하게 말했다. 조정현은 바로 고개를 도리질하며 답했다.
“아뇨. 미안은, 아니, 전혀요. 미안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조정현은 발을 들어 지승혁의 뺨에 머뭇거리며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가 망설이는 기색을 읽은 지승혁이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물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아뇨.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라 선물 받은 직후에 뽀뽀하고 그런 게 왠지 좀.”
거기까지 이야기했지만 지승혁은 조정현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원래부터 애정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편이긴 했지만 지금은 작은 거부감이 일었다. 선물을 받고 나서 바로 뽀뽀를 하는 게 마치 물질적으로 받은 것에 대한 대가처럼 느껴져서 심리적으로 살짝 반감이 들었다.
지승혁의 입술이 조정현의 귀 바로 아래를 가볍게 빨았다.
“그러면 정현이는 가만히 있어요. 느끼한 아저씨 역은 내가 할게요.”
“네? 앗. ……아.”
지승혁은 천천히 목을 따라 입술을 아래로 움직였다. 그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나는 간질거리는 느낌에 조정현은 약간 비틀거렸다.
“잘 못 서 있겠어요?”
“그, 그건 아닌데. 저어…… 오늘도 하시게요?”
조정현의 질문에 지승혁은 얼굴을 떼고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지승혁이 조금 곤란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확실히 단 거에 중독이 됐나 봐요.”
이젠 아예 대놓고 말을 하고 있었다. 조정현은 얼굴에 열이 몰리는 걸 느끼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에게 닿았다가 떨어질 뿐인 키스를 했다.
“맛만 볼게요.”
“맛이라뇨, 아니, 앗……!”
지승혁이 몸을 숙인다 했는데 조정현을 번쩍 안아 들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조정현이 엉겁결에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몸이 밀착되자 페로몬이 아닌, 그의 체취가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특별히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 거로 알고 있는데 페로몬도 아니고 몸에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체향이 조정현의 기분을 안정시켰다.
어차피 내가 아닌데 상관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좋으면 된 게 아닐까.
조정현은 조금 전 들었던 거부감을 밀어냈다.
지승혁을 안은 팔에 힘을 주어 꼭 끌어안은 조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음, 으응…….”
조정현은 뒤에서 제 몸을 끌어안은 지승혁의 팔을 잡았다.
그의 말대로 지승혁은 철저하게 조정현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을 지켰다.
행위는 온화하고 느긋하게 이루어졌다. 이러다가 녹아서 액체라도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승혁의 애무는 꼼꼼하고 부드러웠다.
단지 유두에 반창고를 붙였던 게 생각이나 일정 부분 위로는 상의를 들어 올리지 못하게 했는데 지승혁이 그 위를 입으로 물고 혀로 문지르는 바람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미안한 얼굴을 하며 조심하겠다고 하는 지승혁에게 조정현은 달아오른 얼굴로 끄덕거렸다.
아래에서 울컥울컥 쏟아내는 애액에 엉덩이 부분이 척척해졌다. 내벽이 천천히 길을 내기 위해 들어온 손가락을 기뻐하며 엉겨 붙는 게 느껴졌다. 결국 하나에서 시작된 손가락이 세 개로 늘어났을 때 조정현이 넣어 달라고 보챘을 정도였다.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포개듯 안은 지승혁은 처음 귀두를 밀어 넣을 때부터 매우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도 변함이 없어서 같은 속도로 천천히 문질러 올리고 빼내기를 반복했다.
조정현이 그의 것을 꼭 죄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지승혁의 손으로 먼저 두 번은 절정에 달했다. 그래도 안쪽을 꽉 채우는 그의 좆이 주는 감각에 다시 한번 발기했다. 느린 움직임에도 차곡차곡 쌓이는 쾌감은 마치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스튜 같았다. 천천히 달아오른 만큼 식는 것도 시간이 들었다.
지승혁의 좆이 조정현의 전립선을 부드럽게 누르며 지나갔다.
“……으응…….”
이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조정현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채찍처럼 내리치는 쾌감에 익숙해져 있어서 조금 부족한 감이 들었다.
아쉬움에 저도 모르게 허리를 흔든 모양인지 지승혁이 그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조정현이 “아.” 하고 소리를 내자 지승혁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너무 자극하지 말아요. 오늘은 힘들게 안 할 거예요.”
어깨에 지승혁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러면, 형, 페로몬 주세요. ……아, 하아.”
“우리 정현이는 욕심이 많네.”
“하지만, 음, 아, 아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승혁의 페로몬은 조금 더 강해지고 진해졌다. 조정현은 술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몽롱해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그에게 입맞춤을 졸랐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에게 키스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혀를 섞고 서로의 타액을 삼키며 입맞춤에 몰두했다. 지승혁은 허리를 멈추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코 격렬해지진 않았다.
자극과 쾌감에 뇌가 불타오르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던 것과는 다르게 온전히 몸의 반응을 제어할 수 있었다.
지승혁의 큰 손이 조정현의 좆을 다시 한번 쥐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형, 저, 으읏, 저 형 거로 가고 싶은데에, 으음.”
“뒤로 가면 힘들어요. ……나도 참기 힘들고.”
“참, 참지 않으셔도 괜찮은, 흐음, 아.”
꾸욱 밀어 올리는 것에 안쪽 살이 부르르 떨렸다.
“자꾸 부추기면 안 돼, 정현아.”
지승혁은 나무라는 듯 엄한 목소리를 냈다. 이 순간에도 내벽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지승혁의 좆을 주물럭거렸다.
조정현의 것을 쥔 지승혁의 손이 위아래로 움직였고 앞과 뒤 동시에 오는 자극에 조정현은 눈을 감고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좆에서 나오는 프리컴 때문에 찔걱이는 소리가 났다.
“아, 아으, 저, 갈 것 같, 아…… 으응. 갈 것 같아요.”
“그래요? 그래, 나도 쌀 것 같아.”
그 순간에도 지승혁은 조금도 조급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조정현을 끌어안은 지승혁은 그의 목과 어깨에 몇 번이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조정현의 입에서 가쁜 숨소리가 헉헉 새어 나왔다.
차곡차곡 쌓이던 쾌감이 일정 선을 넘자 제대로 눈뜨고 있기 힘들어졌다. 세 번째 사정이었다. 한곳에 모여든 열기가 폭죽 터지듯 온몸으로 퍼져 나갔고 전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됐다.
“아, 으응……. 흐읏.”
“……하아. 윽. ……으음.”
절정에 달한 몸이 멋대로 지승혁의 것을 깨물 듯 조였다. 귀 바로 옆에서 지승혁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달짝지근한 그 목소리가 만족감을 부추겼다. 조정현은 안에서 뜨끈하게 퍼지는 정액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은 연결된 상태로 다시 입술을 겹쳤다. 처음부터 짝이었던 블록처럼 맞물린 입술은 잠깐씩 닿았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점막이 붙어 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작게 났다.
가쁜 숨은 곧 진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