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73)화 (73/130)

#73

“지금부터 생각할 시간 가질 거예요?”

“네? 어, 네. ……아, 저녁 드실 시간이니까 조금 이따가 할까요? 혼자 드시는 건 좀 그렇잖아요.”

조정현의 말에 지승혁은 한숨을 쉬듯 웃었다.

“그러면 함께 저녁 먹을까요? 준비는 내가 할게요.”

“……네에.”

조정현은 자신을 보는 그의 눈동자에 감탄하며 마주 바라보았다.

어떻게 사람을 이런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결국 조정현 쪽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며 말문을 열었다.

“이럴 때 뜬금없지만, 알려 줄 게 있어요.”

“뭔데요?”

지승혁은 양복 상의 안쪽에서 꺼낸 종이를 조정현에게 내밀었다. 한 번 접힌 손바닥만 한 종이였다. 조정현은 그걸 받아들지 않고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정현이 친어머니 소재를 찾았어요.”

다물었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조정현은 이번에야말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 연락처예요. 받아요. 어머님은 정현이를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도 모르게 종이를 받아든 조정현은 제 손에 쥔 것에 시선을 떨어트렸다.

“너무 갑작스러웠나요?”

조정현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말의 예상도 하지 못한 소식이었다. 친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이를 펼쳐 본 조정현은 처음 보는 암호를 발견한 암호 해독가 같은 얼굴로 종이에 적힌 숫자를 내려다보았다.

“연락처를 가져다주긴 했지만 연락을 하고 말고는 정현이 선택이에요.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좋아요. 나는 단지 정현이의 선택지를 늘려 준 것뿐이니까요.”

조정현이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입술을 달싹이던 조정현은 기침을 한 번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찾으시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서류 같은 것도 없었을 텐데.”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질문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초조한 기분이었다.

조정현은 자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지승혁을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별말을 다 하네요. 그러면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요. 저녁 차리고 부를 테니까.”

두 사람은 평소와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함께 먹었다.

이쯤 와서는 생각할 시간 같은 건 따로 필요 없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조정현은 굳이 이야기를 번복하진 않았다.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한 조정현이 “그럼 저는 저 쓰던 방에 들어가 볼게요.” 하고 이야기했을 때 지승혁이 그를 불러 세웠다.

“잠시 뒤에 사람들이 올 텐데 밖이 좀 부산스러워도 너무 놀라지 말아요.”

“사람들요? 누구요?”

“그런 게 있어요. 들어가 있어요.”

대답을 하지 않는 지승혁을 미심쩍게 여기며 조정현은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잠시간 침대에 앉아 있던 조정현은 꾸물꾸물 그 위를 기어 벽에 기댔다.

아까 지승혁에게 받았던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내 가만히 내려보았다. 바로 손만 움직여 전화를 하면 자신을 낳은 친어머니와 연락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심지어 지승혁이 먼저 친어머니에게 의사를 물어봐 준 덕분에 연락을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최초의 불안감 없이 시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잠들어 있던 여러 가지 궁금증들이 고개를 들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조정현은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단단한 벽을 머리로 쳤는지 쿵, 소리가 작게 났다.

혼자 오도카니 있자니 지승혁을 만나기 이전의 생활이 떠올랐다. 버릇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밖에서 소음이 들렸다.

벨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들이 벽 너머로 들려왔다.

조정현은 아까 지승혁이 말했던 이야기를 상기해 보았다. 무슨 일일까.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이라고 한 점도 신경 쓰였다.

문밖으로 나가서 무슨 일인지 살펴볼까 싶어 방문 앞까지 나갔던 조정현은 문고리를 잡았다가 놓았다. 선뜻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굳이 낯선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았다. 조정현이 필요한 일이 있었다면 지승혁이 미리 알려 줬을 거다.

조정현은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밖에서 들리던 소음이 잦아든 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조정현의 대답 소리가 난 후에야 문이 열렸고 지승혁이 얼굴을 내밀었다.

“조용히 있고 싶었을 텐데 미안해요. 이거라도 먹으면서 생각해요.”

“……어.”

지승혁이 내민 노란 상자에는 크림 도넛이 담겨 있었다.

“받아요. 단 거 좋아하잖아요.”

“네에…….”

예전에 백화점에서 단 걸 좋아한다고 무심결에 대답했던 영향일까. 지승혁은 조정현에게 단 음식을 꽤나 부지런히 가져다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 난 걸까. 퇴근할 때 사 온 건 아니다. 조금 전에 부산스럽게 들렸던 소리를 의심했지만 도넛을 가져다줬다고 하기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머물다 갔다.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너무 많으니까 형도 같이 먹어요.”

한 개 정도면 몰라도 여섯 개는 혼자 다 먹을 수 없다.

조정현의 권유에 지승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남겨요. 나는 나중에 먹으면 되니까요.”

상자에서 도넛을 꺼내던 조정현이 멈칫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승혁이 집에 있는 걸 알고 있는데 혼자만 낼름 먹는 건 좀 그랬다. 나중에 그와 함께 먹기 위해 도넛을 다시 상자에 잘 넣어 두려고 했다. 그러나 지그시 응시하는 시선이 마치 눈앞에서 한입 먹는 걸 확인하려는 것처럼 느껴져 조정현은 도넛을 작게 베어 물었다.

도넛 사이에 가득 들은 크림이 비어져 나왔다.

“맛있어요. 잘 먹겠습니다.”

지승혁이 미소하며 자신의 입가 근처를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눈치챈 조정현은 손으로 입 근처를 문질러 닦으려고 했으나 지승혁이 가볍게 제지했다. 의아하게 있던 조정현의 입술 근처에 지승혁의 입술이 닿았다.

“손으로 닦으면 끈적거려요.”

“……어. 감, 감사합니다.”

키스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한 것도 했는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키스도 뽀뽀도 아닌 애정 표현을 받으니 부끄러워졌다. 입가에 묻은 크림을 핥아 먹다니. 예상도 못 했다.

“다네요.”

“네? 아. 크림, 크림요. 달죠.”

지승혁은 그저 빙그레 웃었다. 착각할 만한 말을 듣고 있자니 정말 부끄럽고 민망했다. 아무리 해도 지승혁의 행동이 가끔은 적응이 안 됐다.

조정현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보다 형이 단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먹어 보니 싫지 않더라구요.”

이번에야말로 조정현의 입이 벌어지고 얼굴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이런 반응을 하는 제가 잘못일까 아니면 오해할 만한 발언을 하는 지승혁이 잘못하는 걸까.

조정현은 오늘은 지승혁의 잘못으로 돌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밖에, 뭐예요?”

“음?”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려서요.”

“궁금하면…….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에요. 뭔데요?”

“나와서 볼래요?”

이쯤 되면 생각을 정리한다며 방에 혼자 앉아 있을 이유도 없다.

지승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조정현의 손에서 솜씨 좋게 도넛을 빼내 들고 방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조정현을 그 근처에 있는 방 쪽으로 안내했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광경에 조정현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

방이 전에 알던 방이 아니었다.

안에는 못 보던 행거가 있었고 거기에 옷가지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행거는 무려 다섯 개가 있었다. 옷만이 아니었다. 상자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조정현 키만큼 쌓여 있어 마치 탑처럼 보였다. 상자 개수는 어림잡아 오륙십여 개는 족히 넘어 보였다.

못 보던 커다란 거울도 있었다.

방 하나가 통째로 거대한 옷장이 되어 있었다.

조금 전 났던 인기척은 이것들을 옮기면서 난 것인 듯했다.

“안방 쪽 드레스룸 있는 걸 여기로 옮기셨어요?”

“그건 아니고 하나 새로 만들었어요. 이쪽은 정현이 거예요.”

스스럼없이 묻던 조정현은 지승혁의 말을 듣고 천천히 그를 쳐다보았다.

“네?”

“정현이 거라고요.”

“뭐가요?”

조정현을 향하는 지승혁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이쪽 방, 정현이 드레스룸이라구요.”

“…….”

조정현은 입을 벌린 채 다시 한번 방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가요?”

다시 한번 되묻는 조정현의 뺨을 지승혁이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감, 감사합니다. 근데―”

“이렇게까지는 필요 없다구요?”

마치 속내를 읽은 듯한 지승혁의 말에 조정현은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해 주는 건 편하게 받으면 돼요. 내가 가진 건 정현이 것이기도 하니까요.”

“아니, 하지만……. 어떻게 그래요.”

조정현은 방 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그것도 적당히 어느 정도여야지 지금 이건 너무 많았다. 이 방에 대체 얼마를 들였을까.

저번에 사 입었던 옷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아도 천만 원은 훌쩍 넘었다. 천만 원이 뭔가. 제대로 세어 본 건 아니지만 옷걸이에 걸린 옷 개수만 족히 30벌은 넘어가는 것 같았다. 방을 가득 메운 상자들이며 뭐며 다 합산한다면 아마도 자릿수가 하나는 더 붙지 않을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조정현은 생각을 중단했다. 금액을 생각하려니 골치가 아파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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