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그렇게나 하고도 질리지도 않는 제 몸이 믿기지 않았다. 이전에는 자위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고 이렇게 성욕이 강하지 않았다. 한데 지승혁과 한번 섹스를 한 이후로 걷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불이 붙은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집에는 혼자뿐인데도 조정현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더, 더요. 더 먹고 싶은데.’
“……미쳤나 봐.”
조정현은 새벽에 수치도 모르고 지승혁에게 조르며 했던 말이 떠올라 버둥거렸다. 얼굴은 물론이고 귀에서도 불길이 솟는 것 같았다. 뇌까지 빨갛게 익는 게 아닐까. 아니, 아예 익어 버렸으면 좋겠다. 저런 부끄러운 말을 더는 못 하도록.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조정현은 떠오른 기억을 털어 버리듯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었다.
침대에서 나가야 하는데 과연 제대로 설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정말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와 행위 한 이후에 제대로 못 걷는 것도 그렇지만 다른 것보다 뒤처리를 모두 지승혁이 도맡아 하는 게 미안하고 창피했다.
일단 동영상을 찾아서 천천히 운동이라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조정현은 끄응,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허리 아래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넘어지는 것만은 피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제 몸은 이런데 자신보다 격렬하게 움직였던 지승혁은 멀쩡해 보였었다.
넘치는 체력이 절로 경탄스러웠다.
조정현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허리도 돌려 보고 상체만 좌우로 흔들어 보기도 하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옷이 유두에 살짝 스치자 절로 신음이 났다. 몸을 움직이던 걸 중단하고 일단 반창고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너무 물고 빨아서 생긴 일이라는 사실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조정현은 청소를 하면서 반창고를 봤던 기억을 더듬었다. 큼직한 반창고 두 개를 붙이고 나니 제 모습이 좀 한심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 복잡한 심정이 됐다.
새삼 살펴본 제 몸 상태가 굉장했다. 곳곳에 얼룩덜룩 울혈은 기본이고 잇자국까지 작게 나 있었다.
샤워를 하면서 보긴 했지만 형광등이 아닌 햇빛 아래에서 보는 건 또 느낌이 달랐다. 좀 더 적나라하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적당히 조절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절까진 아니더라도 이건 좀 주의해 달라고 지승혁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옷을 바로 입었다.
저녁에 먹을 음식을 하자고 마음먹고 나왔는데 몸 움직이는 게 영 녹록하지 않아 그만두었다. 잠시만 소파에 앉아 쉬는 걸 택한 조정현은 리모컨을 집어 들며 숨을 삼켰다. 허리를 숙이거나 몸을 비틀거나 하면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댔다.
한숨을 내쉰 조정현이 소파에 몸을 늘어트린 채 기댔다.
넓은 집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역시 장점보다 단점이 크게 느껴졌다. TV를 틀어 놔도 소리가 웅웅거리면서 울리는 게 더욱더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도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는데 참 이상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렌지빛으로 변한 노을이 거실 창으로 들어와 집 안을 비추었다.
TV를 끄고 조정현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전과 다르게 느끼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그게 대체 뭘까.
바로 그때 현관에서 띠리릭,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승혁이다. 조정현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을 때마다 허리가 울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를 움직였다.
문을 열고 지승혁이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정현이 일어나 있었어요? 마중 나와 줘서 고마워요.”
조정현을 본 지승혁이 미소 지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파문이 전신에 퍼졌다.
조정현은 참지 않고 그대로 지승혁의 넓은 가슴을 와락 안았다. 지승혁이 외출하고 들어올 때마다 그의 몸에서 나는 바람 냄새가 참으로 좋았다.
“잘 있었어요? 몸은 좀 어때요.”
조정현은 그 질문을 듣고 웃었다.
“형 나갔다가 들어오실 때까지 4시간도 안 지났어요.”
“음, 보고 싶었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나도 보고 싶었어요. 우선 안으로 들어갈까요?”
지승혁이 들어 올린 손으로 뺨을 쓰다듬어 주지 않을까 했는데 그는 벽을 짚었다. 일련의 행동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조정현은 그 느낌을 너무 깊게 생각한 탓으로 돌렸다.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던 몸이 떨어졌다. 조정현은 집 안으로 들어가며 배가 고픈지, 일은 어땠는지에 대해 물었다. 지승혁은 일상적인 조정현의 질문에 대답하며 코트를 벗어 적당히 소파에 걸어 두었다. 그런 지승혁을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보던 조정현은 깨달았다.
아, 그랬구나.
그때와 다른 점.
바로 지승혁이다.
지나치게 넓게만 느껴지던 공간이 그의 존재로 인해 금세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지승혁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란 그런 거였다.
들뜨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지승혁으로 인한 변화라면 그게 무엇이든 기꺼웠다.
“TV 봤어요?”
“아, 네.”
“잠깐 앉아 볼래요?”
지승혁의 권유에 조정현은 의아해하면서도 소파에 앉았다.
“오늘 가서 서류를 하나 처리하고 왔어요.”
“……? 네.”
지승혁은 조정현에게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그가 하는 일이 평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굳이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기에 조정현은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현무실업은 곧 매각될 거예요.”
“……아…….”
조정현은 그가 왜 자신에게 업무 이야기를 했는지 바로 알았다.
“뉴스로 전해 듣는 것보다 직접 듣는 쪽이 나을 것 같아서요.”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 안 내요?”
“……화를 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요?”
지승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대답이었다. 조정현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제 손가락으로 향했다.
기분이 참으로 이상했다.
지승혁에게 현무실업 처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일 처음 든 감정은 ‘결국 그렇게 됐구나.’ 하는 납득과 작은 가시가 손끝에 박힌 것 같은 따끔한 거부감이었다. 이 상황에 대한 납득이야 그렇다 하지만 거부감이라니. 대체 무엇에 그런 감정이 든 건지 확실히 말할 수 없었다.
조정현은 자신이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던 기간은 짧았고 그들이 누리던 것을 함께 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의 생활 전반이 부모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 역시 부정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혼자서 서울에 방을 따로 얻어 생활을 할 수도 없었고 먹을 것과 입을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게 지낼 수 있었던 건 부모님에게서 나온 돈 덕분이었다.
그들은 적지 않은 돈을 조정현에게 들였다. 당연한 건 없다. 그게 설령 부모 자식 간이라도 말이다. 그들이 조정현을 어떻게 생각했건 그를 키우며 상당한 돈을 썼다는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조정현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부모님이 진 빚을 갚겠다고 자처했다.
여러 일을 겪고 난 지금에 와서도 아버지의 회사를 매각한다는 이야기에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잘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승혁을 향해 분노를 터트리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고성을 터트릴 정도로 부모님을 향한 유대가 끈끈한 것 역시 아니었다.
부모님 대신 빚을 갚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과는 궤가 달랐다.
부모님이 자신을 팔아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분이 든다는 건 무게 추가 지승혁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울어 있다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건 확실히 아니었다.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조정현은 자신이 멍하게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고개를 들었다.
“…….”
지승혁은 조정현의 입에서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채근하거나 확정 짓지 않고 그저 가만히.
그는 선생님에게 방과 후에 남으라는 소리를 들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건 상당히 이상한 느낌이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조정현이 침을 한 번 삼켰다.
“그거, 아버지 사인이나 승인 같은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전에 필요 서류를 받아 뒀어요. 자세한 사항을 설명해 주길 바라면 해 줄 수 있어요.”
“아, 아니에요. 한번 여쭈어봤어요. 혹시 부모님 어디 계신지 아시나 해서요.”
목소리가 버석버석하게 흘러나왔다.
잠깐 텀을 두고 조정현이 입을 열었다.
“처분하면 돈은 얼마나 받으세요? ……어, 정확한 액수를 알려고 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께서 빌려 가신 돈만큼은 회수하시는지 궁금해서요.”
지승혁은 자신이 들은 질문의 숨은 뜻을 파악하려는 것처럼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이번 연도까진 관리종목으로 분류됐지만 원래도 자금 운용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장 폐지될 예정이긴 했어요. 그래서―”
말을 이어 가던 지승혁이 입을 다물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조정현은 의아했다. 지승혁은 마주 보는 조정현의 눈길을 피하진 않았지만 몇 번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마치 당장이라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 마치 뭔가 켕기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