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70)화 (70/130)

#70

지승혁의 눈매가 미미하게 가늘어졌다.

조용한 와중에 노크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갈랐다.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폭발하듯 늘어난 지호택의 페로몬에 비서의 얼굴이 살짝 물들었다. 그걸 본 지승혁은 입속으로 욕을 뇌까렸다.

노인네가 다 늙어서 염병하는군.

“지 회장님, 나가실 시간 되었습니다.”

“먼저 준비해 둬.”

“네, 알겠습니다.”

비서가 허리를 살짝 숙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호택이 느릿하게 입술을 뗐다.

“아주 귀여워. 알파면서 알파에게 받는 즐거움을 알고 있다는 게 말이야. 교태를 부리는 알파를 여태 본 적 없는 게 아니지만 저 애는 특별하지.”

시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지승혁은 내색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진지한 관계이십니까.”

“진지한?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적당히 할 말을 찾아 질문한 지승혁을 보며 지호택이 웃었다.

“저 애는 알파긴 하지만, 저 몸뚱이 말고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애도 배지 못하고 그저 보기에 좋은 몸뚱이를 가진 어린 알파를 뭐에 쓰겠어. 물론 돈을 쓰면야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우성도 아닌 고작 평범한 알파에게 그런 투자를 할 수는 없지.”

지호택의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지호택은 지금 지승혁에게 조정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네가 아무리 극우성 알파라곤 해도, 가진 게 몸뚱이 하나면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너도 그걸 알고 나에게 붙은 게 아니냐. 이제 와 나와 부자 간의 정을 나눌 생각은 아닐 테고 말이다. 네가 나를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내가 필요한 게지. 안 그러냐.”

지호택은 이미 지승혁의 속내를 다 알고 있었다. 그래,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니 그런 단어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게 바로 지호택이라는 남자다.

“…….”

“날개는 양쪽에 있어야 제구실을 하는 법이지. 날개 하나만 달고 있으면 그건 그냥 병신이고 기형이야.”

지호택은 웃는 얼굴 그대로 짚고 있던 팔걸이를 손으로 두어 번 내려쳤다. 웃는 낯에 깊숙이 박힌 눈동자만 날카롭게 빛나 아주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지호택은 “자리가―” 하고 말문을 열었다.

“하나 났는데 아직 생각에 변화는 없고?”

지호택의 눈은 찻잔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대답하지 않는 지승혁을 보며 으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그냥 흘리는 질문이 아니다.

그대로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프로텍트가 발동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지호택에게서 흘러나오는 페로몬이 지승혁의 내부를 휘저었다. 장기 자체에 직접적으로 오는 감각은 생경했고 상당한 통증을 동반했다. 귀가 먹먹해지며 삐이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프로텍트가 어떤 식으로 작동을 하는지까지는 정확하게 몰랐지만 지호택의 의견에 강하게 거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동이 상당했다. 뾰족한 이가 내장을 잘근잘근 씹어 대는 것 같았다.

통증은 둘째였다.

심리적으로 완벽하게 지호택에게 압도되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거대한 벽에 짓눌려 납작해지는 느낌이 극히 역겹고 두려웠다.

극우성 알파로 살아오면서 다른 알파나 오메가들이 자신에게 주눅이 드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건 지승혁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페로몬을 이런 식으로 느꼈던 건가.

그동안 별생각 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제 모습을 거울에 대고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극우성이라는 형질은 프로텍트에 먹혀 아무 힘도 작용하지 못했다.

“…….”

조금만 뜻에 거슬러도 이렇게 되는 건가.

지호택은 프로텍트의 발동은 온전히 자신의 의사에 달렸다는 걸 본보기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죽어도 싫었기에 지승혁은 어금니를 사리물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차를 마시던 지호택은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한 손으로 나가 보라며 손을 내저었다.

“조만간 연락이 갈 거다.”

통증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니까 이건 지승혁을 향한 지호택의 경고였다.

고분고분하게 굴어라, 라는 의사를. 아주 직설적으로.

이번은 이렇게 끝나지만 다음엔?

지승혁도 장담할 수 없었다.

본능에서부터 일어나 거대하게 덮쳐 오는 두려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공포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는지도 몰랐다.

“네, 대기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승혁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걸음을 옮겼다.

“소꿉놀이에 취해서 아무 데나 비싼 씨 뿌리지 말거라.”

문밖으로 나가기 직전 지호택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지승혁은 살짝 뒤를 돌아본 채 고개를 한 번 더 까닥이고 밖으로 나왔다.

비서는 밖으로 나온 지승혁에게 인사를 하고 잰걸음으로 안으로 사라졌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틈새로 진득한 극우성 알파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이후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관자놀이를 간질이는 느낌에 벌레라고 생각한 지승혁이 그 부근을 손으로 문질렀다. 손등에 묻어난 건 날벌레가 아닌 물방울이었다. 지승혁은 그제야 자신이 진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승혁은 혀를 차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거칠게 문질러 닦았다.

“……하.”

날벌레.

지호택에게 있어 지승혁은 딱 그 정도였다.

참 더러운 기분이었다.

어떤 표현보다 그 말이 제일 잘 들어맞았다.

그렇게 대놓고 비꼬는 말을 들으면서도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 못했고 하지 않았다.

프로텍트가 없었어도 대꾸하지 않는 쪽을 택했을 거다. 지금 지승혁에게는 무엇보다 지호택이 가지고 있는 힘이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누가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한 게 아니었다. 순전히 제 선택으로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서, 고개를 숙이기 싫었기에 이를 악물고 여기까지 올라왔다. 이제 어느 정도 원하는 대로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남았다. 아직도 올라갈 곳이 있었다. 참 지긋지긋했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었다.

이런 목줄을 단 상태로 멈출 수는 없다.

자존심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얼른 돌아가 조정현을 끌어안고 싶었다. 그 부드러운 피부에 입술을 비비고 폐 가득히 그의 페로몬을 들이마시고 싶었다.

정말 진심으로 조정현이 필요했다.

건물 밖으로 나온 지승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옷에 묻은 지호택의 페로몬이 마치 노예 인장 같았다. 끔찍하게 싫은 페로몬을 어떻게든 털어 내고 싶었으나 단순히 페로몬 탈취제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깊게 한숨을 내쉰 지승혁은 차에 올라탔다. 바로 집으로 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급하게 결재를 요하는 서류를 처리해야 했다.

“사무실로 가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지승혁은 시트 깊숙이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사무실에 도착한 지승혁은 사장실로 가며 이영선의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책상 자리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거로 봐서는 외부 근무인 듯했다.

조정현을 데리고 갈 수 있도록 그의 양부모를 이영선과 연결해 준 사람. 그리고 이영선이 지승혁의 일과를 보고 하는 사람.

그 끝에 있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지호택이었다.

조정현을 그의 양부모 손에 넘겼던 그 날, 이영선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 보고를 했었다.

조정현의 부모가 그를 데리고 가 버렸노라고.

갑자기 골프채를 휘두르는 바람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머리에 붕대를 두른 채 시퍼렇게 부어오른 눈두덩이로 죄송하다며 사죄하는 이영선에게 지승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상 캐묻거나 취조하지 않았다.

현장을 급습한 게 아닌 이상 이영선을 자를 명분이 없었다. 건물 CCTV에도 조영웅 내외가 먼저 들어가고 이후에 이영선이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지호택에게 정보를 준다는 사실을 들이밀며 실토하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그 남자를 적으로 돌린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너무나 무모한 짓이다.

‘소꿉놀이에 취해서 아무 데나 비싼 씨 뿌리지 말거라.’

지승혁은 회장실을 나오기 직전 지호택이 한 말을 떠올려 보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조정현이 자신의 집에 돌아와 머문다는 사실을 지호택은 알고 있었다. 이영선이 보고하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다.

여태까지는 그대로 당했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었다.

지승혁은 기계적으로 쌓인 서류들을 처리했다. 개수는 열 개가 안 되긴 했으나 하나같이 지승혁의 결재가 없으면 안 될 것들이었다.

꼼꼼하고 빠르게 서류들을 해치우던 지승혁이 다음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안의 내용을 확인하던 지승혁의 손이 멈칫, 움직임을 멈췄다.

지승혁의 눈이 다시 한번 서류를 훑었다.

조정현의 아버지, 조영웅이 회장으로 있는 현무실업 처리에 대한 서류였다.

지승혁은 서류철을 펼친 채 가만히 그 종이를 응시했다.

* * *

조정현은 깜빡 잠이 들었다가 일어났다.

새벽에 있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영 미스테리다.

대체 왜 갑자기 성욕이 일었는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때는 정말 지승혁이 보고 싶었고 닿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는 중에 깨워서 하고 싶다는 소리를 했음에도 의아함은 고사하고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받아 준 지승혁이 고마웠다.

마지막엔 지승혁의 체력에 따라가지 못하고 기억이 끊기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또 몸 내부에 열이 고이는 듯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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