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69)화 (69/130)

#69

“네? 좋은 거요? 새벽에 뭐를, 아…….”

조정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꼬옥 깨물고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기분 탓인지 흘겨보는 것도 같았다.

섹스 도중에 곧잘 이런저런 말을 하기도 하면서 그런 분위기가 아닐 때에는 영 면역이 없어 보였다.

와삭와삭 크래커를 씹는 소리가 났다. 그냥 음식을 먹는 모습조차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웃음이 나고 왜 이렇게 놀리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 자기도 맛있다고 먹었잖아요.”

조정현이 스프를 떠먹으려다 말고 스푼을 내려놓았다.

“저기, 형. 저 먹는 중인데. ……그렇게 꼭 그런 말씀은 안 하셔도…….”

조정현이 토달거리며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지승혁을 쳐다보는 커다란 눈에 억울함과 원망이 담겼다.

지승혁은 그제야 조정현의 머리에 무엇이 떠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엔 정말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전에도 미안한 마음이 일절 없었다는 건 아니었지만. 지승혁은 누구에게 하는지 모르는 변명을 했다.

“음, 미안해요. 내가 좀 들떴네요.”

“아뇨, 그, 사과는 안 하셔도 되긴 하는데요…….”

웅얼거리며 말하곤 있지만 조정현은 더는 수프를 먹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수프를 권하는 것도 못 할 짓이다 싶어진 지승혁은 앞으로 좀 주의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 형아 출근은요? 늦으신 거 아니에요? 출근하셔야 하는데 저 때문에 일부러 계시는 거면, 괜찮아요. 가 보셔도.”

“정현이 먹는 거 보고 갈게요.”

“아니에요. 그냥 먹기만 하는 건데요, 뭘. 먹고 나서 제가 치우면 돼요. 어서 출근하세요.”

조정현은 씩씩하게 말했다.

“그런 말 했다고 보기 싫어져서 내쫓는 거예요?”

“네? 아, 아뇨. 그게 아니고요.”

“알아요.”

지승혁이 픽 웃으며 조정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냥 내가 있고 싶어서 그래요. 우리 정현이 먹는 것도 보고 싶고 다 먹으면 치워 주고 싶어서.”

“……아.”

조정현의 귓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지승혁은 결국 그가 음식을 다 비울 때까지 곁을 지켰다. 말끔하게 비워진 그릇을 들고 나가 치운 지승혁은 조정현이 편하게 누워 쉴 수 있도록 침구를 정리해 주었다.

지승혁은 제 연인의 매끈하고 유려한 미간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일찍 들어오긴 할 텐데 그사이에 보고 싶어지면 참지 말고 전화 줘요. 바로 들어올 테니까.”

조정현은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대답을 하고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지승혁은 다시 한번 강조하듯 말했다.

“나한테는 마음껏 요구해도 괜찮아요. 알았죠?”

“네. 알겠어요.”

결국 조정현이 웃었다.

지승혁은 조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되도록 근처에 물병과 컵을 가져다 두었다.

조정현의 입술에 가볍게 닿을 뿐인 뽀뽀를 한 지승혁이 집에서 나왔다.

그의 목적지는 회사가 아니었다.

지승혁을 태운 차는 도영그룹의 본사로 향했다.

본사에 도착한 지승혁이 차에서 내리자 정문 근처에 서 있던 세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한무태 부사장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갑전 부사장이라고 합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이선보 부사장입니다.”

그들은 입고 있는 정장 매무새를 매만지며 지승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굳이 본사의 회장실로 부른다 했더니 예고도 없이 회사 임원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원래 의전을 별반 내켜 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지금 이 상황은 지호택의 의도가 너무나 빤히 보여 우습기까지 했다.

분명히 회사를 이어받을 생각이 없다는 의견을 확실히 밝혔는데도 밀어붙이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프로텍트를 했다 이건가.

지승혁은 이를 사리물었다.

“그럼 회장님실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한 명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고 남은 두 명은 마치 호위를 하듯 지승혁의 양옆에 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동안 루어를 던져 보니 둘은 알파 하나가 오메가였다. 페로몬의 느낌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도리어 호감이 확 생길 만큼 상당히 좋았다. 하기야 도영그룹에서 임원직을 달고 있을 정도니 전부 어지간한 수완가이긴 할 터였다.

그러나 그중 한 명, 김갑전을 제외한 두 사람의 페로몬은 어쩐지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지승혁만 느낀 게 아닌 듯 루어를 맞은 두 사람도 헛기침을 하거나 목을 비트는 반응을 보였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거슬린다’는 느낌은 페로몬 자체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페로몬을 느꼈을 때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감각이었다.

베타들이 흔히들 말하는 ‘첫인상’ 같은 것이다.

그건 향후 그 사람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기도 했다. 적어도 여태 지승혁이 만났던 알파나 오메가들은 그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베타에게 말한다면 그게 뭐냐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인상’과 비할 바 없이 확률이 높았다.

지승혁은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한무태와 이선보를 다시 한번 흘깃 쳐다보았다.

최상층이 아닌 42층에 도착한 세 사람을 맞이한 건 커다란 책상에 앉아 있는 비서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를 하고 있는 남 비서는 그들을 맞이하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2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남 비서는 알파였다.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그에게서 어렴풋하게 지호택의 페로몬이 맡아졌다.

단순히 비서이기에 묻은 정도가 아니었다. 지승혁의 시선을 느낀 남 비서가 눈인사를 건넸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남 비서는 전화를 끊으며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 안쪽에는 지호택이 책상이 아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앞에 다기들을 두고 찻물을 붓던 그는 지승혁과 동행한 임원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했고 그들은 임무를 마친 듯 묵례를 하고 돌아갔다.

사람들이 없어지자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지호택이 후루룩, 소리를 내며 차를 들이켰다.

“그래, 느낌은 어떠냐.”

뭘 묻고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여기까지 함께 올라온 임원들의 이야기였다. 지호택은 지승혁이 그들을 상대로 루어를 쓸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식으로 빙빙 돌려 가며 묻지 않아도 될 텐데.

모르쇠로 일관하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받아 낼 수 있는 협력도 얻지 못할 게 분명했다. 치기 어린 행동을 할 나이는 지났다. 그러기엔 눈앞에 있는 남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쥐고 있었고 쉬이 적으로 돌려서도 안 될 존재였다.

“김갑전 부사장은 괜찮아 보입니다.”

“그래.”

또 한 번 차를 마신 지호택은 맞은편에 있던 빈 찻잔에 차를 부었다. 맞은편에 앉으라는 소리인 듯했다.

“일을 좀 크게 벌였더구나. 개떼들을 처리하느라 김 비서가 고생깨나 했다.”

“수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됐다. 덕분에 현 차관도 고분고분해졌어. 그간 김 장관과 쌍으로 뻗대서 고생이었거든.”

조르륵.

찻잔에 물 따르는 소리만 났다.

정치계에서 잔뼈가 굵었던 우철곤과 현직 차관인 현이육은 그 더럽고 은밀한 취향을 공유한 인간들 중 하나였다. 쓰레기는 쓰레기끼리 모인다고 피해자 수십 명을 양산한 그 짓거리를 유지할 수 있던 것도, 꼬리가 잡히지 않은 것도, 비호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철곤에게 자백을 시킬 때에 일부러 몇몇 정치인 이야기는 빼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부만 담긴 리스트와 영상 원본을 지호택에게 넘겼다.

아무 증거가 없다면 블랙메일의 효과도 없을 터였다.

그 무리는 신뢰라는 단어가 성립하지 않는 관계였다. 영원한 함구를 약속하며 서로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촬영해 각자가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그 모든 사실을, 우철곤은 제 신변안전을 약속해 달라며 모조리 털어놓았다.

물론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은 애초부터 지승혁에게 없었다. 그럴 만한 의리를 가질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지호택에게 건넨 그들의 영상은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무기였다.

그리고 지호택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위치한 자리를 공고히 지키고 있어야 했다. 가진 지위를 잃은 이들에게 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 리스트의 목록이 화려할수록 지호택이 언론이나 검찰 쪽을 최대한 막아 주리라는 계산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지승혁은 지호택에게 넘긴 리스트에 관련된 모든 이들을 기재하지 않았다.

모든 패를 순순히 건네주고 그 상대가 자신을 위해 대신 싸우는 걸 기대할 정도로 지승혁은 순진하지 않다.

“이번 일은 제법 괜찮았다.”

지호택치고는 후한 평가를 내렸다. 만족스러운 기색의 지호택에게 지승혁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연호가 형을 찾더구나.”

그룹 본사의 회장실로 부르고 심지어 임원들에게 의전까지 받았다. 이렇게 거창한 자리까지 만들었다면 그의 배다른 동생인 지연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 도리어 그걸 노리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음이 분명했다.

지승혁은 다시 찻물을 따르는 지호택을 향해 말했다.

“충고 말씀 감사합니다.”

“음. 그래. 그리고 하나 더.”

다각.

지호택이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잘 준비해야 할 건 일만이 아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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