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지승혁은 잠들어 있는 조정현을 내려다보았다.
잠들어 있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었다. 이른 새벽 시작된 섹스는 동틀 무렵까지 이어졌다. 조정현은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는 지승혁의 아래에서 계속 느끼다가 기절하듯 정신을 잃었다. 지승혁에게 시달리던 조정현은 끝에는 사정도 하지 못하고 투명한 물만 질질 흘려 댔다.
중간부터 조정현은 한계를 넘은 자극에 눈가가 짓무를 정도로 울면서도 진심으로 그만하라거나 그를 뿌리치지 않았다.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로 지승혁에게 매달리며 좋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 사랑스러운 페로몬을 잔뜩 뿌려 대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지승혁이 고삐가 풀려 참지 못하고 천박한 말을 지껄였는데 조정현은 그조차도 다 받아 주었다.
힘들게 분명한데도 자신을 다 품으려 애쓰는 그 서툰 몸짓이 사랑스러워, 지승혁의 불붙은 욕정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단순히 페로몬의 문제가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조정현을 몇 사람이고 복제해서 제 옆에 둘 하나를 제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독오독 먹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제 배 속에서 소화가 된 조정현은 결국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되어 평생을 함께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제정신이 아니라는 자각은 있다.
새벽에 조정현이 열에 들뜬 목소리로 붙어 있고 싶네 어쩌네 하는 건 제 욕망에 비하면 귀여울 지경이다. 지승혁은 정상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조소했다.
너무 시달린 조정현은 정말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숨을 쉬느라 작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이 아니었다면 진즉 흔들어 깨우고도 남았다.
목덜미에 제가 남긴 붉은 키스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보이는 곳에는 가급적이면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지 했는데 자제를 할 수 없었다. 물론 저곳에만 지승혁이 만든 자국이 남은 건 아니었다. 옷 아래에 감춰지는 곳에는 더욱 많은 흔적이 있었다.
조금 더 이대로 자도록 놔두고 싶었으나 벌써 시간은 정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생활 사이클이 바뀌면 힘든 건 결국 조정현이고 그건 건강에도 좋지 않다. 지승혁은 조심스럽게 조정현의 어깨에, 뺨에 키스했다.
“정현아. 일어나야죠.”
조정현은 작게 신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는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지 손으로 한쪽 눈을 비볐다. 잠에 덜 깨어 멍하던 눈동자가 지승혁에게 고정이 되었다. 제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조정현의 얼굴 전체에 부드러운 미소가 둥실 떠올랐다. 그 표정의 변화가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형아.”
“잘 잤어요?”
눈가에 입을 맞추며 묻자 조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요?” 하고 되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정현이 지승혁을 보더니 한 번 더 배시시 웃었다.
“왜 웃어요?”
“아침에, 흠, 일어나서 형 얼굴 보니까 좋아서요. 아, 평소에도 물론 좋았는데요 오늘은 더 좋아서요.”
조정현은 작게 기침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간밤에 조정현이 저 예쁜 입술로 내뱉은 야한 신음에 지승혁은 몇 번이고 흥분했다. 진득한 시선을 느낀 조정현은 자신의 말에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열심히 덧붙였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의 뺨을 살며시 그러쥐고 쪽쪽 입을 맞추었다.
보들보들한 피부는 잠에서 막 깨어서인지 적당히 따끈했다.
“그렇게 괴롭혔는데 좋아요?”
“아닌데요. 너무 좋았어요. ……마, 마지막에는 조금 힘들긴 했어도, 저는 정말 좋았어요. 형이 뭘 하셔도 저는 다 좋아요.”
조정현은 잠깐 말을 멈추었다.
“……또오, 어제는 제가 먼저 시작했잖아요. 주무시는 거 깨워서 하고 싶다고 졸랐던 거니까…….”
지승혁은 양 뺨을 발긋하게 물들이며 말소리를 줄이는 조정현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의 이마에 뽀뽀했다. 터지기 직전의 풍선에서 바람을 빼는 것처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조정현을 침대에 쓰러뜨릴 것 같았다.
그렇게 해 대고도 또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 줄은 몰랐다. 정말 발정 난 짐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지승혁의 생각을 알 길이 없는 조정현은 간지럽다는 듯 웃었다.
“아, 근데, 침대 시트 이거, 갈아 끼우신 거예요? 완전 뽀송……. 아, 아니, 새, 새것 같아서요.”
조정현이 지승혁을 미처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어제 자기가 얼마나 많은 물을 흘렸는지, 시트가 얼마나 흠뻑 젖었는지 전부 기억난 탓이리라. 지승혁은 그런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듯 쓰다듬었다.
“자기 자고 있을 때요.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세탁기가 일하는 거니까.”
“……네에에.”
조정현은 고개를 숙인 채 뒷덜미를 문지르며 아기 염소처럼 대답했다. 그 작은 머리통이나 살랑거리는 머리카락마저도 귀여워 보였다.
“좀 시장하죠. 잠시만 기다려요.”
몸을 일으키던 조정현이 눈매를 찡그리며 작게 소리를 냈다.
“왜 그래요?”
“아. 아니에요. ……아니, 저, 좀 씻, 씻고 올게요…….”
“씻어요? ……도와줄게요.”
지승혁은 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시트를 갈고 조정현의 몸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그러면서 뒤처리를 한다고 했는데 깊은 곳에 들어 있어 미처 꺼내지 못한 것이 몸을 움직이자 지금 나오는 모양이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괜, 으앗…….”
지승혁이 침대 밖으로 나와 발을 딛자마자 휘청이는 조정현의 몸을 잡았다. 허리 아래로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말을 이었다.
“허벅지가…… 허벅지가 아파서 그래요. 그냥 서 있는 건 할 수, 있어요.”
지승혁은 “그렇군요.”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정현의 지금 상태가 안쓰럽긴 했으나 그 원인이 된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이후에 같은 짓을 반복할 게 분명한데 당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과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혼자 샤워하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이어 제안해 봐도 조정현은 한사코 거절했기에 결국 지승혁은 욕실 문 밖에 서 있어야 했다. 혹시라도 다리에 힘이 풀리거나 해서 넘어지거나 하면 바로 들어가기 위해 귀를 곤두세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정현이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건 그로부터 약 30여 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원래도 하얀 편이던 조정현의 피부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살짝 발긋해진 뺨으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문지르며 나오던 조정현은 그 앞에 서 있는 지승혁을 보곤 살짝 시선을 피했다. 그는 조정현의 허리를 잡고 침대까지 데려다주었다.
“많이 힘들었죠. 내가 도와준다니까.”
“아니에요. 별로…… 그렇게 많이 나온 것도 아니……. ……저, 형아. 혹시……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가 어떤 말을 어물거리며 넘긴 건지 빤히 짐작이 갔다.
말랑말랑한 귓불이 벌겋게 되어 있었다. 지승혁은 굳이 무슨 말을 하려 한 건지 캐묻지 않았다. 단지 다음에는 침대에 커다란 타월을 깔아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조정현이 앉기 쉽도록 등에 베개를 대 주다가 옷이 유두를 스쳤는지 그가 살짝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츠러뜨렸다. 그 모습을 본 지승혁이 미안해요, 하고 말문을 열었다.
어제 유난히 유두를 물고 빨긴 했었다.
“많이 따가워요?”
“아, 어어, 네. 괜찮을 거예요.”
뭐가 따가운 건지 꼭 집어 말하지 않았음에도 조정현은 알아들은 듯했다.
하얀 얼굴이 붉은 물감을 푼 것처럼 빨갛게 변했다. 그 변화를 가만히 보던 지승혁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앞으로는 주의할게요.”
“아뇨, 주의까지는……. 그냥 약 바르고 반창고 붙이면 괜찮을 거예요.”
“내가 해 줄까요?”
“아뇨! 아뇨. 괜찮아요. 나중에 제가 바르면 돼요. 그냥 제가 할게요. 저 혼자.”
강조하듯 말하는 조정현의 의지는 매우 굳건해 보였다.
알겠다고 대답한 지승혁은 주방에 차려 놓았던 아침을 들고 들어갔다.
지승혁이 들고 들어간 베드 트레이를 본 조정현이 눈을 크게 떴다.
막 만들어 가지고 온 따끈한 수프에 크루통 몇 개를 뿌렸고 작은 접시에는 빵과 크래커, 그리고 발라 먹을 잼과 버터 포션을 담았다. 혹시 몰라 마실 건 물과 오렌지 주스 두 개를 준비했다.
“이번엔 따로 더 뭐 넣지 않았으니까 안심해요.”
“네? 아니, 그래서 쳐다본 게 아닌데…….”
당황하며 우물쭈물 얘기하던 조정현은 지승혁이 농담을 한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조정현은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한 후 수저로 수프를 떠 입에 넣었다. 몇 번을 거푸 수프를 먹은 조정현이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형은 언제 일어나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시…… 아니, 말이 이상한데. 저어, 전혀 안 힘드신 것 같아서요.”
“우리 정현이는 산삼 먹었죠?”
“네? 네에…….”
갑자기 튀어나온 산삼에 조정현은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커다란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였다.
“나도 새벽에 좋은 걸 먹어서 그런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