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63)화 (63/130)

#63

영상 속의 우철곤은 중간중간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삭이기 위해서인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제야 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피해를 준 분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깊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침통한 표정의 우철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으로 영상은 끝났다.

조정현은 핸드폰 화면을 껐다.

우철곤이 이런 방식으로 사과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개된 곳에서 자신의 행동을 시인하고 잘못을 빌었다는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왔다.

단지 갑작스럽게 던져진 사죄를 앞에 두고 혼란스러울 뿐이다.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마음 한 편에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었으나 그게 부정적인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일단 조정현이 느끼는 감정은 확실히 그랬다.

눈가가 느슨해지면서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죄송해요. 자꾸 울기만 하네요.”

“그걸 왜 사과해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의 이마에 입술을 댄 채로 말했다. 자상하고 다정한 어조가 조정현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목덜미에 머리를 기대고 비비듯 문질렀다.

“그냥, 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사과를 할 줄은 몰랐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조정현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당장은 우철곤의 사과가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 어떤 예상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덜컥 건네진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그 사람 사과를 받기 싫으면 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의외의 말에 조정현은 눈을 깜빡였다.

“그래요?”

“그럼요. 사과를 하는 건 잘못을 한 사람의 선택이고 그걸 받아 줄지 말지는 또 다른 문제죠. 내키지 않으면 받지 않아도 돼요. 그건 우리 정현이 마음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까.”

사과를 받을지 말지는 또 다른 문제.

조정현은 입속으로 가만히 그 말을 되새겼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였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또 다른 방향을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조정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승혁의 큼직한 손이 조정현의 손을 잡고 손등을 엄지로 천천히 문질렀다.

“내가 해 줬으면 하는 게 있다면 말해요. 다 해 줄 테니까.”

“……없어요. 지금 옆에 계셔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저는.”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정현이는 욕심이 너무 없어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는 지승혁의 말을 들은 조정현은 아닌데, 하고 중얼거렸다.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지승혁이 넘칠 정도로 채워 주었기 때문에 달리 원하는 게 없었다. 욕심이 없는 것과는 좀 달랐으나 지승혁은 가만히 조정현의 눈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체온을 느끼면서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무언가의 매듭이 지어진 것 같다는 거였다.

지금은, 오늘은 그렇게만 생각하기로 했다.

* * *

조정현은 어느 순간 반짝,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밤새 조정현을 토닥여 준 지승혁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채였다. 조정현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지승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날카롭지만 자신을 볼 때면 부드러워지는 눈매나 오뚝하게 솟은 콧날. 그리고 꽉 다물어진 입을 새삼스럽게 보며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얼굴선을 매만졌다.

가만히 지승혁의 턱에 입을 맞춘 조정현은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자신에게 나타났을까.

지승혁은 정말로 멋진 사람이었다. 단순히 형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강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너무나 잘 알았다. 흔들림이 없었고 가야 할 방향을 잃는 법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조정현에게는 한없이 물렀다. 뭐든 해 주고 싶어 하고 뭐든 들어주고 싶어 했다. 그 따뜻함에 중독이 되어 버렸다.

조정현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마도 지승혁 같은 사람이었을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느꼈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자신의 연인이라는 사실이 잘 실감 나지 않았다.

어느 모로 보나 아직 어리숙하고 아직 갈 길을 찾지 못해 비틀비틀대는 저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이렇게 옆에 있는데도 보고 싶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리웠다.

지승혁을 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흔들어 깨우고 싶었지만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람에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

지승혁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던 조정현의 몸 안에 뜨거운 욕구가 조금씩 차올랐다.

그걸 인식한 순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가 커져 있었다.

“……형아.”

거의 소리로 나오지 않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딱히 그가 반응하기를 원하고 부른 건 아니었다.

“응……. 정현아, 왜……?”

조금 전까지 푹 잠들어 있던 지승혁이 대답했다. 눈을 감고 있는 채로 조정현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얇은 천 너머로 탄탄한 근육이 느껴졌다. 길게 숨을 내쉬는 것 같던 지승혁의 눈이 뜨였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깨셨어요? 깨우려던 건 아니었는데.”

“괜찮아요. 언제든 깨워요.”

지승혁의 목소리는 잠에서 막 깨서인지 조금 갈라져 있었다. 그런 작은 차이마저도 새삼스러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열기가 지끈거리며 몸 안쪽을 울렸다.

쪽. 쪽. 쪽.

조정현이 잘게 쪼듯이 지승혁의 입술에 키스했다. 지승혁의 손이 그런 조정현의 뺨을 쓸어내리다가 턱 아래에 멈추었다. 조정현은 엄지로 자신의 입술을 만지듯 문지르는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거실의 간접 조명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한동안 서로의 눈동자만 가만히 응시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조정현이었다.

“저 승혁이 형이랑 하고 싶어요.”

이전에도 지승혁에게 섹스하자고 조르긴 했었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직접 말로 하는 만큼 이렇게 제 욕망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행동을 이전에는 그렇게나 스스럼없이 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잘 자던 사람을 깨우더니 하고 싶다고 엉겨 붙는 게 좀 미안하긴 했다. 하지만 창피하거나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믿음이 있었다. 지승혁이 결코 자신을 내치지 않을 거라는.

“형…….”

지승혁이 눈을 가늘게 떴고 곧 상체를 일으켜 조정현의 입에 입을 겹쳤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두근거렸다.

부드럽고 조심스럽고 상냥한 입맞춤은 그러나 입술이 닿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로의 혀를 천천히 얽었다. 점막과 점막을 비비고 문질렀다. 혀끼리 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습기 찬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지승혁의 손이 조정현의 뺨을 지나 귀, 그리고 조금 아래의 목덜미를 만졌다.

뜨거운 손바닥이 지나간 자리마다 열기가 남았다.

지승혁이 혀로 입 안 곳곳을 맛보며 옷을 벗기는 동안 조정현은 그의 등을 끌어안고 있었다.

단단한 등 근육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물결치듯 움직였다. 근육이 꿈틀거리는 생생함이 손바닥에 전해져 못내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혀…… 형아. 아. 자기야.”

“응, 정현아. 나 여기 있어요.”

“……아. 으응.”

지승혁의 입술이 쇄골에 머물렀다. 따끔한 느낌이 났다. 조정현은 입술을 벌리고 하아, 하는 숨을 내쉬며 지승혁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손가락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그 부들부들한 감촉을 즐기며 몇 번이고 계속 쓰다듬던 조정현은 지승혁의 뜨거운 입술이 젖꼭지를 물었을 때 허리를 비틀었다.

그의 혀가 단단해진 젖꼭지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물고 둥글게 문지르자 짜르르한 감각이 흘렀다.

“흐으, 으응……. ……아!”

지승혁의 혀가 가슴을 지나 옆구리를 핥았고 조정현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크게 냈다. 허리가 바르르 떨려 왔다. 몸 안쪽이 젖는 느낌이 들었다.

지승혁이 아프지 않게 판판한 배를 이로 살짝 무는 것조차 황홀했다.

조정현은 그가 바지를 벗기는 것에 협조하듯 엉덩이를 들었다.

속옷을 벗을 때 천이 젖은 듯 끈적이며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

“부끄러워요? 그럴 거 없어요. 나도 지금 엄청 흥분했어요.”

지승혁은 얼굴을 붉히는 조정현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조정현의 손을 잡아 제 중심으로 가져갔다. 크고 두껍고 딱딱한 것이 천을 밀어내며 융기해 있었다. 손에 느껴지는 단단한 것에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지승혁의 것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어떻게 자신에게 쾌락을 주는지 조정현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기에 더욱 참기 어려웠다.

몸이 흥분으로 고양되었고 입구가 기대에 보채듯 움찔거렸다.

“이런 때에 양심이 좀 없죠?”

지승혁이 농담하듯 물어본 말에 조정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전혀요. 제가 먼저, 형이랑 하고 싶어서 그랬으니까요. 그러니까, 형아 페로몬 주세요.”

페로몬을 먼저 내보내기 시작한 건 조정현이었다. 그러자 그에 호응하듯 지승혁에게서도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오메가를 흥분시키는 알파의 페로몬이었다.

페로몬이 피부 위에 내려앉아 전신의 땀구멍 구석구석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조정현은 페로몬이 녹아 섞인 공기를 폐 가득 채우듯 들이마셨다. 머리가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입에 키스를 한 후 그의 어깨를 밀어 침대 위에 눕혔다. 매트리스가 작게 삐걱이며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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