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62)화 (62/130)

#62

와르르 웃음이 쏟아지는 버라이어티도 지겨워져 채널을 돌리다가 뉴스 전문 채널에 고정해 두었다.

『이어진 소식 전해드립니다.』

“…….”

TV에서는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있던 여자 앵커가 또렷한 발음으로 뉴스를 전했다.

한숨을 내쉰 조정현은 소파에 무릎을 세운 채 앉아 자신의 양팔을 문질렀다. TV를 틀어 놓긴 했으나 넓은 집에 혼자 있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좀 힘들었다.

별일이 없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고 지금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은 논리적인 것과 다르게 반응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이 그럴 때였다.

지승혁이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업무를 하는 걸 모른 척할걸 괜한 고집을 부렸나 하는 후회가 조금씩 고개를 들 때였다. 고개를 도리질 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TV를 꺼야 한다는 건 알고 있는데 약간이라도 소음이 없는 적막함을 견뎌야 하는 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습관처럼 너튜브를 실행했다. 목록을 훑어 가던 조정현의 손이 순간 멈췄다.

“……어?”

재생목록의 썸네일이 조정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정확히는 썸네일의 어떤 남자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도 그게 아니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 주름진 얼굴과 교활한 눈빛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손끝이 창백해졌다.

호흡이 가빠졌다.

동영상 클립의 제목은 ‘5선 국회의원 우철곤 음성 분석!’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이 우철곤이라는 사실을 지금 처음 알게 됐다. 그때까지는 막연한 어떤 공포로만 자리했는데 지금 실체가 되어 모습을 드러낸 느낌이 들었다.

우스운 말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제목만으로는 정확하게 무슨 내용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쉽사리 누를 수가 없었다. 엄지를 움직여 화면을 한 번만 터치하면 될 일인데 마치 폭탄 기폭제를 쥔 사람처럼 손가락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그저 덮어 뒀을 뿐이니까.

아무 해결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돌린 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조정현은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뉴스의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 쪽 복도로 고개를 돌린 조정현의 고막에 앵커의 목소리가 와 닿았다.

『우철곤 의원의 소식입니다. 우철곤 의원의 공식 계정에 올라온 이 영상은 우철곤 의원 본인의 범죄 사실을 밝히고 있어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조금 전 너튜브에서 봤던 그 내용인 것 같았다.

우철곤 의원. 범죄 사실.

두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냥 그 사람이 저지른 다른 범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정현아……?”

“아, 형.”

조정현이 한발 늦게 반응하자 지승혁은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살폈다. TV에서는 우철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중이었다. 지승혁이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TV 끌까요?”

“아, 아뇨. 괜찮아요. 볼래요.”

조정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확인해 봐야 했다. 어떤 잘못을 저지른 건지.

그래. 언제까지고 덮어 둘 수만은 없었다. 지승혁은 괜찮다고 했지만 이렇게 영향을 받고 피하기만 해서야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는다. 조정현은 이를 사리물고 TV를 응시했다.

『우철곤 의원은 해당 영상에서 알파와 오메가에게 약물을 사용한 강간 및 강간 사주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무표정한 앵커가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사실만을 전달했다.

조정현의 눈이 부릅 뜨였다.

지금 앵커가 말하고 있는 건 자신이 겪었던 일이 분명했다. 그걸 우철곤이 본인 입으로 시인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게 한 번이 아닌 듯했다. 어렴풋하게 그러지 않을까 짐작했으나 그런 짓을 몇 번이나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은 그나마 미수에 그쳤지만 다른 사람들은…….

조정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영상 말미에는 각종 증거자료를 이미 검찰에 제출했다고 밝혔고 피해자를 향한 사과도 함께 하고 있어 해당 범죄 사실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정식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우철곤 의원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검찰은 그의 신병확보에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출한 증거자료가 워낙 자세해 수사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상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국립 과학수사 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한편, 우철곤 의원이 동석했다고 밝힌 조의협 의원과 성주법 의원은 해당 사실에 대해서 일절 관련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피해자를 향한 사과.

조정현의 귀에 파고든 건 오직 그 단어였다.

눈도 깜빡거리지 않은 상태로 앵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조정현의 뒤로 지승혁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정현아.”

조정현은 그제야 자신이 숨을 제대로 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뺨을 가만히 그러쥐었다. 이상하게 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대로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기에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숨이 뜨거웠고 눈앞이 흐려졌다. 누군가가 숨통을 조이는 것처럼 호흡하는 게 힘들었다.

밀려오는 오열을 참을 수가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승혁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조정현의 등허리를 쓸어내렸다.

얼마나 울었을까.

울음은 진정되었고 떨리는 울음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주르륵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다.

“잠시만 기다릴래요? 물 좀 가져다줄게요.”

조정현의 머리에 뽀뽀를 한 지승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주방 쪽으로 가는 발소리를 듣던 조정현은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우철곤이 공개한 영상이 무얼까.

대체 어떤 식으로 사과를 했을까.

그걸 한번 봐야 할 것 같았다.

너튜브에도 그걸로 화제인 것 같으니 찾기는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눈물 때문에 뻑뻑해진 눈꺼풀은 감았다가 뜨는 간단한 일을 하는 것에도 불편했다. 한숨을 내쉰 조정현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검은 액정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었다.

짧은 시간인데 눈이 참 많이 부어 있었다.

그 모습이 꽤 웃겨 보여 조정현은 한숨을 내쉬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은 나온다. 그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물 마셔요.”

“아, 네. 고맙습니다.”

어느새 돌아온 지승혁이 물잔을 건넸다. 한 모금 마신 조정현은 물잔을 근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지승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요. 말해 봐요.”

“저랑 같이 동영상 하나만 봐 주실 수 있어요?”

지승혁은 조정현의 말을 듣곤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어려운 부탁은 아닌데.”

지승혁은 조정현이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조정현은 가볍게 아랫입술을 한 번 빨았다.

“그 사람…… 우철곤이 올렸다는 걸 보려고 하는데…….”

“……정현아.”

조정현은 제 어깨를 쥔 지승혁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가 무얼 우려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든 자신이 한 번은 마주 봐야 할 일이다. 지승혁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으나 이 일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괜찮아요. 형만 같이 봐 주시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혼자 볼 용기는 아직 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을까 싶었으나 지승혁은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임으로 선선히 조정현의 부탁에 응했다.

영상의 원본을 찾기는 쉬웠다. 터치 몇 번으로 가능했다.

동영상을 재생하기 전, 조정현은 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우철곤의 모습이 핸드폰 화면에 떴다.

조정현의 기억에서보다 조금 초췌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전체 재생 길이는 약 15분 40초 정도였다.

영상을 시작하자 썸네일로만 있던 우철곤이 움직였다.

우철곤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현실성이 없을 정도로 잔인했고 잔혹했다.

그가 저지른 일은 단지 몇 건 정도가 아니었다. 십수 년간 50회는 족히 넘어갈 정도로 많이 그 끔찍한 일을 자행했다. 우철곤은 제가 괴롭힌 피해자가 몇 명인지 정확히 파악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피해자 중에는 목숨을 잃은 이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에 조정현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나이 불문, 성별 불문으로 모은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오로지 베타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우철곤은 그걸 단지 알파와 오메가들을 향한 증오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지 그런 감정만으로 타인을 향해 입에도 담지 못할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알파나 오메가들은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고 여겼다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싫어도 떠올랐다.

조정현은 아무튼 미수에 그쳤다.

조정현은 자신이 당했던 짓 이상을 당한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아 숨을 쉬기 어려웠다. 밀려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무던히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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