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왜 이렇게 좆을 찾는지 모르겠네. 좆질에 환장을 해서인가. 아, 발기불능이라 더 집착을 하는 걸 수도 있겠군요.”
“너, 이, 개 잡놈의 새끼……!”
우철곤이 얼굴을 뻘겋게 물들이고 노성을 터트렸다. 주름진 얼굴에 기름이 번들거리는 꼴이 역했다.
한참을 씨근거리며 이를 갈던 우철곤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목소리를 깔며 제법 위협적으로 말했다.
“너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이딴 짓을 하는 거냐. 알고도 한 거면 뒷일은 각오했지? 내가 연락이 안 되면 보좌진들이 가만있을 줄 알아? 경찰들 싹 풀어서 찾을 거라고. 네놈 새끼와 너와 연관된 것들 하나하나 끝까지 쫓아서 탈탈 털고 배때기를 갈라 죽일 거다. 내 얘기 알아들어? 지금이라도 놔주면 내 적당한 선에서-”
섹스하러 별장에 처박혔다는 걸 보좌관들이 모를 리도 없고 며칠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할 리는 더더욱 없다. 정치인은 나쁜 뉴스라도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무관심 속에 잊히는 것보다 좋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상황 나름이다. 아마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할 리가 없었다. 우철곤 역시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양반이다.
지승혁이 낮게 웃음소리를 내자 우철곤은 말을 멈췄다.
“아. 동네 양아치처럼 입을 터시길래.”
지승혁의 말에 우철곤의 얼굴이 뻘겋게 변했다.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지승혁은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하긴 댁이 하는 걸 보면 동네 양아치는 대지도 못하겠지만.”
지승혁은 우철곤의 옆에 있던 둘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이 빠르게 우철곤의 어깨를 붙잡고 바닥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철곤은 버둥거리며 그 손길을 벗어나려 애썼으나 헛수고였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날개뼈 쪽을 무릎으로 제압당한 채 바닥에 얼굴이 짓눌렸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가방에서 주사를 꺼내 들었다.
“뭐, 뭐야? 이 새끼들이. 뭐야! 안 놔? 네놈들이 지금 누굴 붙잡고 이러는지……!”
남자가 빠르게 우철곤의 양팔에 주사 한 대씩을 놓았다. 우철곤이 주사를 맞지 않기 위해 꽥꽥 소리를 지르며 용을 썼지만 한번 눌린 몸이 억센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일은 없었다.
주사기 두 대를 다 넣고 나서 우철곤의 몸을 놓아주었다. 우철곤은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를 썼다. 너구리를 닮은 얼굴에 땀이 번들거렸다.
지승혁이 우철곤 앞에 몸을 숙이고 앉아서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금 당신 몸에 뭘 주사한 건지 알려드릴까요?”
우철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는 점이 지승혁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의원님 알파 페로몬이랑 오메가 페로몬 아시죠? 그 두 개를 주사했습니다.”
평이한 어조의 지승혁의 말에 우철곤은 눈을 찢어질 듯이 크게 떴다.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우철곤의 반응을 보며 지승혁은 말을 이었다.
“가끔씩 베타 중에서도 알파나 오메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약물입니다. 그거 두 개를 동시에 주입한 사람은 아마 의원님이 최초일 거예요. 국회의원 이력에 한 줄 추가 가능하시겠네요. 축하드립니다. 번지르르하게 말 바꾸는 건 의원님 특기니까 그건 알아서 하시고.”
“너, 이…… 이!”
우철곤의 숨소리가 마치 바람 소리처럼 쉭쉭 대며 크게 났다.
“뭐, 최초라서 사람에게 무슨 부작용이 생길지 제대로 보고된 게 없긴 한 게 살짝 흠이긴 합니다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료 발전에 몸 바쳐 이바지하신다고 생각하십시오.”
우철곤의 안색이 점점 퍼렇게 변하더니 부들부들 경련하면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물흐르는 소리가 나면서 우철곤의 바지가 젖어 들어갔다. 숨이 넘어갈 듯이 꺽꺽 소리를 내는 우철곤을 내려다보던 지승혁이 몸을 일으켰다.
“흠집 내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제정신 유지한 채로 살려 두세요.”
지시가 떨어지자 주사를 했던 남자가 기민하게 몸을 움직였다. 가방 안에서 여러 가지 수액을 꺼내 드는 걸 보곤 지승혁은 발걸음을 움직였다.
컨테이너 박스를 나와보니 정태준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은 건가 의아하게 여기고 있는데 정태준이 꿰뚫어 본 듯 히죽 웃었다.
“메인 디쉬에 숟가락 얹을 정도로 무개념은 또 아니죠, 제가.”
신발 바닥으로 흙바닥에 있던 작은 자갈을 밀던 정태준이 말을 이었다.
“이영선이는 어쩔 생각이야? 아직 데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지승혁은 눈썹을 한 번 들어 올렸다.
“나중에 터트리려고?”
“다 알아본 후에 찔러보는 짓은 그만하지.”
“너 예뻐서 그러겠어? 정현 씨 때문이지.”
지승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정태준이 조정현에게 마음 쓰는 걸 굳이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진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조정현에게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특히나 정태준 같은 타입은.
정태준은 대답 없는 지승혁의 반응에 짐짓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 음흉한 새끼,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굳이 들은 척하지 않았다.
그는 조영웅 내외가 있는 컨테이너 쪽을 쳐다보았다.
지승혁은 별장을 떠나기 직전의 조정현의 양부모를 만나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아킬레스건을 그어 두었다. 이곳에 옮겨 치료도 적절히 받게 했고 최근에는 그나마 화장실은 목발을 짚고 다닌다는 보고를 받았다.
“저기는 안 들어가 봐?”
“적당히 움직일 수 있으면 업장에 처박아 둬.”
정태준은 지승혁의 말에 의외인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빤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끝장을 낼 거라고 예상한 모양이었다. 사실 지승혁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업장이면 달마다 급여도 나오는 데잖아?”
“그 돈을 쓸 수나 있으면 말이지.”
“그건 그렇긴 한데.”
정태준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그들이 조정현에게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백번 갈아 마셔도 시원찮았다.
하지만 조정현이 그랬다.
언젠가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그렇다면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를 위해 살려 둬야 했다. 무슨 이유로 만나고 싶어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정현이 원한다면 들어주고 싶었다. 만나고 싶어졌을 때 만나지 못해 애틋함이 쌓이는 건 원하지 않았다.
만남을 말미암아 조영웅과 서희주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나 그건 그때의 일이다. 아예 잔머리를 굴리지 못할 정도로 굴려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건 정현 씨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정태준이 양부모가 있는 컨테이너 박스 쪽을 눈짓하며 물었고 지승혁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제대로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뭘 알아야 하는데.”
“자기 괴롭힌 사람이 어떻게 됐다 정도는 알아야 덜 힘들 거 아냐. 원하면 직접 갚아 주게 해 줘야지.”
지승혁은 그 이야기를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되갚아? 조정현이 우리랑 같은 과라고 생각해?”
“…….”
“정현이한테 얘기하지 마. 몰라도 되고 몰라야 해. 알아들어?”
지승혁이 일갈하자 정태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듯했다.
“알겠다고 안 하면 나까지 죽일 것 같네. 아이고. 알겠습니다, 지 사장님.”
넉살 좋게 대답한 정태준은 욕설과 함께 “끝까지 정현 씨한테 효도 받네.”라고 중얼거리며 담배 한 개비를 빼 물었다. 지승혁은 그런 정태준의 손에서 담배를 빼내 갔다. 정태준이 어이없어하며 작게 욕을 했으나 지승혁은 개의치 않았다.
“돈도 많으신 분이 세상에 담배 하나를 안 가지고 다녀서 없는 사람한테 강탈해 가시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태준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다시 한 개비를 입에 문 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라이터를 지승혁에게 던졌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 지승혁이 깊이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다.
“해 줘야 할 일이 있는데.”
“또 뭘. ……작작 좀 부려 드세요, 지 사장님아.”
“어차피 서윤영 씨 대신에 온 거 아닌가.”
정태준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승혁은 입 안쪽에 머금어 두었던 담배 연기를 깊게 내쉬었다.
“우철곤이 여태까지 혼자서만 저 지랄을 했을 것 같지는 않고.”
순식간에 정태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누구를 알아봐 줄까.”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음에도 정태준은 지승혁이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지승혁이 만족스럽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 끝의 하얀 재에 불씨가 빨갛게 타올랐다.
* * *
조정현은 고개를 돌려 창문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승혁이 집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내보냈던 날에서 벌써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조정현이 일하고 오라고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내보낸 그 날, 지승혁은 상당히 빠르게 귀가를 했다. 핑크색 케이크 상자까지 들고 말이다.
어리둥절하게 상자와 색색의 곰 인형까지 받아 든 조정현의 뺨에 지승혁이 가볍게 뽀뽀했다. 상자를 열어 보니 갈색의 작은 곰 모양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그 날 조정현이 너무 맛있게 먹어서 따로 알아보니 백화점 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본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케이크가 있기에 사 왔다고 말하는 남자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확실히 단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조정현의 입맛에도 딱 맞긴 했었다.
곰돌이를 자르기 좀 불쌍하긴 했지만 초콜릿 케이크임에도 그리 달지 않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기 전 지승혁과 간단하게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