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식탁 의자에 앉아 있던 조정현이 몸을 일으켜 지승혁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안으며 작게 말했다.
“저녁 맛있게 만들고 있을 테니까 너무 늦으시면 안 돼요.”
조정현은 결국 일찍 들어오라는 말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지승혁은 알겠다고 답하며 웃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올게요.”
“네? 아니, 그러시면 너무 이른데…….”
시계를 흘긋 본 후 모양 좋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하던 조정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지승혁은 아직도 울긋불긋한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금방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요.”
조정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결 좋은 머리카락이 사락거리며 흔들렸다. 마주 앉아 아침식사를 끝낸 지승혁은 조정현의 이마에 뽀뽀를 한 번 한 후 집을 나섰다.
조정현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며 현관문을 닫은 지승혁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운전사인 김성태에게 전화했다.
“박스로 갑니다. 준비해 주세요.”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엘리베이터 문에 조정현에게 보여 주지 않았던 얼굴을 한 지승혁이 있었다.
* * *
지승혁을 태운 차는 컨테이너 박스들이 즐비한 곳에 멈춰 섰다.
네모난 컨테이너 박스가 쌓여 있는 주변에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차에서 내려선 지승혁은 한쪽 다리로 비스듬하게 서 있는 정태준을 발견하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바쁜 거 아니었나?”
“이렇게 재미있는 걸 놓칠 수가 있어야지.”
지승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는 정태준에게 시선을 한 번 준 후 건장한 남자 둘이 서 있는 컨테이너 박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보고는 매일 받고 있었기에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었다.
천장에 달아 둔 노란 백열등 하나가 창문 하나 없는 컨테이너 박스의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우철곤의 별장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이 바닥에 힘없이 늘어진 채 있었다. 따로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역겨운 오물 냄새가 확 났다. 뒤에서 따라오던 정태준이 욕설을 내뱉었다.
지승혁이 안으로 들어갔으나 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지를 축 늘어뜨린 채 초점을 잃은 동공으로 멍하게 허공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은 이미 피떡이 되어 원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바지 앞섶이 불룩하게 나와 흥분한 상태라는 게 잘 보였다. 낮게 히히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 사장님 인정도 좋으시네. 상처도 돌봐 주셔, 약도 주셔. 이 새끼들 이 상태면 통증도 제대로 못 느낄 텐데. 어째 천국엘 보내 놓으셨어요.”
“…….”
정태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늘어져 있던 남자들 중 한 명이 히이익,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팔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살려, 살려 줘. 벌레가. 윽, 씨발놈의 벌레. 씨발, 씨발!”
남자는 바닥에 있던 금속을 집어 들더니 그걸로 미친 듯이 팔을 긁어 댔다. 비릿한 피 냄새가 오물 냄새와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승혁은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무언가가 지승혁의 다리를 덥썩 잡았다.
남자는 동공이 풀린 채로 입가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지승혁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아, 정현 씨 때린 새끼네.”
정태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승혁의 발이 남자의 턱을 정확하게 걷어찼다. 빠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거대한 몸이 뒤로 조금 뜨는가 싶더니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남자를 내려다보던 지승혁이 컨테이너를 나왔다.
“포장해야 하니까 너무 상하지 않게 해 두세요.”
“네, 사장님.”
묵례를 하며 대답하는 남자를 지나 지승혁은 다른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는 절그럭거리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경호원들이 있던 컨테이너와는 다르게 일정한 간격으로 장치해 둔 구속구에 묶여 있는 채였다. 그나마 그들은 제정신을 유지하는 채였고 볼일 역시 다른 곳에서 할 수 있게 해 줘서인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악취는 나지 않았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는 지승혁을 보더니 벌벌 떨면서 빌기 시작했다.
“선, 선생님. 목숨만, 목숨만 살려 주세요. 제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다 잘하겠습니다. 여기서 있던 일은 절대 발설하지도 않을 거구요, 정말 착하게 살게요.”
“살려 주세요. 제, 제발요. 선생님.”
“내보내 주시기만 하면 한평생 속죄하면서 진짜 개과천선해서 살아 보겠습니다.”
바닥에 무릎도 꿇었다가 엎드려 빌기도 하던 이들은 지승혁에게서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자 태세를 바꾸었다.
“이 씨발 새끼야! 너 내가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네놈들 가만둘 줄 알아? 얼굴들 다 기억해 놨어, 씨벌놈들아.”
“와, 무섭네. 밖에서 주름 좀 잡아 보셨나 본데?”
정태준의 이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씹새끼들아, 대한민국 법치 국가야!!”
지승혁은 그 말을 한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목청 크게 외친 남자의 이름은 박채득이었다. 눈앞의 남자가 조정현을 폭행을 했다는 사실은 보고를 받았기에 알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나마 정상참작을 해 주겠다는 구슬림에 현장에 있던 이들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술술 이야기하더라는 뒷이야기도 전해 들은 상태였다.
가만히 있어도 씹어먹었을 텐데 목을 잘라 달라고 나대는 꼴이 같잖게 보였다.
지승혁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 법치 국가에서 그동안 댁들이 한 짓은 괜찮아서 용인이 됐습니까?”
박채득의 얼굴이 바로 사색이 됐다.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면서 비굴한 목소리를 냈다.
“살, 살려 주십쇼, 제발. 제발요. 집에 이제 돌 좀 안 된 애가 있어요. 제가 죽으면 집사람이 저를 찾을 겁니다. 실종 상태면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제발요…….”
박채득의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무감하게 듣던 지승혁이 흠, 하고 숨을 내쉬었다.
“폐병원에 하나씩 던져 놓으면 흉가 체험 같은 거 오는 애들한테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 영원히 실종 상태는 아닐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뒤에 있던 정태준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고 남자는 반대로 허으윽, 하고 울부짖었다.
“뭘 그렇게 쫄고 그러십니까. 농담한 건데.”
“씨, 씨발…… 씨발……!”
지승혁은 박채득에게로 성큼 다가가 그의 머리채를 잡고 거침없이 뺨을 후려쳤다. 짜악, 짜악 큰 소리가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가득 채웠다.
“기분 좆같게 왜 이렇게 씨발거립니까.”
남자의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뺨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변했다. 끙끙거리는 신음을 흘리는 남자의 눈은 거침없는 폭력에 이미 어느 정도 풀린 상태였다.
“당신 좆같은 신음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합니까?”
위협적인 목소리에 남자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바로 입술을 꾹 깨물고 씨근덕거렸다.
“애랑 와이프라. 내가 그런 기본적인 조사도 안 했을 것 같습니까? 그동안 그런 식으로 끌려온 사람들을 몇 명이나 상대했는지까지도 알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 안 합니까, 박채득 씨?”
지승혁은 잡고 있던 박채득의 머리를 놓고 바로 그의 중심부를 구둣발로 짓밟았다. 이번에야말로 박채득의 눈이 휘꺼덕 뒤집히면서 비명도 되지 못한 소리가 터진 입에서 흘러나왔다.
담배꽁초 끄는 것처럼 남자의 성기를 발로 비비자 박채득은 부글부글 허연 게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애가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때려.”
성기가 짓눌리며 으드득, 소리가 나자 묶여 있던 다른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듯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났다. 지승혁은 이제는 거의 정신을 잃은 채로 바닥에 누워 부들부들 사지를 경련하는 박채득의 머리를 공 차는 것처럼 걷어찼다. 점점이 피가 흩뿌려졌다.
“그러게 사람을 봐 가면서 지랄을 했어야지.”
지승혁이 몸을 돌리자 남은 이들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걔, 걔들도 즐긴 거예요!”
“씨발, 뭘 그렇게 잘못했어! 우린 그냥 돈 주니까 한 거야!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고!”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정태준에게 눈짓하자 출입구 쪽에 있던 그가 밖에 있는 이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했고 컨테이너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망치와 야구배트 같은 것들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묶인 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넘겨 보내야 하니까 적당히 조절들 잘하십시오.”
“네, 사장님.”
지승혁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와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어 지승혁의 발길이 향한 곳은 벽면에 붉은 스프레이 칠이 되어 있는 컨테이너 박스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지승혁은 바닥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지승혁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남자 둘이 우철곤의 양옆에 섰다.
우철곤은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상태가 좋았다. 구속구 역시 없었다. 그래도 흐트러진 머리나 씻지 못해 기름이 흐르는 얼굴은 그가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지승혁은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로 인사했다.
“의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
“인사를 할 만한 여유가 없으신가 봅니다. 여기가 좀 그렇긴 하죠?”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는 지승혁의 목소리에 우철곤이 드디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너, 이 개 좆같은 새끼…….”
그 말에 지승혁은 실소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