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지승혁은 지금 생각난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음, 글쎄요. 이런 짓 하지 말라고 하고 그 자리를 떠나서 그 이후에는 못 봤어요. 정현이가 쓰러진 걸 보더니 좀 놀라는 눈치였으니까 아마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자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조정현은 미심쩍어하는 눈치였으나 굳이 더 물어보지 않았다. 조정현이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기에 지승혁이 묻자 조정현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제 부모님은……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조정현은 빠르게 말을 얼버무렸다. 조정현 쪽에서 부모의 이야기를 꺼낸 건 드문 일이었다. 특히나 그 일이 있은 후로는 말이다.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찾길 원한다면 찾을 수 있어요.”
조정현이 찾는 건 아마도 친부모일 터였다.
입양 사실에 대해 언젠가 조정현에게 사실을 말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최악의 방식으로 밝혀졌다. 우철곤의 역겨운 면상과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조정현이 받았을 충격을 떠올린 지승혁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아, 그렇긴 한데 ……저, 양 부모님이오. 그러니까 여태까지 절 길러 주셨던…….”
조정현의 대답은 지승혁이 예상하던 것과 달랐다. 조정현은 시선을 살짝 아래로 향한 채 말을 이었다.
“어릴 때 응급실에서 어머니가 제 이마를 만져 주셨던 적이 있어요.”
조정현은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한곳을 응시하며 제 이마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뭐 때문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열 살 때쯤에 크게 아팠었어요. 눈도 가물거리고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서 밤에 물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그대로 잠깐 앉아서 쉬었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나오셨다가 밤중에 사람 놀라게 뭐 하는 거냐고 화를 내셨어요. 불도 안 켜고 있었거든요. 엄청 놀라시긴 했을 거예요.”
조정현은 회상을 하면서도 우스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제 상태를 보시더니 저를 업고 병원에 가셨어요. 어머니는 너무 마르셔서 힘드셨을 텐데. 하필이면 사람 없는 날을 골라서 이런다고 하시면서도 망설이지도 않으셨어요. 응급실에 가서 처지 받고 누워 있는 제 이마를 짚어 보시더니 그러셨어요. 열은 좀 내렸네, 라고요.”
‘열은 좀 내렸네, 라고.’라는 말을 다시 한번 입속으로 중얼거리던 조정현이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그냥, 그 기억이 자꾸만 나요.”
조정현이 살짝 웃었다.
지승혁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지승혁과는 사고방식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물을 보는 방식도 받아들이는 방법도, 그리고 내리는 결론 역시 말이다.
지승혁이라면 한밤중에 불도 켜지 못할 정도로 눈치를 봤다는 사실에 분개했을 거다. 하지만 조정현의 기억 속에 그건 아련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마 지승혁은 죽을 때까지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볼 수는 없을 거다.
조정현이 지승혁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우물 말문을 열었다.
“어, 그…… 한번 여쭈어봤어요. 그냥 무사하신지만 알고 싶기도 한 것 같고.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당장은…… 보고 싶지 않아요. 너무 제멋대로죠.”
지승혁은 그를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손바닥으로 그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문질렀다가 조금 내려 등을 토닥였다.
“전혀요. 그리고 나한텐 더 멋대로 굴어도 좋아요.”
“계속 그러시면 저 버릇 나빠져요.”
“괜찮아요. 정현이가 아무에게나 그러진 않잖아요. 내 입장에서는 특권이죠.”
조정현은 살짝 웃었다. 그렇게 지승혁의 품에 안겨 있던 조정현이 몸을 일으키는 듯하더니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았다.
지승혁은 조정현이 하는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승혁보다 시선이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조정현은 부드러운 손길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조정현의 손가락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게 너무나 가벼웠고 조심스러웠기에 지승혁은 깃털 같은 거로 만지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조정현의 시선이 지승혁의 입술에 고정되었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입술 모양을 따라 움직였다. 지승혁은 자신의 입술을 쳐다보다가 눈동자를 움직여 시선을 마주해 오는 조정현을 관찰했다.
“키스, 해도 돼요?”
“얼마든지.”
조정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지승혁은 바로 대답했다.
그의 승낙을 들은 조정현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폭력의 잔해가 작고 사랑스러운 연인의 얼굴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게 정말로 화가 났고 속이 들끓었다. 그리고 조정현을 향한 애틋함이 어쩔 도리 없이 솟아올랐다.
지승혁은 그가 하는 대로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처음엔 입술이 닿았다. 살짝 무는 것처럼 입술을 움직이던 조정현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지승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채였다.
조정현의 작고 뜨거운 혀가 지승혁의 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그게 마치 무슨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지승혁이 가만히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리고 혀를 움직이려 하자 조정현이 입술을 떼고 머리를 뒤로 뺐다.
조정현은 조금 난감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승혁의 어깨 위에 올린 손이 작게 꼼지락거렸다.
“제가 할게요. 형은 그냥 가만히, 계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요?”
“네. 제가 할 테니까, 그냥 가만히, 계세요.”
같은 말을 반복하는 조정현의 얼굴은 키스를 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뭔가가 있다는 걸 감지한 지승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조정현은 다시 고개를 숙여 입술을 가까이 댔다.
조정현의 입술은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그는 지승혁의 입술을 노크하듯이 두드리다가 그 안으로 조심스럽게 혀를 밀어 넣었다. 지승혁의 혀에 닿은 혀는 놀란 듯 잠시 주춤했다. 조정현의 손이 지승혁의 옷깃을 꽉 쥐는 듯하더니 그 작고 뜨거운 살덩이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조정현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색소가 옅은 눈동자의 동공이 커져 있었다.
여전히 옷깃을 쥐고 있는 손과 힘이 들어간 몸은 병원에서 입술에 가벼운 뽀뽀를 했을 때 조정현이 보였던 반응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눈을 감지 않는 조정현의 행동은 자신이 입맞춤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듯했다.
왜 이러는지 짚이는 바가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조정현은 스킨십을 하면 부끄러워하면서도 순수하게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속에서 불길이 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승혁은 그 감정을 꾹꾹 억눌렀다.
조정현은 지금 용기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승혁에겐 그가 이 시도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게 보조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조정현은 마치 크림을 핥는 것처럼 몇 번이고 지승혁의 혀를 건드렸다.
점막과 점막을 비비며 닿았다가 떨어지는 감촉에 집중했다. 조정현의 손이 옷깃을 쥐고 있던 걸 놓고 지승혁의 얼굴을 살며시 감쌌다. 손바닥에 촉촉하게 땀이 나 있었다.
지승혁은 몸에 힘을 빼고 그저 가만히 앉아 조정현이 하는 대로 따랐다. 조정현의 등을 쓰다듬거나 허리를 잡는다든가 하는 것도 일절 하지 않았다. 지승혁이 주는 어떤 자극도 지금의 조정현에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였다.
붙어 있던 입술이 떨어지자 작게 소리가 났다.
조정현은 자칫 숨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조그맣게 웃으며 지승혁의 코에 제 코를 가볍게 비볐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입을 맞추었다. 조금 전의 마냥 조심스럽기만 하던 태도와는 또 달라졌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입술 사이에 끼웠다가 살짝 무는 것 같은 행동을 두어 번 반복했다. 이를 세운 게 아니고 입술로 물었기에 아픔은 하나도 없었다.
입술 사이로 조정현의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얼굴 각도를 조금씩 달리해서 키스에 열중하던 조정현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조정현에게서 페로몬이 조금씩 나왔다.
흥분을 하면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페로몬이 흘러나오지만 지금 이건 경우가 달랐다. 수도꼭지를 연 것처럼 양에 거의 변화가 없이 일정하게 흘러나오는 페로몬. 명확하게 조정현의 의지로 페로몬을 내보낸다는 뜻이었다.
조정현은 열성이긴 하지만 페로몬을 다루는 게 능숙한 편이었다. 하나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나 애를 쓰고 있다.
그 모습이 가련하게 느껴지는 한편 무척이나 씩씩하게 보였다.
옅은 한숨을 내쉬는 조정현의 성기가 머리를 드는 게 느껴졌다.
하긴, 조정현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제 허벅지 위에 앉아 있는 조정현도 지승혁이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승혁은 페로몬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 굉장히 조심하고 있었다.
제 페로몬에 창백해지는 조정현의 모습을 보는 건 한 번으로 족했다.
“……페로몬…… 일부러 참으시는 거죠?”
닿아 있던 입술을 떼고 조정현이 속삭이듯이 물었다.
지승혁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조금 웃었다.
그 웃음을 본 조정현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형 페로몬이라면…….”
다시 입술이 맞닿고 비벼졌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살며시 지승혁의 입술을 물어 왔다.
“그러니까 주세요.”
지승혁은 숨을 참았다가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