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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54)화 (54/130)

#54

조정현은 고개를 숙인 채로 머리를 흔들었다. 입 안이 바싹 말라 침을 삼키기가 어려웠다. 목도 조금 잠기는 것 같아 작게 기침을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페로몬에 반응하는 제가요.”

“…….”

조정현은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그때, 오메가 페로몬 주사를 맞고 나서요, 머리로는 너무 싫었는데…… 몸이…… 그게 아니더라구요. 알파 페로몬에…… 형 페로몬이 아니라 아무 알파 페로몬이나, 인공적으로 만든 알파 페로몬에도 반응하는 게 너무 소름이 돋았어요. 그러면 상대는 누구라도 상관이 없나 하고요. 결국 페로몬에 취해서 상대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믿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머릿속이 엉클어져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순간적으로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끼는 느낌에 조정현은 입술을 여러 번 열었다 닫았다.

뭐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천천히 눈을 깜빡거리던 조정현이 고개를 들어 올리니 자신을 쳐다보던 지승혁과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간 그를 쳐다보던 조정현이 입술을 열었다.

“형은 괜찮으세요? 싫지 않으세요?”

목소리 끝이 떨렸다.

울 생각은 정말 아닌데 멋대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알파나 오메가들은 잘난 체를 하지만 결국 욕구 하나도 이기질 못해. 짐승이랑 다를 바가 없단 말이지.’

조소가 담긴 노인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때의 조정현은 노인의 말마따나 발정기의 짐승이었다. 아니, 짐승만도 못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알파나 오메가라는 형질을 이렇게 느끼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심지어 조정현은 자신의 부모, 아니 양부모가 저를 팔아넘길 때에도 자신의 형질이 오메가라는 것에 이런 식의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조정현은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여 눈물을 없애려 했으나 도리어 빠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밀어내 버리는 효과가 났다. 눈물이 뚜욱 아래로 떨어져 조정현은 황급히 손으로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하지만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계속 났다.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친 조정현은 떨리는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페로몬 때문에 감정을 착각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어요? 형이 알파가 아니고 제가 오메가가 아니었다면 이런, 애인 사이가 안 됐을 거라는 생각요. 저한테 히트 사이클이 오지 않았으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라는, 그런 생각요.”

이전에 지승혁에게 묻고 싶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못했던 질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최악의 형태로 물어볼 거라고는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치 눈앞의 일을 피하려고 하는 미련한 짐승처럼 조정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승혁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그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남자의 무게가 실린 매트리스가 한 번 출렁였다.

조정현의 손을 한 번 꼭 쥔 지승혁이 말문을 열었다.

“정현아.”

“네……?”

“네가 오메가가 아니고 내가 알파가 아니었다면, 이라.”

조정현은 짧게 말을 마친 지승혁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면 이런 가정은 어때요. 내가 사채꾼이 아니고 네가 채무자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너나 내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더라면.”

거기서 지승혁은 말을 잠깐 멈췄다.

“……네가 네가 아니었고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이런 관계가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승혁의 말에 조정현은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웠다.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조정현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질문을 바꿔 볼까요. 그러면 정현이는 내가 사채업자여서 나를 좋아한 거예요?”

“아, 아뇨! 그건 아니에요. 상관없어요. 저는 형이 뭘 하셨어도 좋아했을 거예요. ……어. 아…….”

재빠르게 반박하던 조정현은 제 말에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음을 깨달았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에게 웃어 보였다.

“고마워요. 하지만 내가 사채를 하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만날 일이 없었겠죠.”

“아…….”

“너를 이루는 모든 걸 전부 포함해서 조정현이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거예요. 만약 이게 아니었다면, 만약 저게 아니었다면, 그런 가정은 필요 없어요. 그 수많은 조건들이 겹쳐서 만날 수 있었던 거고 결국 이렇게 된 거니까. 그쪽이 좀 더 운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승혁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속살거리는 것처럼 바뀌었다. 조정현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런 지승혁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확실히 그의 말 그대로였다. 지승혁을 이루는 그 어떤 것도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그를 이루는 어느 하나를 삭제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지승혁이 아니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건 조정현 본인도 마찬가지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베타들에게도 페로몬이랑 비슷한 게 있죠. 호르몬. 그 호르몬 작용으로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진다면 그게 사랑이 아닌 거라고 생각해요?”

“……아뇨, 그건 아니지만…….”

“결국 페로몬이나 호르몬은 원인에 지나지 않아요. 효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 감정을 유지시킬 수는 없어요. 지금도 봐요. 그때 느꼈던 흥분이 지속되고 있나요?”

조정현은 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어떤 흥분을 느꼈건 지금 조정현에게 남은 건 혐오감밖에 없었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쩐지 알 것 같았다.

“네 히트 사이클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됐을 거야. 단지 히트 사이클 덕분에 그 시기가 좀 앞당겨진 정도지.”

지승혁은 확실히 못을 박듯 말했고 조정현은 가만히 들으며 눈물 때문에 덩달아 막힌 코를 훌쩍였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손을 작게 토닥였다.

“그런 거예요.”

“……그런 거인가요.”

조정현은 녹음기처럼 지승혁의 말을 똑같이 따라 했다.

지승혁의 말을 듣고 있으니 자신이 했던 고민이 너무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 떠돌아 흘러 다니며 조정현을 괴롭혔던 문제가 너무나 쉽게 사라졌다.

그렇게 답을 얻고 나니 괜스레 진지해져서 골몰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승혁은 한 팔로 조정현의 어깨를 감싸 안고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조정현은 눈꼬리에 한 번, 뺨에 한 번. 이마에 한 번 부드럽게 입술을 눌렀다가 뗀 지승혁의 옷깃을 살짝 잡았다.

조정현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꼬리 같은 거였네요.”

“꼬리?”

좀 뜬금없는 비유에 지승혁이 되물었다.

“네. 동물은 자기 몸에 달린 꼬리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이, 이상한 말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귀여운 비유라고 생각했어요. 자기에게 왜 꼬리가 달렸을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다람쥐가 떠올랐거든요.”

지승혁은 조정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빠르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가 다람쥐 얘기를 하자 조정현도 한번 상상해 보고는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지승혁과 한참 끌어안고 있던 조정현은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무리를 한 탓인지 꾸벅꾸벅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본 지승혁이 편하게 누워 자라며 침대에 눕게 했고 조정현은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고집을 부렸지만 밀려오는 수마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옆에 있어 달라는 말을 하긴 했는데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붙잡은 손의 온기가 안정을 가져다주었다는 것만 느꼈다.

* * *

지승혁은 잠든 조정현을 내려다보았다.

울음소리를 참느라 애를 쓰던 조정현의 떨리던 어깨와 일그러지는 입술, 그리고 멍이 선명한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까지.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울렁거릴 수 있다니 참 희안한 일이었다. 속에서부터 화가 들끓는 것 같기도 하고 애달픈 것 같기도 하고 뭐라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가 없었다.

조정현은 편안하게 고른 숨을 내쉬며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지승혁은 마치 처음 보는 얼굴처럼 가만히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페로몬 때문에 감정을 착각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어요?’

‘저한테 히트 사이클이 오지 않았으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라는, 그런 생각요.’

조정현이 하는 말에 지승혁은 예전 일을 떠올렸다.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조정현은 자신의 히트 사이틀 페로몬 때문에 지승혁이 휩쓸린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아니다.

조정현에게 루어를 던진 건 지승혁이 먼저였다.

그 사실을 조정현에게 밝힌 적은 없지만 한 점의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가진 걸 활용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진 건 아니지만 똑같은 출발 선상 운운하고 가지고 있는 것마저 배제할 정도로 멍청한 것 역시 아니었다.

그런데 조정현은 페로몬과 사랑을 착각한 거면 어떡하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

그 서투른 결벽과 어수룩할 정도로 순진한 점이 너무나 사랑스러웠으나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참기 어려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이 내는 페로몬을 느끼고 공포에 사로잡혀 그만하라고 사정하던 조정현이 떠올라 지승혁은 어금니를 꾸욱 사리물었다.

눈물 때문에 붉어진 조정현의 눈가를 아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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