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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53)화 (53/130)

#53

조정현은 하마터면 그래요, 하고 대답할 뻔했다. 만약 샤워를 한 상태라면 모를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라 샤워를 하면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오늘 하루는 씻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듣기도 했다.

“얼렁뚱땅 넘어가지 마시구요. 얼른요.”

조정현은 지승혁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뭐라고 말해도 넘어가지 않을 거란 걸 알자 지승혁은 아쉬워했다.

“여태까지 잘만 잤는데.”

“그러면 더더 안 돼요. 어차피 하루잖아요. 하루만 자면 또 계속 볼 수 있어요.”

“나 달래 주는 거예요? 정현이랑 나랑 나이가 바뀐 것 같네요.”

픽 웃는 지승혁의 말에 조정현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이마에 살짝 뽀뽀한 후 돌아갈 채비를 했다.

“내일 아침 일찍 올게요. 일어나자마자 바로.”

“네. 조심히 돌아가세요.”

작별인사를 마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지승혁이 돌아가자 병실 안은 온기가 사라진 듯 썰렁하게 느껴졌다.

침대로 돌아가며 나는 발소리마저 무척 크게 느껴졌다. 침대로 돌아간 조정현은 이불을 몸에 덮었다. 사실 지승혁이 돌아가서 제일 아쉬운 건 조정현이었다. 하지만 지승혁이 제 몸보다 작은 침대에서 몸을 구부리고 잘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지승혁을 볼 수 있다.

침대에 누워 뒤척였지만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

조정현은 옆으로 누워 눈을 깜빡였다.

몸이 다 나았기 때문일까. 아플 때에는 통증 때문에 들지 않던 생각이 자꾸만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 발목부터 타고 올라왔다.

페로몬 주사를 맞고 흥분하며 알파를 갈구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상황에서도 성기를 세우고 쾌락을 좇아 허리를 움직였다.

싫다고 느꼈던 머리와 달리 몸은 착실하게 흥분했다.

오로지 페로몬 주사, 그거 하나로 말이다.

아무나 상관없었다. 정말 아무라도 괜찮았다.

목이 타는 것 같은 갈증을 풀어 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괜찮았다.

지승혁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이름도 모르는 상대에게 매달려 허리를 흔들었을 수도 있었다.

지금이야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걸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된 그 끔찍한 느낌.

페로몬으로 흥분된 몸과 사랑을 어떻게 구분을 할 수 있을까.

둘을 착각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히트 사이클 때 자신의 페로몬에 알파인 지승혁의 페로몬이 반응한 것일 수도 있었다.

페로몬 궁합이란 게 좋다면 충분히 그렇게 착각할 수도 있다.

조정현은 그게 무서웠다.

조정현이 지승혁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그저 단순한 페로몬에 의한 장난질이라면? 지승혁이 조정현에게 느끼는 감정이 페로몬 때문이라면?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 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냥 가지 말라고 할 걸 그랬나, 싶은 후회도 잠깐 들었지만 그가 있을 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꼴불견이었다. 지승혁에게 걱정을 끼치는 건 싫었다.

하지만 이 마음도 모두 페로몬의 장난에 놀아나는 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천천히 깜빡거리는 눈에 눈물이 고여 주르륵 옆으로 흘렀다.

가느다란 한숨을 길게 내쉬던 조정현은 어디선가 들리는 핸드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지승혁이었다.

전화를 받기 전 조정현은 기침을 한 번 했다. 울음 때문에 목소리가 이상한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여보세요?”

-나예요. 자고 있었어요?

“어, 아뇨. 도착하셨어요?”

-네. 지금 막 집에 들어와서 전화하는 거예요.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가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지승혁이 함께 있다면 싫은 생각은 전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보고 싶어요.”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말에 조정현은 아차 싶었다.

뭐라 말을 정정하기도 전에 조정현의 상태가 심상찮음을 감지한 지승혁이 물었다.

-……내가 다시 갈까, 정현아?

“아, 아니에요. 여기서 계속 계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쉬셔야죠. 괜찮아요. 아침 되면 볼 수 있잖아요.”

-…….

“그러면, 아침에 좀 일찍 와 주시면, 아니, 안 그러셔도 되니까 오늘은 편하게 쉬세요. 정말로 괜찮아요. 진짜요.”

지승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급해진 조정현이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할 때 즈음, 지승혁이 말했다.

-알겠어요. 내일 일찍 갈 테니까 잠에서 깼다고 투덜거리지 않기예요?

“네, 알겠어요.”

지승혁의 목소리로 듣는 ‘투덜거린다’는 어감이 귀여워 조정현은 조금 웃었다. 잘 자라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은 조정현은 침대에서 내려와 TV를 틀었다. 이것저것 채널을 돌리던 조정현은 시끌벅적하게 소리 내어 웃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나오자 멈추었다. 볼륨을 크게 하지 않아도 적당히 적막을 없앨 정도면 됐다.

조정현은 TV 맞은편의 소파에 무릎을 접은 채 둥글게 몸을 말고 앉았다.

왠지 쉬이 잠들지 못할 것 같은 밤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날의 그 기억이 또 떠오를 것 같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병실 문을 누군가가 노크했다.

조정현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대답을 하려 했으나 한참을 쪼그리고 있던 탓일까. 쥐가 나 우당탕탕 구르고 말았다. 그 소리가 들렸는지 문이 벌컥 열렸다.

“정현아?”

“어, 혀, 형아?”

지승혁이었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조정현에게 급하게 다가왔다.

“……형?”

조정현은 지금 자신이 보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내일 아침 일찍 온다고 했었는데.

“괜찮아요? 아파요? 간호사를 불러야…….”

“아, 아니에요. 쥐, 쥐가 나서. 쥐가 나서 그래요.”

“……쥐요?”

“여기에 좀 오래 쪼그리고 있었더니…….”

조정현이 뜨거워지는 얼굴을 감추며 겨우 답했다. 지승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정현을 번쩍 들어 안았다. 어어, 하고 놀란 조정현이 지승혁을 끌어안았다. 막 들어온 지승혁의 옷에서 바람 냄새가 났다.

“무, 무거울 텐데.”

“하나도요. 그런 얘긴 좀 더 살찌면 얘기해요.”

조정현의 항의를 가볍게 받아넘긴 지승혁이 그를 침대 위에 놓았다.

“TV를 틀어 볼 정도로 심심했으면서 나는 가라고 보냈어요?”

“아, 저건…… ……아니에요.”

“좀 누워요. 잠들 때까지 있을 테니까.”

조정현은 다시 한번 아니라고 거절하려다가 지승혁의 표정이 조금 엄해져 있는 걸 보고 얌전히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편하게 누운 조정현에게 이불을 덮어 준 지승혁은 가만히 조정현의 가슴을 토닥였다.

마치 대여섯 살 어린애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 좀 어색하기도 했다.

괜찮다고 하려는 찰나 조정현의 몸이 움칫 굳었다.

지승혁이 아주 약하게 페로몬을 흘리고 있었다.

굉장히 미약한 정도였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도 느껴 봤던, 극우성 알파의 페로몬이다.

집중 치료실로 들어갈 때 설명 들었던 불안정한 페로몬 치료법의 일환이었다. 페로몬 진정제 투여 이후 안정적인 페로몬 수치를 되찾으려면 아주 약하게, 알파 페로몬을 쐬고 그 양을 조금씩 늘려 가라고 의사가 당부했었다. 그 방법을 현재 보호자로 있는 지승혁에게 말하지 않았을 리도 없었으니 그는 그 말대로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알고는 있는데, 몸이 멋대로 반응했다. 조정현은 안색을 굳히고 상체를 일으켜 몸을 뒤로 물렸다.

지금 느끼는 페로몬이 지승혁의 페로몬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구역질이 자꾸 밀려 올라왔다.

“……정현아?”

“그, 그거, ……그거, 하지 마세요. 제발요.”

눈을 질끈 감은 채 저도 모르게 애원했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 저릴 지경이었다.

조정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페로몬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조심스럽게 눈을 뜬 조정현은 지승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걸 보았다.

“내가 계속 여기 있을까요, 아니면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좋겠어요?”

왜 그 질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는지 알 수 없었다. 조정현은 입술 한 번 꾹 깨물다가 한 손으로 지승혁 옷깃을 잡았다.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었다. 이런 모습까지 보여 놓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죄송해요……. 형이 싫은 건 아닌데…… 그게…….”

“괜찮아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생각을 못 했어요.”

지승혁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조정현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차가운 손에 닿은 지승혁의 손은 평소에도 체온이 높았는데 이제는 뜨겁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지승혁의 체온이 차가운 조정현의 손을 녹여 주었다.

“진짜로 형이 싫은 거 아니에요.”

“알아요. 이제 괜찮아요. 그만 말해도 돼요.”

지승혁은 조정현을 진정시키듯 손을 토닥거렸다. 하지만, 한번 트인 물꼬는 막기 어려웠다.

“아뇨. 말, 말하고 싶어요……!”

조정현은 조심스럽게 지승혁을 올려다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지승혁의 눈에 담긴 건 자신을 향한 걱정이었다. 조정현은 모조리 다 말해도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들 전부를 말해도 그가 다 받아 줄 것 같았다.

듣고 있어요, 하는 나직한 대답이 들려왔다.

“거짓말하는 건 아닌데 그,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그날 기억이 자꾸만, 자꾸만. ……안 하려고 했는데. 계속 떠올라요.”

“누군데요.”

지승혁의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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