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왜 그래요?”
“아뇨. 그,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승혁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지금 와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었지만 마음이 그랬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서 아무렇지 않게 엉망인 얼굴을 보이는 건 저항감이 있었다.
“그런데 왜 얼굴을 가려요.”
지승혁이 다가오며 물었고 조정현은 그를 피해 반걸음 물러섰다.
“지금…… 지금은 안 돼요…….”
조정현이 팔로 얼굴을 가리며 곤란한 듯이 중얼거렸다. 지승혁이 그런 조정현의 팔을 능숙하게 풀어내며 속삭였다.
“왜요? 얼굴 부은 게 신경 쓰여요?”
“…….”
역시 지승혁은 조정현이 왜 이러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조정현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안…… 안 예쁘잖아요…….”
지승혁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제 자기가 예쁘단 말도 할 줄 알고.”
“……아니, 그…… 태준이 형이…… 아까, 그러셨어서…….”
조정현의 말에 지승혁의 심기가 상한 듯했다. 그는 조정현의 턱 아래에 손을 넣어 자신을 보게 했다. 조정현이 내키지 않은 듯 그의 손길을 따랐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지승혁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매번 예쁘다고 했는데?”
“아뇨. 형은…… 형은…… 저어, 늘 그러시잖아요.”
지승혁이 조정현의 입술에 살짝 닿을 뿐인 키스를 했다.
닿자마자 떨어지는 키스가 끝나고 나서야 숨을 제대로 내쉴 수 있었다. 그제야 조정현은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여 지승혁이 이 사실을 눈치채지 않았을까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그는 조금 전과 별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승혁이 작게 치약 맛, 하고 중얼거렸고 조정현의 얼굴이 즉시에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래, 정현아. 나한텐 늘 예쁘게만 보여. 그러니까 가릴 거 없어.”
조정현은 순간 할 말을 잊은 듯 멍하게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어쩜 이렇게 낯부끄러운 얘기를 잘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달콤하고 기분이 좋았다.
지승혁은 조정현을 안아 들고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가만히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기분 좋았다.
“얼굴 아직 아파요?”
“음. 조금요.”
그는 조심스럽게 조정현의 뺨을 어루만졌다. 조금 민망한 느낌에 조정현은 입술을 한 번 말아 물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뺨 맞는 게 아프기도 한데 자존심이 상하더라구요. 기분도 나쁘고요. 차라리 배를 때렸으면…… 아니다. 뺨도 이렇게 아팠는데 배는 더 아팠을 것 같아요. 취소할게요.”
지승혁은 가만히 조정현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많이 무서웠죠. 미안해요. 내가 좀 더 일찍 갔어야 했어요.”
“아, 아니에요.”
조정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찾아오셨어요?”
그의 어깨를 쓰다듬던 지승혁의 손이 잠깐 멈췄다가 이내 움직임을 재개했다. 더없이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손길은 너무나 기분 좋았다.
“정현이를 향한 사랑의 힘이라고 할까요.”
“…….”
생각도 못 한 답을, 너무나 태연하게 내놓는 지승혁의 얼굴을 입을 벌린 채로 쳐다보았다. 너무나 엄청난 대답에 뭐라도 대꾸를 해야 할지 바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입만 뻐끔거리던 조정현의 이마에 지승혁이 입을 맞추었다.
“영 농담은 아니에요. 필사적이었거든요.”
“……죄송해요.”
“그러면 말해 줘요. 아까 정태준이 말한 흥신소 얘기는 뭐예요?”
마치 교환이라도 하듯 날아온 질문에 조정현은 눈을 깜빡였다.
“그, 그러잖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저…… 그, 거기 있던 사람이 저를 보고 입양됐다고 하길래.”
조정현을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 그래서요. 무슨 말인지, 정말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랬어요. 그런 걸 알아다 주는 데는 흥신소밖에 안 떠올라서요.”
“그랬어요?”
조정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아봐 줄까요?”
“네? 어…… 하지만.”
이어진 제안에 조정현은 주저했다. 이런 부탁을 지승혁에게 해도 되는 걸까 싶었다.
여태까지 지승혁이 그에게 해 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 더해 이런 일까지 부탁을 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행동인 것 같았다.
“형에게 받기만 하는 게 너무 죄송해서요.”
“아. 그냥 무료로 해 준다는 얘기는 아니었는데요.”
이어진 말에 조정현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냥 해 준다고 생각한 게 부끄러워졌다.
눈을 한 번 깜빡인 조정현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 아, 네. 뭔데요? 제가 뭐 해 드릴 게 있을까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진 사고의 흐름에 조정현은 얼굴을 붉혔다. 생각해 보니 지승혁이 그냥 해 준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민망한 것과는 별개로 조정현은 지승혁의 말에 반색하며 물어보았다.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뭐든 할게요.”
지승혁은 의욕을 내보이는 조정현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작게 웃었다.
“또 그러네. 내가 뭘 시킬지 알고 그래요.”
“……아…….”
이전에도 같은 지적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정현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 조정현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으로 만지던 지승혁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는가 싶었다.
“그럼 퇴원하고 나랑 같이 밥 먹어 줄래요?”
“밥요?”
지승혁이 나긋한 목소리로 네에, 하고 대답했다.
겨우 그건가, 싶어 김이 샜다.
“그건, 당연히 하려고 했는데. ……정말 그거요?”
다시 한번 확인하듯이 묻자 지승혁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뭔가 좀 더 거창한 게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고작 밥 같이 먹기라니.
내 곁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 함께 있자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같이 밥을 먹어 달라는 부탁.
뭐든 들어준다고 할 때에 할 만한 건 아니었다.
맥이 빠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몽글몽글한 게 가슴속에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울 만한 일이 아닌데 갑자기 이렇게 눈물이 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조정현은 당황해하며 코를 훌쩍였다.
“네, 알겠어요. 근데 그렇게 말하지 않으셔도 형이랑 밥 먹는 건 저도 하고 싶었던 일이에요. 그건 제가 소원 들어드린다고 하기 너무 민망하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거 생각했다가 나중에 말씀해 주세요.”
지승혁의 손이 조정현의 눈가를 가만히 쓸었다. 그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래요?”
“네.”
조정현이 고개를 재빠르게 끄덕였다.
“그러면, 알겠어요. 나중에 무르기 없기예요.”
“당연하죠.”
지승혁의 말을 듣던 조정현이 냉큼 대답하고 웃었다.
얼마간 서로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볍게 일상적인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러다 시간이 되어 나온 석식을 나누어 먹었다. 환자용과 보호자용으로 함께 나온 식판을 받아들고 먹고 있자니 마치 좋은 식당에서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렇게 다르지도 않았다.
단둘만 있는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만 보면 얼추 비슷하기도 했으니까.
“왜 그렇게 웃어요?”
“아, 아뇨. 그냥, 이렇게 둘이 저녁 먹고 있으니까 좋아서요. 한식당 온 것 같지 않아요? 아, 음식 가짓수는 좀 적긴 하지만요.”
지승혁은 젓가락질을 잠시 멈췄다. 조정현은 아직 다 낫지 않아 음식을 씹을 때 아픈 뺨을 조심하며 밥을 먹다가 시선을 느끼고 눈을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지승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그냥, 정현이가 참 씩씩하다 싶어서요.”
“……그거 칭찬이시죠?”
“물론이죠.”
지승혁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되묻자 조정현은 미심쩍게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에 집중했다. 조정현의 속도에 맞춘 듯 지승혁은 그와 비슷하게 식사를 마치고 식판을 내놓았다. 그가 가져다준 미지근한 물을 마신 조정현은 시계를 보다가 병실 안으로 들어온 지승혁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저랑 같이 계셔도 되세요? 바쁘실 텐데.”
“괜찮아요.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가요. 그런 걱정은 우리 정현이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도 자고 갈 생각인데요.”
“어디에서요?”
“따로 방이 있어요.”
지승혁의 말에 조정현은 어디냐고 호기심을 보였다. 그가 말한 곳은 바로 옆방에 마련된 작은 침실이었다. 1인실이라지만 병실인데 방이 여러 개라는 게 놀라웠다. 그러나 그것보다 침대 자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승혁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침대를 보는 조정현에게 말을 걸었다.
“왜요. 같이 자고 싶어요?”
“네? 아, 그야…… 아니. 그게 아니구요. 이거 침대가…….”
조정현은 침대를 한 번 보고 지승혁을 보았다. 확실했다. 일반인이라면 적당하게 사용할 수 있을 법한 사이즈였지만 문제는 지승혁이 일반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는 데에 있었다. 말 그대로 침대가 지승혁의 키보다 작았다. 누우면 아슬아슬하게 발이 조금 바깥으로 나올 것 같았다.
“이런 데서 계속 주무신 거예요?”
“이런 데라뇨. 그래도 꽤 괜찮아요.”
“…….”
조정현은 속상해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형, 집에 가셔서 주무세요. 이러다가 형이 아프시겠어요.”
“내 걱정해 주는 거예요? 괜찮아요.”
“아니, 진짜로요. 형 여기서 주무시는 거 알면서 저 혼자 저 침대에서 어떻게 자요.”
“그럼 같이 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