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50)화 (50/130)

#50

“소요되는 기간이 어느 정도입니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자연적으로 안정되는 걸 기다리신다면 대략 열흘에서 보름 정도이고 약물을 사용하신다면 짧게는 3일에서 일주일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부작용은 장기간 페로몬 안정화가 좀 힘들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나 환자분 같은 경우엔 페로몬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좀 더 리스크가 있고요. 그래도 주변에 지속적으로 페로몬을 교환할 알파가 있다면 그 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보조제 같은 것도 잘 나오니 불편함은 최대한 없으실 겁니다.”

불안정한 기간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의사는 반년 정도라고 답변했다.

“생각이 있으시면 간호사에게 페로몬 진정제의 주의 사항과 동의서를 가져다드리라고 하겠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알겠습니다.”

지승혁에게 설명을 마친 의사가 병실에서 나갔다.

침대 위에 얌전하게 놓인 하얀 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혹여 조정현에게 부담이 갈까 봐 손을 잡지도 못하고 멀거니 보기만 했다. 목 뒤쪽이 뻣뻣하게 굳어 내쉬는 숨이 떨렸다.

* * *

조정현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도 지승혁은 곁에 있었다.

뻑뻑한 눈꺼풀을 들어 올린 조정현와 시선이 마주친 지승혁은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들어요?”

“어……. 네에.”

분명히 지승혁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상태였다. 마지막에 그 끔찍한 통증도 잇달아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건지 지승혁이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어 왔다. 조정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까 일어났을 때와 뭔가 다른 것 같아서 그게 뭘까 짐작을 해 보던 조정현은 그때와 다르게 형광등이 켜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얼른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조정현은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지승혁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형. 저 얼마나 잤어요?”

“5시간 정도요. 아니, 일어나려고 하지 말고 좀 더 누워 있어요. 배는 안 고파요?”

“전 괜찮은데, 형은요……? 그리고, 어, 회사는요? 계속 옆에 계셔 주신 거예요?”

조정현은 침대에서 누운 채로 묻다가 다시 입술을 꼭 다물었다.

“저, 형. 저어, 죄, 죄송…….”

“정현아.”

지승혁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이름을 불렀다. 조정현은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정현이가 미안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잘못한 거 없어요. 그냥 편하게 쉬어요. 괜찮아요. 내가 계속 옆에 있을 거예요.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내 말 알아들어요?”

조용하게 속삭이듯 하는 말에 조정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승혁은 조정현을 탓하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 없이 사라졌는지, 이유가 뭔지, 왜 그랬는지 같은, 조정현이 불편하게 여길 만한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조정현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괜찮은지만을 살피고 있었다.

그를 의심하고 믿지 못한 채 그의 곁을 떠났는데 원망의 말조차 한 조각 없었다. 그저 묵묵히 조정현의 곁을 지켜 주는 지승혁에게 그저 고맙고 미안했다. 그리고 지승혁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고 싶은 한편 무섭고 두려웠다.

이런저런 감정이 뒤섞여 결국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승혁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에, 그와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는 거였다.

“저, 형. 손, 손잡아 주시면 안 될까요?”

“페로몬 착란 상태라 알파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몸에 좋지 않아요.”

지승혁은 조정현의 부탁을 부드럽게 거절했다. 조정현은 제 손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한 번 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지금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형한테서도 페로몬 안 느껴지고…….”

그러나 지승혁은 입꼬리를 조금 올린 채로 가만히 조정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더 이상 조르기도 힘든 분위기가 되었다.

혹시 오메가의 본능만 남은 자신이 사람들과 엉켜 있는 장면을 본 후에 닿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불을 만지작거리던 조정현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차마 그걸 물어볼 수는 없었다. 겁이 났다. 굳이 말을 해서 상기시키는 것보다 아예 말을 안 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정현이가 생각해 봐야 할 게 있어요.”

“네? 뭔데요?”

지승혁은 어디서 났는지 서류 두 개를 조정현에게 건네주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설명을 들으며 종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페로몬 진정제를 맞을 시에 얻을 수 있는 효과와 생길 수 있는 갖가지 부작용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부작용 중에 최악의 경우 사망까지 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서류를 끝까지 읽은 조정현이 지승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마음대로 고를 사안은 아닌 것 같아서.”

“근데…… 저기, 이거, 비용이 얼마예요? 많이 비싼 거 아니에요?”

“그건 정현이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고 싶은 쪽을 골라요.”

“…….”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지승혁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걸로 입씨름을 하는 것도 뭐했기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조정현은 다시 한번 서류를 보았다.

“저 그럼, 진정제 맞을래요.”

거의 바로 답하는 조정현을 지승혁이 물끄러미 봤다.

“제대로 잘 읽고 선택한 거예요?”

“네. 괜찮을 것 같아요. 오래 아플 바에야 차라리 잠깐 아프고 말래요.”

오직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조정현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지승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페로몬 진정제를 맞겠다는 선택을 한 조정현은 지승혁과 떨어져 집중 치료실로 이동하게 됐다.

3일.

조정현이 집중 치료실에서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집중 치료실에 있는 동안 이대로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진통제를 맞아도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너무나 괴로웠다. 피부에 스치는 이불의 감촉이 마치 바늘로 긁어내는 것같이 아팠다. 숨을 쉴 때마다 호흡기가 불에 데는 것처럼 화끈거렸고 극도의 통증에 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기적처럼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통증이 잦아들었다. 빠르게 증상이 나아졌던 건 조정현의 나이 덕분이었다. 세포의 재생이나 순환이 빠른 편인 게 주효했다.

조정현은 환자 이송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동안 지승혁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계속 누워만 있었기 때문일까. 뒤로 지나가는 천장을 쳐다보는 것에도 멀미를 느낀 조정현은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소음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빨리 지승혁이 보고 싶을 뿐이었다.

돌돌돌 굴러가던 환자 이송 침대가 움직임을 멈췄다.

“조정현 환자분. 이동 마쳤습니다.”

병실에 도착한 것 같았다. 조정현은 감았던 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까지 옮겨 주었던 직원은 벌써 나간 모양이었다. 병실에는 지승혁만이 있었다.

“정현아.”

“…….”

조정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승혁을 믿기지 않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기분 탓인지 지승혁이 핼쑥해진 것 같았다. 그는 왠지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다.

조정현이 그에게 손을 뻗었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의 손을 잡았다.

지승혁의 손은 평소와 다르게 차가웠고 땀이 조금 나 축축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가 피하지 않았다. 드디어 지승혁을 만질 수 있었다.

페로몬 때문이라던 말은 정말인 듯했다. 그날 다른 사람들과 얽혀 있던 모습을 보고 더럽게 느껴지냐는 질문을 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조정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무슨 말이야, 그게.”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아픈 건 괜찮았는데 형을 못 만지는 건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기운은 없었지만 웃음이 자꾸만 났다.

“그러니까 이제 안아 주세요, 형.”

지승혁은 조정현이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눈매를 찡그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누워 있는 그를 끌어안았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뺨이나 이마, 머리통에 끊임없이 뽀뽀를 했다. 조정현은 간지러운 감촉에 어깨를 움츠렸지만 지승혁을 끌어안은 팔을 풀지는 않았다.

양팔 안에 가득 들어오는 이 충실한 감촉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알 수 없었다.

지승혁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조정현은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 이 체향. 이 체온. 전부 너무나 그리웠다.

“어, 잠깐요.”

조정현은 지승혁이 입을 맞추려는 걸 피했다. 지승혁이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 이를 안 닦았어요.”

그러고 보니 샤워를 안 한 지 며칠이나 지났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환자복도 갈아입지 않았는데 나쁜 냄새가 나진 않을까 싶은 걱정이 뒤늦게 들었다.

“괜찮아요.”

지승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입을 들이댔으나 조정현이 도리질 쳤다.

“제가 안 괜찮아요.”

급기야 키스를 하지 못하게 손으로 입을 가리자 지승혁은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물러났다.

“실례합니다. 조정현 환자분 맞으시죠.”

병실 안으로 간호사가 들어왔다. 간호사는 몸 상태 등을 확인하며 조정현에게 연결되어 있던 것들을 전부 제거했다. 몸에 연결되어 있던 소변줄을 제거할 때 조정현은 민망해서 벽을 쳐다보다가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내일 아침 회진 때까지 상태를 좀 보실게요. 고막 천공은 일단 패치술을 실행했는데 그것도 내일 함께 검진하실 거예요. 혹시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더 이야기한 간호사가 병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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