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조정현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고 몇 번 더 헛구역질을 했다. 벌린 입으로 침만 줄줄 흘렸다.
통증이 끔찍했다. 왜 이렇게 아픈 건지, 왜 지금 침대에 누워 있는지, 지승혁은 왜 저렇게 걱정스럽게 쳐다보는지 얼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손을 움직이자 링거와 연결된 줄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제야 자신이 병원의 이름이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신히 구역질이 잦아든 조정현은 따끔거리는 목을 한 손으로 누르며 지승혁을 보았다. 그는 조정현을 토닥이려다가 손을 멈칫하고 내렸다.
“정신 들어요? 지금 여긴 병원이고. 하루 내도록 정신을 잃고 있었어요.”
그는 조정현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조정현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으로 눈앞의 남자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저, 부모님이 빚 다 갚으셔서, 형, 아니 사장님이 저를, 아, 직원분이, 그래서 나왔는데……?”
자기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인 말을 중얼거렸다. 최악이다. 지승혁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거다. 조정현은 다시 한번 제대로 설명하려 했으나 지승혁이 조용히 제지했다.
“정현아, 그 사람들은 빚을 갚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너와 헤어질 생각도 없고. 무슨 말을 들었던 전부 거짓말이야.”
“……으에?”
멍청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정현은 그대로 조각이 된 듯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니, 하지만…… 직원분이, 형이 그러셨다고…….”
“정현이가 들었던 말 중에 어느 하나라도 나한테 직접 들은 게 있어요?”
“……아뇨.”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혼란스러운 상태로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건 실제로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건 지승혁이었다. 하물며 직접 그 장소까지 자신을 찾으러 왔었다.
모든 말을 배제하고 오로지 드러난 사실만 생각한다면 지승혁은 자신을 놓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제 바보 같은 행동 때문에 지승혁이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들게 했다.
세상에. 말도 안 돼. 너무나 부끄러웠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했던 건지 창피했다.
이대로 땅으로 꺼져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던 일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돈을 받고 자신을 노인에게 넘겼던 일.
자신을 찾아온 거라 여겼던 부모님은 결국 돈과 저를 맞바꾸었다. 그때 느꼈던 절망감이 새삼스럽게 밀려들어 왔다.
처음 지승혁을 만났던 계기도 그들이 조정현에게 모든 짐을 넘기고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을 버렸다는 실감은 잘 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끌려가든 말든 지폐를 세던 모습이 눈을 감아도 떠올랐다.
부모님이 나를 버렸다.
그 사실이 아플 정도로 생생하게 실감이 났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빠르게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그 노인이 이상한 말을 했었다.
입양을 했다고.
그건 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당시에는 제대로 물어볼 상황도 아니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을 흘긋 쳐다보았다. 지승혁에게 알아볼 방법이 없는지 상의하면 안 될까, 싶은 유혹이 들었으나 이 상황에서 면목도 없이 그럴 수는 없었다.
노인이 잘못 알았을 가능성은 없을까. 하지만 잘못 알 이유가 없다. 일부러 누군가가 말해 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저걸 입양한 이유가 그거였으니 더 볼 일이 없긴 하겠지.’
노인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애초에 조정현이 입양아든 뭐든 그 노인의 관심 범위도 아니었을 거다. 그래. 노인은 그저 저를 괴롭히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조정현의 머릿속에 다른 일이 꼬리를 물고 모습을 드러냈다.
페로몬으로 발정이 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헉헉거리던 모습이.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승혁이 제게 정나미가 떨어졌을까 무서웠다. 조정현이 입술을 깨물고 지승혁에게서 조금이나마 떨어지려 했지만 어차피 침대 위에서는 뭘 하든 헛수고였다.
“보, 보셨어요?”
“뭘요?”
“그, 저, 거기서 있던, 그…… 보셨어요?”
성욕에 몸이 달아 그 끔찍한 상황에서도 허리를 흔들었다.
페로몬에 휘둘려 짐승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당연히 학을 뗐을 터다. 이대로 녹아서 없어져 버리고 싶다는 부질없는 바람이 덩치를 키워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지승혁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정현의 손에서 이불이 구겨졌다.
급격한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은 걸까. 잦아들었던 구역감이 다시 한번 밀려들었다.
“……욱.”
또다시 속이 뒤집혔다. 내장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에 몸을 뒤틀었다. 손으로 입을 가렸으나 욱욱거리는 소리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너무나 아파 절로 눈물이 흘렀다.
어느 틈에 부른 건지 병실 안으로 간호사가 급하게 들어왔다. 연결된 줄을 잡고 뭔가를 하는가 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전신에서 힘이 빠지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몸속에 들끓던 통증도 어느 순간 느껴지지 않았다.
* * *
진정제를 투여하자 조용히 잠든 조정현을 내려다보던 지승혁의 턱이 꿈틀거렸다.
하얀 얼굴의 한쪽 뺨은 검붉어져 원래 얼굴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었다. 통증에 진땀을 흘리는 조정현의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떼어 주었다.
조정현은 고막이 파열될 정도로 폭행을 당했다.
관절이 도드라질 정도로 꽉 쥔 주먹이 떨렸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조정현은 데리고 병원으로 온 후로는 어떤 보고도 받지 않았다. 간간이 오는 문자로만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뿐이었다.
정태준과 직원들이 잘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조정현의 곁을 지켰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담당 의사는 조정현을 보자마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안색을 굳혔다. 지승혁은 경찰에 신고하려는 의사에게 뒷감당은 자신이 할 테니 놔두라고 하며 봉투를 건넸다. 그 안을 확인한 의사는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품 안에 봉투를 넣고 이것저것 검사를 시작했다.
약물 형태로 인체에 주입된 오메가 페로몬과 인공 알파 페로몬이 충돌해 그나마 안정이 되어가던 페로몬에 영향을 주어 아주 위험할 뻔했으나, 다행히 이전에 교류했던 지승혁의 페로몬이 다른 페로몬들을 밀어내 고비는 넘겼다는 설명을 들었다. 의사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에 따른 후유증이 높은 확률로 있다는 말을 조심스레 덧붙였다.
몸에 여러 가지 장치를 연결한 채 누워 있는 조정현을 본 지승혁은 눈이 돌아간다는 게 이런 건가 하는 걸 생생히 느꼈다. 처음엔 보호자의 입회도 거절당했으나 심상찮은 지승혁의 상태를 본 의사가 겨우 곁에 있는 걸 허락했다.
의사는 불안정한 상태이니 지승혁의 페로몬에도 위험할 수 있다는 주의를 단단히 하는 걸 잊지 않았다.
파리한 안색으로 입술에 핏기도 없이 누워 있는 조정현을 하염없이 바라만 봤었다.
너무 곤히 잠들어 설마 죽은 게 아닌가 싶어 조정현의 코 아래에 손을 대어 확인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혹시나 페로몬이 흘러나올까 봐 만지는 것도 저어되었다.
조정현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까 불안해 몇 번이고 자신의 페로몬 상태를 확인했다.
그저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는 조정현을 보던 그 시간은 차라리 지옥이었다.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조정현 씨 보호자분 되시죠.”
“네.”
1인실 안으로 들어온 의사가 차트를 살펴보다가 말했다.
“약물을 투여해서 급한 불은 껐습니다. 페로몬 수치들은 거의 안정됐고요. 그런데 페로몬 쇼크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페로몬이 제대로 안정을 찾는 데에 조금 시간은 걸릴 것 같네요.”
“언제쯤 괜찮아지는 겁니까.”
“아, 그게 뭐라고 단정 지어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조정현 씨에게 투여된 오메가 페로몬이 우성 오메가용 페로몬이라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흡입하셨던 알파 페로몬도 인위적인 데다 강도가 좀 센 거였고요. 다행히 극우성 알파 페로몬이 바로 투여되어서 더 큰 피해를 막았습니다만 과잉 페로몬 공급과 페로몬 충돌로 인한 후유증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구역감이나 오심이 있을 수 있어요.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진통제 투여 정도입니다. 페로몬 진정제를 쓰기엔 지금 조정현 씨 페로몬 상태가 좋지가 않아서요. 페로몬이 자연적으로 안정을 찾는 게 제일 좋습니다만 환자분께서 동의를 하신다면 페로몬 진정제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몸에 부담은 어느 정도입니까.”
“음…….”
의사는 지승혁을 보던 시선을 옆으로 돌려 두어 번 눈을 깜빡거렸다.
“요새는 페로몬 진정제가 워낙 잘 나와서 부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통증이 약한 대신 길게 가지고 가느냐, 강한 대신 짧게 끝내느냐의 문제죠. 선택은 환자분이 하시는 거고요. 물론 너무 힘들어하실 경우에는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할 수도 있습니다.”
“약하게? 지금 이렇게 힘들어하는 게 말입니까.”
“아, 그건…… 비교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의사가 조금 당황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지승혁은 다시 한번 이를 사리물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그게 약한 거라면 강한 정도의 통증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는 원래 무언가를 두고 고민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원하는 게 명쾌했고 주저함이 없었다. 지승혁은 입술을 한 번 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