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내부에 가득 찬 알파 페로몬을 미루어 봤을 때 조정현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꾹 눌러 참았다. 차라리 잘된 것일 수도 있었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정현은 모르는 편이 더 나았다.
지승혁은 숨을 들이마시고 빠르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경호원은 둘.
밖에 있던 넷을 제외하면 상당히 작은 인원으로 움직였다. 하기야 이런 일을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곤란할 테니 인원은 최소한으로 움직이는 게 합리적이긴 했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지승혁은 빠르게 우철곤 쪽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지승혁의 등장에 조정현의 몸을 탐하던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지승혁은 가장 먼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경호원 한 명을 상대했다. 그는 경호원이 휘두르는 톤파를 간단히 피하며 복부에 나이프를 찔러 넣기를 반복했다. 복부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경호원의 앞섬이 불룩했다. 지승혁은 그런 경호원을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한재범이 어디 갔어? 남은 놈들은?!”
우철곤에게 도달하기까지 한 걸음 남겨 둔 상황에서 경호원 한 명이 지승혁을 공격했다.
지승혁은 3단 봉을 휘두르는 경호원의 손을 붙잡아 겨드랑이에 끼워 고정한 채로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로 남자의 팔을 두 번 그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경호원의 복부에 나이프를 꽂아 넣고 손잡이를 돌렸다. 갈비뼈에 닿아 절걱거렸지만 힘주어 비틀자 뼈가 부서지며 빠각 하는 소리가 났다.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경호원의 몸에서 나이프를 꺼낸 지승혁은 그걸 그대로 우철곤에게 겨누었다.
우철곤은 피 묻은 나이프를 보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너, 너, 지가 놈이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지승혁이 누구인지를 추측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철곤은 확실히 머리 굴리는 게 비상했다.
지승혁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우철곤은 번들거리는 뱀의 눈동자를 굴리며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듯 입을 열었다.
“저, 저 물건 때문에 왔나? 그럼 가지고 가. 내가 아무 문제도 삼지 않을 테니. 그래, 친교의 선물로 침세. 어때……?”
이마와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상태로 혀를 놀리는 게 일품이었다. 하기야 그러니 5선이나 해 먹었겠지만.
“선물?”
지승혁의 질문에 우철곤은 옳다구나 하고 기회를 잡았다.
“그, 그래. 선물이지. 앞으로 우리 자주 얼굴을 보게 될 것 같은데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물론 자네가 벌인 사소한 문제가 한두 가지 있지만 그 정도야 내가 어떻게든 커버를 하지. 장기적으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음? 어떤가.”
지승혁은 가만히 우철곤을 쳐다보았다.
교활한 꾀를 부리는 눈꼬리가 씰룩였다. 대답하지 않는 지승혁의 태도를 뭐라고 이해한 건지 우철곤이 소리 내어 크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 이거 참, 말이 잘 통해서- 끄아악!”
지승혁이 들고 있던 나이프가 우철곤의 손을 꿰뚫고 소파에 박혔다. 지승혁은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우철곤의 머리채를 꽉 잡아 고정하고 나직이 말했다.
“내가 가진 적이 없는 걸 줘야 선물이지. 임자 있는 애를 데리고 가는 새끼는 도둑놈이라고 하고.”
“이, 이 새끼, 네가 지금 누구한테 이러는 줄 알아? 너, 너 이 쌍스러운 새끼. 악, 아악!!”
지승혁은 우철곤의 손에 박힌 나이프를 꺼내 칼날을 살짝 틀어 다시 한번 같은 곳을 뚫었다. 우철곤의 입에서 마치 돼지 같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지승혁은 그런 우철곤을 무시한 채 혐오스럽게 알파 페로몬을 뿜어내는 장치를 껐다. 그리고 조정현이 누워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있던 조정현은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듣자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더욱 전신을 떨었다.
“흐으, 하지, 하지 마, 오지 마, ……아, 나 좀 어떻게 좀……. 으흑.”
조정현은 지승혁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상태로 벌벌 떨며 빌었다. 지승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 그 손길에도 조정현은 히익, 하고 질색하며 기겁하는 듯하다가 그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할딱거리는 숨소리를 내뱉으며 지승혁을 향해 팔을 뻗었다.
“흑…… 흐으, 아, 제발, 아아. 아, 나 좀 어떻게, 아읏…….”
조정현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허리를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것에 지승혁은 그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정현아.”
순간 조정현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혀, 형……? 승혁이 형?”
“…….”
상대가 지승혁임을 알게 된 조정현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조정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려던 지승혁의 손이 멈칫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랑스러운 얼굴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지승혁의 시선을 끈 것은 검붉게 되어 부어 있는 뺨이었다.
그의 시선에 조정현은 몸을 뒤로 조금 빼다가 이내 강하게 지승혁에게 매달렸다.
“형아. 형…….”
“응, 그래요. 나야. 이제 괜찮아요.”
조정현이 지승혁의 손을 잡아끌어 제 중심에 가져다 댔다. 끙끙거리며 허리를 움직이면서도 그런 제 모습이 괴로운 듯 또 한 번 눈물을 펑펑 쏟고 마는 모습에 지승혁은 이를 뿌득 갈았다.
“죄송, 죄송해요. 하아, 근데, 앗, 아으…….”
조정현이 몸을 떨며 파정했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하얗게 튼 입술로 헐떡이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조정현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이 애처롭고 안쓰러웠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시커먼 분노가 머릿속을 채워 갔다.
이 와중에도 우철곤의 꽥꽥거리는 소리는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네 놈, 네 놈. 이 새끼, 나한테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으냐! 네가 운영하는 업체고 네 애비고 한꺼번에 묶어서 처박아 버릴 줄 알아!”
지승혁이 우철곤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밖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정태준이었다.
“화려하게 또 한판 하셨네.”
지승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환기를 시키지 않아 내부에 아직 쌓여 있는 알파 페로몬에 정태준은 미간을 찡그리며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정현 씨는. 괜찮아?”
“난 바로 데리고 갈 테니까 뒤처리는…….”
품에 안아 들었던 조정현의 몸이 발작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눈이 허옇게 뒤집혀서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구토를 한 조정현의 몸에서 힘이 빠지며 사지를 늘어뜨렸다.
“정현아? 정현아!”
지승혁이 그의 몸을 흔들며 이름을 불렀지만 조정현은 대답이 없었다. 하얀 나신이 힘없이 흔들릴 뿐이었다. 놀란 지승혁이 우선 조정현을 바닥에 내려놓자 정태준이 한걸음에 달려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정태준이 나직이 혀를 찼다.
“네 페로몬 내보내. 빨리.”
“뭐?”
“진하고 많을수록 좋아. 이대로 있다간 페로몬 쇼크 와. 그러면 더 좆같아 지니까 빨리.”
토사물이 기도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정현의 고개를 옆으로 돌린 정태준이 하는 말에 지승혁은 더 물어보지 않고 조정현에게 페로몬을 흘려보냈다.
페로몬이라는 건 성교를 제외하고는 특정인에게만 보낼 수 없다. 많은 양의 페로몬을 한꺼번에 공기 중에 풀어 내보내는 거라 오메가인 정태준에게는 역하게 느껴졌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입술을 깨물며 조정현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숫제 시퍼렇게 보이던 조정현의 얼굴에 천천히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발작적으로 하던 호흡도 규칙적으로 변했다.
조정현이 왜 이렇게 발작을 하는지 그 원인은 굳이 따로 찾지 않아도 눈앞에 있었다. 꽉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지승혁 너 돌아 버린 건 알겠는데 정현 씨 우선 병원으로 보낸 다음에 삽질을 하든가 해. 페로몬 쇼크 직전에 멈춘 거라 저대로 두면 위험하니까.”
정태준의 냉정한 목소리가 지승혁을 막았다. 의사도 아닌 정태준이 어째서 이런 걸 알고 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지승혁은 조정현을 다시 안아 들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축 처진 몸이 말할 수 없이 안쓰러웠다.
“전부.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상자에 보관해 둬.”
“오케이.”
정태준에게 지시를 내린 지승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차에 올랐다.
* * *
몸 안에 뜨거운 물이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절절 끓는 곳에 몸을 담근 것 같기도 했다. 뜨겁고 더웠고 괴로웠다. 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무언가가 내장을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조정현은 눈을 떴다.
“……웁, 우웩.”
구역질을 하며 몸을 일으킨 조정현이 나오지도 않는 것을 토해 내려 애를 썼다. 입을 벌리니 뺨이 당기듯 아팠다. 시야에 이불이 들어오자 이 상황에서도 화장실에 가서 토해야 하는데, 따위의 생각이 드는 게 좀 우스웠다. 조정현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려 애를 썼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현아. 여기 토해. 괜찮아.”
큰 손 두 개가 입 아래에 받쳐 들 듯 들어왔다.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괴로운 상황에서 조정현이 시선을 움직여 상대를 쳐다보았다. 지승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