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조정현은 마치 스스로 다짐을 하듯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러나 마음을 먹은 것과는 다르게 자꾸만 눈가가 시큰하게 달아올라 작게 헛기침을 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크게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내쉬기를 반복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님이 그 큰 빚을 갚고 자신을 찾아와 주었다는 사실보다, 부모님과 함께 돌아간다는 것보다 지승혁이 자신을 내보냈다는 사실에 연연하고 있는 게 죄송스러웠다.
이러면 안 된다.
정신을 차린 조정현이 손만 쳐다보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가슴이 조이듯 답답한 걸 애써 무시하려 노력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기에 그것도 무색해졌다. 하지만 계속 그것만 신경 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 입을 달싹이던 조정현은 창밖 풍경을 보고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꽤 한참을 달린 것 같았는데도 계속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도심에서 벗어난 곳인 듯 인적이 드문 곳으로 접어들었다. 인적이 드문 정도가 아니라 나무들이 많은 산길이었다. 이런 곳에 온 것도 모를 정도였다니. 정신을 놓고 있어도 한참 빼놓고 있던 모양이었다.
차는 이윽고 비포장도로에 진입했다.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차에서 눈치를 살피던 조정현은 닫았던 입을 열었다.
“저, 어, 어머니. 여기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새집으로 가는 중인가요?”
적막한 차 안에서 조정현의 말을 듣던 어머니가 고개를 조금 뒤로 하는 듯하더니 이내 정면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널 잘 돌봐 주실 분이 계셔. 좋은 분이니까 기분 상하지 않게 고분고분 말씀 잘 듣고.”
“……네?”
차는 잘 손질된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목적지는 하얀 벽으로 된 2층 정도의 건물인 듯했다.
차가 부드럽게 멈춰 서고 부모님이 내렸다. 하지만 조정현은 그런 부모님을 차 안에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조정현에게 빨리 내리라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문밖에서 무언가를 두런거리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건물에서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부모님이 순간 자세를 바로 하며 사내를 향해 굽신거렸다.
부모님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하던 사내가 그들에게 두툼한 흰 봉투를 건넸다. 그 후 사내는 망설임 없이 차 문을 벌컥 열었다. 숲의 내음이 훅 밀려들어 왔다. 눈을 크게 뜨고 몸을 굳힌 조정현에게 그가 말했다.
“내려.”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여서 제대로 알아듣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3초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조정현은 그가 했던 말이 ‘내려.’ 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정현이 뭐라고 대답을 하려 입을 달싹였을 때였다.
“……아!”
조정현은 강한 힘으로 차에서 끌어 내려졌다. 머리카락이 뽑히는 듯한 아픔은 그다음에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쿵, 하고 무릎이 땅바닥에 한 번 찍혔으나 아파할 겨를도 없이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갔다. 발버둥을 친 자국이 흙바닥에 새겨졌다.
“어, 어머니, 아버지, 도, 도와…….”
조정현은 이곳에서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존재인 부모님을 쳐다보았으나 그들은 이미 관심을 끈 채 봉투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 번 조정현 쪽을 쳐다본 듯했으나 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 아버지는 봉투 안에서 누런 지폐를 꺼내 세어 보기 시작했다.
그 장면이 망막에 새기듯 박혔다.
그들의 행동으로 지금 상황이 전부 설명됐다.
그 둘은, 부모님은, 적어도 조정현이 생각했던 것처럼 가족의 정으로 그를 찾은 게 아니었다.
부모님마저 자신을 떠나려 한다.
깜깜한 절벽 위에서 추락하는 것 같은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에게 뭐라도 물어봐야 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 봐야 했다.
“으, 으윽. 놓, 놔주세요……!”
“어허, 이제 와서 펄떡거리네.”
“악!”
조정현이 머리채를 움켜쥔 남자의 손을 벗어나려고 손톱으로 긁으며 저항하자 남자가 끌끌거렸다. 그리고 조정현의 머리를 쥔 아귀에 힘을 쥔 채 좌우로 거칠게 흔들었다. 우두둑, 머리카락이 뽑히는 감각이 났지만 남자의 손은 변함없이 조정현의 머리채를 쥐고 있었다.
조정현은 그 상태에서도 팔다리를 버둥거렸고 남자는 뭔가를 구시렁거리더니 팔을 들어 올렸다. 마치 밭에서 뽑히는 무처럼 어마어마한 힘에 몸이 들린 조정현은 체중이 실린 두피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의 다른 손이 조정현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우악스러운 손길은 숨통을 조였고 조정현은 이대로 죽는다는 본능적인 공포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남자의 손을 떼어 내려 했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양손으로 남자의 팔을 할퀴고 잡아 뜯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자 사지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시야가 가물거려 왔다.
“번잡스럽게 굴지 말자고. 상품에 기스 나면 의원님이 싫어하거든.”
분명 바로 앞에서 말하는 걸 텐데도 남자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가 까맣게 바뀌었다가 간신히 제대로 돌아왔다. 조정현은 현기증이라도 난 듯 정신이 없어 눈을 감았다가 강하게 치떠 보았으나 별 차도는 없었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주변 풍경이 조금씩 바뀌었다. 잠깐이지만 그사이 몇 번이고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목을 쥐고 있던 손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잠시 후에야 깨달았다.
조정현이 갑작스러운 폭행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느라 늘어진 것이 한결 편했는지 남자는 그대로 그를 질질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 가죽이 벗겨지는 것 같은 통증에 찔끔 눈물이 나왔지만 입술로 흘러나오는 건 끙끙거리는 신음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남자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도 채 벗지 못한 채 안으로 끌려 들어간 조정현은 흔들리는 시야에 멀미를 느끼며 뒤늦게 버둥거렸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남자의 억센 손이 조정현의 머리를 놓았다. 뜯긴 머리카락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데려왔습니다, 의원님.”
“음.”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한 조정현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상당히 넓은 거실처럼 보였지만 거울이 쫙 붙어 있는 한쪽 벽면은 일상적이지 않았다.
“그쪽은 어떻게 됐어?”
“돈 받아든 것만 확인했는데 떠났는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음, 뭐 저걸 입양한 이유가 그거였으니 더 볼 일이 없긴 하겠지. 됐네.”
입양?
입양이라니.
조정현은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흰머리가 가득했지만 건장해 보이는 노인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정확히는 남자 넷과 여자 둘이었다.
조금 전에 한 이야기가 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입양……요?”
저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왔다. 하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진실이 머리를 후려갈긴 것처럼 조정현은 정신이 얼얼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노인이 눈짓하자 남자가 조정현의 목덜미를 잡고 개처럼 끌고 그 앞으로 데려갔다. 인정사정없이 목덜미를 쥐는 힘에 조정현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 윽.”
노인의 눈이 몸을 버둥거리는 조정현의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노인이 조정현의 턱 아래에 손을 넣고 고개를 들게 했으나 그는 얼른 얼굴을 옆으로 비켜 그 손을 털어 냈다.
노인이 표정에 변화 없이 팔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다음 순간 귀 옆에서 빠악,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조정현은 제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뺨에서 작열감이 느껴진 건 직후였다. 귀에서 삐이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가 이내 멍해졌다.
“오메가는 또 오랜만이네. 요새는 또 찾기가 힘들어. 형질 차별 금지법 같은 쓰레기 법도 통과가 되어서 말이지. 어디 보자, 음, 열성이라고. 생긴 건 아주 반반하구만. 조 사장이 히트 사이클을 아직 한 번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했다는 어필을 그렇게 하던데 확인 좀 한번 해 봐야겠어.”
노인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평연했다.
그가 손짓하자 어딘가에서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작은 가방이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조정현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무릎으로 상체를 지그시 눌렀다. 몸통이 강한 힘으로 뒤에서부터 짓눌리니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중년 남자는 상자에서 주사기와 앰플을 꺼냈다.
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결코 조정현에게 좋은 건 아닐 터였다. 턱이 바닥에 눌려 아팠다.
“싫, 왜 왜 이러세요. 하지, 하지 말, 흐윽.”
“네 부모에게 지불한 금액이 얼마인데. 그 값은 해야지.”
노인이 평연한 어조로 타이르듯 말했다. 주변에 있던 사내들이 달려들어 버둥거리는 조정현의 팔 하나를 잡아 고정했다. 강한 힘으로 눌리자 아예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된 조정현은 뭔지도 모르는 걸 하지 말아 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조정현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가득 약을 넣은 가느다란 주사의 바늘이 조정현의 팔을 뚫었다.
“싫어, 하지 마. 하지 마, 으, 으윽.”
팔에 약물이 들어오는 시큰한 감각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