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45)화 (45/130)

#45

“죄,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당장…….”

“됐습니다.”

여기서 말다툼을 하는 것도 시간 낭비였다.

운전사인 김성채에게 연락해 차를 준비시키라고 한 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조정현의 핸드폰에 연락을 해 보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초조하게 혀를 찬 지승혁은 아랫입술을 씹고 준비되어 있던 차에 올라타 바로 집으로 가자고 했고 김성채는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다시 한번 조정현에게 전화를 걸려던 지승혁은 시트 등받이에 머리를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들이박았다.

조정현은 전화는 받지 않는다.

계속해도 받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이 행위는 불필요한 거다.

멍청이처럼 머리가 굳었다. 지승혁은 한숨을 내쉰 후 능숙한 손놀림으로 핸드폰 화면을 이리저리 눌렀다. 화면을 응시하던 지승혁은 한결 냉정해진 얼굴로 정태준에게 전화했다.

-이영선은? 있어?

“누구야.”

-뭐?

정태준은 지승혁의 질문이 무얼 의미하는지 빠르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정태준이 입을 열었다.

-누가 네 뒤를 캐고 다녔는지 나왔어. 중간에 얽힌 것도 골때리고 끝에 있는 건 더 골때려.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이영선은 중간다리야. 정현 씨 양부모랑 연결된. 끝에 있는 게 5선 국회의원 우철곤이고.

“우철곤?”

지승혁이 미간을 꿈틀거렸다.

우철곤의 이름이면 지승혁도 들은 바가 있었다.

“……그 새끼가 얽혀 있어?”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낮아졌다.

이 일에 몸담고 있다 보면 좋으나 싫으나 이런저런 정보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런 지승혁의 귀에 들어온 우철곤의 전적은 제법 화려했다.

우철곤은 베타였다. 그리고 국회엔 베타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알파와 오메가들의 비율이 80%에 달했다. 그런 곳에서 이런저런 일에 치이면서도 5선을 달성한 수완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베타인 그에게 있어 순탄한 길은 아니었음이 분명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은밀스럽고 추악한 취향이 하나 있었다.

손등에 관절이 희게 도드라졌다. 조정현을 떠올리자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정태준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래. 외제 차로 받은 새끼도 연결되어 있어. 관리가 잘된 새 차인데 속도도 줄이지 않고 들이박은 게 이상해서 파 보니까 차 할부금 때문에 사채까지 끌어쓴 놈이더라. 우철곤, 그 인간이 뒤가 구린 게 좀 있긴 한데 이렇게까지 세팅을 할 수 있는지는 좀 더 파 봐야 할 것 같아. 협력해 준 인간이 더 있을 수도 있고.

정태준이 저렇게 말하는 건 뭔가가 더 있다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조영웅 내외가 조정현을 입양한 건 오로지 그가 열성 오메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베테랑인 정태준이 찾기 어려울 정도로 조영웅 내외는 자취를 잘 감추고 다녔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철곤이 있다면 모든 일이 설명 가능했다.

그 대가가 뭔지는 굳이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우철곤만 이 일에 개입한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기엔 너무나 일 처리가 깔끔했다.

지승혁의 부하인 이영선을 끌어들여 일은 쉽게 진행하게 해 준 사람.

“…….”

우철곤의 조력자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모든 감각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거의 직관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만약 지승혁이 예상하는 바가 맞는다면.

지승혁은 분노로 눈알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그런데 정현 씨 어디로 간 건지 알려면 30분 정도는 걸릴 텐데.

“알아.”

-뭐?

“안다고.”

정태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너 설마…… 핸드폰에 위치추적 심어 놨냐? 정현 씨는 알아?

“그럴 리가. 행여나 정현이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마. 놀랄 테니까.”

-……미친놈 아냐, 진짜.

정태준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한결 긴장이 풀어져 있었다.

“찍어 주는 주소로 애들 데리고 와.”

-알겠어. 먼저 들어가지 말고 기다려.

“내 걱정하나?”

-누구? 널 걱정하겠냐. 상대방 걱정이지.

정태준이 시답잖은 말을 한다는 듯 대꾸했고 지승혁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통화를 끝냈다. 조정현의 위치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찾는 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찾는 시간 동안 조정현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거였다.

허벅지 위에 올려 둔 손에 불끈 힘줄이 돋아났다.

초조함과 분노로 머리가 들끓었다.

지승혁은 입속으로 욕을 뇌까렸다.

* * *

조정현은 뒷좌석에 바르게 앉은 채로 멍하게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승혁의 부하 직원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다가 심장이 지끈거리는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이영선이 왔을 때의 일이 싫어도 떠올랐다.

‘혀, 아니. 사장님이…… 승인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영선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냥 순순히 수긍할 문제 역시 아니었다. 조정현은 핸드폰을 들어 지승혁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이영선이 그의 핸드폰을 아래로 내리며 제지했다.

‘사장님께서는 번거로운 일을 질색하십니다. 제가 여기 온 거로도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합니다. 즉시 집을 비워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영선의 손에 들린 건 이곳의 출입 키였다. 지승혁이 내준 게 아니라면 이영선이 들고 있을 리가 없었다.

조정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쥔 손에 땀이 나 자꾸만 미끄러졌다. 쿵덕거리는 심장 소리가 시끄럽게 커져만 갔다.

심장이 으깨지는 듯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장을 잘게 찢는 것 같았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맞은 것도 아닌데 참 이상했다. 조정현은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아픔을 그저 참아 내기에 바빴고 다른 이들은 그런 그를 잡아끌었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 틈엔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그들과 함께 차를 탄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이다.

지승혁은 세상일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제 모습이 좋다고 했지만 현재는 전혀,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멍할 뿐이었다.

꿈일까 싶은 부질없는 생각에 손가락 끝을 손톱으로 꾹꾹 눌러 보았다. 아팠다.

하긴, 꿈일 리가 없다.

조정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작은 발들이 가슴을, 심장을 자근자근 밟아 대는 것 같았다. 숨을 쉬지 않으면 좀 괜찮아질까 시도해 봤지만 헛수고였다. 가만히 있어도 창으로 찔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실제로 폭행을 당한 건 없었는데도 이렇게나 아팠다.

눈을 감으면 지승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자신을 데려가라고 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머릿속에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힘들었다.

그와 나누었던 대화들, 따뜻한 체온이 아직 이렇게 생생한데.

조정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상상하지 말자.

원망하지 말자.

적어도 지승혁은 조정현과 지내는 동안은 그에게 잘 대해 주었다. 상냥했고 따뜻했다. 함께 식사도 했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를 토닥여 주었다. 그 시간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여기고 싶었다. 그것마저 거짓이라고 결론 내린다면 스스로가 너무 안됐다.

지승혁이 무슨 생각으로 조정현을 집으로 들였는지는 이제 와서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든 간에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거면 된 거다.

그때 느낀 자신의 감정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면, 된 게 아닌가.

지승혁과 함께 지내면서 누군가와 밥을 먹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요리를 한다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는 보람을 알게 됐다. 지승혁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평생 가도 몰랐을 감정들이다. 하지만 지승혁 덕분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고마워해야 했다.

그래, 그게 맞다.

지금 이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슬퍼할 일은 없다.

지승혁이 자신을 집에 데리고 가 준 덕분에 험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됐었다. 호화로운 집에서 편안하게 누워 추위에 떨지 않고 배도 곪지 않고 그저 지승혁이 오기를 기다리는 생활을 했다. 비정상적으로 페로몬이 쌓여 큰일 났을 뻔했던 일도 지승혁 덕분에 정상이 되었다.

그 모든 게 지승혁이 조정현을 집에 들여 주었던 덕분이다.

짧게나마 행복했고 기뻤고 달콤한 순간들이었다.

나쁘게만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나쁜 상황이지만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평생에 가도 못 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을 지승혁 덕분에 해 본 게 아닌가.

지승혁은 나쁘지 않다.

그는 그저 자기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약간의 친절을 조정현에게 베풀어 줬을 뿐이다. 마음만 먹었다면 지승혁은 조정현을 험한 일에 내몰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마음대로 잠을 자기는커녕 고된 노동에 제대로 눕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된 게 어디인가.

그러니 괜찮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곁에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가. 두 분 모두 조정현을 찾아와 주었다.

모두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내면 된다.

그 사실에 감사하면, 그걸로 된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갖지 말고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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