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43)화 (43/130)

#43

“어…… 형아랑 계속 같이 있고 싶고, 잘, 잘 때도 같이 자고 싶고, 또, 밥도 같이 먹고 싶고, 음, 좋은 데 있으면, 아니 꼭 좋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같이 다니고 싶어요.”

지승혁의 눈매가 재미있다는 듯 기울어졌다.

“나랑 하고 싶은 게 그렇게 많았어요?”

지승혁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조정현은 입을 다물고 입술을 잘근거렸다. 흥분해서 너무 많은 말을 나불거린 것 같았다.

“할 거 많아 좋네요. 또 없어요?”

조정현은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는지 아닌지 가늠해 보려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정현은 잠시 멈췄던 말을 이었다.

“……놀이공원도 가고 싶어요. 머리에 쓰는 것도 나눠 쓰고 싶고요, 츄, 츄러스도 놀이공원에서 사 먹으면 엄청 맛있다던데.”

“그랬어요? 좋네요. 이번 주 주중에 한번 갈까요?”

“……아니, 그, 당장 가자고 하는 게 아니었구요.”

“그러고 보니 츄러스는 나도 먹어 본 적이 없네요.”

의외의 말에 조정현은 어, 소리를 내며 지승혁을 올려다보았다. 지승혁이 빙그레 웃었다.

“같이 가 줄래요?”

어째 얘기가 이상해졌다. 간다면 지승혁이 조정현을 데리고 가는 게 맞다.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반박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응시하는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땅에 끌려 나온 물고기처럼 뻐끔거리던 조정현이 겨우 질문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귀여워서요.”

“……안 귀여워요.”

지승혁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가만히 조정현을 바라보던 지승혁이 입을 열었다.

“정현아, 보통은 그런 걸 가지고 바라는 게 많다고 하진 않아.”

잔잔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제법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심장이 기분 좋게 간질거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던 조정현은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 수밖에 없었다.

조정현은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보는 시선을 처음 경험했다. 누군가를 이런 식으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경험하니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달콤했다. 마치 중독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염치없는 바람일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가로운 주말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로 몸 한 부분을 붙이고 기대앉아 있고 싶었다. 지금과 같은 눈빛으로 계속 쳐다봐 주면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도 들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게 싫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싫지 않다기보다는 계속 봐 주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로 좋았다.

조금 전 지승혁이 좀 더 걱정해 달라는 것도 이런 기분으로 한 말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봐요.”

“네, 네?”

한쪽 팔을 창문 쪽에 기댄 채 턱을 괸 지승혁이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말했다. 흘끔 조정현을 보는 지승혁의 입술 끝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조정현은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계속 그를 쳐다봤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 조정현은 따라붙는 시선을 느끼곤 황급히 말했다.

“아니, 어, 형아, 앞에, 앞에 보셔야죠.”

지승혁이 낮게 웃으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집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지승혁은 상체를 쑥 내밀어 조정현의 입에 키스했다.

조정현은 좀 놀라긴 했지만 그런 입맞춤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어느 순간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 지승혁의 페로몬 냄새에 머리가 몽롱해졌다.

조용한 차내에 입술끼리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승혁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핥았다.

“좀 더 하고 싶은데 그러면 자제를 못 할 것 같아서.”

그 말에 동의하며 조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서 내려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니 현관문이 조금 달라 보였다.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확실히 아니었다. 나가기 전의 도어락이 아니고 다른 것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도어락이 바뀐 건가요?”

“몇 번 보지 않았을 텐데 기억하고 있어요?”

“네, 그야…… 색이 완전히 다른데요.”

“우리 정현이 기억력이 참 좋네요.”

“…….”

놀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정현은 한쪽 뺨을 부풀렸다가 이내 바람을 빼냈다. 그리고 도어락을 보던 시선을 돌려 지승혁에게 눈길을 줬다.

도어락이 고장 난 것도 아닌데 왜 교체를 한 건지 이상하게 여기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설명을 덧붙였다.

“좀 낡아서요, 그게.”

“……네에.”

지승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조정현이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조정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도망갈까 봐 그러세요? 그런 거면 도어락 안 바꾸셔도 되는데.”

말을 마치고 조정현은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조물조물 깨물었다. 조정현이 말하는 걸 듣던 지승혁이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내가 그걸 걱정하느라 바꾸는 것 같았어요?”

“아니에요?”

지승혁은 바로 답하지 않고 가만히 웃기만 했다. 기존에 있던 것과 다른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안으로 조정현을 들여보내고 지승혁은 철제문이 닫히지 않도록 기대섰다.

조정현은 신발을 벗으려다가 그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자세를 바로 했다. 지승혁은 가만히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나쁜 놈이 훔쳐갈까 봐 그래요.”

“네? 나쁜 놈요?”

“나 믿어요?”

지승혁의 말은 종종 이렇게 따라갈 수 없는 주제로 튀곤 했다. 갑자기 왜 믿고 안 믿고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걸까. 조정현이 누구보다 그를 믿고 있는 건 지승혁 본인이 잘 알고 있을 텐데.

조정현이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바로 대답하지 않자 지승혁이 재촉했다.

“안 믿어요? 못 믿겠어요?”

“아, 아뇨. 믿어요.”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빠르게 대답했다. 그게 마음에 드는 듯 눈매를 휘며 지승혁이 조정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 따라가면 안 돼요. 아무나 문도 열어 주지 말구요.”

조정현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깜빡거렸다.

지승혁이 자신에게 저런 당연한 말을 하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대답해야죠.”

“네, 그럴게요.”

“약속해요.”

“네?”

지승혁은 새끼손가락을 세워서 조정현에게 내밀었다.

이전에 조정현을 놀리듯 했던 말의 연장 선상인가. 조정현은 골똘히 고민해 보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진심인 듯싶었다. 새끼손가락을 걸자 지승혁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장까지 찍어야죠.”

“…….”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지만 엄지를 세우자 지승혁이 똑같은 엄지를 맞대 왔다. 지승혁은 진지하게 도장까지 찍은 거니까 못 물러요, 하고 말했고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제야 만족한 듯 웃으며 조정현의 머리를 토닥이듯 쓰다듬었다.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왜 그러느냐는 질문은 하지 못할 정도의 애매함이었다.

조정현의 입술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얌전한 착한 아이처럼 그렇게 지승혁의 손에 몸을 맡겼다.

* * *

지승혁은 어제에 비해서 확연하게 몸 상태가 나아진 걸 확인했다. 무거웠던 머리도 어느 정도 평상시로 돌아가 있었다.

어제, 품에 안았던 조정현이 열심히 페로몬을 내보내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무의식적으로 페로몬을 조르는 지승혁의 속내를 눈치챈 듯 아주 열심히 페로몬을 흘려 댔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양의 배가 되는 페로몬을 말이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 한 행동이었다. 그 자체가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점심까지 함께 먹고 오려고 했으나 조정현이 오늘도 바쁘신 거 아니냐며 드물게 고집을 부리며 내보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출근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지승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어쩔 수 없이 출근이라니.

일하는 걸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무의식적으로 한 생각이 스스로도 적잖이 당황했다. 물론 기분 좋은 당혹감이었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조정현을 빨리 보고 싶었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돌아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았지만 그 일은 잠깐 머리에서 밀어내기로 했다.

막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지승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떠오른 건 서윤영의 이름이었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통화를 시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지 사장님, 안녕. 나야.

“…….”

지승혁은 핸드폰 액정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화면에는 확실히 서윤영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대뜸 ‘나야’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정태준이다.

그는 지승혁이 무슨 말을 하든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말했다.

-웬 외제 차 모는 미친놈이 와서 들이받는 바람에 서윤영 비서님이 지금 구급차에 실려 가서 제가 대신 연락 드립니다. 일단 목숨엔 지장이 없고요, 이송된 병원은 한국대학병원이에요. 경과 보고 또 연락드릴게요.

확실히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가만히 듣던 지승혁이 입을 열었다.

“너는 어떤데.”

-…….

“왜.”

-아니, 그런 걸 물어볼 줄은 몰라서. 이거 정현이 영향을 받았네. 말랑말랑해지셨어.

말장난을 칠 정도라면 심각한 상황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하에 지승혁은 대답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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