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42)화 (42/130)

#42

화려한 썸네일에는 ‘우성 열성 관계없이 궁합이 좌우한다?!’ 라는 문장이 걸려 있었다.

조정현은 한참 화면을 쳐다보았다. 저절로 손이 움직여 동영상을 재생했다. 병원 대기실이기에 소리를 크게 하고 들을 수는 없었으나 자막으로 내용의 유추는 가능했다.

같은 우성끼리 만났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상대의 페로몬이 좋지 않다는 시청자의 고민을 읽은 스트리머는 그저 우성끼리 만난다고 무작정 페로몬 상성이 좋은 게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궁합이 나쁜 우성 알파와 우성 오메가보다 궁합이 좋은, 한쪽이 열성인 알파와 오메가 쪽이 더 상성이 좋다는 글자가 자막으로 떠올랐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순서가 되었을 때 진료실 문이 열리고 지승혁이 안에서 나왔다. 멀찍이서 보니 그가 얼마나 눈에 띄는 사람인지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지승혁은 알파들 사이에서도 우월한 외형이었다. 키도 훌쩍 크고 어깨도 넓은데 허리는 잘록해 마치 잘 조형해 놓은 그래픽을 현실에 붙인 것 같은 이질감마저 들었다.

지승혁은 어렵지 않게 조정현을 찾아냈다. 큰 보폭으로 단 몇 발자국 만에 가까이 다가온 지승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분 탓인지 지승혁의 상태가 조금 저조해 보였다.

“많이 기다렸죠.”

“아, 아뇨.”

조정현은 재생되던 동영상을 중단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지승혁이 조정현이 들고 있는 핸드폰을 보며 뭘 보고 있었냐고 물었을 때 “그냥 너튜브 봤어요.” 하고 애매하게 답했다. 페로몬 궁합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갈까요, 하는 지승혁의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조정현은 지승혁을 흘긋 쳐다보았다. 지금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무슨 일로 따로 의사와 상담을 한 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만약 조정현이 알아도 될 문제였다면 굳이 먼저 나가게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나서야 지승혁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안 물어봐요?”

조정현은 반들반들하게 잘 닦여 있는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상으로 서로의 시선을 바라보았다.

“물어봐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요. 그래서 저보고 먼저 나가라고 하신 거 아니에요? 나중에 형아가 편하실 때 말씀해 주세요.”

조용히 대답을 마치자 지승혁이 조정현 쪽으로 몸을 틀었다. 한쪽 뺨에 따갑게 닿는 시선에 조정현 역시 고개를 돌려 마주했다. 지승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조정현은 그가 자신의 대답을 재미있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요. 알았어요.”

딱 그 말을 마치자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목적지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큼직하고 따뜻한 손바닥에 조정현의 손 거의 대부분이 감춰졌다. 아무리 체격 차이가 커도 손 크기까지 이렇게 차이 날 필요가 있을까, 같은 얼빠진 생각을 하던 조정현은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조정현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던 지승혁의 손을 꼭 잡고 살짝 당기며 입을 열었다.

“저어, 근데요, 형. 병원비, 얼마 나왔, 아니, 많이 나왔죠?”

“갑자기 왜 그런 게 궁금했어요.”

지승혁이 걸음을 멈추고 조정현을 보았다.

“아까 VIP라고 적혀 있어서요. 많이 비싸진 않은가 싶어서요.”

“그건 정현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에요.”

“그래도요. 저희 부모님 빚도 있고.”

“정현아.”

나직하게 이름을 불렀다.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해.”

“……금, 금방 갚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저희 부모님 빚이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좋든 싫든 부모님이 진 빚이었다.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었지만 도의적으로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워낙 어마어마한 액수이긴 했지만 시작도 해 보지 않고 못 한다고 지레 나가떨어질 수는 없었다. 이제 와서, 싶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어난 이자만큼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지승혁에게 잘만 부탁하면 어떻게 원금으로 상환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가 암만 생각해도 너무 꼼수인 것 같아 싶어 조심스러워졌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나 주저하던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말했다.

“그러면 정현이 나랑 평생 살까.”

조정현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심장이 나 여기 있다며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몇 번 뻐끔거리며 입술을 닫았다가 열었다가 한 조정현의 입에서 겨우 제대로 된 말소리가 나왔다.

“저, 저 팔려 가요?”

조정현의 단어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지승혁의 미간이 좀 찌푸려졌다.

“같이 살자는 말이 어떻게 팔려 간다는 거로 얘기가 튈까.”

목소리에는 명백하게 언짢음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지승혁은 곧 짧은 한숨과 함께 그런 기색을 지웠다.

“가끔 우리 정현이의 사고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네요.”

어깨를 으쓱하며 하는 가차 없는 평가에 조정현은 더욱 어쩔 줄 몰랐다.

“어, 아니……. 저기. 어, 그러니까.”

조정현은 멈췄던 뇌를 열심히 가동했다. 더듬거리는 말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아니, 그거 제가 엄청나게 이득인 건데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그게 왜 정현 씨한테 이득이라고 생각해요. 평생이라니까.”

듣기 좋은 저음이 고막에 닿았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조정현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조정현이 입술을 한 번 깨물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치만, 형, 저한테 6억짜리라고 하셨잖아요.”

“아니, 그건.”

지승혁이 드물게 할 말을 잃었다. 잠시간 할 말을 찾는 듯하던 지승혁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정현이가 의외로 뒤끝이 있네.”

“네? 아니, 그게 아니고 형아한테…….”

그러니까 지승혁이 손해이고 자신이 이득을 보는 게 아닐까 말하려던 거라고 설명을 하려 했지만 그는 아예 실력행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손으로 조정현의 입을 덮었다. 입을 가린다고 해서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얌전히 입을 다무는 편이 현명한 것 같았다.

“내가 잘못했어요. 그때 한 말은 잊어 줘요.”

지승혁이 은근한 어조로 말하곤 조정현의 눈동자를 응시한 채 가만히 무언가를 기다렸다. 조정현은 가만히 그런 남자를 올려다보며 눈썹을 늘어뜨렸다.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한 조정현은 제 입을 가린 남자의 손을 살며시 옆으로 치웠다. 그 큰 손을 잡고 만지작거렸다.

“형은 정말 착하신 것 같아요.”

“……내가요?”

지승혁은 마치 사실 당신은 투명인간이었습니다, 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 같은 얼굴을 했다.

“어디 가서 손해라도 보시면 어쩌죠.”

“그런 걱정을 하는 건 우리 정현이뿐일 것 같은데요.”

살짝 어이없어하는 말투였다. 지승혁은 잠시간 조정현을 응시했다.

조정현도 가만 생각해 보니 제 말이 좀 어폐가 있는 것 같긴 했다. 지승혁은 매우 유능하고 빈틈없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어리바리하고 그저 좋기만 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좋은 빌딩의 한 층을 전부 사무실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너무 주제넘은 걱정을 한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정정을 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음, 그치만 저한테 빚 독촉도 안 하시잖아요.”

조정현은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만을 입에 담았다.

“그건 우리 정현이 부모님이 진 빚이잖아요.”

“아니 그래도 증, 증서가 있잖아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계약서 같은 건 법적인 효력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 건 내가 안 받겠다고 하면 그만이죠.”

지승혁은 코끝으로 웃으며 더는 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잘라 말했다.

조정현은 그런 게 되나, 싶어 곰곰이 생각해 봤으나 관련 지식이 없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핸드폰으로 음식 레시피나 찾아봤지 이런 법률에 관해서는 찾아보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이미 전부 법적인 절차대로 결정된 사항이라고만 여겼기에 아예 본질부터 의문을 갖는다는 생각조차 못 해 봤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너무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아 왠지 좀 창피했다.

지승혁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조정현의 이름을 불렀다.

“무슨 생각 해요?”

“네? 아뇨, 그냥…….”

조정현이 어물거리며 대답하자 지승혁이 제법 서운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 생각 해 줘요. 그 소리 했다고 이제 내 걱정 안 해 줄 거예요?”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왜 그런 비약을 하는 걸까. 조정현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아니, 그건 아닌데요. ……형 걱정하는데. 그냥 좀, 딴생각이 들어서요.”

“정현이 걱정은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정현이는 내 걱정만 해 줘요. 이 머릿속에는 나만 넣어 둬요. 응?”

이건 뭐지. 칙칙폭폭 걱정 열차인가.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안 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에 조정현은 잠시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지승혁이 원하는 건 다 해 주고 싶은 게 조정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모든 걸 해 줄 테니 그저 자신의 걱정을 해 달라고 떼를 쓰는 남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조정현이 네에,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승혁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살포시 걸렸다.

“좀 더 많이 걱정해 줘요.”

“형, 저는 진짜 걱정하고 있는데.”

조정현이 불만스러운 듯 뺨을 부풀렸다.

“알아요.”

조정현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가져간 지승혁은 살짝 비비다가 입술로 손바닥에 키스했다.

“사실 정현이처럼 아무것도 안 바라고 내 걱정을 해 주는 사람은 처음이라 그래요. 뭐든 혼자서 다 해 왔으니까. 그런데 좋네요, 이런 것도.”

“아, 아닌데요. 저 바라는 거 많아요.”

“그랬어요? 어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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