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37)화 (37/130)

#37

저번에 실수한 걸 만회하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의욕이 너무 앞서서 벌인 실수일까.

열성 알파인 이영선은 원체 지승혁에게 잘 보이려 하긴 했었다. 출세욕은 올바른 방향의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나쁜 게 아니다. 인간은 욕망으로 굴러간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때문에 지승혁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영선의 의욕은 좋게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주제넘은 참견을 하는 건 곤란했다.

지승혁은 이 문제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서 실장이 일을 맡긴 겁니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영선 씨가 내 비서가 된 겁니까?”

말의 내용은 명백하게 비꼬고 있었지만 말투 자체는 지극히 담담했다. 그러나 지승혁이 어떤 의도로 말을 했는지 알아차린 이영선의 안색이 바뀌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빳빳하게 굳어 갔다.

“내 사생활에 신경 쓰라고 이영선 씨 두고 있는 거 아닙니다. 확실히 하세요.”

“……네, 실례했습니다.”

“나가 보십시오.”

“네.”

찰칵.

조용히 닫히는 문을 응시하던 지승혁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조정현을 보고 싶었다.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들이 지승혁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글자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몸 상태로 자리만 지키고 있어 봐야 별 효율도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든 지승혁은 몸을 일으켰다. 차라리 제대로 휴식을 쉬해 컨디션을 제대로 만드는 쪽이 더 나았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퇴근한다고 나서는 지승혁의 행동에 직원들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지승혁은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알아서 퇴근하라고 한 후 사무실을 나섰다.

* * *

해가 뉘엿뉘엿 져,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승혁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바쁜 일이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자꾸만 핸드폰을 보게 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퓩퓩거리며 증기를 내뿜던 밥솥은 새 밥이 되었다는 알람 소리를 냈다.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밥을 뒤섞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쫑긋거리던 조정현은 지승혁이 귀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달려나갔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승혁에게 달려가 안겼다. 지승혁에게서 나는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양복에 비볐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목덜미에 코를 묻더니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몇 번을 반복하던 지승혁이 말했다.

“페로몬 좀 내 봐요.”

“페로몬요……?”

“냄새 맡고 싶어요.”

조정현은 가만히 지승혁을 끌어안고 있던 손을 꼬물거리며 페로몬을 내보냈다. 페로몬이란 건 감정 본연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이기에 좀 부끄러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페로몬의 향만으로 대상의 기분이 좋은지 어떤지를 전부 알 수 있었다.

지승혁의 체중이 묵직하게 기대 왔다.

그는 조정현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조정현이 조심조심 그런 지승혁의 등을 토닥였다.

“형아,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좋아서요.”

조정현은 질문에 지승혁이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따뜻한 손바닥이 조정현의 뺨을 문질렀다.

“무슨 냄새…… 밥했어요?”

“어, 네에. 언제 들어오실지 몰라서요.”

“고생했어요. 사람 사는 집 같네요.”

“……?”

지승혁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는 가만히 자신을 올려다보는 조정현의 뺨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집 안으로 들어오며 재킷을 벗는 지승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셔츠 아래에 있는 몸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름다운지 조정현은 이제 알고 있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는 모습이나 손목의 커프스 링크를 푸는 걸 멍하게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요.”

“네? 아.”

지승혁의 지적에 조정현은 그제야 제가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지승혁은 결코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조정현을 귀엽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넥타이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잡고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형아. 우리 또 언제 해요?”

“…….”

지승혁이 일순 허를 찔린 것 같은 얼굴을 했다.

“형이랑 하는 거 기분 무지 좋았는데…… 일,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할 수 있어요? 아. 아니. 아니면 한 달에 몇 번……?”

기준을 잘 알 수가 없었기에 말을 번복하던 조정현은 자신을 향하는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지승혁이 왜 저렇게 쳐다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 혹시 히트 사이클이나 러트 때에만 하세요……?”

하긴 그런 거라면 한 번에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했던 것도 이해는 갔다.

지승혁이 그렇다면 하자고 억지를 부릴 수는 없겠지만 아쉬운 마음은 금할 길이 없었다.

“정현아.”

“네, 네?”

너무 밝혔나 싶어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댄 채 부드럽게 살살 비볐다.

“왜 이렇게 자꾸 귀엽게 굴어요.”

다행히 정나미가 떨어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귀엽다니. 밉다는 말보다야 좋긴 했지만 엄연히 조정현도 성인 남자였다. 귀엽다는 말을 듣고 순수하게 기뻐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칭찬으로 하는 말인데 굳이 귀여운 게 아니라고 하는 것도 우스웠다.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조정현의 콧등에 지승혁이 콧망울을 살짝 맞부딪쳤다. 조정현은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무 밝히는 게 아니구요?”

“밝히는 게 어때서요. 나는 그런 거 좋아해요.”

시원스런 대꾸에 조정현은 어물어물 시선을 돌렸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뺨을 조물거렸다. 조정현은 위아래로 문질문질거리기도 하고 원을 그리며 돌리기도 하는 지승혁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얌전히 받았다. 마치 떡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은 들었지만 그게 사실 썩 싫은 것만도 아니었다.

그러다 얼굴이 보기 흉하진 않을까 싶은 걱정이 든 조정현은 고개를 조금 뒤로 빼내었다. 지승혁은 아쉽게 그런 조정현의 얼굴을 놓았다.

“나랑만 하기로 한 거니까 하고 싶어지면 말해요. 괜히 참지 말고.”

“……네에.”

보통은 애인끼리 이런 대화를 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에 조정현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곳을 응시하던 조정현은 조심스럽게 지승혁 쪽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형, 어디 몸 안 좋으세요?”

“내가요? 그렇게 보여요?”

“아니, 음,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구요.”

조정현은 가만히 지승혁의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바로 방금 전에 이마끼리 대 보았을 때에도 달리 열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정확하게 설명을 잘할 수는 없었으나 약간의 거리감 같은 게 느껴졌다.

너무 지승혁을 보고 싶어 하다가 막상 직접 보니 그렇게 느끼는 건가 싶어진 조정현은 지승혁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했다.

“제가 잘못 봤나 봐요.”

조정현은 작게 웃으면서 지승혁에게 얼른 씻고 나오라며 등을 밀었다. 그의 퇴근을 기다리는 동안 만들어 둔 저녁을 차릴 참이었다.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국이 끓기만을 기다릴 때였다.

“……형?”

어느 틈에 나온 건지 뒤에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며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닿았다.

지승혁의 팔이 조정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커다란 손이 그의 아랫배를 감쌌다.

“형? ……형아? 앗.”

“응, 정현아.”

국자를 들고 있었기에 행동에 제약이 있던 조정현은 당황스럽게 그를 불렀다.

“앗, 잠깐, 아니, 잠, 아……!”

지승혁의 손이 수상하게 움직였다.

망설임 없이 티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은 지승혁은 조정현의 배꼽 근처를 간질이듯 배회했다. 조정현이 당황해서 그 손을 잡으려 했으나 다른 손이 젖꼭지를 잡아 비틀었다.

“……음!”

젖꼭지에 심이 들어가듯 단단해졌다.

씻고 와서인지 지승혁의 손바닥은 평소와 다르게 촉촉했다.

손가락으로 유륜 부분을 문지르다가 젖꼭지를 꼬집었다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리는 것에 조정현은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았다.

국자를 내려놓을 생각도 못 하고 그저 꽉 잡고만 있던 조정현은 당황스럽게 지승혁을 돌아보았다. 젖을 듯이 이어지는 키스가 평소와는 다르게 격렬했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입 안으로 침입해 그의 혀를 빨아들이고 비벼 올렸다. 지승혁의 혀는 조정현의 고른 치열을 한 번 쓸고 딱딱한 입천장을 문질렀다. 혓바닥끼리 비비더니 혀의 아래로 파고들어 설소대와 근처의 여린 살을 마구 쓸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조정현의 입 안 구석구석을 핥고 문지르는 바람에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입꼬리를 타고 흘렀다.

앓는 것 같은 신음 소리를 흘리던 조정현의 손은 어느 틈엔가 지승혁의 팔뚝에 매달리고 있었다. 지승혁이 뒤에서 키스를 하는 덕에 한껏 고개를 든 상태를 유지하던 조정현은 목이 조금 뻐근해짐을 느꼈다.

“……하아, 하. 형, 형아. 저 힘들, 힘들어요.”

간신히 입술을 떼고 말하자 지승혁이 입맞춤을 중단했다.

평상시라면 아마 조정현이 말하기 전 먼저 그런 기색을 눈치챘을 텐데 뭔가 이상했다.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던 조정현의 뺨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그의 눈빛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왜인지 여유가 없는 느낌이 들어 의아해진 조정현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형아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것처럼 보여요?”

“……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조정현이 입술을 꾹 다물며 말하자 지승혁의 눈매가 아래로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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