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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36)화 (36/130)

#36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지승혁의 집이 두 채 정도는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이런 곳이라면 집에서 길을 잃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겠다고 실소하며 남자의 뒤를 따랐다.

실내는 넓기도 했지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식상한 표현처럼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는 말이 딱 맞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 같았다.

메인 거실에 가까워지자 지승혁의 눈매가 굳었다.

여봐란듯이 페로몬이 넓은 거실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과시라도 하는 것 같았다. 페로몬에 절여질 것 같은 양이었다.

베타나 오메가, 그리고 열성 알파라면 모르겠으나 지승혁 같은 극우성 알파에게는 코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의 악취, 그 이상이 아니었다.

씨발. 지승혁은 입 속으로 욕을 삼켰다. 남자의 천박한 과시욕이 잘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았다.

“딱 맞춰 왔구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승혁은 눈을 움직여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팽팽한 피부와 군살 하나 없이 잘 관리한 몸을 가진 사내의 나이를 알면 보통은 입을 떡 벌리며 놀랄 거다. 남자는 보통 사람들과 유난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탐욕이 차오른 한 쌍의 눈이었다. 마치 번들거리는 뱀의 눈과도 같았다.

저렇게까지 욕망에 젖은 눈을 지승혁은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네 쪽에서 먼저 날 보자고 하다니. 놀랐다. 앉아라.”

남자가 편안한 자세로 지승혁에게 자리를 권했다. 지승혁은 잠시간 서서 그런 남자를 내려다보다가 소파에 앉았다. 남자는 그런 지승혁을 노골적으로 쳐다보았다.

그만 좀 쳐다보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곧 안으로 갈무리해서 넣었다. 어디까지나 지승혁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래, 할 말이 뭐냐. 아들아.”

‘아들아.’

다정하게 부르는 호칭에 구역질이 날 것 같다.

필요 없을 때는 가차 없이 버렸던 자가 쓸모를 확인하자 살갑게 군다. 어차피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일은 없다. 문제는 지승혁과 저 남자의 피가 이어져 있다는 데에 있다.

지승혁의 눈매가 단단하게 굳었다.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걸친 채 앉아 있는 남자는 현 도영(菟領) 그룹의 회장이자, 지승혁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지호택이었다.

“이전에 해주셨던 제안은 아직 유효합니까?”

“……얘기해봐.”

어디까지나 여유만만한 태도였다. 그는 지승혁이 왜 찾아왔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지승혁의 입으로 직접 들으려 하고 있었다. 굴종의 태도를 확인하려 한다는 게 빤히 보였다.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다.

지승혁은 어금니를 한번 꼭 물었다.

“회장님 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호택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승혁의 생각을 가늠해 보겠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얇은 입술을 위로 밀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지호택은 가타부타 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대신 남자의 고개가 지승혁의 옆을 지나 다른 곳을 향했다.

“저거 보이지. 가지고 와 봐. 제일 값비싼 녀석.”

손 끝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여러 가지 분재들이 있었다. 지승혁은 그가 말하는 것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었다. 지호택 역시 어떤 건지 집어 말하지 않았다.

지승혁은 혀끝을 살짝 씹었다.

똥개 훈련도 아니고.

심지어 똥개도 훈련을 시킬 때는 목적을 명확하게 한다.

어떤 거냐고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물어본다 한들 지호택이 친절하게 답해줄 리도 없었다. 지승혁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하나를 들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지호택의 눈매가 만족스러운 듯이 가늘어졌다.

“맞아. 그래. 이게 맞다.”

지호택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키는 걸 한다.

지극히 단순한 행동이지만 힘의 우위를 이처럼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건 달리 없다. 지호택은 지금 이 간단한 일을 통해 지승혁에게 그 자신의 위치를 주지시키고 있었다.

일련의 행동이 모두 계산하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이 작은 게 몸값이 13억이다. 아주 비싼 녀석이지.”

지호택은 만족스러운 눈으로 분재가 있는 화분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눈에 보기에도 이 녀석이 제일 나아 보이는 거지.”

지호택은 또 잠시간 말이 없었다.

한참을 눈앞의 식물에 집중하던 지호택의 입이 열린 건 초침이 두 어 바퀴를 돈 이후였다.

“분재를 만들 때는 말이다, 쓸모없는 잔가지를 쳐주는 게 중요해. 당하는 이 녀석은 뭐가 뭔지 몰라. 머리가 없는 식물인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그저 먹고 살기 바쁜 놈인데.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의 눈으로 봐야 아는 거지. 그저 물이나 주면 먹고 구부리면 구부리는 대로, 자르면 자르는 대로 따르면 되는 거야.”

지호택의 시선이 드디어 지승혁 쪽으로 움직였다.

“내가 기대했던 대로, 사업을 잇겠다는 말은 아니구나. 생각 후에 내린 결정이야. 그렇지?”

“…….”

지승혁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호택은 그런 그를 한참 쳐다보다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됐다. 어차피 너도 내가 뭔가를 원하는 게 있으니까 찾아온 걸 테니. 내가 필요한 건 네 능력이고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뭘 어쩌든 상관없다. 대신 네 의지를 보증해야겠다.”

지호택은 대충 그런 식으로 뭉뚱그리며 넘어갔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리 오거라.”

“……네.”

지승혁은 지호택의 발아래 한쪽 무릎을 굽히며 앉았다.

지호택은 자연스럽게 한 손을 그에게 내밀었고 지승혁은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몸 안쪽에 기묘한 감각이 일기 시작했다. 지승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프로텍트다.

극우성 알파 중 일부에게 허락된 능력이었다.

다른 이들을 자신의 종속 대상으로 만드는 힘. 그게 지승혁에게 작용하고 있었다. 각인과 비슷하지만 각인이 쌍방 동시에 이루어지는 거라면 프로텍트는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예속되는 거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지극히 불쾌한 감각이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해야 하는 극우성 알파의 본능을 완전히 거스르는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지승혁은 지호택의 비호가 필요했다.

지승혁은 그 감각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얇은 막 같은 것이 예민한 감각에 덧씌워지는 느낌이었다.

“극우성 알파인 만큼 거부감이 좀 있구나.”

지호택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는 불쾌하다기보다는 지승혁의 형질이 지극히 만족스러운 듯 했다.

“아깝단 말이야. 네 검사 결과가 이상하지만 않았어도 그놈 자리가 지금 네 자리였을 텐데.”

“말씀은 감사합니다.”

지승혁이 울렁거리는 속을 감추며 묵례했다.

“프로텍트를 걸었던 놈들 중에 허약한 것들은 반나절은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던데. 역시 쓸만하구나.”

감탄 섞인 목소리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그렇게 악바리처럼 굴 수 있는 건 다 내가 너를 제때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래. 너를 베타라고 판별했던 형질 검사 결과 역시 다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련은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더냐. 너는 내 덕분에 그렇게 강하게 클 수 있던 거다.”

지승혁은 치밀어 오르는 욕설을 삼키느라 이를 사리물었다. 구역질 나는 자기만족에 자기 합리화다. 지호택이 이런 인간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단지 더 이상 같은 공기도 마시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잇새로 흘러나오는 한숨을 틀어막은 지승혁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그래, 바쁘겠지. 가끔 얼굴 좀 비추거라.”

한 손을 휘이 내저으며 말하는 지호택을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본 지승혁은 저택을 나섰다. 프로텍트의 여파로 발밑이 무너질 것 같았으나 혀를 세게 씹으며 나서는 지승혁의 걸음걸이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승혁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눈치챈 건지 김성채는 자택으로 갈까 물었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사를 그렇게 오래 비워둘 수는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지승혁은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지승혁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눈치로 아는 모양인지 그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좀 미안한 일이기는 했다. 직원들의 일은 능률을 내는 것이지 자신의 기분을 살피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육감에 얇은 막이 씌워져 있는 감각에 적응하려면 고생깨나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지호택의 자택을 나서면서 페로몬 탈취제를 들이붓다시피 했지만 마치 벌레가 들러붙은 듯한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탈취제 때문인지 아니면 프로텍트 탓인지 머리도 약물이라도 쓴 것처럼 멍했다. 뿌연 안개라도 낀 듯,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었지만 상당히 곤란했다. 알아본 바로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지승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마저 지끈거리는 게 비단 느낌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통증을 미련스럽게 참는 취미는 없기에 약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진통제를 삼키며 말하던 지승혁은 이영선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는 의아한 눈초리를 보냈다. 지승혁이 알기로 그에게서 받아야 할 보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입니까.”

“이제 곧 러트이실 텐데 함께 지내실 상대를 찾아볼까요?”

지승혁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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