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34)화 (34/130)

#34

조정현은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정태준의 입이 점점 벌어지더니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 즈음엔 주먹 하나가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왠지 동공이 흐릿해 보이기도 했다.

종국에는 “저 여우 같은 새끼…….”하고 이를 갈 듯이 중얼거렸다. 조정현은 정태준이 누구에게 여우 같다고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아니면 지승혁에게 하는 말일까.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치기에 조정현은 자신을 한 번도 여우 같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승혁이라고 하기엔, 그는 아무튼 아니었다.

조정현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던 정태준은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답답함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정현아. 내가 진짜……. 걱정이다.”

“네? 왜요. 무슨 걱정요?”

“내 핸드폰 번호 있지? 그쪽으로 뭐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할 때 아무 때나 전화해. 알겠어?”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을 체험 중이다.

“정태준 씨. 일 얘기하러 온 거 아닙니까.”

어느새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지승혁이 정태준을 불렀다. 하얀 셔츠와 검은 슬랙스 바지가 잘 어울렸다. 정태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떠나기 전 정태준은 조정현의 팔을 한 번 꼭 잡았다. 마치 자신이 한 말을 잊지 말라는 듯이.

* * *

“요새 아주 인기 많으세요, 양심 뒤진 지 사장님.”

서재로 들어가 의자에 앉은 지승혁의 맞은 편에 정태준이 앉으며 입을 열었다.

“내 양심 없는 거야, 진작부터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삼스럽군.”

스스럼없이 긍정하자 정태준은 열이 난다는 듯, 기막혀하며 코웃음을 쳤다.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지승혁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지 사장님아. 쟤가 몇 살인지는 아세요?”

“스물이지.”

“맞아. 몇 달 전까지는 학교 다니던 애라고, 애. 지승혁 너는 러트 때에도 스물다섯 아래는 애라고 건들지도 않던 새끼가 뭐가 어떻게 맛이 가서 그래? 안 하던 짓을 하기에 이상하다 했다. 루어는 언제 던져본 거야? 처음 만났을 때?”

“적당히 좀 하지. 네가 입댈 데가 아닌 것 같은데.”

정태준은 지승혁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긴 했으니 할 말이 없을 거다.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일이었다.

그래도 정태준이 조정현의 편을 들어주는 게 썩 나쁘진 않았다. 다른 사람이 간섭하는 것 자체는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정태준의 언행은 어디까지나 조정현에 대한 호감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거였다. 그러니 그 자체를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다.

지승혁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리스크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렇기에 정태준이 조정현의 일에 이렇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게 저어되진 않았다.

보험은 많을수록 좋다.

단지 명확하게 선을 그을 필요는 있었다.

“내 사생활에 참견하려고 온 건가?”

“에라이…….”

정태준은 학을 떼는 듯했지만 결국 더는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주의를 환기하듯 숨을 크게 들이쉬며 입을 뗐다.

“서 실장님이 지 사장님이랑 연락이 안 된다고 우는 소리를 내고 있어요. 직원들한테 걱정을 끼치면 되겠어요?”

“서 실장이랑 그렇게 사적인 얘기를 하는 사이일 줄은 몰랐는데.”

지승혁의 지적에 정태준은 얼굴을 찡그렸다.

“뭐, 제가 워낙 인망이 두텁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알아서 말이 들려오네요.”

“정태준 씨가 누구와 씹질을 하든 상관은 안 하겠는데 내 일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조절하세요.”

정태준은 들으란 듯이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정태준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의 모서리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치면서 입을 열었다.

“요새 정현 씨랑 지 사장님 정보를 묻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지승혁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제법 위험한 쪽에서 들쑤시고 다닌다는 것까지는 앉아있어도 들리던데. 조심 좀 하자, 지승혁아.”

지승혁의 손가락이 툭툭 책상을 두드렸다.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아예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지만 정태준이 직접 이야기를 하러 올 정도면 상당한 위협이 있는 모양이긴 했다.

지승혁은 입가를 문질렀다.

“내 정보를 캐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너까지 그걸 알려주러 왔다면, 이쪽에 누설자가 있다는 건데.”

지승혁의 눈동자가 정태준 쪽으로 향했다. 음, 하고 그 시선을 마주 보던 정태준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양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펄쩍 뛰었다.

“야, 난 아니다?”

“왜. 찔리는 구석이 있나?”

“진짜 아니라니까. 와. 사람을 이렇게 잡으시네. ……농담할 때에는 그 얼굴 좀 어떻게 하시던가.”

말을 하던 정태준이 억울한 듯 한숨을 내쉬며 지승혁을 노려보았다.

정태준은 비소로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건넸다.

안을 열어보니 내용물이 없었다. 지승혁은 눈매를 찌푸리며 정태준을 쳐다보자 그가 빙글빙글 웃었다.

“아직 정확하게 나온 게 없어서요.”

“그럼 그냥 그 얘기만 하러 온 거다?”

“네이. 지 사장님이 저한테 얼마나 큰 손님이신데. 돈줄을 잃으면 저도 손실이 크니까 말이죠. 오래오래 건강히 살아서 저한테 일감 주셔야죠.”

지지 않고 대답하는 정태준을 흘긋 보며 웃음을 흘렸다. 서로 알아 온 시간이 있기에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저 돈 때문이 아니라는 건 정태준이나 지승혁이나 알고 있다.

“그래도 같은 고아원 출신이 없어질지 모르니까 서운하긴 한가 보지.”

“말 참 섭섭하게 하시네. 서운이 뭐냐. 걱정이라고 해라.”

혀를 끌끌 차던 정태준이 곧 말을 이었다.

“뭐, 연락되는 건 너밖에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나 말고도 다른 녀석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는 알잖아. 천하의 정태준이 그 정도도 모를 리는 없고.”

“잘 사는 놈들한테 왜 얼굴을 디밀어.”

“나는 괜찮고?”

정태준은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그래. 거기가 좀 좆같긴 했지.”

농담이라도 하듯 말한 지승혁은 빈 봉투를 책상 위로 던졌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 대신 정태준 쪽을 쳐다보자 그가 신기해하는 것이 명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태준은 얼굴에서 장난스러움을 일시에 걷어냈다.

“농담이 아니고, 너 저번에 받았던 그 제안, 승낙해야 할 것 같아.”

“…….”

지승혁은 가만히 정태준을 쳐다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움찔거릴 만도 했을 텐데 정태준은 태연한 얼굴로 그 시선을 마주 보았다.

정태준은 지승혁이 그어놓은 선을 명백하게 넘고 있다.

그러나 달리 말한다면 정태준이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는 이야기였다. 지승혁은 별다른 말 없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런 지승혁의 반응에 정태준이 호들갑을 떨었다.

“와, 근데 지 사장님 성질 많이 죽으셨네. 이걸 앉아서 들으시고.”

지승혁은 정태준이 또 무슨 쉰 소리를 하는지 지켜보았다.

“정현 씨 때문인가. 하긴, 정현 씨가 좀 말랑말랑하긴 하지.”

“걔가 말랑한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고개를 끄덕거리며 혼자 납득하는 모습이 지승혁의 심기를 건드렸다. 정태준은 지승혁의 말을 듣더니 얼굴을 구깃거리며 경악한 표정을 했다.

“하, 진짜, 귀가 썩는다. 귀가 썩어.”

유난하다며 고개를 가로젓다가 혀를 차던 정태준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현 씨네 부모들, 아직도 꼬리를 못 잡았어.”

“그렇군.”

정태준은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 이 정도로 자취를 지우는 방법을 알고 있을 리는 없다. 정태준이 조정현 양부모의 행방을 찾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일당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돌아가는 정황상 지승혁의 정보를 캐는 것과 조정현의 양부모 뒤를 봐주는 건 같은 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어디 보자, 빼먹은 거 없는 것 같네요. 그러면 저는 이만 갑니다. 아, 이번에 알려 드린 정보들은 서비스예요.”

“잘 알겠습니다. 추후에 갚도록 하지요.”

문을 열고 나가는 정태준이 조정현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정현이 서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조금 난처해하는 얼굴로 정태준과 말하며 지승혁 쪽을 흘끔였다.

“정현아. 나 가는데 배웅해주려고 기다렸어?”

친근하게 말을 거는 정태준을 보며 조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근하게 구는 건 좋은데 이름을 편하게 부르는 걸 듣고 있자니 또 뱃속이 불편했다. 정태준은 그런 지승혁을 쓱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정현아, 내가 친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연애할 때 제일 거리 둬야 할 새끼가, 지 좆대로 구는 새끼거든. 이거 해라, 이거 하지 마라. 이런 말 하면서 널 마음대로 하려는 놈을 제일 조심해야 해. 정현이가 혼자서 판단을 못 할 정도로 덜떨어진 것도 아닌데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겉껍질이 아무리 잘나도 그런 놈들은 만나면 안 돼. 알겠어?”

조정현의 이름도 멋대로 부르면서 지승혁에게 다 들리도록 말하고 있었다. 저 말을 하는 주체는 조정현이 아니다. 바로 지승혁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저렇게 말해버리면 조정현에게 정태준을 어떻게 부르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지승혁의 턱이 꿈틀했다.

“네? 어, 아……. 네에. 고맙습니다. 근데 형은 안 그러세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