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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33)화 (33/130)

#33

사실 고민 중이긴 했다.

욕심대로라면 한 번 더 하고 싶긴 했으나 조정현이 앓아누울까 봐 걱정이 됐다. 그리고 너무 밝힌다고 여길까 염려되기도 했다. 기껏 어른인 척 점잔빼고 있었는데 전부 수포로 돌아갈까 좀 망설여지던 것도 있었고.

“……자기야……?”

“…….”

조정현이 눈만 들어 올리며 부르는 것에 지승혁은 이성을 놓기로 했다. 언제부터 체면을 차렸다고.

허리에 팔을 두르자 얌전히 딸려오는 조정현의 체온이 뜨끈했다.

어린애는 체온이 높다더니 그 말이 진짜인 듯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조정현이 좋아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 굳이 입에 올리진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딩동.

밖에서 벨 소리가 들렸다.

“어, 혀, 형아. 밖에 누가 왔나 봐요.”

“올 사람 없어요.”

“아니, 음, 하지만 그래도 나가는 봐야, 으응.”

조정현이 지승혁의 어깨를 조금 밀었다. 결국 지승혁이 아쉬운 듯 뒤로 물러났다.

지승혁은 자신을 따라나오려는 조정현을 웃으며 선선히 가로막았다.

정사의 여운으로 눈가가 발긋하게 달아오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었다. 조정현은 누가 봐도 좀 전까지 찐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자신만 봐도 아까운 모습을 다른 이와 공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먼저 나가볼 테니까 정현이는 거품 다 닦고 나오세요.”

다행히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수긍했다. 지승혁은 수건을 하반신에 두르고 인터폰 쪽으로 걸어갔다.

좋은 시간을 방해하는 상대가 누군지도 확인을 해야했다.

그리고 화면에 선명히 찍힌 사람의 모습에 잠시간 아연했다.

정태준이었다.

이대로 모른 척을 해버리고 조정현에게는 잡상인이었다고 둘러댈까 심도 있는 고민을 하던 지승혁이었지만 그런 그를 예측한 듯 정태준이 웃으며 손에 서류 봉투를 팔랑거렸다.

정태준이 가벼워 보이긴 했으나 허튼 발걸음을 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결국 지승혁은 한숨을 내쉬며 정태준에게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와, 들어오기 한번 힘드네요.”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현관 쪽에서부터 들려왔다. 지승혁은 정태준을 집에 들일 생각이 없었기에 빠르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마침 정태준이 막 문 안으로 들어와서 신발을 벗으려고 했다.

“무슨 일로 왔어.”

“무슨 일은, 아이쿠. 아니 왜 집에서 벗고 계세요. 어우, 놀라라.”

지승혁은 지극히 연기 톤으로 말하며 과장되게 놀라는 정태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줄 게 있으면 주고 나가.”

“와, 아주 현관에서 걷어차 내보내시네. 그래도 일단 손님인데 너무하지 않아? 아니, 옷 좀 입으세요. 몸매 죽이는 건 알겠는데, 집에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면 조심 좀…….”

말을 하던 정태준이 멈췄다.

싱글거리며 웃던 미소가 얼굴에서 자취를 감췄다.

때마침 안쪽에서 조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아?”

탁, 탁. 바닥을 딛는 가벼운 발소리가 점점 가벼워졌다. 조정현이 현관문 쪽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아. 태준 형이셨구나.”

급하게 나온 듯 보이는 조정현의 덜 마른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태준 형……?”

“뭐야, 잠깐.”

지승혁과 정태준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 * *

조정현은 동시에 자신을 쳐다보는 네 개의 눈동자에 주춤 움직임을 멈추었다.

“언제부터 정태준을 형이라고-.”

“잠깐. 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 지승혁이 이랬어요?”

정태준이 전투적으로 다가와 조정현의 팔을 잡아챘다. 티셔츠를 입고 오긴 했는데 목덜미 쪽에 지승혁이 남긴 키스 마크가 제대로 가려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태준은 두말하지 않고 조정현의 옷을 휙 치켜 올렸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어, 하는 소리만 내며 당황스러워하던 조정현의 옷을 끌어 내린 건 지승혁이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뭐 하는 거냐고 묻는 위협적인 지승혁의 질문에도 기죽지 않은 정태준은 매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승혁 이 미친 새끼.”

“너 지금 무슨-.”

“따라오지 마, 미친 새끼야. 정현 씨, 이쪽으로 와요.”

정태준은 제 뒤에 조정현을 숨기듯, 지승혁과의 사이에 섰다. 지승혁이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정태준을 보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가지만 확인할게요. 합의예요?”

“네?”

“두 사람이 좋아서 한 거냐고 묻는 거예요.”

뭘 묻고자 하는 건지는 굳이 추가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조정현은 그렇게 티가 났나 싶어 뜨끈해진 뺨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먼저 졸랐어요. 형, 승혁이 형은 그냥 제가 하자고 해서 해 주신 거구요.”

정태준의 미간이 구겨졌다.

“해주긴 뭘 해줘요. 좋아서 한 거면 둘이 한 거지.”

“아니, 하지만 제가 히트 사이클이어서 페로몬 때문에, 그렇게 시작을 한 거니까…….”

“……야, 이 미친놈아. 정현이한테 네가 그랬냐? 극우성 알파가 열성 오메가 페로몬에 넘어간다고?”

조정현의 해명을 듣던 정태준이 지승혁을 향해 기막혀하며 물었다.

가차 없이 내뱉은 욕설에 조정현이 제 옷 끝자락을 꽉 쥔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 우리 자기한테 욕하지 마세요…….”

정태준은 경악으로 홉 뜬 눈으로 조정현을 쳐다보았다.

“……자기이? 누가요? 누가 자기인데?”

“형이랑 저희 둘이 사귀는 사이니까요. 그, 그쵸, 자기야?”

도움을 구하듯 쳐다본 조정현을 마주 보며 지승혁은 부드럽게 웃어 보이곤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정태준이 낮게 중얼거리는 말은 전체를 다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도둑놈’이라는 소리만은 분명히 들렸다. 결국 조정현은 그런 게 아니라고 작게 항변했다.

정태준이 세웠던 날은 조금 전보다는 한결 무뎌졌지만 대신 착잡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조정현을 보았다.

“정현아. 이 양심 없는 새끼는 더 욕먹어도 괜찮아.”

“정현이?”

느닷없이 툭 끼어든 말에 정태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조정현의 시선도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지승혁이 가만히 정태준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름 부르라고 했어, 정현이가?”

낮게 깔린, 위험한 목소리였다.

“뭐?” 하고 묻는 정태준에게 지승혁이 목덜미를 손으로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이름을 그렇게 불러.”

조정현은 흠칫 몸을 떨었다. 지승혁에게서 나오는 위협적인 페로몬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 방향은 정태준에게로 향해 있었다. 정태준의 안색이 일순 창백해졌다.

“치졸한 새끼. 저번부터 이름 부르는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구네. 정현 씨. 됐냐?”

“정현이 이름이 그냥 정현이가 아니잖아.”

“조정현 씨. 됐냐? 미친놈 아냐, 이거 진짜. 어유, 씨.”

정태준은 ‘아주 염병 천병 지랄병이야.’하고 덧붙였다. 지승혁도 못 들었을 리 없을 텐데 그건 트집 잡지 않았다.

지승혁은 조정현 쪽으로 다가와 지극히 상냥한 손길로 그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줬다.

“놀랐죠. 잠깐 안에서 기다려줄래요?”

“어, 아뇨……. 저는 같이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할 일 없이 오는 사람은 아니라.”

억지로 함께 있고 싶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조정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정현은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승혁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형도 옷 입고 나오셔야죠.”

“아, 그러네요.”

지승혁은 그제야 자신의 차림을 인지한 듯했다.

그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며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지승혁이 제대로 옷을 차려입고 나올 때까지 둘이 있는 상황에서 정태준은 두어 번을 더 확인했다. 정말 본인 의사가 맞는 거냐고. 조정현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태준은 조정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직하게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뭐 도와줄 일 있으면 바로 말해요. 알았죠?”

조정현은 정태준을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정말 괜찮아요. 제가 먼저 형한테 매달린 거니까요. 그리고 정말 저한테는 잘해주세요.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

“그런 게 뭔데요?”

“그, 태준 형이 생각하시는 거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데요?”

이어지는 질문에 조정현은 난처하게 입술을 우물거렸다. 정태준은 가만히 조정현의 답을 기다렸다.

“그냥, 저, 형아가 저 억지로 뭐, 그랬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진짜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이쯤 되자 조정현은 몹시 억울해졌다. 강압적인 관계가 아니냐는 반복적인 질문을 받고 있으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도 마치 조정현에게는 어떤 의지도 없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거기에 더해 조정현이 지승혁에게 성애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걸 기본 전제로 하는 자체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태준 형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형아 멋있잖아요. 자상하시고 상냥하시구요. 무, 물론 일하실 때는 좀 무서우시지만 그거야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요. 아, 으음.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제가 형아를 좋아하는 게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억지를 쓴 거면 제가 쓴 거죠. 형아는 안 한다고 하셨었어요.”

말하고 보니 좀 부끄러워졌다.

그래, 생각해보면 지승혁은 처음에 히트 사이클이 온 조정현을 안정시키려 했었다. 그런 지승혁에게 들러붙은 건 몸이 달았던 조정현이었다. 그러니 둘 중 억지로 한 사람을 꼽는다면 그건 자신 쪽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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