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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29)화 (29/130)

#29

그 모습까지 확인한 조정현이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으며 웅얼거렸다.

어느 모로 보나 지승혁은 잘난 남자였다. 좀 차가운 면도 있지만 채무자인 자신에게도 이렇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면모를 가진 사람이기도 했고 심지어 극우성 알파다.

제 눈에도 이럴 진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떨까.

30대의, 극우성 알파의 첫 경험이길 바란다는 자체가 너무 말도 안 되는 기대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였고 속이 상하는 건 상하는 거였다.

“이런 적은 처음이시면 아닌 적도 있으셨다는 거네요.”

“……정현아.”

한소끔 기운이 빠져 가라앉은 목소리를 지승혁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조정현의 이름을 불렀다. ‘씨’가 아니고 그냥 이름만 부르는 것에 조정현이 슬며시 눈동자를 돌려 지승혁 쪽을 보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서러운 입술이 튀어나왔다. 지승혁이 할 말을 고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지승혁이.

조정현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은 지승혁을 계속 보고 싶었다. 그 유혹은 무척이나 달아서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미안해. 내가 말실수를 했어.”

“…….”

순순히 이어지는 사과의 말에 조정현은 결국 표정을 풀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좀 더 퉁퉁거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승혁의 입에서 나온 사과를 듣고 그런 자세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자신의 기분이 살짝 상했다는 이유로 함께 있는 시간을 불편하게 보내기 싫었다. 그건 낭비였다. 후회가 뒤따르게 될 것이 분명한. 그리고 조정현은 그런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게 싫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을 보며 말했다.

“……그러면 일어나는 거 도와주세요, 형아.”

지승혁의 눈썹이 조금 위로 들렸다. “형아?”하고 되물으며 생소한 것을 접하는 것 같은 질문에 조정현은 조금 억울해졌다.

“자, 자기가 먼저 형아라고, 그, 그렇게 부르셨으면서……!”

조정현은 정말로 억울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항변했다. 그러나 지승혁이 반응한 건 다른 단어였다.

“자기요?”

“네?”

지승혁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조정현이 거의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단어였다. 그걸 저런 식으로 받아들일 거라고는 정말 미처 예상하지도 못했다. 형아라는 호칭도 정말 용기를 낸 거다. 하물며 자기라니. 그런 대담한 단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조정현은 담이 크지 않았다. 이건 정말 억울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제가 자기라고 한 건 그런 자기가 아니구요. 그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란 의미로 자기라고 한 건데, 그 자기가 아니라요…….”

“알아요.”

지승혁이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일부러 그런 거구나.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알아차릴 만한 상황이었다. 조정현은 아예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몸을 두르고 있던 이불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고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의 손을 감싼 후 엄지로 천천히 문질렀다.

“듣기가 좋아서 그랬어요. 한 번만 더 불러줄래요?”

“……뭐를요.”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뽀로통해졌다.

“알잖아요.”

“모르겠는데요…….”

그러나 허무한 반항으로 끝나고 말았다.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물론 승자는 지승혁이었다.

“형아라고, 한 번만 더 불러줘, 정현아.”

세상 어떤 사람이 거부할 수 있을까.

조정현은 지승혁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페로몬에 백기를 들었다. 이토록이나 매혹적인 향에 홀리지 않을 오메가는 없을 터였다. 조정현은 결국 다물었던 입을 달싹였다.

“치, 치사해요.”

“맞아요. 치사해요. 열 살이나 어린 사람이랑 이러려면 좀 치사해야 정현이 동갑내기들이랑 상대가 되죠. 이런 내가 싫어요?”

원망스러운 말에도 지승혁은 모르는 것처럼 뻔뻔하게 굴었다.

조정현은 갑자기 자기 동갑내기들 얘기를 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지승혁은 그냥 던져본 말일 텐데 동요해버렸다.

“그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뭐라고 해요…….”

적당한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어 결국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더 이상 할 말도 다 떨어져 버렸다.

그냥 처음에 불러 달라고 할 때 순순히 말할 것을. 괜히 시간을 끄는 바람에 말하는 게 더욱 힘들었다.

“혀, 형아.”

조정현은 간신히 한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지승혁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듯했다.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페로몬의 농도가 아주 진해졌다.

처음엔 베타로 오해할 정도로 페로몬을 티끌만큼도 느낄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아예 대놓고 내보내고 있었다. 그의 페로몬에 맞추어 조정현의 몸에서도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우리 정현이 이렇게 귀여워서 어떡하지.”

지승혁이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조정현의 뺨을 쓸어내렸다. 지금 조정현이 고양이였다면 골골거리는 소리로 방안을 가득 채웠을 터였다. 그가 쓰다듬는 손길을 가만히 느끼던 조정현은 자꾸만 감기는 눈을 치떠 올렸다.

지승혁의 페로몬이 너무나 기분 좋았다. 극우성 알파의 페로몬이란 원래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기분을 안정시키기도 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둘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했다.

“좀 더 만져주세요, 형아.”

“…….”

조정현은 자신의 말이 끝나자 지승혁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다.

“정현아,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야?”

“네? 뭐, 뭐가요?”

“이렇게 야한 페로몬 흘리면서 좀 더 만져달라고 하는 거 말야.”

지승혁의 페로몬이 순식간에 농도가 진해지면서 끈적거렸다. 극우성 알파의 페로몬이 뜻하는 바를 조정현이 모를 수는 없었다. 좀 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것. 달콤한 저림이 몸 안쪽에서 퍼져갔다.

지승혁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키스를 조르는 조정현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래서, 싫어요?”

“……에?”

혀가 조금 풀려 멍한 발음으로 되물은 조정현의 뺨을 지승혁이 손가락 바깥쪽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조정현은 살짝 접힌 눈매에 홀린 듯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이어진 침묵에 조금 정신이 돌아온 듯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다. 지승혁은 차분하게 조정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기다리는 대답이 뭔지 얼른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싫으냐는 질문은 왜 하는 건지 떠올려보던 조정현은 그것이 ‘이런 내가 싫어요?’라는 말에 이어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았었다.

조정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안 싫어요. 왜 싫어요.”

“정말?”

지승혁이 조금 웃었다. 저렇게 웃으니 눈가에 주름이 잡히는구나. 가만히 있을 때와 웃을 때의 얼굴 느낌이 전혀 달랐다. 새삼스럽게 쳐다보던 조정현이 그의 눈가에 살짝 입을 맞췄다. 한 번으로 끝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연이은 입맞춤에 지승혁은 간지러운 듯 웃었다.

“아침부터 이렇게 귀엽게 굴면 곤란한데.”

이미 한쪽 팔로 조정현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지승혁이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지승혁에게 몸을 붙이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저, 저요. 아직 히트 사이클 안 끝난 것 같아요.”

거짓말이다.

극우성 알파의 페로몬을 받은 몸은 이미 불안정하게 시작된 히트 사이클을 종료시켰다. 하지만 그를 원했다. 순수한 욕구였다.

어쩌다 이렇게 대담한 말까지 할 수 있게 된 건지 설명이 불가능했다. 몸에서 자연스럽게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알파를 유혹하는 페로몬이었다. 너무나 적나라한 의도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어 부끄럽고 창피했으나 이제 와 뭐 어떠랴 싶은 마음으로 버텼다.

지승혁을 원하는 것 자체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우리 정현이가, 하루 사이에 발랑 까졌네. 이렇게 사람도 꾈 줄 알고.”

“……으응.”

“나한테만 이러는 거예요. 알았죠?”

목덜미에 와 닿는 따끈하고 축축한 입술을 느끼며 조정현이 어깨를 움츠렸다.

대답을 채근하듯 목덜미에 이를 세우는 따끔한 감각에 조정현은 지승혁의 얼굴을 묻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은 건 그 뒤로 두어 시간이 지난 후였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드러난 맨 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많이 힘들어요?”

“하, 한 번만 하실 줄 알았는데.”

제 무덤을 제가 판 꼴이었으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싫지 않았다.

기운이 잔뜩 빠져 침대에서 누워있던 조정현은 가뿐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선 지승혁을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심지어는 더욱 기운이 넘쳐 보이기까지 한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싶어 놀랍기까지 했다.

지승혁이 따끈하게 젖은 수건을 들고 오는 걸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젖은 수건으로 뭘 하려는지 지켜보던 조정현의 의문은 곧 풀렸다. 그가 조정현의 몸을 구석구석 말끔히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피부에 없던 자국들이 있었다.

“자, 잠깐만요.”

가슴팍에만 있는 것처럼 보인 그 자국들은 몸의 거의 전체에 나 있었다.

피부병인가 싶을 정도로 몸이 얼룩덜룩했다. 심한 부근은 심지어 멍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뭘 잘못 먹었던가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짚이는 건 없었다.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도 없었거니와 그런 음식을 먹은 기억도 없었다. 그럼 설마 모기에 울린 건가 싶었다. 하지만 가렵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자신의 살을 꾹꾹 눌러보던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물었다.

“왜 그래요?”

“어, 아뇨. 뭐가 나서…….”

“……뭐가 난 것 같은데요.”

“네? 그러니까, 음.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데 옮는 건 아마 아닐 것 같은데…… 전염성이 있는 거면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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