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24)화 (24/130)

#24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승혁 씨. 진료를 보실 분이, 이분 맞으시죠?”

“네. 열성 오메가이고 히트 사이클에 들어섰는데 좀 불안정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진료 시작하겠습니다, 조……. 정현 씨.”

늙수그레한 의사가 환자 차트에 적힌 이름을 부르며 시선을 돌렸다. 조정현의 몸에 청진기를 대어 보기도 하고 눈동자에 빛을 비추어보기도 했다. 몸에 기계를 대자 삐삐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반복되었다. 화면을 쳐다보던 의사의 눈이 찌푸려졌다.

“맞네요. 히트 사이클. 그런데 좀…….”

의사는 기계를 멈추고 조정현을 돌아보았다.

“이전까지 히트 사이클의 해소는 어떻게 하셨나요?”

“아, 억제제를 먹었어요.”

“억제제만 드셨습니까? 알파와 함께 지내신 적은요?”

의사는 완곡하게 돌려 물어보았지만 그가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조정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모님이 엄격하셔서요. 그냥, 약을 먹었어요.”

“혹시 어떤 약인지 설명을 해줄 수 있나요?”

“종류를 두 번 정도 바꾸었거든요.”

“여기에서 골라보세요. 처음 먹었던 것부터.”

의사는 알약들 종류가 프린트된 종이를 조정현에게 내밀었고 그는 눈에 익은 약 세 개를 골랐다. 의사가 침음을 흘렸다.

“처음부터 일반 오메가가 복용하는 억제제 중 센 걸로 시작해서 우성 오메가용 억제제까지 단계가 올라갔네……. 하이구. 그리고 약만 먹었어요?”

“……어, 1년 전부터는 주사를 맞았어요. 몸이 힘들 테니까 약 먹고 쉬라고 하셔서. 주사 맞고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졌어요.”

조정현의 설명을 듣던 의사는 난감한 듯 이마를 문질렀다.

컴퓨터 화면을 보던 의사가 결과가 떴네요, 하더니 도표가 그려진 걸 살피기 시작했다.

“원래 오메가나 알파나 러트나 히트 사이클이 되면 다른 형질의 페로몬으로 안정을 시켜야 한다는 사실은 아시죠? 네, 맞아요. 한데 조정현 씨는 발현됐을 때부터 약으로 억눌러와서 현재 페로몬이 상당히 불안정해요. 지금 말씀해주시기로 주사를 맞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게 억제제로는 이제 감당이 안 되니까 약물을 써서 재운 걸 겁니다. 네, 맞습니다. 마취에 쓰는 약이요. 열성 오메가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겠네요. 일반적인 오메가나 우성 오메가였으면 아마 지금 큰일이 났을 겁니다.”

조정현은 가만히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는 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의사는 지승혁 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두 분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연인이시라면 제대로 된 히트 사이클을 함께 지내시는 걸 제일 권장드립니다만, 그게 불가하시다면 이번 히트 사이클 때는 약한 억제제를 드시면서 지승혁 씨 페로몬을 쐬시는 것도 좋습니다. 마침 지승혁 씨께서는 극우성 알파이시니 페로몬 효과가 좋을 겁니다. 이 정도로 장기간 약을 복용하며 히트 사이클을 억누르는 경우는 좀처럼 찾기가 힘들어서 제가 장담하기가 힘듭니다만.”

극우성 알파. 조정현은 저도 모르게 지승혁 쪽을 쳐다보았다. 극우성 알파라니. 정태준이 베타 지 사장님이라며 놀릴 때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는데 설마하니 극우성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승혁은 조정현과 눈을 맞춘 후 다시 자연스럽게 의사를 쳐다보았다.

“일단 수액 맞고 가세요. 내용물은 비타민이랑, 페로몬 안정제 같은 게 좀 들었습니다. 히트 사이클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조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지승혁은 다녀오라고 말하며 진료실에 남았다. 의사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지승혁이 조정현이 누워있는 침대로 온 건 수액이 절반쯤 들어갔을 때였다.

“잘 맞고 있었어요?”

“아, 형. 네에. 기분 탓인지 확실히 좀 나아진 것 같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머리가 혼곤하게 물에 젖어드는 느낌이 가셔서 한결 살 것 같았다. 지승혁은 조정현을 내려다보며 다행이네요, 하고 미소했다.

링거를 맞는 시간은 30분 정도로 길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다.

카테터 바늘을 제거하고 반창고를 붙인 후 병원을 나섰다. 지승혁의 손에 들린 약 봉투를 뒤늦게 본 조정현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지승혁은 약을 내어주지 않았다. 조정현이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약은 최후의 최후라고 생각해요. 일단 집으로 돌아가죠.”

어차피 먹을 거 미리 먹어두면 도움이 될 텐데 싶었으나 얌전히 그의 말을 따랐다. 몸 상태가 조금 나아졌기 때문이었다.

차 안에 타자 내부에 묘한 향이 났다. 기억에 있는 냄새였다. 어디서 맡았더라, 멍한 머리로 기억을 되짚어 보았으나 좀처럼 잘 떠오르지 않았다.

차 내부에 방향제를 부착하진 않았는데 어디서 나는 향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조정현은 곧 자신이 착각한 건가 싶어 냄새의 근원을 찾는 걸 그만두었다. 곧 그 향기도 사라졌다.

집으로 가면서 묘하게 변하기 시작한 몸 상태는 집에 도착하자 더욱 안 좋아졌다. 주차장에서 멈춘 차 시트에서 조정현은 가쁘게 호흡하며 말했다.

“형, 저 몸이 이상, 이상해요. 몸이…….”

지승혁이 차에서 내려 조정현이 있는 조수석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떨리는 손 때문에 안전벨트도 채 푸르지 못한 조정현이 지승혁을 올려다보았다.

“……죄송해요.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잇새로 헉헉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승혁이 그런 조정현의 안전벨트를 풀고 부축하듯 끌어안아 차에서 끌어 내렸다. 조정현은 다리에 힘이 풀린 상태로 지승혁에게 거의 매달린 꼴이 되었다.

조정현은 멍한 상태로 지승혁의 어깨에 이마를 문질렀다.

“형…….”

지승혁이 작게 혀를 차며 그 돌팔이 의사, 하고 작게 욕설을 짓씹었다. 지승혁이 몸을 숙이는가 싶더니 조정현을 품에 안아 들었다. 놀란 조정현이 몸을 움찔거리며 반사적으로 지승혁을 밀어냈으나 단순히 바르작거리는 수준에 그쳤다. 다리에만 힘이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몸 전체가 흐물흐물해진 것 같았다. 몸의 뼈가 전부 녹아버린 것처럼 힘을 줄 수 없었다.

“집에 갈 때까지만 참아요.”

그 말을 들은 조정현은 얌전히 지승혁에게 몸을 맡겼다.

그의 목덜미에서 차에서 맡았던 향기가 났다. 시원하고 상쾌하고 진한 향. 뭐라 딱히 정형화된 냄새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기분 좋은 향기였다.

……차에서?

아니, 처음 맡았던 건 그보다 더 전이었다. 어디였지. 어디에서 이 향을 맡았었지.

조정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간지러워요.”

“그렇지만, 좋은 냄새가 나서. ……형 목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

조정현이 웅얼거리며 좀 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좋은 냄새? 내 페로몬?”

지승혁의 목소리에 고저가 없었으나 조정현은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아, 형 페로몬이었구나. 네에, 형 페로몬요. 어떻게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요……?”

그래, 기억이 났다.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았는지.

백화점에서였다.

지승혁이 옷의 가격표를 떼주었을 때 맡았던 바로 그 향기였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잠시 지승혁이 조정현을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몸에서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었다. 지승혁의 몸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고 그에게 달라붙었다.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게 실례라는 건 알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마치 몸이 뇌의 지시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 반대인가. 뭐가 어쨌든 좋았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몸에서 나는 향을 맡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조정현 씨, 안으로 들어가야죠.”

“……으응.”

조정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승혁의 몸에 뺨을 문질렀다. 교태부리는 것처럼 낸 비음은 제가 낸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부끄러워할 여유는 없었다. 지승혁은 이제 아예 헛웃음 소리를 냈다.

“어쩌려고 이렇게 귀엽게 구는지 모르겠네.”

지승혁의 팔이 조정현의 허리를 붙잡고 위로 번쩍 들어 올려 다른 손으로 엉덩이를 받혔다. 조정현은 저도 모르게 아이를 안아 올리듯 들어 올린 지승혁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문이 열리고 조정현은 지승혁에게 안긴 채 안으로 들어갔다.

덜컹. 띠리릭.

문이 닫히고 자물쇠 걸리는 소리가 났다.

지승혁은 조정현의 신발을 손으로 벗겨 내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툭. 투둑. 신발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왠지 모르게 몸이 들썩거렸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런 조정현을 안아 든 채로 침실까지 걸어 들어간 지승혁이 문가에 그를 내려놓았다. 시선을 조정현에게 고정한 채로 핸드폰을 꺼냈다.

눈빛이 쏘는 듯이 형형했다.

어디에 전화를 거는 걸까. 내가 옆에 있는데. 불만스러워진 조정현은 지승혁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다가 뺨 근처에 입을 맞추었다.

뜨거운 한숨이 절로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내가 연락할 때까지 찾지 말고 급한 일은 알아서 해결하십시오.”

내뱉듯 말한 지승혁이 조정현을 양팔 사이에 가두었다. 문과 지승혁 사이에 낀 조정현이 몸을 작게 바르작거렸다. 뭔가가 거칠게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그게 핸드폰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어디서 이렇게 조르는 법을 배웠어요. 네?”

“아니, 안 배웠, 안 배웠어요.”

“그럼 안 배웠는데 이렇게 잘 알아요?”

“몰, 몰라요.”

은근하게 야유하는 말에 조정현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몸의 심지가 안쪽에서부터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참기가 힘들었다. 왜 참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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