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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23)화 (23/130)

#23

인파가 제법 많아 좀 피곤한 느낌이 들었지만 즐거웠다. 언제 또 이렇게 지승혁과 함께 올 수 있을까 싶어 나가는 게 못내 아쉬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조정현의 마음을 꿰뚫어 본 건지 지승혁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고 조정현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그러면 다음에 또 함께 오죠.”

“정말요?”

긍정적인 말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집에서 차로 얼마 안 걸리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그렇게 좋아요?”

“어, 네. 형 바쁘실 텐데 일부러 시간 내주시는 거잖아요.”

조정현은 스스럼없이 답했다. 돈만 내어주고 원하는 걸 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시간을 할애해주는 성의를 보여주는 게 매우 고마웠다. 그건 당연한 게 아니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조정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너무 고마웠는데 지승혁은 다음을 말했다. 들뜨는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조정현이 지승혁의 손을 잡았다. 기다란 손가락이 조정현의 손을 감싸 잡았다.

지승혁과 함께 여러 빵집과 디저트 전문점을 둘러보던 조정현이 고른 건 빙그레 웃는 얼굴이 그려진 도넛 가게였다. 도넛이라고 쓰여있긴 했으나 조정현의 관심을 끈 건 여러 가지 케이크들이었다.

컬러풀한 알 초콜렛을 부셔놓은 케이크, 웃는 얼굴이 그려진 케이크가 너무나 귀여웠다. 도넛들 역시 너무나 맛있게 보여 어느 하나를 고르기 힘들었다.

도넛 가게에서 케이크를 사도 될 것인가 역시도 고민 중 하나였다.

“잘 못 고르겠어요?”

“네. 도넛도 맛있어 보이는데 케이크도 맛있어 보여서요. 형은 어떤 게 좋으세요?”

쇼케이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으로 입을 감싸며 물었으나 지승혁에게서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승혁이 주문받는 직원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진열된 것들 한 개씩 전부-”

“잠, 잠깐만요……!”

그기 주문하는 내용을 들은 조정현이 기겁하며 지승혁의 팔을 잡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지승혁 대신 조정현은 우유 생크림이 들어있는 도넛 두 개를 주문했다.

주문 내용을 들은 지승혁이 질문했다.

“케이크도 먹고 싶은 거 아니었어요?”

“아, 아뇨. 저거면 괜찮아요.”

“사양하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추가 주문합니다. 저쪽에 있는 케이크들-”

조정현이 다시 한번 지승혁의 옷깃을 잡았다. 조정현은 결국 노란색 스마일 케이크 하나를 추가 주문하는 걸로 타협을 해야 했다.

조정현은 케이크를 담은 쇼핑백이 너무 흔들지 않고 걷기 위해 애써야 했다. 먹고 싶은 건 사양 말고 다 샀어도 된다고 하는 지승혁을 한번 쳐다본 조정현은 어깨를 조금 늘어뜨렸다.

“한 번에 그렇게 많이는 못 먹어요. ……그리고 단 거 그렇게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아요.”

지승혁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렸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그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요. 맞아요, 그렇네요.”

조각 케이크 하나로 충분히 만족했던 걸 떠올려보면 아무리 작아도 홀케이크 하나는 한 번에 다 먹지 못할 게 분명했다. 기껏 귀여운 케이크를 골랐는데 버리는 건 너무 아까웠다.

“이거, 집에 돌아가면 같이 먹어요.”

지승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조정현을 응시했다.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지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조정현은 마주 웃었다. 잠시 멈춰 서서 조정현을 보던 지승혁은 그럴까요, 하고 대답하곤 곧 발걸음을 움직였다.

* * *

아침에 일어날 때 조정현은 몸이 이상하게 나른했다.

어제 사람이 많은 곳에 갔기 때문에 지친 후유증일까. 숫제 열이 나는 것도 같았다. 가볍게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디뎠다. 이불에서 빠져나온 몸은 찬 공기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자 잘게 부르르 떨렸다.

어제 너무 들떴던 게 문제였을까.

조정현은 거실로 나갔다. 마침 준비를 마치고 나온 지승혁과 마주쳤는데 그가 조정현을 보더니 멈칫했다. 인사를 건네려던 조정현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히트 사이클인가요?”

“네? 어, 히트 사이클, ……어. 그렇구나…… 그런가 봐요.”

지승혁의 질문에 조정현이 뒤늦게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현은 날짜를 세어보려 했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은 눈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한번 인식을 하고 나니 몸에서 나는 열이 단순히 착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승혁은 조정현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채로 연이어 말했다.

“이전에는 어떻게 했어요? 상대가 필요한가요?”

“……상대요? 무슨 상대요……? 아. 아뇨.”

보통 알파나 오메가가 발정기에 들어서면 상대를 찾아 욕구를 해소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알파나 오메가의 첫 경험은 베타에 비해서 이른 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정현은 아직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부모님이 철저하게 보살펴주었다.

“그냥 약 먹고 주사 맞고 그러고 나서 좀 쉬면 괜찮아져요. ……아, 약이……. 약이 없지.”

조정현은 맥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억제제가 없다는 사실을 멍청하게 잊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떠밀려 지승혁을 만나서 사무실로 갔을 때 짐을 챙길 만한 여유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또한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도 몰랐으니 애초에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조정현은 한숨을 쉬었다. 열 때문인지 몸이 무거웠다.

바뀐 생활에 적응하느라 히트 사이클 주기가 어그러진 듯했다. 원래 조정현의 히트 사이클 주기보다 훨씬 당겨졌다. 평소에는 히트 사이클 주기에 맞춰 미리미리 약을 먹었기에 이런 일이 없었다. 약 없이 히트사이클을 겪는 건 처음이었다.

페로몬을 조절하는 게 힘들었다. 쩌저적 금이 간 둑처럼 페로몬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지승혁은 베타였다.

그 사실을 상기한 조정현은 입술을 한번 깨물었다. 제 페로몬 영향을 받지 않기에 다행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조정현의 상태를 기이하게 여길 게 분명했다.

베타들은 보통 알파와 오메가의 발정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당연했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발정기에 들어선 알파와 오메가들은 짐승 같을 테니 말이다.

조정현은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그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도 왠지 그런 거리낌 때문인 것 같아 무척이나 서글퍼졌다.

“일단 병원으로 가죠.”

“아, 괜찮은데.”

“괜찮지 않은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에요.”

“하지만 형 출근…….”

“그런 걱정은 조정현 씨가 안 해도 됩니다.”

지승혁은 단호하게 말하며 조정현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기사를 물리친 지승혁이 직접 차를 몰았다. 차에 타서 이동하는 내내 멍한 머리로 유리창에 기댔다. 지승혁은 히트 사이클인 자신과 닿는 게 싫을 거였다. 시트의 구석으로 몸을 움직였다. 좀 슬픈 것도 같았다.

열 때문인지 감고 있는 눈꺼풀이 조금 젖어들었다.

“왜 자꾸 피해요.”

“……아니에요.”

“아니긴. 손 줘요.”

운전하던 지승혁이 조정현 쪽으로 한 손을 뻗었다. 조정현은 그 손바닥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저랑 닿는 거 싫으신 거 아니셨어요……?”

“내가요?”

지승혁은 가볍게 넘기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맞아요. 싫어요. 지금 조정현 씨가 내뿜는 페로몬이 나를 자극하거든요.”

조정현이 그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십여 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 이후에야 바로 이해한 조정현이 고개를 지승혁 쪽으로 돌렸다.

“……네? 페로몬……. 페로몬요? 제 페로몬요?”

“그래요, 조정현 씨 페로몬.”

지승혁은 빨리 잡으라는 듯 내민 손을 흔들었다.

지승혁이 어떻게 페로몬을 느낄 수 있지. 베타는 페로몬을 느끼지 못할 텐데.

조정현은 물끄러미 그 손을 내려다보다가 제 손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언제나 건조했던 지승혁의 손바닥은 땀이 난 것처럼 조금 촉촉했다. 그는 조정현의 손을 한번 힘주어 잡았다가 느슨하게 했다.

“형 베타 아니셨, 어요?”

“내 입으로 한 번도 그런 소리를 한 기억은 없군요.”

조정현은 천천히 눈꺼풀을 깜빡였다. 확실히 지승혁 본인이 베타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러면, 오메가세요?”

“하하.”

지승혁이 소리 내어 웃었다.

잡고 있던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조정현 씨는 정말 편견이 없네요.”

멍한 머리로 지승혁이 하는 말을 듣던 조정현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여졌다.

“그러면…….”

“베타도 아니고 오메가도 아니면 뭘까요?”

“……알파, 세요?”

“맞아요.”

정답을 맞힌 조정현을 칭찬이라도 하듯 지승혁의 눈매가 휘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대답을 듣고 눈을 슴벅였다. 지승혁이 알파라는 사실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정현이 배우기로 히트 사이클인 상태에서 알파를 만나면 원치 않는 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고 들었다. 페로몬에 자극을 받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그게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조정현은 지승혁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을 꿈질거리며 빼내려 했으나 다시 강한 힘으로 다시 붙들렸다.

“조금만 참아요.”

지승혁은 거기까지 말하고 차를 몰았다.

알파와 오메가가 다닐 수 있는 병원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병원은 그리 멀지 않았다. 접수처에서 뭔가를 말한 지승혁이 의자에 기대서 앉아있는 조정현에게 돌아왔다.

“접수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지승혁이 말하고 나서 거의 동시에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와 조정현이 맞는지 묻고 채혈했다. 알코올 솜으로 누르고 있으려니 진료실에서 조정현의 이름을 불렀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지승혁은 의아한 얼굴로 있는 조정현을 부축해서 빠르게 진료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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