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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22)화 (22/130)

#22

너무 가까운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들기도 뭐 했다.

“어머, 고객님. 제가 대신 떼 드릴게요.”

“됐습니다.”

다가오며 말하는 직원의 제안을 지승혁은 바로 거절했다.

그는 코트에서 가격표를 제거한 후 몸을 굽혔다. 이번에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승혁이 무릎 하나를 굽힌 채로 조정현이 입고 있는 셔츠 안쪽에 손을 넣었다.

“혀, 형?”

“가만히. 옷핀이라 움직이면 찔릴 수 있어요.”

“……어. 네, 네에.”

이런 게 일반적인가?

그래도 무릎을 꿇기까지 하는 건 안 하지 않나.

조정현은 스스럼없이 제 앞에서 몸을 숙인 지승혁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갈피도 잡히지 않았다. 여태껏 조정현이 봤던 지승혁은 이런 행동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

지승혁의 손가락이 옆구리를 스치자 조정현이 몸을 파득 떨었다. 지승혁이 고개를 들어 조정현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눈썹을 위로 들어 올리며 조정현에게 물었다.

“간지러워요?”

“앗, 네. 좀, 놀라기도 했고요.”

“그렇군요.”

대수롭잖게 대답한 지승혁이 이번에는 바지에 매달린 가격표를 잡았다. 정말로 전부 직접 떼어줄 생각인 듯했다. 옷을 입은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일이 능률적이긴 했다. 다만 조정현은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애꿎은 입술만 잘근거렸다.

그때 어디선가 묘한 향이 맡아졌다.

시원하고 상쾌한 향이 몹시 기분 좋았다. 향수라면 사고 싶을 정도였다. 향수를 뿌린 사람을 찾기 위해 매장 내를 둘러보며 코를 킁킁거렸지만 더 이상 맡을 수 없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조정현은 자신이 잘못 맡은 건가 싶어 눈을 깜빡거렸다.

가격표를 모두 제거한 지승혁은 조정현에게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물었다.

“네, 불편한 데 없어요.”

“좋아요. 옷을 더 구경할래요, 아니면 여기 지하 1층 식품 매장에 갈래요?”

그가 결제한 비용을 생각하면 이 이상 옷을 구경하는 것보단 지하 1층에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냉큼 지하 1층이라고 답한 조정현과 함께 지승혁은 매장을 나왔다.

“그런데 이거 가격이 너무-.”

“그러면 보답으로 맛있는 밥 해줘요. 내가 만든 걸 먹어줘도 좋고.”

“네?”

너무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말 아닌가. 아무리 봐도 조정현에게 이익이다. 지승혁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그런데 내가 만든 음식은 아마 조정현 씨가 질색할걸요.”

“아뇨, 아뇨. 설마요. 그렇진 않을 것 같은데요.”

농담을 건네는 것처럼 하는 말에 조정현이 고개를 부웅붕 가로 저었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가면서 지승혁은 조정현의 손을 잡았다.

좀 어색하긴 했지만 지승혁과 손을 잡는다는 자체는 싫지 않았다. 조정현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근데요, 형. 원래 이렇게 친절하세요?”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조정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조정현 씨한테 계속 친절했던 것 같은데.]

조정현이 지승혁의 집으로 왔던 첫날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저번에는 저에게 계속 친절하게 해주셨다고…….”

“내 입으로 말한 거 말고 다른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요.”

“아. 아닌 것 같은데. 충분히 친절하신데요.”

직원들을 대하던 지승혁의 모습을 되새겨보았다. 불필요한 요구나 과한 의전을 요구하는 것도 없었다. 전 직원들에게 깍듯하게 존대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승혁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정현 씨가 나를 잘 봐주는 게 아닐까 하는데.”

“……어, 뭐. 그야 그런 것도 당연히 있긴 한데요.”

지승혁은 스스럼없이 수긍하며 대답하는 조정현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뭐 이상한 말이라도 한 걸까. 눈이 마주치자 조정현은 버릇처럼 눈을 크게 떴다. 지승혁은 웃음이 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한테나 안 그래요. 처음 만났을 때 생각해봐요.”

처음 만났을 때.

……그래, 확실히 첫인상이 그리 녹록한 건 아니었다. 그 뒤로도 대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고 말이다. 언제부터 그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던 걸까.

“그쵸? 말했잖아요. 나 쉬운 사람 아니라고.”

조정현은 알 듯 말 듯한 얼굴이 되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가 되자 지승혁은 자신이 먼저 타더니 몸을 돌려 조정현의 손을 잡은 채로 살짝 당겼다.

상대를 리드하는 게 익숙해 보였다. 몸에 밴 매너로 보이는데 이래도 친절하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는 걸까. 어떻게?

“…….”

아니다. 지금 행동은 친절이라는 말보다는 자상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친절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면 자상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을까? 궁금증이 들어 질문하려고 했으나 지승혁 쪽이 한 발 빨리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요.”

“왜, 왜요? 제가 무슨 얼굴이길래요?”

조정현이 한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지승혁은 그걸 보며 옅게 웃었다.

뭔가, 평소랑 좀 달랐다.

“……어.”

“왜 그래요.”

“제가 형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처음이라서요.”

“그렇군요.”

지승혁이 선선하게 대답했다.

내려다본다고는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조정현이 지승혁보다 한 칸 위에 서 있긴 했지만 눈높이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내려다본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그 점이 또 은근히 신경 쓰였다.

“……저 아직 성장이 안 끝났겠죠……?”

“더 크고 싶어요?”

“그야…… 당연하죠.”

조정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오메가라는 형질 때문에 지승혁만큼 크는 건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180cm는 넘고 싶었다. 이제 2cm만 더 크면 되는데.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형은 키가 어떻게 되세요?”

“나? 글쎄, 마지막에 재봤을 때에 192cm였어요.”

“192요?”

조정현은 눈을 크게 떴다. 크다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190cm가 넘을 줄은 몰랐다. 윗공기는 맑으냐는 질문에 지승혁은 어이없는 듯 웃음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을 피해 한쪽으로 비켜서는데 지승혁의 팔이 조정현의 허리를 감았다. 그 팔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설 즈음에서야 떨어졌다.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지하 1층에 도착했다.

남성복 매장이었던 4층보다 확실히 사람들이 많았다.

먹을 곳도 엄청 많았고 전부 다 맛있어 보였다. 지승혁은 이곳 저것을 보던 조정현에게 말했다.

“그렇게 좋아요?”

“앗, 네? 네. 식당은 혼자서는 들어가기 좀 힘들었거든요.”

조정현의 시선이 수제비 전문점에 꽂혔다. 좀처럼 잘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저거 맛있어 보인다, 하고 한숨처럼 말하는 조정현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지승혁이 조정현에게 먹으러 가자며 권했다.

“아니, 아니에요.”

“뭐가 아니에요. 먹고 싶다고 한 거 다 들었는데요?”

“……아뇨…….”

놀리는 듯한 지승혁의 말에 조정현은 얼굴이 뜨끈해졌다. 결국 그와 함께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마치고 매장 좌석에 앉았다. 테이블 한가운데에는 진동벨을 올려두라는 안내 문구가 적힌 테이블 태그가 있었다.

다른 테이블과 다르게 의자가 더 작은 것도 아닐 텐데 지승혁이 앉으니 좌석이 몹시 좁아 보였다. 확실히 체격이 좋으니 별것이 다 작아 보인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번씩 이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정확히는 이쪽이 아니라, 지승혁이었다.

조정현은 물끄러미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선이 굵고 또렷한 이목구비는 확실히 시선을 끄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어깨도 저렇게 넓고 체격도 좋으니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거다.

길거리에서 지승혁을 만났다면 조정현도 분명 넋을 놓고 쳐다봤을 거다.

진동벨이 울리자 직원이 하나씩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깔끔한 맛이 입에 맞았던 조정현은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웠다. 먹는 중간에 지승혁이 쳐다보는 걸 깨닫지만 않았어도 더 먹었을 거다. 그의 시선을 의식하니 왠지 손가락 끝이 간질거렸다.

물을 마시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권했다.

“단 거 좋아해요?”

“네? 어, 네에.”

“그러면 가기 전에 하나 사 가지고 가죠. 여기 디저트가 맛있다고 하더군요.”

뜻밖의 얘기에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결에 좋아한다고 답하긴 했으나 사실은 단 걸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가끔 생각날 때 사 먹고는 ‘이런 맛이었지.’ 하는 정도였다.

“근데 누가 맛있다고 했어요?”

“음?”

조정현이 테이블 위에서 휴지를 꼭꼭 손으로 눌러 접으며 묻자 지승혁이 드물게 되물었다. 조정현은 흘끔 눈동자를 올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지승혁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가만히 조정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걸까.

“그냥, 들었어요.”

“네에…….”

간단한 대답이었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린 건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은 다시 한번 정말이에요, 하고 덧붙였다.

“……? 네. 알겠어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정말이라고 생각했다.

“형은 단 거 좋아하세요? 다른 분이 맛있다고 말해주신 거면 좋아하셨으니까 말해주신 걸 텐데.”

지승혁의 눈매가 살짝 찡그려졌다. 낮게 한숨을 내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좋아해요. 그럼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아, 이거 정리를 하고 가야…….”

“여기에 두면 정리해주니까 신경 쓸 것 없어요.”

조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 식당도 아닌데 보통 이렇게 가져다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건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아무렇지 않게 먹던 그릇을 그대로 두고 자리를 떠나는 게 보였다. 조정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지승혁 쪽으로 쪼르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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