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21)화 (21/130)

#21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조정현은 그의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으며 눈을 굴렸다. 쓸데없는 걸 물어본 게 아닐까 싶어 당황스러웠다.

그냥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걸. 생각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면 어쩌나 싶어 안달이 났다. 조정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그렇지만, 그게, 핸드폰도 쓸 수 있고요. 편했고, 잘해주시고, 밥도 같이 먹어주시고, 그리고 또…….”

“그랬어요? 편하고, 잘해주고? 그래서 좋았어요?”

아, 또다.

지승혁이 조정현의 뺨을 문질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스킨십이었다. 어느 순간 조정현도 그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조정현은 가만히 눈만 들어 올려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뺨에 닿는 뜨거운 손의 감촉이 좋았다.

“쇼핑 가서 제가 도망치면 어쩌시려구요.”

“도망칠 거예요?”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이건 정말 자폭이었다. 조정현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뇨.”

얼굴이 화끈화끈 뜨거웠다.

지승혁의 손이 다시 한번 조정현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정현 씨가 만들어 둔 찌개 데울 테니까 씻고 나오세요. 정현 씨랑 먹으려고 기다렸거든요.”

부드럽게 조정현의 등허리를 밀며 말하는 지승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해 자신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다니. 엄청나게 기뻤다.

입꼬리가 절로 씰룩거렸다. 빠르게 세수를 하고 조정현이 나왔을 때 식탁에 바로 앉아서 먹을 수 있게끔 상이 차려져 있었다.

“찌개 데우다가 냄새가 너무 근사해서 한 입 먹어봤는데 아주 맛있어요. 얘기해 봐요. 요리 배운 적 있어요?”

“어. 아뇨, 그렇진 않은데…… 맛있으셨어요?”

“네, 무척.”

미소로 돌아온 답에 조정현은 헤헤 웃었다.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는다는 건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조정현 혼자서는 마트에 가면서 나오긴 했으나 지승혁과 동행하는 건 이 집에 들어올 때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먼지 하나 없이 광나는 문에 모습이 비쳐 보였다.

이렇게 거울에 비추어보니 지승혁과의 체격 차이가 한눈에 보였다.

제 어깨가 좁은 걸까 지승혁의 어깨가 넓은 걸까. 조정현은 괜스레 자세를 바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승혁의 넓은 어깨와 비슷해지진 않았다.

옷이 문제인가.

지금 조정현이 입고 있는 옷은 지승혁의 것이었다. 몸에 비해 큰 옷을 입고 있었기에 더욱 작아 보이는지도 몰랐다.

지승혁은 이전에 탔던 검은 차를 찾는 조정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이쪽이에요.”

“전에 탔던 차가 아니네요?”

“일하는 날이 아니니까요.”

대수롭잖게 답하는 지승혁을 보며 조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수석을 여는 지승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하는 날이 아니라고 했는데 운전사가 온 걸까. 조정현의 궁금증은 곧 풀렸다. 지승혁이 열린 문을 잡은 채 조정현을 보며 말했다.

“타세요.”

“조수석에요?”

“조정현 씨가 운전하고 싶어요?”

눈매를 나긋하게 휘며 지승혁이 물어보았다.

“네? 아뇨, 저는 운전면허도 없고, 어, 그러면 형이 운전하세요?”

“말했잖아요. 일하는 날이 아니라고.”

지승혁이 재미있다는 듯 답했다. 조정현은 대답을 듣고 좌석에 올라앉았다. 조정현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안전벨트를 하는 일이었다. 지승혁이 차에 올라타며 그런 조정현을 보곤 피식 웃었다.

“안전벨트 하는 걸 잊어버렸으면 내가 해주려고 했는데. 정현 씨는 착실하네요.”

“……네, 감사합니다.”

지승혁의 눈치를 살피며 인사했다. 지승혁이 차에 시동을 걸자 그르릉거리면서 차체가 작게 떨렸다.

“그럼 출발할게요.”

두 사람을 태운 차가 향한 곳은 근처의 백화점이었다.

지승혁은 조정현과 함께 바로 4층으로 향했다. 평일 오전이었는데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저기, 형.”

사람들의 소음에 섞여서인지 지승혁이 반응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너무 작은 걸까. 아니면 그냥 형이라고만 부르니 제대로 들리지 않은 걸까.

“승혁이 형……!”

조정현은 지승혁의 이름을 붙여 그를 불렀다.

그러자 지승혁이 곧장 조정현 쪽을 돌아보았다. 진작에 이렇게 부를걸, 하는 깨달음이 채 가시기도 전 지승혁이 조정현에게 말했다.

“불렀어요?”

“네, 네에.”

조정현은 대답하며 마주 오는 남자를 피해 길 한쪽으로 비켜섰다. 다행히 부딪치진 않았지만 워낙 팔을 크게 휘두르는 남자 때문에 조정현은 거의 벽에 붙다시피 했다. 어깨를 움칠거린 조정현의 손을 무언가가 붙잡았다.

지승혁이었다.

그의 넉넉하게 큰 손이 조정현을 가볍게 붙잡고 있었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 건 처음이었다. 어릴 때야 몇 번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커서는 친구들 사이에도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저기…….”

조정현이 지승혁을 불렀다.

“왜 사람들한테 치여서 다녀요. 속상하게.”

“안 치였는데요. 괜찮아요. 잘 피할 수 있어요.”

조정현의 말에 지승혁은 대답 없이 그저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혹시 주변 사람들 쳐다볼까 봐 그래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람들은 생각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 없거든요.”

이어진 지승혁의 말을 들은 조정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지승혁과 조정현을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말대로 괜히 주변을 의식했던 걸까.

“…….”

아니, 단순히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쿵쿵거리면서 울리는 심장 소리가 조금씩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 얼굴도 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손바닥에서 땀이라도 나면 어쩌나 신경이 쓰여 바르작거리니 지승혁이 조정현의 손을 더 꽉 쥐었다. 마치 빠져나갈 수 없게 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저기, ……엇.”

지승혁이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조정현이 움찔했다. 그가 멈춰선 곳은 깔끔한 느낌의 매장이었다. 옷 디자인도 장식이 적고 클래식해서 언제 입어도 괜찮을 듯했다.

“잠깐 들어갈까요?”

조정현에게 묻기는 했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듯 보였다.

지승혁은 들어가자마자 접객을 하러 다가오는 직원에게 밖에 걸어놓은 의상을 입어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직원이 사이즈를 묻자 멀뚱히 서 있던 조정현이 대답하려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지승혁이 답했다. 한데 그 사이즈가 조정현의 사이즈와 딱 맞았다.

놀라움 반 신기함 반으로 지승혁을 쳐다보는 조정현에게 그가 왜 그러냐는 얼굴을 했다.

“사이즈가 좀 다른가요?”

“아, 아뇨. 딱 맞추셔서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야 보면 알죠.”

“…….”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출 수 있지.

마침 직원이 의상을 가지고 돌아오며 조정현 쪽에 내밀었다.

“이쪽 고객님께서 착용하실 거죠? 안쪽에 탈의실이 있으니 그곳에서 갈아입으시면 돼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옷을 받아든 조정현이 탈의실로 가서 갈아입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 옷은 조정현에게 잘 맞았다. 그런데 스웨터 색이 너무 밝은 색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대담한 색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다.

지승혁이 골라줬으니 입기는 입겠는데 영 자신이 없었다.

주저하며 탈의실 문을 열고 나가자 몸을 돌려 직원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던 지승혁이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만족스러움이 퍼져 나가는 게 보였다.

“어머, 고객님. 정말 잘 어울리세요. 이 색이 이렇게 잘 어울리시기가 힘든데. 피부가 하야셔서 정말 너무 잘 어울리세요.”

“그, 그런가요?”

직원이니 판매 때문에 하는 말이려니 싶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하는 칭찬에 귀가 얇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정현은 지승혁 쪽을 흘끔였다.

“정말 잘 어울리네요.”

“……정말요?”

“정현 씨가 거울로 한번 봐봐요.”

지승혁의 권유에 조정현은 전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다.

채도가 높은, 핑크에 가까운 다홍색 스웨터는 몸에 대고 만든 듯 라인이 딱 떨어져 깔끔했고 감촉 역시 부들부들했다. 슬랙스는 차콜로 화사한 상의와의 밸런스가 절묘했다.

때마침 직원이 밝은 회색 코트를 가지고 와 조정현에게 권했다.

“이 색은 어떠세요? 보통은 어두운색을 추천해 드릴 텐데 고객님 피부가 밝은 편이셔서 이 색도 정말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이 정도 기장이 요새 한창 유행인데 다리도 긴 편이시라 소화도 잘하실 거예요. 한번 입어보세요.”

“입어봐요.”

지승혁도 권해와 조정현은 옷을 받아 팔을 꿰었다. 조정현은 거울을 쳐다보며 어색하게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이대로 입고 갈 겁니다. 계산해 주십시오.”

지승혁이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직원이 공손하게 카드를 받아드는 모습에 놀란 건 오히려 조정현 쪽이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가격표를 봤기 때문이다. 지금 조정현이 걸친 코트 가격만 백만 원을 훌쩍 넘었다.

물론 여태까지 조정현이 벌거벗고 다닌 건 아니었지만 주로 교복을 입었던 탓에 사복을 입을 일은 많지 않았다.

교우 관계를 극히 제한했던 부모님 덕분에 학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그런 조정현이 입었던 사복은 주로 부모님이 비서를 시켜 보낸 것들이었다. 자신이 입었던 옷들의 가격대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몰랐다.

“네? 스, 승혁이 형? 이거, 비싼데요.”

“옷은 좋은 걸 입어야죠. 안에 가격표는 제거해야겠는데. 어디 봐요.”

지승혁이 다가와 조정현이 입고 있는 옷을 살짝 뒤로 당겨 안을 보는 듯했다. 조정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아, 이거면 따로 가위는 필요 없겠네요. 가만히 있어 봐요. 떼어줄 테니까.”

나직이 말하는 지승혁의 목소리가 귀 바로 근처에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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