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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20)화 (20/130)

#20

“글쎄. 일단 상대방이 돈이 많아? 그러면 돈이나 달라고 할까. 아 근데, 요새 증여세가 귀찮긴 할 것 같다. 현금이면…… 자금 출처도 의심될 테니까 차라리 현물이 좋을까 싶기도 한데. 아니면 순금바 같은 것도 좋고. 근데 그건 왜?”

지극히 현대인의 발상을 고대로 입 밖으로 내는 정태준이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보통은 그러겠지 싶어서.”

“왜. 아닌 사람이 있어?”

“아무것도 아냐. 일 이야기로 돌아가지.”

칼로 자르듯 이야기의 주제를 전환한 지승혁의 태도가 못마땅한 듯 정태준은 구시렁거렸으나 곧 미련을 버린 듯 행동했다. 정태준은 곧 업무 관련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태준은 자신이 의뢰받은 몇몇 건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전부 만족스러웠다. 지승혁의 성향을 아는 정태준이 워낙 꼼꼼하게 일을 처리한 덕분이다.

지승혁은 정태준에게서 건네받은 서류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서류에는 조정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정현에 관한 전반적인 조사.

정태준에게 의뢰했던 일이 바로 그거였다.

물론 이전에도 조사를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그건 주로 조정현의 부모, 현무 실업의 사장 부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이 종이 한 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지승혁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그 뒤로 행적은 찾지 못했습니까?”

느릿하게 말하는 지승혁의 말이 끝나자 정태준은 빠르게 대답했다.

“조영웅 씨 말이죠? 어디로 숨겨둔 돈이 있었는지 현금만 쓰는 것 같은데, 그래도 워낙 씀씀이가 헤픈 양반이라 대충 있을 만한 곳 명단은 추려뒀어요.”

[생후 2주가 되지 않아 입양됨.]

지승혁의 눈길이 멈춘 구절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아이가 어떤 형질로 발현할지는 낳자마자 알 수 있다. 생후 일주일이 지나면 그 정확도는 98%에 달한다.

지승혁의 가라앉은 눈동자가 빠르게 아랫부분을 훑었다.

조정현이 사장 부부와 함께 살았던 시기는 초등학교 때까지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조정현을 양육했던 건 그곳의 입주 가정부였다. 그마저도 반년마다 한 번씩 사람을 바꾸었다.

중학생 때는 기숙학교에서 지냈고, 고등학생 때에는 집에서 나와 따로 자취를 시작했다. 방학 때에만 잠깐씩 본가를 갔는데 그마저도 부부는 따로 동반 휴가로 집을 비웠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조정현은 꽤나 상류층의 생활을 영위했다. 알파와 오메가들을 위한 특별 교육 과정이 마련된 학교는 1년에 4천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지승혁이 받아든 조사자료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어느 것도 없었다.

있는 집 자식이 이런 경우는 드물었다. 내놓은 자식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물며 조정현은 열성이지만 오메가다.

“…….”

지승혁은 그들이 왜 조정현을 입양했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이 제 이익을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이기적으로 굴 수 있는지 지승혁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쥘 수 있는 패의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면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도 지승혁도 그저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한 번도 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한데 왜 이렇게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드는 걸까.

지승혁은 조정현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머릿속에 하나하나 꺼내 보았다.

배달 음식에 질려 직접 만들어 먹고 지승혁과 함께 식사하면 꼬리라도 흔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아했다. 하나하나 떨어뜨리면 대수롭잖은 사항들이 마치 퍼즐처럼 끼워 들어갔다.

겨우 먹었던 치킨 두 조각.

잘 먹는다고 했지만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겼던 도시락.

……씨팔.

종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정현은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불쌍해, 그러니까 안 됐어-같은 생각으로 조정현을 대하기는 싫었다. 그런 시선으로 조정현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으흠. 옆에 있던 정태준이 작게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오메가 형질로 부잣집에서 그 정도로 보호받으면서 컸으니 다행이죠.”

“보호?”

지승혁은 느릿한 말투로 반문하며 정태준 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정태준의 눈동자에 아차 하는 기색이 스쳤다.

“도축할 수 있을 만큼 자랄 때까지 우리 안에 넣어서 사료를 주고 키워주면 고맙다고 해야 하나?”

나른한 말투와는 다르게 지승혁의 눈 안쪽에서 불길이 치솟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정태준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메가가 어떤 위협 속에서 사는지 겪어보지 못한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정태준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잡아드시겠네.”

정태준이 먼저 양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이라는 표시를 했다.

그는 천천히 눈꺼풀을 감았다 떴다. 화를 낼 대상이 정태준은 아니다.

조금 전의 대응은 그저 분풀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승혁은 솔직히 인정했다. 지승혁은 빠르게 감정을 말려 없앴다.

“좋습니다. 조영웅 사장 쪽에는 우리 팀에게 내려가라고 할 테니 장소 추려주세요.”

“아니, 근데 이런 건 지 사장님 팀원들도 다 할 수 있는 건데 왜 이렇게 사람을 부려 먹어요.”

장난스럽게 되받아치는 정태준 덕분에 한결 누그러진 분위기가 되었다.

“정태준 씨만큼 정확하게 잘 찾는 사람은 저희 직원 중에 없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지승혁을 정태준이 빤히 보았다. 곧 정태준이 허참, 하고 웃었다.

“이런 식으로 또 띄워 주시네. 네이, 잘 찾아다가 드릴게요.”

두 사람의 회의가 끝난 시간은 모든 직원이 퇴근하고도 한참 후였다.

정태준은 기지개를 켜며 목을 좌우로 움직였다.

지승혁은 말없이 정태준을 재촉하자 그는 일부러인 듯 느릿느릿 걸었다. 정태준은 지승혁의 눈길이 사나워지고 나서야 아이고 무서워라, 하며 재게 몸을 움직였다.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열자 안쪽에서 뭔가가 후다닥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조정현이 모습을 보였다. 자지 않고 지승혁을 기다리고 있다가 인기척이 나니 급하게 달려나온 모양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조정현이 얼마나 서둘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미리 언질을 했기 때문일까. 이번엔 식사를 차려놓지 않았다.

지승혁이 손을 뻗어 헝클어진 조정현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그러자 눈을 휘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많이 피곤하시죠. 좀 쉬셔야 할 텐데.”

“이 시간까지 일어나 있었어요?”

“네, 형 오시는 거 보고 자려고요.”

웃는 조정현의 말이 달게 느껴졌다. 희한한 일이다.

조정현은 자신을 보는 지승혁의 시선에 설핏 웃었다. 그러다가 퍼뜩 생각난 것처럼 지승혁에게 인사했다.

“피곤하실 텐데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얼굴 뵈었으니까 저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조정현은 재빨리 말을 마치고 지승혁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쏙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쉬웠지만 조정현도 못내 피곤할 게 분명했기에 붙잡지 않았다.

간단히 씻고 나온 지승혁은 바로 자지 않았다.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채로 정태준에게 넘겨받았던 조사자료를 넘겨보고 있었다.

지금 조정현을 보면 전혀 그런 배경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툭툭.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지승혁의 눈동자에 예기가 서렸다.

* * *

조정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뭔가 이상했다.

“어……?!”

몸을 벌떡 일으킨 조정현은 창밖이 환한 걸 보고 아연해졌다.

지승혁이 출근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하루 중에 그나마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출근 전과 퇴근 후의 잠깐인데 그 시간을 놓쳤다.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어진 조정현은 입술을 잘근거리며 방 밖으로 나왔다.

“일어났어요?”

“……어.”

조정현은 움직이던 몸을 굳혔다. 생각도 못 한 사람이 있었다.

“형, 출근하신 거…….”

지승혁이 집에 있었다. 심지어 오늘은 평일이었다.

한데 이상했다. 평소처럼 슈트 차림이 아니라 청바지에 니트를 입고 있었다.

“오늘 휴일이에요.”

“……아. 아니, 그러면 좀 더 주무시지 않고요. 피곤하시지 않으세요?”

“왜 이렇게 날 재우려고 해요.”

“네? 아니, 그게 아니구요. 그런 게 아니고 피곤하실까 봐요.”

지승혁이 웃었다. 조정현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러면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계시는 거예요?”

“맞아요.”

처음엔 얼떨떨해하던 조정현은 생각도 못 한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웃음이 피어났다.

하루종일.

이 넓은 집에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지승혁이라 더 좋았다.

“간단하게 아침 먹고 외출할까 하는데 괜찮아요?”

“외출요?”

“쇼핑하는 거 좋아해요? 정현 씨 옷 좀 사려고 하는데요.”

지승혁에게서 나온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물어봐도 될까 주저하던 조정현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 근데, 형.”

“네?”

“밖에 나가도, 괜찮아요? 저는, 저어…….”

누가 듣고 있는 것도 아닌데 조정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지승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 지금 여기 갇혀 있는 거 아닌가요?”

조심스럽게 물어본 노력도 무색하게 지승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조정현은 입을 다물고 아연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뭔가 잘못 말한 걸까. 지승혁이 웃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이 상황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저…….”

“아, 아니에요. 조정현 씨가 그걸 물어볼 줄은 몰랐어요. 마트에도 다녀왔으면서 새삼스럽게 그래요. 갇혀 있는 사람치고는 너무 위기감이 없는 거 아닌가요?”

지승혁은 우스운 듯이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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