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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19)화 (19/130)

#19

아침에 지승혁을 배웅하러 나갔을 때였다. 그가 눈도 채 뜨지 못하는 조정현의 뺨을 쓰다듬으며 웃음이 서린 목소리로 이만 들어가 자라고 했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누군가가 얼굴을 쓰다듬을 일이 없었던 조정현이기에 퍽 당황스럽고 놀랐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몹시 자연스러워 보였는데 사람의 얼굴을 쓰다듬는 게 습관이신 걸까.

“…….”

만약 그렇다면 좀 별로인 것 같은데.

괜스레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간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한숨을 쉰 조정현은 시계를 확인했다. 지승혁의 퇴근이 언제일지 모르겠다. 확인 해보면 되겠지만 혹여나 바쁜 사람에게 부담을 주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제처럼 늦게 돌아오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다른 것보다 지승혁이 많이 피곤할까 봐 걱정됐다. 지승혁이 돌아온 시간을 알고 조정현은 깜짝 놀랐다. 피로할 게 뻔했는데도 조정현와 함께 식사를 해주는 자상함이 고마웠다.

그와 함께 식사했던 새벽일을 떠올린 조정현의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걸렸다.

지승혁은 힘들었을 텐데 이런 걸로 좋아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조금 미안해졌다.

슬슬 저녁을 준비해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종일 집에만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대청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먼지도 많이 없었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조정현이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요리 정도였다. 그게 좋았다.

요리하다 보면 시간이 잘 흘렀다. 생각대로 요리가 만들어지는 것도 보람찼고 재료를 조금 달리 넣으면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건 또 다른 의미로 기쁜 일이었다.

따져보면 전부 자신에게 좋은 일이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갈비찜이 있으니 곁들여 먹을 건 칼칼한 게 좋을 것 같아서 메뉴는 고추장찌개로 결정했다. 핸드폰으로 레시피를 검색하던 조정현은 괜찮아 보이는 걸 하나 선택했다. 막 냉장고 쪽으로 가서 몇 가지 재료를 꺼내 손질을 마치고 냄비에 넣어 익히고 있는 참이었다.

조정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승혁이었다.

“네, 형.”

-뭐 하고 있었어요?

“아, 그냥 있었어요. 티비도 보고…….”

-그랬군요. 오늘 일 처리할 게 있어서 늦게 들어가요. 먼저 식사하고 있어요.

들려온 말에 조정현의 몸에서 살짝 힘이 빠졌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흘끔,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고 있는 찌개로 시선을 주던 조정현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다.

“네. 아직 저녁 만들기 전인데 전화해주셔서 감사해요. 저기, 형.”

-네?

“피곤하실 텐데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마세요.”

충동적으로 말문을 연 조정현은 말을 하면서 후회했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자신이 없었다. 너무 주제넘었던 게 아닐까. 다행히 지승혁이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가 웃는 소리가 났다.

웃음소리는 다 듣기 좋았지만 특히나 지승혁이 웃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간질거렸다.

-알겠어요. 그럼 문단속 잘하고 있어요.

“네에.”

조정현은 짧게 대답했다.

통화를 종료한 후 조정현은 널찍한 아일랜드 식탁에 푹 엎어졌다.

조정현은 잠시간 차가운 식탁에 뺨을 비비며 열기를 식혔다.

* * *

평상시와 같은 하루였다. 알람에 맞춘 시간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핸드폰의 알람을 꺼두었다.

준비를 마치고 나가는 소리에 눈을 뜬 조정현은 피곤할 텐데도 이른 출근을 하는 지승혁을 따라나와 배웅했다.

극우성 알파이기에 체력적으로 전혀 부담이 없는 자신과는 다르게 열성 오메가인 조정현이 피곤해하는 건 당연했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가를 비비며 비틀거리면서도 아득바득 고집을 부리며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름 지을 수 없는 만족감이 들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말랑해 보이는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들어가서 자라고 하자 수면으로 안개처럼 뿌옇던 조정현의 눈동자가 일시에 개었다. 그는 조금 발갛게 변한 얼굴로 알겠다고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사를 나눈 지승혁은 주차장으로 내려가 시동이 걸려 있는 차에 올라탔다.

그를 태운 까만 색 자동차가 매끄럽게 움직이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어김없이 일과를 보내고 있는데 퇴근 시간을 앞두고 정태준이 찾아왔다. 얼굴에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걸고 있었다.

“지 사장님. 저 왔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조용히 들어오면 될 것을 굳이 소리를 내는 모습에서 남자의 짓궂음을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벌써 십수 년간을 알고 지낸 사이이긴 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서로 존대를 하는 게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석이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격의 없이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저어됐다. 그런 결심을 하고 처음 존대를 시작하던 지승혁을 정태준은 3m쯤 되는 생쥐를 보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사장실로 들어온 정태준은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대접받은 후 붉은색의 USB와 갈색 종이봉투를 꺼냈다. 정태준은 그것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20년 전에 있던 일이라 기록상으로도 남지 않은 일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특별히 부탁하시는 것 같아서 빠르게 해봤습니다.”

지승혁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정태준 씨 솜씨가 좀 무뎌졌나 봅니다.”

“아이고, 지 사장님. 공치사 정도는 한번 해주시죠.”

정태준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너스레를 떨고 있으나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태준의 정보 수집과 조사에 대한 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승혁은 무덤덤하게 수고했다는 말은 건넸고 정태준은 그걸로 만족한 듯했다.

정태준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지승혁에게 말했다.

“이전에 또 의뢰하셨던 건 말인데요, 말씀드려야 할 게 있는데 시간 괜찮으시죠?”

부러 이렇게 말하는 걸 봐서는 몇십 분 안에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승혁은 흘끔 시계를 확인하곤 양해를 구했다. 조정현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자 두어 번의 신호 이후 상대가 받았다.

-네, 형.

망설임 없이 부르는 호칭이 썩 마음에 들었다. 뭐 하고 있냐는 질문에 티비도 보고 그냥 있었다는 답을 돌려주는 게 귀엽게 느껴졌다. 평범한 대답이었지만 커다란 집에서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상상을 했더니 웃음이 났다.

지승혁은 자신을 빤히 보는 정태준의 시선을 느꼈다.

“그랬군요. 오늘 일 처리할 게 있어서 늦게 들어가요. 먼저 식사하고 있어요.”

-네. 아직 저녁 만들기 전인데 전화해주셔서 감사해요. 저기, 형.

조정현이 할 말이 있다는 듯 지승혁을 불렀다.

-피곤하실 텐데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마세요.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지승혁의 몸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마 지승혁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헛걱정을 한다고 고개를 가로저었을 거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제법 좋았다.

무언가를 바라고 한 말이 아니라는 건 지승혁이 잘 알았다. 조정현은 진심으로 지승혁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승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알겠어요. 그럼 문단속 잘하고 있어요.”

-네에.

살짝 말꼬리를 늘이며 답하는 조정현의 대답을 들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얘기해야 할 게 뭔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죠.”

정태준은 해괴한 표정을 하고 지승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짓고 있었다. 지승혁은 정태준이 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얼른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히 통화내용 때문인 듯싶었는데, 지승혁 입장에서는 그게 왜, 싶은 거다.

“지금 전화 누구한테 했냐?”

갑작스러운 반말에 지승혁은 정태준에게 눈길을 주었다.

“내 집에 있는 사람이라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지승혁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들고 있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정현 씨?”

“맞아.”

정태준의 침묵이 조금 더 길어졌다.

“무슨 바람이 들어서 사람을 집에 들이나 했더니 둘이 뭐 살림 차린 거야? 귀가 전화를 왜 해?”

“저녁 만들 때……. 신경 꺼.”

지승혁은 드물게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잖아도 눈치가 비상한 정태준이다. 이걸 놓칠 리가 없었다.

“뭘 만들어? 저녁? 정현이가 저녁을 만든다고? 와, 지승혁 못쓰겠네. 애를 부려 먹어. 돈도 많은 놈이 좀 사 먹어라.”

지승혁의 인상이 확 찡그려졌다.

“호칭 좀 신경 쓰지.”

“뭐?”

“친구도 아닌데 왜 이름을 부르냔 말이야. 제대로 호칭 붙여서 불러.”

이번에는 정태준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정현 씨. 됐냐?”

그는 더럽고 치사하다는 표정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지승혁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근데 왜 그렇게 싸고돌아? 답지 않게. 정현 씨 페로몬이 좀 호감형이긴 했지만 아직 애잖아. 설마 뭐 다른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까지 다른 사람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는 몰랐는데.”

지승혁의 태연한 비꼼에 정태준은 어이없어했다.

“너는 지금 누가 뭐든지 해준다고 하면 뭐라고 할래.”

맥락 없이 툭 튀어나온 질문에 정태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어 으음, 하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짐짓 고민스럽게 입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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